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세상
유난히도 무덥고 지루한 여름이었다.
매일 30도가 넘는 더위와 기록적인 열대야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가을 절기인 입추, 처서, 백로가 지나도 더위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추석날 까지도 낮 온도가 35도를 넘는 ‘폭염 추석’을 보냈다. 예측하기 힘든 장맛비와 물 폭탄은 국내 곳곳에 수재를 몰고 왔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징후임에 틀림없다.
길고 지루한 더위와 계속되는 장마에 심신이 피로한 나날들 이었다.
그래도 ‘프로야구’라는 유별난 세상이 있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프로야구(KBO) 리그는 한가위 연휴동안 꿈에 그리던 1,000만 관중을 돌파하였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43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5,200만 국민 중에 1,000만 명 이상이 야구장을 찾은 것이다.
2030 여성 팬들이 가장 많아 프로 야구장을 접수한 것 같다. 먹거리, 볼거리, 놀 거리가 풍부한 야구장 분위기가 많은 관객을 운동장으로 끌어 드렸다.
10개 구단의 실력 평준화가 관중들을 더욱 환호하게 하고 있다.
가끔 뉴스나 시청하던 내가 요즘은 매일 TV앞에 앉아 긴 시간을 보낸다.
프로야구 경기 TV시청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지역 연고 팀인 ‘한화’응원을 하느라 경기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만년 하위 팀 이었던 한화는 감독이 바뀌고 승률이 높아져 중간 순위를 향해 약진을 하고 있다.
평일이나 주말 오후에 5개 구장에서 일제히 게임이 시작된다.
각 구장마다 선수와 관객들이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국민의례를 진행한다.
게임 시작 전 유명 인사나 연예인, 스타급 선수 가족들이 나와 시구를 한다.
공을 던지는 실력보다는 그의 동작이 관객들을 웃기고 인기가 있다.
자기 팀을 응원하는 관중들의 함성, 화려한 복장 치어리더들의 현란한 춤 솜씨, 게임 중간 중간 터지는 홈런과 선수들 묘기 ... 모두가 흥겹고 즐거운 볼거리다. 가족 단위나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치맥(치킨과 맥주) 파티를 하며 함성과 환호로 운동장을 달군다.
우리 프로야구는 경기 외적 요소로 승부를 넘어 일종의 나들이나 오락처럼
소비되는 응원 문화를 만들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응원 문화는 젊은 세대들을 대거 야구장으로 끌어 드리고 운동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나팔과 북으로 똑같은 응원가를 부르는 일본, 좋아하는 선수에게만 환호성을 지르는 미국 응원 문화와는 다른 우리 프로야구 문화다.
구단과 선수마다 다 다른 응원가와 구호가 있고 치어 리더가 경기 내내 흥을 돋운다.
최근 KIA팀 치어리더들의 응원 춤 ‘삐끼삐끼 댄스’는 전 세계적인 화제에 오르면서 ‘K응원’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프로야구 역사가 우리보다 길지만 ‘삐끼삐끼 춤’을 우리에게서 수입해간다는 것이다.
신명과 신바람이 넘치는 우리 응원 문화는 ‘K 팝’, ‘K 푸드’등과 한국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구장에서 주심의 역할과 권한은 막강하다. 한 게임에서 양 팀을 합해서 300개 안팎의 투구에 대해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한다.
때로는 스트라이크 존이 애매하게 판정될 수도 있다.
한국 야구위원회는 전 세계 최초로‘자동 볼 판정 시스템(Automatic Ball Strike System)’을 도입 하였다.
ABS는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심판이 아닌 기계가 하는 것이다.
1루와 3루, 외야 중앙에 설치된 3대의 카메라에 타자별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한다. 카메라가 투수의 공 궤적을 추적하여 실시간으로 위치 값을 전달한다.
컴퓨터가 스트라이크, 볼 판정을 내리면 주심은 그 결과를 이어폰으로 받아 수신호로 선수들에게 알린다. 야구의 ABS 도입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공정’과도 맞아 떨어진다.
프로야구장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연고 팀의 승리는 물론이고, 함성 지르고,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신다.
프로야구는 스포츠를 넘어 ‘국민 오락’이 되고 있다.
국민을 배신하고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정치판은 혐오스럽지만, 프로야구라는
아름다운 세상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이다.
첫댓글 가을 절기인 입추, 처서, 백로가 지나도 더위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추석날 까지도 낮 온도가 35도를 넘는 ‘폭염 추석’을 보냈다. 예측하기 힘든 장맛비와 물 폭탄은 국내 곳곳에 수재를 몰고 왔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징후임에 틀림없다.
길고 지루한 더위와 계속되는 장마에 심신이 피로한 나날들 이었다.
그래도 ‘프로야구’라는 유별난 세상이 있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