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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의 칭호
칼리프(황제) 술탄(왕) 아미르(장군or영주) 그외 샤(왕중의 왕이란 페르시아어), 아타베그(영주,섭정), 칸(유목민족의 왕을 지칭) 굴람/맘루크(남자노예 뜻은 약간 틀리며 지역에 따라 또 틀려집니다.)
우마위야 왕조 (옴미아드 왕조) 660~750년 (지배층:아랍인)
이슬람교와 함께 세력을 확장한 종교국가. 서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프랑크왕국을 압박하고 소아시아에서 비잔틴제국을 압박했으며 동으로는 중국의 당나라에 전쟁을 했고 북인도에 진출한 이슬람 최강의 왕조이자 첫번째 왕조
ps: 이 왕조는 설명이 필요없기에 생략...
아바스 왕조 (압바스) 750~1258년 아랍제국의 2번째이슬람 바그다드 칼리프왕조 (지배층:수니파 칼리프)
아바스가는 초기엔 종교적 지도자일뿐 정치권력은 없었다. 하지만 우마위야 왕조의칼리프가 4번이나 바뀌는 권련투쟁과 부족간의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정통성문제제기로 우마위야조를 거부하며 하쉬미야가문이 반란을 일으키고 하쉬미야 가문의 당파에 속해있던 아바스 가문의 이브라힘은 745년 후라산을 중심으로 봉기준비를 하고 2년후 747년 후라산에서 봉기하여 분쟁중이던 우마위야 왕조를 지지하는 아랍부족들을 제압하고 후라산지방을 장악하고 서진하여 잡강에서 우마위야 왕조의 저항을 물리치고 749년 사파흐가 쿠파에서 칼리프임을 선언하여 우마위야조의 마지막 칼리프를 죽임으로써 아바스 왕조의 시작을 알렸다. 우마위야 왕조체제는 소수의 지배자인 아랍인이 다수인 피지배자(무어인,유대인,이집트인,투르크족,쿠르드족,페르시아인,아프간족등)를 지배한다는것이나 아바스 왕조는 아랍인의 특권적 지위를 없애고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지지를 받았다.
아바스 왕조에 이르러 이슬람의 그리스인이라 불리는 페르시아인과 군사적 투르크족들이 활발해진다.(맘루크의 활동)
또한 우마위야 왕조의 수도였던 다마스쿠스에서 바그다드로 수도를 옮겼다. 아바스 5대~6대에 이르러 아바스 왕조의 최전성기를 맞았지만 7대에 이르러 투르크족 노예용병(맘루크)을 고용하면서 쇠퇴의 씨앗이 심어졌다.
지연과 혈연에서 자유로울수 있었던 이 노예들의 충성으로 이슬람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이용되어졌지만 맘루크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자각하게 되면서 아바스 왕조는 쇠퇴하기시작한다. 861~945년까지 중앙정부에선 맘루크(노예)에 의해 칼리프가 휘둘리게 되고 지방에선 영주나 총독으로 파견된 맘루크가 반 독립화하며 자신들의 왕조를 세우기도하여 이슬람제국의 분열을 가져오게 된다. 그중 대표적인것이 파티마 조이다. 이후 아바스 왕조의 바그다드 시대는 몽골의 침략으로 사라지게 되며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에게 기대다가 맘루크 왕조가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당하자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에게
칼리프의 직위를 이양하면서 아바스 칼리프는 막을 내리게 된다.
아바스 왕조(칼리프)의 실권 왕조(술탄)들과 지방 세력들
아바스 칼리프체제를 이용하면서 아랍세계를 지배했던 왕가들
부와이흐 왕조 945~1055 (지배층:페르시아계 시아파)
부와이흐 왕조는 사산조 페르시아왕족의 후손이며 이가문은 오래전부터 보병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독립권을 인정받았왔다. 하지만 부와이흐조가 시작된것은 아부슈자 부와이의 아들3형제로부터 이다.
첫째 알리는 이스파한과 쉬라즈를 정복한뒤 파르스 전지역을 장악했고
둘째 하산은 지발과 메디아를 점령했으며
셋째 아흐마드는 키르만과 쿠지스탄을 점령하고 이어 945년 바그다드에 입성하여
맘루크들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던 아바스왕조의 칼리프 알-무스타크피에게 최고사령관의 작위를 받았으며 그 후 110년 동안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는 부와이흐 왕조의 손에 좌지우지 되었다. 부화이흐조가문은 이슬람세계의 황제라 할수있는 아바스 칼리프를 좌지 우지하였다. 부화이흐 술탄조의 최대 전성기는 둘째인 하산의 아들 아두드 앗 다울라(949~983재위) 시대로
타바리스탄,케르만에서 오만에 이르렀다. 아두드가 죽자 경제력의 악화와 더불어 부화이흐 왕조내분과 투르크계 군벌의 대두로 10세기 무렵부터 쇠퇴하여 가즈니 왕조와 대 셀주크 왕조에게 영토를 빼앗겼다.
부화이브 왕조의 교리는 소수시아파여서 정통이자 다수를 차지하던 수니파와의 갈등도 겹치게 되었다.
페르시아계의 부와이흐 왕조의 영향때문인지 현재 이란(페르시아)은 유일하게 시아파가 정권을 잡고 있네요. 국민 대부분도 시아파이고 이슬람 세계에서 현재 시아파가 상당수 있는 국가는 예멘(북부),이라크에 있네요. 이외의 다른 국가들의 시아파는 극소수라고 합니다.
