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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연구사
- 제3이사야서를 중심으로 전체 이사야서의 최종형태에 대한 최근 새로운 연구에 이르기까지 -
역사비평이전까지 이사야서 전체는 한사람의 통일성 있는 작품이며 그 저자는 바로 아모즈의 아들 이사야(1,1)라고 여겨왔었다. 물론 지난 200년간의 이사야 연구들로 인해 이런 생각은 이젠 더 이상 받아들여지진 않지만, 몇몇 보수적인 학자들에겐 여전히 나타나기도 한다
(O.T. Allis, The Unity of Isaiah, Philadelphia 1950; E.J. Young, Studies in Isaiah, London 1954; J.N. Oswalt, The Book of Isaiah. Chapter 1-39, Grand Rapids 1986; J.A. Motyer, The Prophecy of Isaiah.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Downers Grove, I1.1993).
12세기 에즈라(Ibn Ezra)가 이사야서의 통일성에 대해 한 번 문제를 제기한 적은 있지만 (참고: M. Friedlaender, The commentary of [Abraham ben Meir] Ibn Ezra on Isaiah, London 1873; A. Geiger, Wissenschaftliche Zeitschrift fur judische Theologie 2 (1836), 553-557), 18세기 말엽에 이르기까지 오랜동안 시락서 48,24이하에 따라 이사야서 전체는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한사람의 작품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이아야서와 시락서에 관해서는 J. Schildenberger, "Die Bedeutung von Sir 48,24f. die Verfasserfrage von Is 40-66", in: Atl. Stud., F. Notscher zum 60 Geb., Hg., H. Junker und G.J. Botterwecker, BBB 1 (1950), 188-204를 참고하라). 그러다 처음으로 이사야서의 39장과 40장을 나누어서 40장 이하를 "제2이사야 Deuterojesaja"라 부른 이가 아이히호른이다 (J.G. Eichhorn,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Leipzig 1780-1783, Gottingen 41823/25, 83-97).
1892년은 이사야연구에 전환점을 가져온 해로 이사야서 연구에 있어서 잊혀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해로 모든 이사야서 연구사에 기록된다. 바로 이때부터 이사야서 56-66장에 이르는 이른바 둠(B. Duhm) 이후 제3이사야라고 불리우는 것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들의 문제는 크게 나누어 이 열한개의 장들이 통일성을 갖고 있는 한 작품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1892년 베른하르트 둠은 그의 이사야서 주석 (B. Duhm, Das Buch Jesaja, HAT III, 1892; 41922, nachdruck 1968) 을 내면서, 40-55장의 제2이사야서 연대는 540년경이며, 13,2-22; 14,4b-21.22f.; 21,1-15는 제2이사야와 동시대인 다른 이의 저작이며, '야훼의 종 노래 (42,1-4; 49,1-6; 50,4-9; 52,13-53,12)는 포로기 이후 유대공동체내 한 사람의 작품, 그리고 56-66장은 이와는 또 다른 이로써 그를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느헤미야 등장 바로 이전의 '제3이사야 Tritojesaja' 라 이름 지었다. 둠은 제3이사야서를 한 저자의 작품으로 보고 그 통일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제3 이사야서를 통해 당시 에스라의 신정론과 사마리아 공동체가 갖고 있었던 구상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61-66장과 56-60장간의 배열 순서가 바뀌어졌다고 보았다. 둠의 이러한 이사야서의 연대기적 배열은 사실 쿰란 발견이후 더 이상 그 정당성을 잃어버리지만(왜냐하면 둠은 이사야서의 최종완성은 기원전 70년에가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보았지만, 1947년 쿰란 이사야두루마리 발견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이미 기원전 2세기에 현재 이사야서 전체를 완결된 상태로 갖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사야서의 세 부분으로의 구분은 거의 100년 이상을 이끌고 오게 된다.
