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딩! 그들이 말하는 '가요순위프로그램' 》
난,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알리고 싶은 맘이 더 컸을 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이 한 번쯤은 심각하게, 진지하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결국은, 그들에게 묻고야 말았다.
기어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야 말았다.
우매한 듯 영리하고, 영악한 듯 순진한 중딩들을 꼬드겨서 말이다.
'토론수업'이라는 미명 하에...
2001년 5월8일 3교시.
모 중학교, 3학년 모반 교실.
TV모니터 속 '4월 마지막 주 MBC와 SBS의 가요순위'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중딩들의 입에서 툭툭 불거져 나오는 소리들은 온통 흥에 들뜬 목소리들 뿐.
"우와! 샤크라가 1위야?"
"이야! 이쪽은 싸이가 1위닷!"
"샘! 우리 1위곡 들어욧!" (-> 인터넷 수업의 틈새공격을 하는 얍삽한 중딩!)
'순위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언감생심' 그 자체였다.
그들은 내가 '제멋대로 차트'를 보여주는 의미도 모른 채 연신 희희낙락이었다.
그러나, '굳세어라 금순아~'를 되뇌이던 난 그들의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사이트의 '음악'컨텐츠로 재빨리 이동했다. TV모니터엔 그 곳에서 이벤트로 진행 중인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 찬반 투표' 창이 떴다.
『 2001년 2월 8일 민주당 정범구, 심재권 의원과 시민단체 '문화개혁시민연대'가 주최한 '대중음악 개혁을 위한 1차 정책 포럼'토론의 발제자들이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했는데 여러분은 이 주장에 찬성하십니까?』
"엥! 웬 폐지?"
"당근, 반대쥐!"
"......" (-> 암 생각엄는 '나몰라라' 중딩의 반응!)
예상대로의 반응에 의연하려 했으나, 확인사살 당하는 사람의 참담함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애들이 몰라서들 하는 얘기일테지. 빨리 토론을 위한 자료부터 나눠주자.'
맘을 추스린 나는【월간 말지 5월호】의 기사문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앞 면은 '가요순위프로그램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 뒷 면은 '가요순위프로그램 제작자의 항변' 으로 채워진 한 장의 복사물을 받아든 아이들은 사뭇 진지해지는 듯 했다.
"자! 앞서 보았던 방송사별 가요순위를 보며, 전적으로 신뢰하기엔 문제가 있음을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세간에는 '가요순위프로그램이 대중음악발전의 걸림돌'임을 주장하며, '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사용하는 '다음'사이트에서 이같은 이벤트를 하는 것도 그만큼 이슈가 될 만한 화제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면, 지금부터 나눠준 복사물을 잘 읽어본 후에, 미처 여러분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가요순위프로그램의 존폐'에 대해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서 모둠별 토론을 해 보도록 합시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전체 39명 중 6명만이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에 찬성했다.
토론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듯 했지만, 이것 또한 예상대로의 결과였기 때문에, 또 한 번 꿋꿋한 심지 내세우며, 묵묵히 토론을 진행시켰다. 참견하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그들의 주장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는 토론 진행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려고 무진장 노력했다.
모둠별 토론이 끝나고, 각 모둠들의 주장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차피 6개의 모둠 중 한 모둠만이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에 찬성했기 때문에 중언부언되는 말이 많은데다, 개중엔 '--;'으로 표현되는 엉뚱주장도 끼어있어, 일일이 그들의 주장을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이유로, 간단히 찬성쪽과 반대쪽의 몇몇 주장들만 발췌 요약해서 적도록 하겠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에 타당성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이해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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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에 찬성한다.★
1. 공정성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설마 방송사가 여러 사람이 보는 프로그램을 조작하여 사기를 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립싱크 문제는 심각하다. 가수라는 사람들이 AR만 틀어놓고 입만 벙긋거리는 것은 코메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또한, 춤 때문에 립싱크를 한다면, 그것은 백댄서지 가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비록 녹화방송을 하더라도 라이브를 한다고 들었다. 립싱크를 부추기는 가요순위프로그램은 폐지되어야 한다.
2.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순위가 낮게 나올 때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 순위를 높이기 위해서 팬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기를 쓰고 노력한다. 결국 순위는 팬클럽 간의 세력 경쟁의 결과라고 얘기할 수 있다. 또, 순위가 높은 그룹들만이 자주 출연함으로써 시청자들이 다양한 노래를 제공받을 수 없다. 그리고, 기획사의 뇌물이나, 방송사의 의지에 따라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어서, 공정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티비를 보면 아무리 거리투표나 시청자 ARS가 높아도 심사위원단의 평가가 낮으면 그 가수는 1위를 하지 못하게 된다. 심사위원 1명이 시민 100명의 투표와 맞먹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기순위라면 음반판매율이 우선시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각 방송사마다 1위가 같아야 하는데, 이 채널 저 채널 제각각이다. 이렇게 공정하지 못한 가요순위를 어떻게 대중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가? 게다가, 그런 순위를 매기는 일은 그 가수의 팬클럽간의 싸움만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에 찬성한다.
♠ 나는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에 반대한다.♠
1. 만약 가요순위프로그램이 사라진다면, 첫째, 일단 시청자나 팬들이 가수들의 인기나 음반판매 정도를 알 수 없게 되므로, 무지 답답할 것이다. 둘째, 가수들도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한 번 정도는 1등을 해보고 싶을 것인데, 순위를 없애버린다면 가수들은 일종의 목표같은 것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셋째, 순위프로그램의 연말결산과도 같은 가요대상 시상식도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수들은 '내가 왜 가수가 되었을까'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가요순위프로그램은 그대로 남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순위의 공정성만큼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방송사에서만이라도 음반판매랑을 기준으로 순위를 결정했으면 좋겠다.)