대 셀주크 왕조 Seljuk 11세기~14세기 (지배층:투르크계 수니파)
셀주크족은 중앙아시아의 오구즈 투르크일족에 속해서 카스피해와 아랄해 연안에 살다가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10세기에 페르시아의 쿠라산지방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수십년간 유목투르크족들은 페르시아화하였다. 셀주크 족의 투그릴 베그는 유프라테스강으로 진출해 부와이흐조의 분쟁을 틈타 가즈나왕조를 격퇴하고 사만 왕조를 병합하였다(1040년) 이어 1043년 이스파한을함락시키므로서 페르시아 전역을 장악하고 1055년 바그다드에 입성하여 아바스칼리프 조종권을 부와이흐조로부터 넘겨받고 동서방의 술탄 최고의 아미르(장군)라는 칭호를 받는다. 11세기 중엽 이슬람세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
셀주크 왕조는 알프 아르슬란(1063~1072)와 그의 아들 말리크 샤(1072~1092)때에 전성기를 맞는다. 이들은 뛰어난 재상 니잠 알-물크의 노력으로 정치 군사 문화적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파티마 왕조와 싸워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방을 장악하고 파티마 왕조를 이집트로 축출했다.
11세기말에 셀주크 왕조는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이슬람세계는
다시 재통일 되었다. 또한 비잔틴제국을 공격하여 1071년 알프 아르슬란술탄의 지휘 하에 반호수 북방의 전투에서 황제 로마누스 디오게네프를 포로로 잡으며 승리하여 아나톨리아 지역 대부분을 장악한다.
(이후 아나톨리아 지방이 이슬람화 되었다 롬셀주크왕국의 기원이 된다.)
왕조는 1157년 산자르술탄의 사망이후 약화되어 여러 소국가로 분열되었고 분봉 왕자들의 정권투쟁과 서쪽의 십자군 북쪽의 코라즘 동쪽의 카라 키타이(서요)등에 의해 쇠퇴하게 된다. 독립적 권력을 행사하던 셀주크투르크계 분파정권도 12세기말 모두 멸망하였다. 하지만 룸 셀주크국가만 남아몽골의 서진을 막아내며 1307년 오스만투르크에 멸망할때 까지 존속했다.
대셀주크왕조의 분가 왕조들
케르만 셀주크 왕조 1041?~1187 (이란 남동부)
시리아 셀주크 왕조 1094~1117
---->장기 왕조: 아이유브 왕조의 기반이 된 가문이다.
칼리프의 반란을 진압한 대가로 모술과 알레포의 총독이 된 장기는 대 셀주크 왕조의 분가인 시리아-셀주크 왕조의 공주이자 일가지(아타베그)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시리아-셀주크 왕조의 아타베그가 되어 아타베그 정권인 장기왕조를 세웠다. 장기는 대 셀주크 왕조의 술탄에게 시리아와 자지라(북부이라크)의 위임받고 시리아에서 대십자군 전쟁을 진행했으며
대 셀주크 왕조의 분가인 부리 왕조(다마스쿠스)와 대립하였다. 장기와 그의 아들 누르 알딘과 살라딘은 이슬람의 영웅으로 이야기 된다.
이라크 셀주크 왕조 1117~1194
룸 셀주크 왕조 (아나톨리아셀주크)1077~1307 al-Rum Seljuk (지배층:투르크족)
시조는 술레이만(재위1077~1086)으로 대 셀주크왕조의 말리크 샤 시대에 소아시아 방면의 아미르로 임명되어
니케아로 진출하였고 1077년 니케아를 중심으로 왕조가 시작되었다. 역시 대셀주크왕조의 분가 왕조이다.
룸셀주크왕조는 이후 십자군의 동진을 저지하면서 수도를 니케아에서 내륙인 코냐로 옮기고 알라에딘 케이 쿠바드 1세(재위1219~1237)때 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하게된다. 하지만 그의 사망후 투르크족의 반란과 1243년 몽골 원정군에패하고 일한국의 속주가 되면서 쇠퇴한다. 그 후 1308년 기야스 우딘 메수트 3세가 카이세리아에서 급사하여 룸 셀주크 왕조는 멸망하게 된다.
롬 셀주크 왕조는 소아시아의 투르크이슬람화를 해 오스만 투르크의 발전기반을 닥았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 1258~ (지배층:투르크족)
13세기말 룸 셀주크가 쇠퇴하여 소아시아에 크고 작은 투르크계국가들이 분열되었는데 그중 아나톨리아에 근거지를 두고 있던 오스만 1세(1258~1326)가 건국한다. 그의 부친은 롬 셀주크 왕조의 용병집단이었으나 오스만1세가 수장이 된뒤 정치적 세력을 키웠고 1299년 롬 셀주크 왕조가 멸망하자 권력을 넘겨받았고 이것이 시작이 되었다. 오스만 1세는 비잔틴 제국 경계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부르사를 공략하여 아나톨리아 전역을 차지한뒤 부르사를 수도로 정했다.
이후 오스만 투르크는 아드리아노플을 점령(1362)하고 코소보 전투(1389)에서 발칸반도의 여러 동맹군에게 승리하고
니코 폴리스에서 십자군(1396)을 격파하여 발칸의 지역의 획득하였다. 그러나 티무르의 침략으로 앙카라(1402)에서 패하여 바예지드1세(술탄)이 포로로 잡혀 발전하던 오스만 투르크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1405년 티무르가 사망하자 바예지드1세의 아들인 메흐메드1세(재위1413~1421)가 국력을 회복시켰으며 그의 손자 메흐메드2세(1444~1446,1451~1481)때 콘ㅅ탄티노플을 공략하여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키고 1453년 수도를 아드리아노플에서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옮기었다.