둠의 이사야서 주석이 나오고 3년후 Cheyne는 이사야서 주석 (T.K. Cheyne, Introduction to the Book of Isaiah, London 1895)에서 둠의 한사람 저작설을 부인한다. 그리고 그는 제2이사야에게서 영향을 받은 제2이사야 학파라는 주장을 하고, 이는 Kosters (W.H.A. Kosters, "Deutero- en Trito-jezaja", in: ThT 30 (1896), 577-623), Kittel (R. Kittel, Der Prophet Jesaja, erklart von. A.Dillmann, KEH 5, 61898, 특히 472-474), Gressmann (H. Gressmann, Uber die in Jes c.56-66 vorausgesetzten zeitgeschichtlichen Verhaltnisse, Gottingen 1898, 특히 26-36)등에게서 받아들여졌다. 19세기에 가서 단지 Littmann 만이 둠의 가설과 저자연대를 성벽건축의 중단(457년)과 느헤미야의 등장 그 사이(445년)라고 받아들인다 (E. Littmann, Uber die Abfassungszeit des Tritojesaja, Freiburg 1899, 이에 대한 비판의 글은 ThLZ 4 (1900), 103-104에 있는 H. Gressmann의 글을 참고하라). 스멘트(R. Smend, Alttesamnetlcihe Religionsgeschichte, 1893, 260, 339)와 벨하우젠(J. Wellhausen, "Das babylonische Exil", New World II, 1893, 601-611)은 원칙적으로 둠의 테제를 받아들였다.
1900년대에 들어 거의 10년간 1890년대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 이전에 한 사람의 저작설에 대해 반대가 많더니 오히려 다시 한사람 저작설에 대한 주장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Marti(K. Marti, Das Buch Jesaja, Tubingen 1900)의 느헤미야 직전 445년 예루살렘 한사람 저작설, Sellin 역시 한사람의 작품이라고 주장하지만, 생성연대를 그보다 조금 이른 537-520로 보고, 특히 그는 40-66장까지를 제2이사야의 한 작품이라고 본다
(E. Sellin, Studien zur Entstehungsgeschichte der judischen Gemeinde nach dem babylonischen Exil, Bd.II, Leipzig 1901; 같은 이, "Tritojesaja, Deuterojesaja und das Gottesknechtsproblem", in: NKZ 41 (1930), 73-93, 141-173). Sellin의 이론은 그 후로 Konig (E.Konig, Das Buch Jesaja, Gutersloh 1926), Torrey(C.C. Torey, The Second Isaiah, A New Interpretation, Edinburgh 1928)과 Glahn(L. Glahn, Hjemkomst Propheten, Enheden af Jesajabogens Kp. 40-66, Diss. Kopen!hagen 1929; deutsch Ausgabe: Der Prophet der Heimkehr, Bd.I, Gießen 1934)등과 같은 이들에게서 계속 발전되어 받아들여진다. Zillessen은 둠의 이론을 따르지만 제3이사야가 제2이사야의 것들을 상당부분 따랐다고 본다
(A. Zillessen, "Tritojesaja und Deuterojesaja. Eine literakritische Untersuchung zu Jes 56-66", in: ZAW 26 (1906), 231-276). 영어권으로는 Box가 한 저작설을 주장했다 (G.E. Box, The Book of Isaiah, 1908). 이에 반대하여 계속 여러명의 저작설을 주장한 이들로는, Cramer(K. Cramer, Der geschichtliche Hintergrund der c. 56-66 im Buche Jesaja, Dorpat 1905), Kennett (R.H. Kennett, The Comoposition of the Book in the Light of History and Archaeology, The Schweich Lectures, 1909; London 1910), Budde (K. Budde, Geschichte der althebraischen Literatur, Leipzig 1906, 176-183)와 Skinner(J. Skinner, The Book of the Prophet Isaiah, Cambridge 1908; 81954)등이 있다. 특히 Budde는 56-66장의 여러 부분이 익명의 여러 저자들에 의해 거의 백년간에 걸쳐 쓰여졌고 이것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시기에 이르기까지 서로 묶여진 것이라고 보았다.
