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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지법인 늘기쁜마을 부설 환희불교복지대학 출신 도반들이 활동 중인 환희봉사단은 어르신들 손발로 15년을 살았다. 힘들어도 얼굴엔 미소와 마음엔 평화를 담고 자비행을 이어왔다. |
부산 당리동 관음사. 승학산 자락의 가파른 경사지, 촘촘한 주택과 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이 도량에는 여느 사찰과는 다른 시설이 한 곳 있다.
사회복지법인 늘기쁜마을(대표이사 지현 스님)이 운영하는 중풍, 치매 어르신들을 위한 ‘환희노인요양원’이다. 관음사 주지 지현 스님은 오늘도 사시예불을 마친 뒤 서둘러 어르신들이 있는 요양원 건물 ‘환희정’을 향했다. 마침 어르신들의 점심공양 시간이었다. 문이 열리자 어르신들이 스님을 알아보며 반가워했다. 그리고 그 어르신들 사이에서 스님을 향해 더 반갑게 합장 인사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환희봉사단(단장 신미라)의 불교 호스피스 봉사자들이었다.
스님을 향한 공경의 인사를 하자마자 초록색 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은 이내 어르신들의 숟가락으로 눈과 손길을 보냈다. 한 봉사자는 국물을 떠서 어르신의 입에 넣어 드렸고, 또 다른 봉사자는 반찬을 젓가락으로 짚어서 다른 어르신의 숟가락 위에 올렸다. 밥을 먹지 않겠다며 한쪽 구석에 식판을 밀어 넣은 어르신을 찾아내는 일도 봉사자들이 맡았다.
이렇게 어르신 한 분 한 분의 식사를 함께하는 봉사자들 덕분에 어느덧 모든 어르신들이 공양을 마칠 수 있었다. 스님은 식사를 마친 어르신마다 손을 잡고서 “나무아미타불”을 외웠다. 그러자 봉사자들이 자연스럽고 나지막이 스님의 읊조림을 따라했다. 어느 새 “나무아미타불”은 공성이 되어 어르신들의 공양 마침을 알리고 있었다.
환희노인요양원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환희봉사단 소속이다. 환희봉사단은 늘기쁜마을 부설 환희불교복지대학 출신이다. 환희불교복지대학은 불교 호스피스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이곳에서 3개월의 교육을 마치면 최소 6개월의 목욕봉사를 의무적으로 거치게 된다. 이렇게 9개월 이상 교육과 봉사를 마친 이들이 환희봉사단이 될 수 있다.
목욕봉사를 마치면 봉사자들이 희망하는 또는 봉사자를 필요로 하는 각 병원의 봉사모임에 다시 소속 되어 불교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부처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본격적인 활동은 이때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사실상 불교 호스피스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가톨릭과 개신교에서는 진작부터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 데 비해 불교는 정작 봉사자가 없어서 유급 간병인을 고용하거나 임종 직전 개종하는 환자도 많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부산에서는 1999년 불교보건복지대학과 대학의 봉사단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운영 기관이 바뀌는 굴곡의 세월 속에 부침도 거듭했다. 다행히 호스피스 교육은 극적으로 명맥이 이어졌고 2004년 관음사 주지 지현 스님이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늘기쁜마을이 책임을 맡으면서 비로소 교육과 수료생들이 함께하는 봉사단이 둥지를 틀 수 있었다. 그렇게 1999년부터 지난해 말 30기까지 15년간 1300여명의 불교 호스피스 봉사자가 배출됐다.