이시기 북아프리카와 동유럽일부를 획득하고 강력한 해군을 구축한다. 셀림 1세(1512~1520)때 페르시아와 이집트 및 아랍 지역을 점령하였고 홍해로 해군력이 진출하게 된다. 셀림 1세는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키므로써 몽골에게 바그다드에서 쫒겨난 아바스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로부터 칼리프의 칭호를 이양받아 이슬람세계의 종주국이 되었으며 술탄 칭호와 칼리프 칭호를 함께 사용하여 술탄 칼리프제를 확립했다(1517)
가장 절정기인 술리이만1세(1520~1566)때 해군력을 통한 영토확장을 했은데 이베리아반도를 일부를 일시적으로 점령하였고
튀니스 알제리 지역역시 점령한다. 또한 1543년 신성로마제국의 니스를 점령하기도 하고 오스트리아의 빈까지 공격하여 유럽을 공포로 몰아 넣는다.
이집트의 이슬람 왕조
<투르크족 쿠르드족 아랍인 이집트인 베르베르인>
파티마 왕조 Fātima 909~1171: (지배층:시아파 이스마일파)
이스마일파: 칼리프의 정치적 종교적 권위를 거부하며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위겸 사촌인 알리의 후선만이 이슬람의 칼리프가 될수 있다고 교리를 주장. 알리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스마일을 시아파7대 이맘(칼리프와 동격으로간주)으로 간주하는 분파
이스마일파의 지도자중 한명인 사이드 빈 후세인(?~934)이 893년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인에게 정치적 지지를 얻었고
이들의 도움으로 909년 북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아글라브 왕조를 멸망시키고 파티마 왕조를 열었다. 이후 강력한 군사력으로 921년 모로코의 이드리스 왕조마져 무너뜨리고 북아프리카의 패권을 차지한다. 파티마 왕조는 아바스 왕조(정통 수니파)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이슬람에 정통성을 주장했다. 따라서 반 아바스 정책인 파티마 왕조는 아바스 칼리프국을 계속 공격했으며 황금의 땅이던 이집트지방을 얻고자 수차례 원정을 감행한다. 여러번의 이집트 원정은 실패를 거쳐 아바스 제국이 기근을 틈타 약되었고 이크쉬드 왕조(아바스를 받들던 이집트의 지방왕조)는 파티마의 10만대군을 이기지 못하고 963년 수도 푸스타트까지 빼앗기가 된다. 이후 파티마 왕조는 계속북진해 시리아를 치고 시칠리아까지 정복하였으며
아바스왕조(정통 수니파)와는 다른 파티마왕조(시아파)만의 독자적 칼리프 연호를 운영하였다.
파티마 왕조로 인해 이슬람세력은 아바스의 수니파와 파티마의 시아파로 동서로 양분되게 된다.
파티마의 수도는 푸스타트였고 파티마 왕조가 지은 요새도시 알-카히라(현재 카이로)는 발전하여 인구 20~30만명에 달한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큰 도시가 되었다.
파티마왕조는 11세기 이후 계속된 십자군 전쟁에 의해 시리아지방과 팔레스타인지방을 점령당하면서 크게 약화되고 몰락하였는데 예루살렘왕국 공격을 받고 대 셀주크 왕조의 시리아의 장기 왕조(다마스쿠스)에 지원요청을 하였고 장기 왕조의 누르 알-딘은 쉬르쿠흐(살라딘동행)를 지원군으로 보냈다. 이것이 파티마 왕조의 멸망의 결정적 원인을 하게 된다. 이후 살라딘이
파티마왕조의 실권을 잡게되고 파티마왕조의 마지막 칼리프가 죽고 파티마 왕조는 아이유브 왕조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했다.
아이유브 왕조 Ayyūbid dynasty 1169~1250 (지배층:투르크중심의쿠르드계)
살라흐 알-딘은 투르크계중심의 쿠르드계로써
모술과 알레포의 아미르인 잔기이 빈 아끄 손꾸르(투르크계)가 아이유브가문을 포함한 쿠르드계를 자신의 군대에 흡수하였다.
따라서 살라딘의 세력은 잔기이의 군벌을 이어받았으므로 투르크계중심의 쿠르드계라고 할수있다. 뛰어나고 아미르였던 잔기이가 죽자 잔기이의 아들인 누르 알-딘이 파티마 왕조에서 원조 요청이 오자 쉬르쿠흐(아이유브가)를 이집트로 파견하였고
이때 살라딘은 동행한다. 이후 쉬르쿠흐는 1169년 파티마조의 실권을 장악하며 재상에 올랐으나 2달뒤 사망하여 그 실권은
살라딘에게 넘어 갔다.
시아파의 파티마조에서 살라딘은 수니 이슬람 신앙을 전파하고 이집트와 시리아를 목표로 1171년 파티마 왕조의 마지막칼리프가 죽자 아이유브 조의 탄생을 선언한다. 이후 누르 알-딘이 죽자 다마스쿠스로 진출하여 주종관계를 청산하고 시리아를 점령한뒤 술탄이라고 칭하였다. 1175년 살리흐 알-딘은 아바스 왕조의 알-무스타디(칼리프)에게 자신의 북아프리카와 예멘 시리아와 이집트지역의 통치권에 대한 위임장을 요구한다. 이에 칼리프는 살라딘에게 술탄이란 칭호와 함께 이를 인정한다.
살라딘은 수도 카이로를 중심으로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예멘 등을 지배하였고 1174년 알렉산드리아를 침략한 십자군을 격퇴하고 시리아의 십자군 도시들을 빼앗았으며 1187년 예루살렘을 탈환한다.
살라딘이 죽자 그의 영토는 아이유브 일족들에 의해 분열되었는데. 살라딘의 아우 아딜의 계통이 이집트와 다마스쿠스를 지배하였다. 1250년에 이르러 아이유브 왕조는 자신들이 고용한 맘루크에 의해 멸망하였다.
