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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인격이다 (1)
가만히 있을 때 괜찮아 보였는데 입을 여는 순간 실망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그냥 볼 때는 평범했는데 입을 여는 순간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 말에 모든 인격이 드러난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잘못된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높이지 않아야 할 때 높이고, 높여야 할 때 높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윗사람에게 쓸 말과 아랫사람에게 쓸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잘못 알고 쓰는 말도 있다.
오늘부터 세 번에 걸쳐 조항범 국문과 교수가 쓴 말이 인격이다 란 책을 요약하고 거기에 내 의견을 더해 글을 써본다.
요즘 시대에 가장 큰 잘못은 높임말의 인플레이션이다.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높이는 것을 존대로 잘못 알고 있다. 어떨 때는 불쾌한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본다.
새파란 젊은이들끼리 서로를 높이느라 난리를 친다. 서로 그러셨습니다. 저러셨습니다. 힘드셨겠네요 라고 높인다.
정작 존대를 받아야 할 최우선인물은 시청자다.
젊은이들끼리 극존칭을 쓰면 보는 시청자들이 불편하다. 이런 무차별적인 존대는 이미 전국적으로 퍼졌다.
무생물에 대한 존대가 가장 흔하다.
차가 막히셔서, 의자가 불편하셔서, 옷이 안 맞으셔서…란 말이 대표적이다. 차가 막히신다니, 옷이 맞지 않으시다니, 왜 무생물인 차와 옷을 존대하는가?
심지어 범인이 물건을 훔치셨습니다.란 말까지 들어본 적이 있다.
결혼식 때 사회가 주례 선생님 말씀이 계시겠다고 한 말도 잘못이다. 말씀은 계시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있겠다가 맞다. 말씀과 계시다는 어울릴 수 없다.
존대하지 말아야 할 대상을 존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헤어질 때 가세요, 오세요, 들어가세요란 말도 잘못이다. 안녕히란 말을 왜 빼먹는가?
전화 통화를 끝낸 후 들어가세요란 인사말도 이상하다. 들어갈 곳이 없는데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라는 말인가?
업무상 편지를 쓸 때는 격식이 중요하다.
얼마 전 다짜고짜 용건을 말하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자세히 보니 학생이 보낸 것이다.
어떻게 편지를 쓰는데 인사말도 하지 않고 자기 소개도 없이 편지를 쓸 수가 있는가?
윗사람에게 편지 보낼 때 직함 있는 경우 홍길동 과장님(께)처럼 쓰는 것이 원칙이다. 이 경우 귀하는 붙이지 않는다.
마땅한 직함이 없을 경우에는 귀하 혹은 좌하를 붙이면 된다.
윗사람에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대표선수는 수고하다 란 말이다.
아랫사람이나 동료에게는 쓸 수 있어도 윗사람에게는 쓸 수 없다. 수고는 한자로 受苦로 쓴다.
고생 좀 하라는 말이다.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상사에게 고통을 받으라고 할 수는 없다.
상사의 방을 떠날 때는 수고하세요란 말 대신 먼저 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같은 말을 사용해야 한다.
당부와 부탁도 구분해야 한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시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계실 교수님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뭔가 이상하다.
당부는 말로써 부탁하는 것이되 어찌어찌해 달라고 강하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만큼 부담이 크다. 윗사람에게 쓸 말이 아니다.
이럴 때는 부탁이란 말을 써야 한다. 수고하다 당부하다 욕보다 같은 말은 윗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니다.
잘 계시지요 같은 말을 윗사람에게 사용해서도 안 된다.
잘이란 부사는 잘 가라, 잘 생각하거라, 잘 있었니 등에서 보듯 어른이 아이에게 쓰는 말이다. 대신 안녕히를 써야 한다.
세배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세배는 그 자체가 인사이다. 세배 때는 아무 말없이 절만 올리는 것이 원칙이다. 앉으세요, 절 받으세요 라는 말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윗사람의 덕담을 기다려야 한다.
요즘은 어찌 된 셈인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덕담을 먼저 한다. 예의가 아니다.