부산대·동아대병원·보훈병원서 말기암 환자·완화치료병동 찾아 각각 구성된 봉사팀으로 자비행 호스피스봉사 수기집 발행하기도
사회복지법인 늘기쁜마을 부설 환희불교복지대학 출신 도반들 1999년부터 목욕·임종간호 등 어르신들 손발이 된지 15년째
무엇보다 환희봉사단은 불교 호스피스의 실천을 강조했다. 호스피스 교육과 목욕봉사를 마친 이들 중 본격적인 임종 간호를 원하는 봉사자들은 부산대병원, 동아대병원, 부산의료원, 보훈병원의 말기암 환자 병동, 완화치료 병동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봉사자가 한, 두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병원마다 불교 호스피스 봉사팀이 꾸려질 만큼 봉사자들의 위치가 확고해졌다. 또 다른 봉사자들은 치매, 중풍을 앓고 있는 요양원의 어르신들을 찾아갔다. 봉사자들은 어르신의 손과 발이 되고 마음을 나누는 말벗이 됐다.
호스피스 교육을 통해 배운 안마, 기공, 수지침 등은 환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중요한 도구가 됐다.
무엇보다 견고한 불심을 바탕으로 하는 호스피스를 위해 교육을 마친 봉사자들에게도 매년 4차례 이상 특별강좌를 마련해 봉사 현황을 점검했다. 어려움은 나누고 좋은 호스피스 사례는 공유하면서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도 적응해갔다.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주최의 창립 4주년 기념법회에서 호스피스 사례 연극을 선보이기 위해 부산의 한 극단에서 연기를 배우기도 했다. 풍부한 봉사경험이 바탕이 되면서 사례 연극의 감동도 더 컸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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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불교호스피스협회 창립 4주년 행사에서 연극을 공연한 봉사단. |
“요양병원에 처음 목욕봉사를 하러 가서 만난 환자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누워서 팔, 다리도 펴지 못하고 오그리고만 있던 그 분을 매주 갈 때마다 손발을 만져드렸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 팔다리를 조금씩 펴기 시작했고 대화도 나누게 되면서 할머니의 힘들었던 날들을 알게 됐습니다. 간호사, 유급 간병인도 있지만 봉사자들의 따뜻한 마음과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 주신 분이지요.”(신미라 환희봉사단장, 환희불교복지대학 8기)
“금생에 부처님 법을 만난 것은 저의 행운이었습니다. 죽음은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두려움이 앞서지만, 환자들이 부처님 법에 의지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임종을 맞이하였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입니다.”(박춘희 보살, 환희불교복지대학 16기)
봉사자들 회상처럼 환희봉사단 한 사람 한 사람의 봉사 경험은 애틋함을 넘어서 감동과 환희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15주년을 어느 해보다 뜻 깊게 맞이했다. 지난해 12월 호스피스 봉사 수기집을 발간한 것이다.
‘정토의 하얀 연꽃’이 그 기록이다. 제작 기간만 꼬박 1년이 소요될 만큼 정성을 쏟았다. 김진수 두송노인복지센터장, 김태형 두송종합사회복지관 부장, 류우진 늘기쁜마을 법인 간사가 편집을 맡아 15년 불교 호스피스 역사와 그 노하우가 이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겼다. 1차적으로 1000권을 발행해 법보시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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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단 창립15주년 봉사 수기집. |
류우진 간사는 “불교 호스피스는 어렵다, 힘들다는 고정관념이 많다. 하지만 한 번 교육을 받게 되면 오히려 이제 비로소 보살행의 방법을 알게 됐다며 적극적으로 하신다. 이 책에 담긴 수기도 모두 자발적으로 보내 주신 내용”이라며 “환희불교복지대학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교육생들을 모집하는 일이다.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서 도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의 경험과 봉사의 경력을 응집해서 불교 요양병원을 건립하고 싶습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행복한, 진정한 ‘늘 기쁜 마을’이 되겠지요. 원이 있으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불교 호스피스를 실천하는 1300여 봉사자들이 가장 큰 자산입니다.”
늘기쁜마을 이사장 지현 스님의 발원처럼 불국토는 이 땅의 모두가 행복한 세상일 것이다. 말기 암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치매와 중풍을 앓는 어르신들에게도 물론 행복한 세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지론이다. “얼굴에는 미소, 마음에는 평화”를 품은 환희봉사단이 있다면, 그 원의 실현은 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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