맘루크 왕조 Mamluk dynasty 13~16세기 <지배층 초기:투르크계맘루크 후기:시르시케시계(그리스계도포함)>
이슬람 세계는 맘루크(군사노예)들을 길러 지배를 강화하였으나 엮으로 자신의 권력을 자각한
맘루크들에 의해 수많은 왕조들이 세워지게 된다.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는 그런 대표적 왕조이다.
아이유브 왕조는 강력한 맘루크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아이유브 왕조말기 알-살리흐(술탄)이 병사하자 그의 후궁 알-두란샤가 술탄의 아들 투란샤를 술탄으로 추대하였는데 투란샤는 십자군 전쟁에서 활략한 맘루크군대와 샤자르 알-두르를 경계하여 탄압하였다. 이에 바이바르스를 중심으로 맘루크들은 투란샤의 탄압에 대항해 그를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뒤 샤자르 알-두르를 술탄으로 선포한다. 하지만 아바스칼리프가 여성을 술탄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맘루크군 알-무이즈 아이벡이 그녀와 결혼한뒤 술탄에 올랐다. 이것이 맘루크 왕조의 시작이다.
맘루크 왕조 초기 몽골군의 침략을 1260년 물리쳐 왕조의 위치를 다졋다.
맘루크 왕조의 세습 특징은 일부부자세습이 있었지만 주요 정파중에 승리한 정파의 지도자가 술탄이 되었다. 이 불안한 제도는 250년 이상 지속되었다.(이는 힘센자가 동시에 강력한 통치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맘루크 왕조의 멸망은 흑사병과 왕조 말기의 실정과 1509년 유럽국가들이 신항로를 개척하여 중계무역의 이권이 사라져 막대한 손실을 보며 쇠퇴한다. 1516년 오스만 투르크 셀림 1세(술탄)의 공격을 받아 수십년간 전투경험이 없었던 맘루크군은 오스만 투르크에게쉽게 패하고 1517년 맘르크 왕조의 마지막 술탄 투만베이가 처형됨으로써 맘루크 왕조는 끝이 나게 된다.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왕조
<인종구성 베르베르인 아랍인 베드윈족 토착민(이베리아이슬람)등>
후 우마이야왕조(후옴미아드)756~1031 Umayyad dynasty of Córdova: (지배층:아랍인) <이베리아중남부>
이슬람의 1대칼리프 왕조인 우마이야왕조가 바그다드에서 축출되자 우마이야왕족인 아브드 알 라흐만 1세는
에스파냐로 도망가 756년 코르도바를 수도로 베르베르인과 슬라브인을 이용하여 토착세력과 술탄들을 억누르고
우마이야왕조의 에스파냐 시대를 시작한다. 이후 노르만의 침략과 프랑크왕국의 공격을 격퇴하면서 확장하였지만 무와라드(이슬람토착민)의 반란에 시달렸다. 아브드 알 라흐만 3세(후우마이야 8대)가 분열된 에스파냐를 다시 통일하고 칼리프의 존칭을 썻으며 레온, 카스티야의 카톨릭국가들을 복종케했하고 절정기를 이루었다. 그가 죽은후 만수르(무인재상)의 독재로 유지 되었으나 그마져 죽자 이슬람의 에스파냐는 군소 이슬람술판국가로 난립하였고 결국 1016년 모로코 함무드 왕조의 코르도바 점령으로 왕조는 멸망한다.
아글라브 왕조 800~909 (지배층:베르베리인)<튀니스+알제리>
북아프리카 여러 지방의 시아파 바란을 진압하기 위해 이브라함 빈 아글라브를 아미르(장군겸 총독)로 임명한데서 시작되었다. 수도 카이라완을 중심으로 시칠리아, 사르데냐를 점령하여 비잔틴제국을 압박하였고 지중해 패권을 차지한다.
아글라브 왕조로 인해 북아프리카에서 카톨릭문화는 소멸되고 이슬람문화가 자리잡게 된다.
이후 시아파의 반란으로 지야다 탈라3세(아글라브왕조 11대 아미르)가 도망가 아글라브 왕조는 파티마왕조에게 멸망한다.
이드리스 왕조 789~921 (지배층:아랍인+베르베르인) <모로크>
이드리스 1세는 무함마드의 직계후손으로 알려졌으며 우마이야 왕조의 붕괴와 함께 이슬림세계에서
일어나던 아랍인제일주의에 반발해오던 베르베르인을 포섭하여 왕조를 세운다.
이드리스 2세는 페즈를 수도로 삼는다. 그가 죽자 왕조는 분열되었고 후우마이야 왕조와 파티마 왕조의
공격을 받고 결국 파티마 왕조에 의에 병합당한다.
북아프리카의 형국
북아프리카에 정치적 중심지를 가진 최초의 왕조는 모로코의 이드리스 왕조이다. 이드리스 왕조는 아바스 왕조와 후마이야 왕조의 완충지대 역활을 하며 발전한다 이후 아바스 왕조가 쇠퇴하자 알제리와 튀니스에서도 여러 왕조들이 독립하기 시작한다. 파티마 왕조에 의해 북아프리카의 통일 되었지만 파티마 쇠퇴와 함께 다시 여러 왕조들이 생겨난다.
------------------여기까지 동시대의 왕조------------------------------------------------
함무드 왕조 (지배층:베르베르인) <모로코>
모로크를 기반으로 한 왕조 자료부재 ..
발렌시아 왕국 1010~1238 Kingdom of Valencia: (지배층:아랍인)
후우마이야 왕조말기 이베리아반도의 이슬람 세력은 20개의 소왕국이 난립하였는데
발렌시아도 그중의 하나이다. 압둘 아지즈 알 만수르 술탄(재위1021~106)치세때 번영하였으며 그뒤를 이은 압둘 말리크(재위1061~1065)때에 이르러 카스티야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게된다. 이후 발렌시아는 카스티야지배를 거쳐 시드 캄베아돌의 지배를 거치고 북아프리카의 무라비트왕조와 무와히드왕조에 병합되었다가 1239년 아라곤왕국에 병합된다.
