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신설동·보문동에 걸쳐져 있던 옛 마을 ‘우산각골’ 은
비오는 날 방안에서 우산을 받쳐가며 비를 피하던
유관이라는 청백리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름.
세종때 우의정을 지냈지만 생활이 청렴했던
정승 유관의 호는 ‘하정’.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바로 지금의 ‘하정로’인데,
하정(夏亭, 여름 정자)이라는 뜻 속에서
장마비에 우산을 받치고 글을 읽던
옛 선비의 안빈낙도가 새삼 느껴진다.
지금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로타리에서 신답국민학교에
이르는 큰 도로,
그러니까 이전 마장동 터미널을 지나가는 큰 길을
하정로(夏亭路)라고 하는데 하정은 청백리인 유관의 호이다.
오죽 훌륭하면 그의 호를 따서 거리 이름을 지었을까 궁금하다.
원래 그는 이름이 유관(柳觀)이었다.
그의 아들은 유계문(柳季聞, 1383~1445)인데 아버지와 같이
조선 초기에 큰 벼슬을 살았다.
한번은 아들이 관찰사(觀察使)로 발령을 받아 나가게 되었다.
어느 말로는 세종때 경기도 관찰사라고 하는데
정확하게는 1426년 세종 8년 충청도 관찰사로
나간 것이라 하겠다.
아버지는 우의정이고 아들은 관찰사라,
괜찮은 집안이로구나.
그런데 아들이 이 영광스러운 관찰사를 그만 포기를 하고
사표를 낸 것이다.
아버지 유관(柳觀)이 물었다.
"아니, 너는 왜 그 좋은 벼슬, 관찰사를 마다하느냐?“
“예, 불효를 저지를 수가 없어서입니다.”
“관찰사를 사는 것이 불효더냐?”
“예.”
“무슨 말을 그리 하느냐? 관찰사가 불효가 되다니.”
“예. 제가 관찰사(觀察使)가 되면,
아버지 이름인 유관(柳觀))의 볼 관(觀))자와 같으므로
송스럽습니다.
아버지 이름을 이용한, 아니 딛고서 감투를 쓴 것 같아서
관(觀)자가 든 벼슬을 살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아, 이 미련한 자식아. 그 사표는 반려다.
대신 내가 이름을 바꾸면 될 것이 아니냐?
관(觀)자를 너그러울 관(寬)으로 바꾸겠다.
자식이 잘 되기만 한다면 부모가 이름을 바꾼들
뭐 무슨 흉이 되겠느냐?
오늘부터 나는 이름이 유관(柳寬)이니라.”
이리하여서 중년에 자식을 위해서
이름을 바꾸었던 것인데,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날카롭게 사물을 본다는
관(觀)보다는 너그럽다는 관(寬)이
더 온당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아버지의 정을 엿볼 수 있는 개명이라 할 것이다.
그는 밥을 먹고 있을 때 손님이 오면,
그 밥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뱉고서
이내 밖으로 나가서 맞았다.
맨발이었다. 한겨울인데도 거의 맨발로 살았다.
짚신을 끌고서 손님을 맞이한 것이다.
“아니 정승 어른께서 이러시면 저희는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면 자네는 사람인 나를 보러오는 것이 아니고
벼슬사는 나를 보러 오는 것인가?”
“.......”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을 보아서
청탁을 하러 간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고관이라서 찾아가 본 것인데
아예 첫 말이 이러하니 무슨 사사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한번은 여름에 누가 찾아갔더니,
“음, 잘 되었네.
지금 밭에 잡초가 나서 야단이라 내가 김을 매러 가는데,
자네도 같이 나랑 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어떻겠는가?
그냥 방안에서 차나 마시고 부채질이나 하면서
이런 말 저런 말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그 얼마나 생산적이고 인간적인가?
그리 안해도 나 혼자 김을 매고 풀을 뽑으려니까
심심할 것인데, 잘 되었군 그래.
미안하지만 우리 일하면서 말하자고.”
“저.......”
“음, 일하기 싫다고? 그러면 먹지를 말아야지.
무릇 정치는 그 시간에 한 가지 일만 할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여러 일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일하고 말하고, 그러다보면 정이 들고,
일 다 하고 나서 시원한 물로 등목하고,
이것이 피차 인생 깊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지라 일을 하지 않는 것이 관리요,
선비라고 생각한 젊은 손님들도 일을 아니할 수 없었다.
“우리가 몸을 움직이고 꿈지럭거릴 수 있다면 일을 해야지.
일 중에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라고 할
농사가 제 일이지. 안 그런가?
농부의 마음, 곧 농심(農心)이면 무불 성사(無不成事)라,
안 되는 일이 없어.
정직하고 근면하고 때와 철을 알고 농사 지어서
남을 먹이는 봉사를 하고,
이것이 정치의 마음이지.
원인과 결과가 있고
그 결과는 뭇 백성을 먹고 살게 하고.......
땀흘려 일을 하는 것은 정승이나 농부나 같지.