2. 가요순위프로그램은 계속 있어야 한다. 음악캠프의 PD가 말했듯이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단지 재미를 원할 뿐이다. 발전되고 수준있는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콘서트나 음반을 사서 듣는 양보가 필요할 것 같다. (-> 이 주장에 중딩들 '이심전심'의 박수물결...--;) 그리고, 음반 판매가 얼마 되지도 않는 '샵'이 1위를 한 걸 내세우며 공정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 시기에는 "연가"같은 컴필레이션 음반이 판을 치는 가요계의 불황 같은 시기였다. 10만장도 팔리지 않는 음반이 10위권 안에 드는 상황에서, 1위한 가수의 음반판매량을 따진다는 건 웃긴 일인 것 같다. 꼭, 음반 판매량이 아니더라도 '샵'의 그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따라 부르는 노래였다. 그 정도면 된 거 아닌가? 그리고, 만약 가요순위프로그램의 순위가 모두 같다면 그게 더 안 좋은 일인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여러 가수가 고루고루 발전할 수 있을 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3. 가요순위프로그램을 폐지한다면, 솔직히 어떤 노래가 더 좋은 지 모르게 된다. 대중들은 대부분 가요순위프로그램을 보고, 최근 가요계의 흐름이나 유행을 알게 되며, 인기있는 노래가 좋으면, 그 음반을 사게 된다. 그러므로,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를 반대한다.
4. 가요의 흐름이 한 쪽으로 편중되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댄스음악이 대부분이지만, 해가 바뀌고 세계의 문화와 시대가 바뀜에 따라 유행하는 장르는 매번 바뀌지 않았던가? 작년에 우리나라에서는 테크노가 유행했다면, 미국 쪽에서는 라틴 음악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또 다른 장르가 유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설령 대중음악의 댄스음악 획일화에 가요순위프로그램이 기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요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가수들이 서로 경쟁할 수 있는 가요순위프램이 꼭 필요하고, 이것은 시청자의 알 권리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5. 첫째,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론을 보면, 립싱크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는데, 사실 요즘은 격렬한 댄스곡을 위주로 하는 가수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대부분 가수들은 그에 따른 격렬한 춤을 춰야 되고, 그렇게 되면 호흡이 가빠져 노래를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런 노래를 하느니 차라리 립싱크를 하는 것이 대중들도 노래를 듣기에는 더 좋지 않을까? 둘째, 가요 순위는, 보는 시청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가수들에게 자기의 음악을 평가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요순위프로그램을 폐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6.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이런 프로그램을 봄으로써 청소년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게다가, 재미도 있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이 있어야 여러가수들이 먹고 살아갈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 가수들의 생계걱정까지 하는 기특한(?) 중딩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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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대중음악의 주소비층인 10대들의 현주소이다.
중딩들의 주장을 읽으며, 곳곳에 토를 달고 싶어 안달이 난 이사늙 식구들의 모습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어지럽고 바쁜 일과에 밀려 2주 전의 토론내용을 이제야 정리하고 있는 나로서도, 당시 답답 갑갑했던 맘이 새삼 밀려옴을 어찌할 수 없는데...
stand-up님의 '주간동아' 인터뷰 글을 떠올려 보았다.
『이승환씨의 음악인생을 지지하면서 그를 둘러싼 우리 대중음악의 현실에 대해 분노를 느꼈습니다. 음악인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을 맘껏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이사늙'회원들의 바람입니다.』
불과 이틀 전, 이 글을 읽고, 도통 제어가 안되는 귀에 걸린 입때문에 어쩔 줄 몰라하며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는지...'그럼, 그렇지! 우린 공장장님의 자랑스런 팬인게야.'
갑자기 지난 시간들이 내 눈 앞에 주마등처럼 촤르륵 펼쳐졌다.
이틀 전, '주간동아'를 보며, 뿌듯함으로 가슴 벅찼던 그 날.
한달 전, '서명운동'으로 의기충천했던 그 날.
석달 전, 대중음악의 현주소를 첨 접하며 울컥했던 '정모'의 그 날.
일년 전, '롱리브 드림팩토리'를 가열차게 외치던 '환장'의 그 날.
세기 말, 나를 '이사늙'과 만나게 해 준 1999년 11월 어느 날.
한 가수의 음악인생에 홀딱 빠져 그의 음악과 공연을 평생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던 바로 그 날.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외치고 싶은 말이 있다.
"그의 음악이 제대로 인정받는 그 날은 반드시 올 거라고..."
"음악인이 음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그리고, 여운 속에 이어지는 또 하나의 외침.
"우리는 '이승환을 사랑하는 늙은 팬'!"
"웬만해선 우리를 막을 수 없다!"
**** 나의 불치병! 사족 달기 ****
우선, 읽기에 너무 길고 재미없는 글 올려서 죄송합니다.
자! 그럼 진짜 사족 나갑니다.
사족 하나!
담 넘어 들어와 이 글을 읽을 지도 모를 불특정 극소수의 어린 친구들! 혹시 겨우 39명의 중딩들 주장을 빌미로 모두가 그런 것처럼 그대들을 지나치게 폄하함에 기분이 나빴다면, 정말 미안하네요. 이 문제에 대해 서로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는 조~~은 의미에서 적은 글이니, 좁은 아량 넓혀서라도 이해해주길......
사족 둘!
이 글을 읽고 마지막 부분에서 '이사늙'만이 진정한 음악팬인 양 뻐긴다며 눈살 찌푸리고 있는 그대!!! 여긴 '이사늙'이거덩.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집단이라고, 하해와 같은 맘으로 이해해 주셔야징 어떻하겠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