나수르 왕조(그라나다왕국) 1231~1492 Nasrid dynasty: (지배층:아랍인) <이베리아남부>
아랍계의 나스르족의 무하마드가 세운 왕조로 수도가 그라나다여서 그라나다왕국이라고도 한다.
카톨릭국가들의 국토회복운동으로 1236년 코르도바가 점령당하자 세력은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북으로는 세이라네바다산지 남으로는 알메리아~지브롤터에 이르는 영역을 지배하였다.
1246년 카스티야왕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돼지만 문화적으로 흥하였다. 하지만 내분과
카스피야와 아라곤왕국의 합병이 치명타가 되어 결국 연합왕국 스페인에 의해 1492년멸망하게 된다.
무라비트 왕조(알모라비데왕조) al- Murābit dynasty 1056~1147 (지배층:베르베르인)<튀니스+이베리아남부>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 남부를 지배한 왕조로 사하라를 주무대로 살던 유목민족 베르베르계의 람투나족(종교전사집단)을 중심으로 세운 왕조이다. 처음의 영역은 세네갈 하구의 섬에서 이슬람 교단국가를 형성하였고 이후 영역을 넓혀
마라케시(현모로코)를 수도로 삼고 북서아프리카에 세력을 뻗쳤다. 이후 이베리아반도로 친출하여 1086년 레온왕국을 물리치고 이베리아 남부를 지배하였다. 무라비트 왕조는 바그다드칼리프(아바스왕조)의 종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칼리프의 동격인 칭호를 썻다. 12세기에 들어 무와히드 왕조의 압박에 시달리다가 1147년 수도 마라케시의 함락을 끝으로 멸망한다.
무와히드 왕조(알모아데왕조) al- Muwahhid 1130~1269 (지배층:베르베르인) <튀니스+이베리아남부>
베르베르계의 마스무다족의 이븐 투마르트가 종교운동을 시작한것이 무와히드왕조의 시초가 되었다.
이 종교운동은 무라비트 왕조의 탄압을 받았으나 이후 아브드 알 무민이 교단세력을 강화하여
무라비트 왕조를 멸망시키고 북아프리카 일대를 지배하였고 이후 이베리안반도에서 남진 중이던 카톨릭왕국들의 세력을 견제하고 수도를 마라케시에서 한때 세비야로 천도하기도 했다. 13세기 카톨릭왕국의 침입과 베르베르의 반란으로 쇠퇴하다가
1269년 마린 왕조에게 멸망하였다.
마린 왕조 Marīnid dynasty 1195~1470 (지배층:베르베르인) <튀니스>
베르베르계의 제나다족이 아틀라스산(모로크의 거대한산맥)중에 세웠다.
점점 세를 떨치던 마린 왕조는 1296년 무와히드 왕조의 수도 말라케시를 함락하여 멸한뒤 페즈에 수도를 정하였다.
이후 이베리아에 세력을 뻣쳐 14세기 중엽까지 전쟁을 벌였다.
이때문에 나스르 왕조(그라나다왕국)은 지위가 강해졌고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이 사라지는걸 늦출수 있었다.
마린 왕조의 가장 위대한 술탄 아부 알 하산은 검은 술탄이라고 불리며 북아프리카의 최강국이 되었다.
그는 알제리의 지얀왕조의 수도를 쳐 지얀왕조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1415년 포르투갈에게 세우타를 뺏기고 다시 카톨릭 왕국과의 전쟁이 격화되었다. 이후 이베리아의 카톨릭왕국들과 튀니스의 하프스 왕조와 무리한 세력다툼끝에 왕조는 쇠퇴하고 만다.
15세기에 이르러 무정부상태가 되고 결국 아타스 가에 의해 1465년 와타스 왕조가 세워지며 멸망한다.
지얀 왕조 <알제리> 설명???...
하프스 왕조 <튀니스> 설명???...
와타스 왕조 1470~ 설명???...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왕조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지방 포함.
<투르크족 아랍인 페르시아인 아프간족 등의 유목민족>
타히르 왕조 Tahir 821~873년: (지배층:페르시아인)
이란지역이 7세기중엽 아랍에 정복된 이래 최초로 수립된 이란계 왕조
아바스 왕조 칼리프의 노예였던 장군 타히르 빈 후사인이 바그다드 공략을 성공시킨 대가로
이란 동북지방의 영주로 임명됨으로 타히르 왕조가 시작되었다. 5대에 걸쳐 이란 동부를 지배하나
후에 일어나 사파르 왕조에게 멸망 당한다.
사파르 왕조 867~903년: (지배층:페르시아인)
9세기 바그다다의 아바스 왕조의 신하국이자 동부이란을 지배한 타히르 왕조
대장장이(사파르)출신 이란인 야쿠브가 이란인들을 규합하여 헤라트, 케르만지방으로 영역을 넓히고
파르스 지방을 침략하여 이란 남서부를 본거지로 하는 사만 왕조를 열었다.
그뒤 타히르 왕조의 호라산을 빼앗고 바그다드로 서진하였으나 바그다드 셀주크 칼리프와 그의 형제들에게 패배하였고
후에 사만 왕조에게 본거지를 빼앗겨 멸망당한다.
사만 왕조 874~999년 Samanids (지배층:페르시아인)
형식상 아바스왕조의 칼리프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신하국가
이란계 귀족 나스르 빈 아마드가 트란스옥사니아를 거점으로 출발한 사만왕조는 후에 호라즘지방을 점령하고
900년에 사파르 왕조를 무너트리고 호라즘지방을 확실히 장악한다. 나스르 2세(사만 4대)때 전성기를 맞이하여 레이,쿠므,이스파한을 쳐서 이란중앙을 차지하였으나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에게 명목상으로 신하가 되었다.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는 번창하여 바그다드를 능가할정도의 번영한 도시가 되었다.