아니 농부 중에는 선생이 제일 가는 농부지. 자식 농사,
제자 농사를 지으니까 말이야.
가르치기만 하면 사람이라는 결실을 후
에 거두니까 말이야!”
이것이 그의 인생관이었다. 또 교육관이었다.
“유 정승은 배우겠다는 사람이 오면 가르친다더라!”
이런 소문이 나자 여러 군데서 제자가 되려고 찾아왔다.
감히 정승에게서 배우겠다는 저 용감한 제자들에게
유 정승은 마치 시골 훈장같이 자상하게 가르쳤다.
그 제자 중에는 명문 집안의 아들도 있고
농부의 아들도, 장사꾼의 아들도 있었다.
당시 천대받는 백정의 아들도 있었을 것이다.
“저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런 제자 되기를 소망하는 젊은이에게
“응, 그래. 가르쳐 주지.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고?”
이렇게 하였다. 제자의 이름도, 부모의 이름도,
그들의 신분도 묻지 아니하였다.
공부하겠다는 그 자체가 제자에게 있으면 되지
그 밖에 것은 다 뜻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도 이런 스승상이 필요하구나.
그가 정승 자리를 나이 들어서 그만두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손님도 받을 때 이야기이다.
“음, 손님이 오셨으면 대접을 해야지.”
그러면 늙은 하녀가 뚝배기에 담은 막걸리를 바쳤다.
바로 섬돌에 미리 갖다 둔 막걸리 항아리에서
퍼 온 것이다.
“그 맛이 어떤가?”
이러면서 몇 사발을 들이키니까
제 아무리 막걸리를 들지 못하는 손님이라도
들지 아니할 수가 없었고,
고급술을 찾는 사람이라도 맛있다고 하면서
막걸리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주는 소금에 절인 콩이었다.
“어디에 다리를 놓는다는데 경비가 부족하다.”
고 하면, 정치가인 내가 먼저 놓을 다리를
백성들이 놓는다니까 고맙군,
나도 조금 보태지.
재산이 많으면 다리값을 많이 내겠다마는.”
“어디에 사당을 짓는단다. 글방을 세운단다.”
고 하면,
“교육자요, 학자인 내가 먼저 할 일을
백성들이 세운다니까 고맙군,
나도 조금 보태지.”
그러면서 있는 재물을 털어서 주었다.
그는 밤 늦게까지 책을 보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나이도 있고 눈도 피곤할 것이니 책을 그만 보십시오.”
라고 말을 하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두루두루 알아야 좋은 일을 하지.
무식하고 독선적인 정치가는 백성을 피곤하게 해.
아니 괴롭혀서 때로는 죽게도 해.
독서를 하지 아니한 스승이나 학자는
제자들을 속 좁게 만들어.
공부 안한 선생 밑에서 무슨 큰 제자가 나오겠는가?
나는 좋은 정치가에 좋은 선생이 되고 싶어서
부단히 공부를 하는 것이지.
책을 통해 동서고금 각양각색의 지식이
나에게 손쉽게 전달이 되지.
나의 책읽는 방 안이 온 우주 세상을 축소한 곳이 되니까!”
이런 독서 태도는 오늘날 보기에 어떤가?
백 번 옳은 말이다.
그는 동대문 밖에서 살았다.
오늘날 신설동과 보문동이 걸쳐 있는 곳이
이전에 우산각골이었다.
우산을 받치고 산 유관 정승으로 인해서 생긴 마을이었다.
어느 해 여름, 장마가 계속되었다.
처음 비야 지붕이 견디어 냈지만 계속되는 장마비는
지붕도 포기한 듯, 비가 새기 시작하였다.
집을 대해보면 지붕 샌 것, 기둥이 기운 것,
방고래 가라앉은 것 같이 심란스러운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비가 새는 것이다. 할 수 있는가?
우산을 받치고 유정승 내외가 방 안에 있었다.
“아, 이런 우산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우산이 없는 집은 어떻게 지낼까?”
이런 걱정을 하자, 기실 청백리에 오른 정승 부인도
심란하던 차라 그만 불평섞인 말을 하였다.
“우산이 없는 집은 미리미리 다른 준비를 했겠지요, 뭐.”
하정(夏亭) 정승은 빙그레 웃었다.
자기의 집은 샐망정 이 나라는 새지 않기를.
외적으로부터 침입이라는 새는 일,
백성들이 나라를 위하지 아니하는 일,
백성은 위정자를 못 믿고 위정자는 백성을 못 믿는
이 믿음의 새는 일.......
그는 그것을 우려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누수(漏水)현상이 없기를 바란 것이다.
그 우산을 연유한 우산각골,
훗날은 우선동(遇仙洞)이라 부르고,
그 근처에 하정로가 생기고,
우리의 가슴에는 멋있는 선조를 흠모하는 마음이 생기누나!
그런데,
비가 샜다는 그의 고택 사진은 있으나
정작 그의 사진은 남아 있지를 않으니 어쩌랴.
첫댓글 귀한자료 감사합니다
좋은공부를 하게되어 고마워요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O^
좋은글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