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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시카고에서 미용재료 상점을 경영하던 친구가 말했다. “깜둥이들 돈은 왜 그렇게 더럽지?” 빈부흑백 가릴 것 없다. 돈은 원래부터 더러운 것이었고, 앞으로도 많은 인생살이와 인류역사에 숱한 상처를 남길 더러운 존재 아닌가. 노력이나 아첨도 없이 만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더러운 놈이지만 그 돈을 이길 장사는 없다.
그러나 친구 말을 신경 써서 들어 보니, 흑인들이 내는 돈은 물질적으로 더러운 것이 묻고, 꾸겨지고 찢어졌다는 뜻이었다. 쓰는 데 돈이 더럽고 꾸겨지면 어떻고, 깨끗하다고 더 가치가 있으랴? 오물 묻은 돈 10불짜리와 인쇄 냄새 나는 돈 1불짜리 중 양자택일하여 가져가라면, 새 돈 가져 갈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어떤 권사님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돈은 내 손에 들어오면, 사랑해 주고 모셔야 부자로 되는 거야” 잘 모셔? 천지신명께 고사 드리듯 오체투지 큰절을 하고, 신주단지 모시듯 정성껏 보살펴? 그 돈은 써 버리면 나와 상관없는 물건인데.
나는 부자도 아니고 가난뱅이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돈을 받으면, 접힌 부분을 펼쳐서 챙기는 습관이 있다. 미국 돈은 해어졌어도 일부러 찢지만 않았다면,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돈은 극히 드물다. 아무리 낡았어도 접힌 부분을 펼쳐서 지갑에 넣든가, 책으로 눌러 놓으면, 새 돈이나 별 차이가 없다. 헌 돈이지만 귀퉁이가 반듯하게 펴진 돈이라면, 남에게 지불할 때도 떳떳하다. 특히 숫자가 큰 지폐일수록, 나는 앞뒤와 위아래를 똑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여 보관했다가 사용한다.
요즘은 은행에서 돈을 손으로 세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전에는 은행직원이 돈을 세면서, 전후 상하를 재정리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전면 후면과 상단 하단을 맞추면서 정리하는 습관을 길렀다. 그렇게 하니까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 못 쓰는 돈인가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고, 위조지폐인가 감정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돈을 사랑해 주고 모시는 그 권사님의 돈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고 깨끗하게 펴져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어떤 사람은 돈을 받자마자 되는대로 마구 꾸겨서 삐뚤빼뚤 아무 주머니에나 집어넣는다. 귀가 잘 맞아 있던 돈도 그 사람의 주머니에서 다시 나올 때는 완전히 낡고 지저분한 돈으로 바뀌어 나온다. 열쇠꾸러미 든 주머니에 돈을 함께 넣으면, 상처투성이로 되어 더욱 닳고 찢어질 것이다. 휴지 넣은 주머니에 돈도 함께 넣으면, 코 풀려다 10불짜리 지폐 길바닥에 흘리게도 된다. 많은 돈을 서둘러 계속 받아야 하고, 정리는 나중에 해야 되기 때문이라면, 물론 마구 꾸겨서라도 빨리 챙겨 넣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돈을 다루는 사람도 아닌데 꾸기며 학대하는 사람이 있다. 돈을 천대한다고 돈 위에 올라서서 돈을 지배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자기 돈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 돈을 모시지 않고 미워한다고 돈 신령이 분노하여 그를 가난뱅이로 만들 것도 아니고, 돈 귀신이 돈다발을 싹쓸이해 가지고 집을 나갈 것도 물론 아니다.
돈을 펼쳐서 지갑에 정리해 놓으면, 주머니에 얼마를 지니고 있는가도 대충 알게 되고, 어떻게 써야겠다는 계획이 머리에 들어온다. 그러나 총각살림처럼 이 주머니에서 엉뚱한 돈 50불짜리, 저 잠바에서 출처도 모르는 20불짜리가 툭툭 튕겨지면 어떨까. 거저 생긴 공돈 같아서 마구 쓰게 된다. 또 꾸겨지고 더러운 돈이 여기저기서 굴러다니면, 그 돈을 분실하기 전에 어서 빨리 써 없애고 싶어진다. 돈을 유효적절하게 잘 쓰진 못해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것이 돈이라 할지라도, 지저분한 것은 어서 버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 지저분한 것을 버리면 새 제품이 내 소유로 들어오는데, 왜 그 돈을 안 쓰고 싶겠는가.
미국에서는 차림새로 빈부를 구분하기 어렵다. 허영과 실속이 공존하는 공간이라, 타고 다니는 자동차로도 빈부는 구분이 안 된다. 각 사람의 개성이 뚜렷하고, 개인의 가치기준이 현저히 달라서, 돈 쓰는 모양새로도 부자를 가려낼 수 없다. 아파트에서 렌트를 받을 때, 세입자가 내는 돈으로 그 사람 됨됨이를 가려낼 수 있다. 어떤 테넌트는 매번 키도 폭도 안 맞으며 엉망으로 구겨진 돈을 100불짜리 1불짜리 뒤섞어서 한 뭉텅이를 준다. 어떻게 세었는지 몰라도 액수는 딱 맞으니 신기하다. 나는 가끔 남의 지갑에서 나오는 돈을 지켜본다. 1불짜리라도 깨끗하게 펴진 채로 줄 맞춰서 나오면 부자이거나 부자가 될 사람, 100불짜리라도 더럽고 구겨진 채로 여기저기서 나오면 가난뱅이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