이란계 왕조인 사만 왕조는 동서무역으로 발전되었고 학술과 문예도 상당히 발달하였다.
후에 카라한 왕조(투르크계이슬람왕조)에게 멸망당한다.
이후 이란계국가는 1502년 사파비왕조나 나타날때까지 기다려야했다.
카라한 왕조(일리크한왕조)999~1232년: (지배층:유목투르크계)
기원에는 위그르족설과 카를루크족설이 있다. 960년경 발라사군(현재 키르키스탄지역)을 근거지로 한 유목투르크계의 족장 사투크 보그라한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남서진하여 카슈가르(현재 신장위구르자치구 서남지방)를 병합한다.
이후 일리크한 나슬대에 이르러 서진하여 사만 왕조를 멸망시키고 남진하여 파미르지방를 정복하였다.
지방 분권적 지배체제 였음에도 지리적 요충지로 발달한다.
11세기에 이르러 카라한 왕조의 서부(서카라한 왕조)는 11세기말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를 받게 되어 주종관계를 맺는다.
동카라한 왕조가 카라 키타이(서요)에게 지원을 요청함으로 서요건국의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야율대석은 동카라한 왕조를 멸망시키고 서요를 세운다. 나머지 카라한 왕조의 지역도 셀주크 투르크에 병합되고 만다.
가즈니 왕조(가즈나) 10~11세기(7세기 건국추정) Ghazni: (지배층:투르크계맘루크)
가즈니 왕조는 사만 왕조의 지방 영주로 시작되었다.
이란계의 사만왕조의 장군이었던 투르크계 노예출신 알프티긴이 창건함. 알프티긴(가즈니 1대)의 노예였으나 후에 양자가 된 수부크티긴(가즈니 5대)이 사만왕조에 예속되어있던 가즈니왕조를 여러차례의 정복전쟁으로 가즈니 왕조의 독립의 기초를 닥았다. 수부크티긴의 아들 마흐무드(가즈니 7대술탄)가 카라한 왕조를 정복하였고
1000년경 10차례 인돈원정으로 전리품과 기술자를 얻었다 이 기술자들로 인도식 궁전과 모스크를 지었다.
최전성기에는 동으로 펀자브(라호르) 북으로는 사마르칸트,부라하 서로는 라이,이스파한까지 이르렀다.
서로 셀주크를 억눌렀고 이슬람 역사상 위대한 통치자로 꼽힌다.
구르 왕조(고르/고리)12~13세기: (지배층:아프간족)
구르지방은 (아프칸족?투르크족?)부족단위로 가즈니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나 12세기초 고르 지방의 아프간부족장인 우딘형제가 가즈니 왕조를 멸망시키고 인도로 침입하여 13세기 초에는 최대 영토를 차지하였으나, 뒤에 분열하여 인도 지역에서는 노예 왕조가 성립되었다. 구르 왕조의 모하메드구르는 라지푸트족(아리안족:힌두교)이 연합한 프리트비라즈 힌두 연합군을 1/2차 타라인전투에서 제압하고 북인도를 점령한다. 후에 자신의 노예인 아이바크(노예왕조의 창시자)를 북인도 총독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본거지(코라즘지방)로 돌아왔다. 이후 구르왕조는 모하메드 고리 사후 쇠약해졌고 결국 코라즘 샤국의 강력한 칼리프인 무하마드에게 흡수당한다.
코라즘 샤국 Khwarezm shah 1076~1231 (지배층:페르시아화된 투르크계)
가즈니 왕조의 술탄 마흐무드가 코라즘 왕국을 지배후 알톤티쉬를 샤로 임명함. 알톤티쉬가 죽자 하룬이 가즈니 왕조에 대항해 일어나지만 가즈니 왕조의 말리크샤가 진압하고 이 상황을 틈타 셀주크 투르크가 말리크샤를 패퇴시키고 코라즘을 셀주크에 복속시킴. 이후 알라딘 아트시즈 샤가 셀주크에 반기를 들지만 셀주크의 왕자 산자르가 진압하고 셀주크의 산자르가
카라 키타이(서요:거란족)와 전쟁을 벌이는 틈을 타 반란을 다시 일으키지만 다시 진압당합니다. 이후 아들 일 아르슬란 샤는 카라 키타이(서요)에게 침략당합니다.
테키쉬샤에 이르러 바그다드의 칼리프(셀주크)를 공격하여 칼리프 칭호를 얻게 됩니다.
코라즘 샤국의 최전성기는 무함마드 칼리프 샤 때입니다. 무함마드는 코라즘의 북동부 부하라를 점령하여
카라 키타이(서요)의 공격을 받아 패퇴합니다. 무함마드는 재기에 성공해서 카라 키타이(서요)를 물리치고 카라한 왕조마져
멸망시키며 수도를 사마르칸트로 옮기며 구르 왕조마져 멸망시킵니다. 이후 절정에 오른
무함마드는 바그다드의 칼리프에게 칼리프위의 직함을 요구하나 거절당하고 이슬람세계에서 냉대를 받게됩니다.
그리고 몽골초원에서 몽골이 일어나 카라 키타이(서요)가 멸망당하자 코라즘 왕국 사절단을 보냈고 이후 몽골의 교역단이
오자 코라즘의 영주가 몽골의 교역단을 모조리 죽여버립니다. 이후 몽골의 항의사절마져 모조리 죽여버립니다.
결국 코라즘 샤국은 몽골의 명장 주치, 오고타이, 차가타이 등의 공격을 받고 멸망 당합니다.
