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4편 입산기>
④ 찔레꽃 필 무렵-9
그러나 그녀는 대뜸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시늉을 하여보이고는 부엌으로 쏙 들어가서 모습을 감추었다.
옥희가 보고 싶어서 온 게 아니고, 이 연화가 보고 싶어서 온 게 아니냐는 손짓을 보이었던 거였다.
천복은 웃으면서 그녀가 사라지어간 부엌 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그제야 유남이가 느릿하게 방에서 나오더니, 낫과 괭이를 챙기어 지게에 꽂아지고서 마당을 질러 나오는 거였다.
“자넨 기술 좋네.”
천복이 유남에게 슬쩍 입을 열었다.
“기술은 무슨 기술 말인가?”
그는 천복이 말하는 기술이 무언지를 묻고 있었다.
“아, 이 사람아! 아이 만드는 기술 말일세.”
천복이 웃음을 흘리면서 소리를 높이었다.
“그야 여자 손에 달렸제, 남자에 달렸던가?”
그는 임신이 여자의 손에 달린 것이지, 남자의 손에 달린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천복이 생각하여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남자가 아무리 발광을 떨고 덤비어들어도, 여자의 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할 것이 이전 연화는 남자에게 파고드는 침투력과 흡입력을 죄다 갖추고 있는 여자일 건만 같았다.
마치 찰거머리와도 같다는 걸 천복도 넉히 알아차릴 수가 있었던 거였다. 뿐 아니라 유희나, 도선암의 보덕도 그녀와 다름이 없어서 아이를 수월하게 잉태할 수 있었던 거였다.
“자넨 좋겠네. 매일 밤 여자가 달려드니.”
“웬걸, 요즘은 뜸허데.”
“그럼, 그렇지 않고는? 만삭인데. 산월은 다음 달인가?”
“아녀, 한여름 지나야. 두어 달 남았제.”
그들은 이렇게 임부가 된 연화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황새바위 산모퉁이를 돌아서 개여울 징검다리를 건너 산을 넘어 터골로 갔다.
산판은 이제나저제나 죄다 벌겋게 헐벗은 민둥산이라서 발을 내디딜 적마다 흙먼지가 부슬부슬 일어나고 있었다. 또 그러한 가운데 군데군데 골짜기의 습한 푸서리로는 가시덤불이 우거지어서 짙푸른 잡초가 번지어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리로 잔작하고 앙증맞은 찔레꽃이 활짝 피어나 하얗게 번지어있었다. 마치 탱크가 짓밟고 지나간 황량한 전장 터의 슬픈 꽃들만 같아보이었다.
천복은 찔레꽃만 보면, 몸서리가 치어지고는 하였다.
그의 할아버지인 두현 씨가 그 무렵에 세상을 떴고, 그 이듬해 6.25전쟁이 터지어서 동혁과 동수 형제와의 이별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한가 하면, 그의 동생인 기훈이도, 그 무렵에 몹쓸 병에 걸리어서 무심코 세상을 떠나더니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느닷없이 군사혁명인가, 군사쿠데타인가 터지어서 한 올의 꿈마저 앗아가고 말았다.
찔레꽃 필 무렵.
천복과 유남이는 산비탈에 지게를 받히어놓고는 가시덤불을 낫으로 족이고 띄엄띄엄 산비탈에 박히어있는 진달래, 소나무, 참나무 같은 고주배기를 괭이로 찍어서 뿌리를 캐내었다.
비록 가시덤불이나 나무뿌리이었지만, 마당에 널어놓고, 따가운 햇볕바로에 말리면, 땔감으로는 마디었다.
이미 일정 때부터 벌겋게 생살이 벗기어진 산판대기는, 이제 그 나무뿌리조차 견디어 내지를 못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여름철의 폭우와 겨울철의 폭설로 하여금 군데군데 사태가 나서 허물어지고, 그러할 적마다 논밭이 흙더미에 묻히어서 다된 곡식을 쓸어가는 물난리가 끊임없이 이어지었다.
그러나 가가호호 집집마다 땔감을 순전히 산에서만 할퀴어다 때는 실정이었으니,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천복은 으레 그러하듯 허접스러운 나무 한 짐을 먼저 하여놓고, 얼굴과 목으로 번지는 땀방울을 수건으로 훔치면서 무엇보다도 땔감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고심하고 있었다.
천복은 유남이 나뭇짐을 지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와 함께 귀로에 접어들었다.
황새바위에 다다라서는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에 나뭇짐을 비탈에 받히어놓고 쉬었다.
“유희는 집에 자주 오나?”
천복은 갑자기 유희가 머릿속으로 떠올라서 그에게 물었다.
“별로, 시집살이하겠지.”
그는 심드렁히 대꾸하였다.
“자주 안 온다는 말이로군.”
“그보다도...”
그는 유희의 말을 하다가 주춤하였다.
“유희가 어떻다는 건가?”
첫댓글 궁금하겠지요 ^^*
진작에 묻고 싶었겠지요.
그러나 머릿속에 담아두었다가 묻는군요.
송년회 과음도 이틀 남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