덕담 후에 하는 말로 오래오래 사세요 "만수무강하십시오같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의도와는 달리 내가 이렇게 늙었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개할 때도 예의가 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물산의 김병철입니다.와 같이 인사하는 것이 맞다.
한국물산의 김병철 과장입니다와 같이 직책을 같이 소개하면 안 된다. 소개할 때 직책을 함께 얘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이름만 얘기하면 된다.
예의의 기본은 남들 앞에서는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외부 손님들이 많은 앞에서 지금부터 원장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원장님 말씀이 있겠습니다.가 맞다. 청중 앞에서는 자기 회사 사장을 낮춰야 한다.
방송에서 무슨 씨를 모시겠습니다.란 말을 쓰는데 틀린 표현이다. 시청자 중에는 초청인사보다 윗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누구를 소개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본인 소개보다 더 어려운 것은 중간에서 다른 사람을 소개하는 경우다.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친소 관계를 따져 자기와 가까운 사람을 먼저 소개한다.
둘째는 아랫사람을 윗사람에게 먼저 소개한다.
셋째는 남성을 여성에게 먼저 소개한다.
말이 인격이다 (2)
문자(文字)도 조심해서 써야 한다. 과장님, 내일이 선친 회갑연이라 먼저 퇴근합니다. 틀린 말이다.
선친이란 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다. 살아계신 분에게 써서는 절대 안 된다.
선친은 자기 아버지에게만 사용하는 말이다.
문병이나 애경사에도 말을 가려서 해야 한다.
병문안을 와서 환자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어떻게 안녕할 수 있는가? 환자를 보면 좀 어떠십니까? 얼마나 고생이 되십니까와 같이 정중히 인사를 해야 한다.
문병을 몇 차례 한 경우에는 좀 차도가 있으십니까 음식은 무얼 드십니까와 같이 호전 정도를 물어보는 것이 좋다.
보호자에게는 좀 어떠십니까? 얼마나 걱정이 되십니까등을 쓸 수 있다.
병문안 마치고 나오면서는 속히 나으시길 바랍니다. 쾌차하시길 바랍니다가 적당하다.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인사해서는 안 된다.
상갓집에서 상주에게 안녕하세요?란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안녕하겠는가? 황당한 일이다.
절을 한 후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말을 하더라도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얼마나 슬프십니까?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와 같이 짤막한 인사면 충분하다.
작은 목소리로. 수고가 많으세요, 고생되겠네요라는 말은 쓰면 안 된다. 위로는커녕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상제 역시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자체가 인사다.
예의의 기본은 남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 자기 사람을 낮추고 상대와 상대 사람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 앞에서 제 부인은… 같은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 부인은 높임말이기 때문이다.
대신 집사람, 안사람, 아내, 처, 마누라 등을 쓰면 된다. 이 가운데 마누라는 어느 정도 나이든 사람에게 쓰는 표현이다.
부군이란 말도 그렇다. 부군은 남의 남편을 높이는 말이다.
남 앞에서 자기 배우자를 부군이나 부인으로 불러서는 안 된다.
자녀의 호칭도 그렇다. 자제(子弟)는 남의 아들을 높여 부를 때 쓴다. 하지만 아들에게만 사용한다.
아들과 딸을 묶어서 얘기할 때는 자녀라고 얘기해야 한다. 마땅치 않을 때는 아드님, 따님 등으로 높여 불러야 한다.
선생님 딸과 우리 딸이 같은 학년이래요 대신 선생님 따님과 우리 딸이 같은 학년이래요라고 쓰면 좋다.
존대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압존법(壓尊)이다. 존대를 누른다는 의미다.
어떤 사람을 높여서 표현해야 할 상황인데 청자를 고려해 존대하지 않고 평대하는 것이 압존법이다.
손자가 할아버지, 엄마가 빨리 오시라고 하였습니다 라는 표현이 그렇다.
엄마가 윗사람이긴 하지만 할아버지보다는 낮기 때문에 하셨습니다 대신 하였습니다를 쓰는 것이다.
어떤 학생이 교수님, 조교 선생님이 편찮으셔서 출근하시지 못했습니다.라고 해보라.
무조건 높이면 안 된다.