멸망당할때 코라즘 샤국은 몽골군을 힘들게 했고 그로 인해 몽골군은 코라즘 점령후 역사상 유래가 없는 도륙을 합니다.
카라 키타이=흑거란(서요:거란) 1132~1218년: (지배층:거란족) 이 왕국은 이슬람이 아닙니다.
1125년 금나라(여진)에 의해 요나라가 멸망하자 요나라의 왕족인 야율대석이 무리를 데리고 몽골로 탈출하였다가 중앙아시아로 진출 1132년 위그르족등의 지원을 받아 투르크계 카라한 왕조를 멸망시키고 제위에 올라 쿠르칸이라 불렀다. 1137년 옛 서카라한 왕조지역을 공략한 서요는 1141년 사마르칸트 부근에서 셀주크 투르크제후군의 대군과 싸워 승리하여 동서 옛 카라한왕조의 전역을 서요의 영토로 편입하였다.
3대에 걸친 서요는 1211년 징기스칸에 쫒겨 중앙아시아로 밀려난 투르크계 나이만부족의 쿠츨루크의 점령되었다가
1218년 몽골의 징기스칸의 침략으로 결국 멸망하였다.
서요는 이슬람문화의 중앙아시아에 중국문화를 심어놓았다.
인도의 이슬람왕조
<투르크족 아프간족 아리안족 아랍인>
1.bc3천년경 인더스문명 시작.
2.bc2천년경 아리안족이 인도로 도래하였고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아리안족에게서 시작되었다.
3.bc600년경 인도에 마가다, 코살라, 쿠루, 간다라등의 16개 군소국가 (이들국가중 샤카족 왕실에서 bc623년 석가모니탄생)
4.bc6세기말 인도 북서부지방은 페르시아에 의해 지배를 받다가 bc326년 알렉산더 대왕이의 침략을 받는다.
5.bc326~bc184년 인도 최초의 중앙집권국가인 마우리아왕국(인도북동부)이 세워지고 오린엔트의 많은 국가들과 교류한다. 이후 슝가왕조에게 멸망당함.
6.bc1세기~ad3세기 쿠샨왕조:분권 왕국(불교)가 세워지고 페르시아, 중국, 로마제국과 교류 하였다.
7.ad320~550년 굽타왕조(힌두교)가 세워짐.
8.606~647(41년간) 하르샤왕조 북인도를 지배. 남인도는 차루키아왕국(556~757), 빨라바왕구(300~888), 빤디야왕국(7~10세기)
9.711년 이슬람세력이 침입하여 신드(파키스탄)지방을 점령하여 인도-무슬림 국가를 세움
10.라지푸트 제왕조: 힌두교를 믿는 아리안족(라지푸트족)의 분열 왕국시대
1191년 라지푸트족을 침략한 구르왕조의 지배를 받음
11. 10세기말 투르크족의 지배를 받게된다 (아래 5개왕조)
ps 순서중에 빠진것이 많네요 동궐의 침략도 그렇고; 이건 대충넘어가 주세요
델리 술탄왕국의 5개 제왕조
델리술탄왕국의 북인도는 인도 원주민을 피지배층으로 하여 투르크족의 4개왕조와 아프칸족의 1개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지배충의 종교는 주로 이슬람교였고 피지배층의 주종교는 힌드교였다.
델리술탄의 5개 제왕조는 로디왕조를 끝으로 무굴제국이 시작되었고 무굴제국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거쳐 현재 인도가 되었다.
1.노예 왕조(Slave dynasty)1206~1290: (지배층:투르크계 맘루크)
노예 왕조라 부르는 이유는 노예(맘루크)출신의 왕이 많이 나와서이다.
아프간과 북인도를 지배한 구르왕조의 무하마드가 암살되자 무하마드의 노예(맘루크)인 아이바크가
펀자브(델리) 지방을 중심으로 독립하여 술탄이 되었다. 아이바크가 죽자 아이바크의 노예였고 능력을 인정받아 총독에 이어 사위가 된
일투트미시는 아이바크의 무능한 아들(알람 샤를)을
쓰러뜨리고 노예왕조의 3번째 술탄이 되어 분열되 있던 왕국을 재정비하는 한편 징기스칸의 침략도
무사히 넘기고 정복전쟁을 통해 동부 인도의 벵골 서부의 신드 중부의 괄리오르에 이르는 광대한
왕국을 세운다. 노예왕조 이후 힐지왕조에 의해 멸망당했다.
2.할지 왕조(Khalj? dynasty)1290~1320: (지배층:투르크족)
투르크 할지족의 잘랄웃딘 할지가 노예 왕조를 끈어버리고
새롭게 세운 왕조이다. 하지만 조카 알라우딘 할지가 그를 살해하고 할지 왕조의 2번째 술탄이 되었고 그는 할지왕조를
최전성기로 이끌었다. 몽골의 위협을 물리쳤으며 인도전역으로 정복을 기도했다. 특히 남인도에서 번청하던
힌두 제왕국에 원정군을 지속적으로 보내 막대한전리품을 얻기도 했다.
그의 사후 왕위 쟁탈전으로 내분이 계속되어 급속히 쇠퇴 노예왕조 30년(6대)만에 투글루크왕조에게 멸망하였다.
3.투글루크 왕조(Tughluq dynasty)1320~1414: (지배층:?)
할지왕조를 무너뜨린 기야스 웃딘에 의해 창설되었다.
3대 피로스 샤왕때에 부흥했으나. 제4대에 티무르(1399)의 침략으로 쇠퇴하였고 결국 사이드왕조(티무르의 부장 히즈르칸)에게 멸망당했다.
4.사이드 왕조 1414~1451: (지배층:?)
쿠글루크왕조가 티무르의 침략으로 약해지자 쿠글루크왕조의 귀족 히즈르 칸이 델리를 차지하고 왕조를 열었다.
하지만 왕조의 지배는 델리주변에만 그쳤고 각 지방은 힌두교도의 반란으로 끊임이 없었다.
5.로디 왕조 1451~1526: (지배층:아프간계)
델리술탄왕조의 5개왕조중 유일하게 아프칸족 혈통의 왕조이다.
펀자브지방에서 세력을 떨친 아프칸계 로디족의 족장 바룰로디가 사이드 왕조가 쇠퇴하자 사이드를
쓰러트리고 로디 왕조를 세웠다 이후 갠지스강 중류지역까지 진출해 북인도 중앙까지 세력을 확대하였다.
ps:
이시기 제가 생각하는 이슬람 세계는 크게 나눠 4개의 지역으로 특
1.(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만 연안의 아라비아/소아시아/서남부 페르시아지방)
2.(북동부 페르시아지방/중앙아시아)
3.(이집트/팔레스타인/시리아/홍해 연안의 아라비아)
4.(북인도)
5.(이베리아/북아프리카 서부와 중부)
종교적으로는 4곳으로 나눌수 있을것 같더군요
1.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제를 받드는 정통시아파
2.파티마 왕조의 칼리프제를 받느는 수니파
3.후우마위야 왕조이후 난립하는 이베리아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교단들
4.인도의 이슬람 왕조들
BC모드에 나오는 이슬람 왕조는
아이유브왕조(파티마 왕조말기), 롬 셀주크 왕조, 대 셀주크 왕조, 아바스 왕조, 구르 왕조, 가즈니 왕조, 코라즘 샤국,
오만, 등이 있습니다.
그외에 그리스정교를 믿는 흑인국가와 북인도의 3개국이 나오는대 그중 한개인 라지푸트족은 아리안족으로써 이해가 되는데
다른 2개는 뭔지 모르겠더군요 신디지방의 뭐라는것 같은데.
BC모드 요즘 새롭게 하는데 재밌군요. 아바스 왕조가 사라지고 대 셀주크 왕조에 속해야 정상인데.. 둘다 구현 됬더군요.
아바스 왕조는 허수아비 칼리프(황제)에 지나지 않는데; 2시간동안 정리한거지만
부족하고 일부 틀린게 있으니 리플달아주세요! 발음상 같은이름인데도 달라보이는게 상당히 많습니다. 헷갈리지 않으시길.. 잔기이=장기 이런식으로 알파벳발음이랑 한글발음이 틀리니 이해해주세요.
첫댓글 북인도가 투르크계 이슬람세력이 미치기전에 중앙아시아의 기마민족의 혼혈이 이루어졌다면... 그전에 침략은 돌궐(흉노)밖엔 없는데 그 혼혈인가요?
북인도에도 훈족이 쳐들어 왔었다고 합니다. 한동안 난리를 피우다 인도인들의 반격에 밀려 결국 다시 축출되었다고 하네요.
신디족 검색해보니 파키스탄의 2번째(1억6천만명)로 큰 민족이며 기원은 AD711년 이슬람 아랍 침입자들이라고 합니다. 파키스탄과 인도가 나뉘기전에 힌두교를 믿고있었던 신디족이 거의 모든땅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영국식민지시대엔 힌두교 신디족이 지배층이었고 이슬람교 신디족은 피지배층이었다고 합니다.
아, 그리고 카라 키타이(서요)는 지배층인 거란족들은 불교를 믿었고 피지배층인 옛 카라한 주민들은 이슬람교를 믿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칭기스칸에게 멸망된 나이만족의 왕자 쿠츨륵은 카라 키타이로 망명해 군주인 구르칸의 사위가 되고는 원래 믿었던 네스토리우스교에서 불교로 개종하고 이슬람교를 믿던 주민들을 종교 문제로 핍박하여 민심을 잃었죠.
글쎄 압바스 왕조와 대 셀주크가 같이 공존하지 못할 이유는 없죠. 대 셀주크의 술탄은 명목상으로 압바스의 칼리프를 칼리프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영향력은 바그다드의 궁정에서 벗어나지 못할 따름일지라도.
칼리프가 대셀주크의 술탄이 약화된틈을 타 반란을 기도하기도 했었지만 거의 궁전에 유페되어서.. 바그다드와 그 일대는 대 셀주크의 기반이었는데.. BC모드는 그렇지를 않더라구요.
룸 셀죽 경우 그 근원을 따지면 알프 아르슬란과 쿠탈미쉬(셀주크의 아들 이스라일의 아들)이 술탄위를 놓고 라이에서 격전을 벌이다가 패사한후 쿠탈미쉬의 아들인 술레이만 이븐 쿠탈미쉬가 투르크멘족들을 이끌고 아나톨리아로 가서 근거지를 마련한 것이죠. 더불어 셀주크의 쇠망은 각지에 분봉된 왕자들간 분쟁이 심했고 동에서 오는 키라키타이, 반기드는 호레즘때문에 망했지 십자군때문에 쇠했다는건 쉰 떡밥입니다.
셀주크 패망원인과 파티마조 수정했습니다. 롬셀주크는 고구려의 시조가 주몽이듯이 주몽아버지가 아니라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셀주크 패망원인 추가했고 파티마조의 멸망원인은 대게의 국가 멸망원인인 지도층이 병맛된것을 문제제기하셔서 떡밥이 쉬지 않도록 다른쪽으로 추가했습니다.
파티마조 경우에도 알 하킴 사후 와지르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병맛모드 갔지 십자군 전쟁은 거기에 부채질했을뿐.. 쇠퇴의 주요인이 아닙니다.
흠... 이거 중동사게시판 만들어야될듯?...ㅇ_ㅇ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