사장님 앞에서는 사장님, 과장은 거래처에 나가고 없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게 압존법이다.
우리 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란 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장본인과 주인공이 그렇다.
그가 남대문에 불을 지른 장본인이다. 그 할머니가 미담의 주인공이다.
자연스럽게 들린다. 하지만 반대로 쓰면 웃긴다.
이 분이 우리 회사의 명예를 드높인 장본인입니다. 나라를 망친 주인공입니다 연쇄살인사건의 주인공입니다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주인공(主人公)과 장본인(張本人)은 다르다.
장본인은 나쁜 일, 비난 받을 일을 해서 주목 받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주인공은 좋은 일, 주도적인 일을 해서 주목 받는 사람이다.
중임과 연임도 다르다.
연임은 정해진 임기를 마친 후 거듭하여 그 임기의 직에 머무르는 일을 말한다. 임기를 다 채운 뒤 다시 그 자리에 임명되면 연임이다.
우리 회장님께서 전경련 회장직에 연임되셨습니다.에 쓸 수 있다.
중임은 먼저 근무하던 직위에 거듭 임명되는 것을 뜻한다. 임기와 관계없이 특정 자리에 거듭 임명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새 정부 들어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었다가 다시 조각할 때 연속적으로 그 자리에 임명되었다면 그는 이번 개각에서 국방부 장관에 중임되었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 연임은 특정한 기간에 특정한 자리에 연속해서 머무르는 일이다.
중임은 불특정 기간에 특정한 자리에 거듭 임명되는 일이다.
임대료도 흔히 잘못 쓰는 말이다.
임대는 돈을 받고 자기 물건을 빌려주는 것이다. 임대의 반대는 임차다. 돈을 내고 남의 물건을 빌려 쓰는 것이다.
은행 돈을 빌려 사무실을 임차하였다. 사무실 임차료가 얼마냐가 맞다.
임대는 빌려주는 것이므로 건물 주인이 쓰는 말이고, 임차는 빌려 쓰는 것이므로 임시로 얻는 사람이 쓰는 말이다.
가게는 임대(賃貸)하는 것이 아니라 임차(賃借)하는 것이다.
말이 인격이다 (3)
인생은 복굴복이야, 안 되는 것 주구장창 외치고 다녀봤자 힘만 빠진다.
자주 쓰는 말이다. 두 가지가 잘못됐다.
복굴복이 아니라 복불복이다.(福不福)이다. 복 혹은 불복이란 말이다.
주구장창도 잘못이다. 晝夜長川(주야장천)의 변형이다.
주야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밤낮 없이란 뜻이다. 장천은 긴 내의 뜻이나 연달음을 의미한다. 즉,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연달아의 부사적 의미다.
깨놓고 말하다, 육계장, 산수갑산, 풍지박산 등은 모두 바꾸어야 한다.
까놓고 말하다, 육개장, 삼수갑산, 풍비박산으로… 일체와 일절도 헷갈리기 쉽다. 명사일 경우는 일체가 맞다.
안주일체가 맞다. 일절(一切)은 부사이다. 일절 소식이 없다. 일절 모른다에 쓴다.
재원(才媛)은 젊은 여자에게만 쓰는 말이다. 재원이란 단어가 재주가 뛰어난 젊은 여자를 뜻하기 때문이다.
뇌졸증도 흔히 잘못 쓰는 말이다.
뇌졸증이 아니라 뇌졸중(腦卒中)이다. 뇌중풍은 일종의 뇌졸중이다.
뇌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의식에 장애가 오고 사지에 마비가 오는 무서운 병이다. 한방에서는 졸중풍, 일명 중풍이라고 한다.
바람 맞다는 우리말은 중풍을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뇌졸중을 뇌졸증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잘못됐다. 卒(졸)은 갑자기의 뜻이고 中(중)은 맞다의 뜻이다.
뇌졸중은 뇌가 갑자기 풍을 맞음의 뜻이기 때문에 뇌졸중이 맞다.
터울이 형제자매를 벗어나면 망신당한다.
터울은 학교나 사회의 선후배, 또는 부부 사이에 쓰는 말이 아니다. 같은 어머니가 낳은 자식들 사이에서나 쓰는 말이다.
터는 땅의 뜻이고, 울은 울타리의 뜻이다. 터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의 의미다. 달리 말하면 한 어머니라는 터에 둘러싸인 자식들을 가리킨다.
출사표(出師表)를 던지면 큰일 난다.
출사표의 출사는 출병과 같은 뜻이고 表(표)는 신하가 마음에 품은 생각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뜻한다.
출사표는 옛날 장수가 출병하면서 충성심을 적어 임금에게 정중히 올리던 글을 말한다. 제갈량이 출병하면서 후왕에게 적어 올린 글이 가장 유명하다.
임금에게 올리는 글인데 어떻게 던진단 말인가? 대신 출마하다, 출전하다로 쓰는 것이 낫다.
곤욕(困辱)을 잘못 쓰면 곤혹스럽다.
김성수는 권상우 손태영 커플의 중매쟁이로 묘사된 뒤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이럴 때는 곤욕이다. 困惑(곤혹)은 곤란한 일을 당해 어찌할 바를 모름의 뜻이다. 곤욕은 심한 모욕이란 뜻이다.
빚쟁이에게 곤욕 당하고 아내에게까지 추궁 당하니 아주 곤혹스러웠다가 올바른 표현이다.
난이도(難易度)는 높다 낮다도 잘못된 표현이다.
난이는 그 자체로 어려움과 쉬움의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이가 있다 없다로 써야 한다. 좋은 문제는 난이도가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를 오랫만에로 써서도 안 된다.
삐지는 것이 아니라 삐치는 것이다. 삐지다는 칼 따위로 물건을 얇고 비스듬하게 잘라내다의 뜻이다.
무국에 무를 삐져 넣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삐치다는 성이 나서 마음이 토라지다의 뜻이다.
결재(決裁)는 받아야 하고, 결제(決濟)는 해야 한다.
결재는 무엇을 정할 권한이 있는 상관이 부하가 제출한 안건을 검토하여 허가하거나 승인하는 것을 뜻한다.
결제는 대금을 주고받는 당사자들 사이에 거래 관계를 끝맺는 일을 뜻한다. 결재를 받다, 결재를 올리다가 맞다. 밀린 대금 결제, 어음 결제와 같이 쓴다.
충돌(衝突)하면 앞이 깨지고 추돌(追突)하면 뒤가 깨진다.
충돌은 서로 맞부딪치거나 맞섬이다. 충돌하면 강도가 커서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추돌은 자동차가 기차 따위가 뒤에서 들이받음이다. 앞차가 갑자기 서는 바람에 뒤차가 앞차의 꽁무니를 들이받는 것이 추돌이다.
우리 말에 豫祝(예축)이란 말이 있다. 미리 축하를 한다는 말이다. 일종의 자성예언이다.
여자 친구도 없는 노총각에게 금년에 장가를 갔다지라고 얘기하는 것, 갓 결혼한 새댁에게 올해 아들을 낳았다지 같은 말을 해 주는 것이 그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해서 말하는 것이다. 말한 대로 된다는 말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재치 있는 말도 중요하다.
처칠은 수상 시절 30분 늦게 의회에 도착했다. 정적들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처칠을 비난했다.
그러자 처칠이 예쁜 부인을 데리고 살면 일찍 일어날 수 없습니다. 다음부터는 회의 전날은 각방을 쓰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일순간 의회가 웃음바다로 변했다. 재치 넘치고 익살스런 몇 마디 말이게으른 사람이라는 비난을 한 순간에 날려 보낸 것이다.
마지막 강연의 저자 랜디 포시 교수 역시 그렇다.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아내 역을 맡을 만큼 예쁜 배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개에게 물린 사람은 반나절 만에 치료를 받고 집에 갔고, 뱀에게 물린 사람은 삼일 만에 치료가 끝나 집에 갔다.
하지만 사람의 말에 물린 사람은 아직도 입원 중이다. 란 말이 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말 한 마디에 천년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기적절한 말을 골라 쓰는 것, 예의에 맞게 쓰는 것, 긍정적인 말이 중요하다.
출처 : 현대경제연구원 손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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