1920년대 말에 가장 두드러진 연구는 엘리거에게 나타난다 (K. Elliger, Die Einheit des Tritojesaja (Jes 56-66), BWANT 45, 1928). 그의 연구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전체 제3이사야서에 나타난 있는 모든 단어와 그 용법등을 아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서, 예를들어 어떤 것이 구약성서내에서 오직 제3이사야서에만 있는 것인지를 가려내었다. 특히 제3이사야만의 문체적 특성들을 살핀 것이었다. 이로부터 그가 얻은 결론은 단지 몇몇 부분만 제외한다면 (에를들어 엘리거는 56,3-8; 57,13c.20f.; 58,13f.; 59,21; 66,18-22는 편집자의 것이고, 59,5-8; 60,12b.17b; 65,20b; 66,17.23f.등은 편집자의 것으로 보지 않는다), 바로 둠의 테제를 보다 확고하게 만들어 주게 된다.
그가 둠하고 달리하는 것중 큰 것 하나는 연대문제로 그는 제3이사야시대는 말라기와 동시대가 아닌 그보다 빠른 학개, 스가랴 시기, 즉, 제2성전 건축 이전과 그 이후시기로 본다. 대체로 엘리거의 가설은 계속 든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다수 저작설을 다시 주장한 이가 바로 폴쯔이다 (P. Volz, Jesaja II, KAT Bd. IX, Leipzig 1932). 그는 다음과 같은 연대기를 제시하게 된다. 56,9-57,5; 57,6-13(포로기 이전), 63,7-64,11(포로기 초기 대략 585년), 60; 62; 59,1-3(포로기 이후 초기), 66,1이하(약 520년경), 63,1-6(500-450년 사이), 56,1-8; 57,14-21; 58,1-12.13f.; 59,9-20; 61 (5세기?), 65; 66,3f.5f.17; 66,7-24(헬라시기).
1940년대에 나온 영어권 연구들(R.H. Pfeiffer,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New York 1941; E.J. Kissane,, The Book of Isaiah, Vol II, Dublin 1943; W.S. McCullough, "A Re-examination of Isaiah 56-66", in: JBL 67 (1948), 27-36; A. Bentze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Copen!hagen 1948/49; 31953)은 별 특이함 없이 지난 20년간 연구의 수준에 미치는 것이 못되었다. 단지 Young이 이사야서 전체 1-66장까지의 통일성을 지적했다 (E.J. Young, 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1949).
케슬러(W. Kessler, "Zur Auslegung von Jesaja 56-66", in: ThLZ 81(1956), 335-338; 같은 이, Studie zur religiosen Situation im ersten nachexilischen Jahrhundert und zur Auslegung von Jesaja 56-66, WZCH 6 (1956/57), 41-43; 같은 이, Gott geht es um das Gnaze. Jesaja 56-66 und Jesaja 24-27 ubersetzt und ausgelegt, BAT 19, 1960)는 제3이사야서의 통일성을 받아들였지만, 엘리거의 언어사용 연구로 인한 제3이사야서의 통일성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보고, 다른 관점을 주목하는데, 이는 본문 자체안에 들어있는 목회적이고 선교적인 예언자 상황을 찾아낸다. 바로 여기서 유다백성 전체를 향하여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한 예언자의 한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3이사야서의 통일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본다 (단지 56,2-8과 66,16-24만 편집으로 제외시킨다).
그리고 그 연대는 성전재건에서부터 말라기 시대 (515-475)까지라고 한다. 찜멀리(W. Zimmerli, "Zur Sprache Tritojesaja", in: FS L. Kohler, SchwThU 20 (1950), 62-74, 새판 in: TB 19 (1963), 217-233)는 제3이사야서의 언어와 표상들과 제2이사야의 것들을 비교했다. 여기서 그는 57,14-63,7을 제3이사야서의 중심되는 것으로 보고, 이것으로부터 제3이사야서의 통일성이 나온 것이라 하였다. 그는 제3이사야가 자기의 새로운 상황에서 제2이사야의 것들을 새로 적용하고 이해한 것으로 보았다. 1890년대 제2이사야학파의 영향이라는 가설을 받아들여 이를 발전시킨 이가 Muilenburg였다(J. Muilenburg, The Book of Isaiah, Ch. 40-66m, H.S. Coffin, IntB 5, 1956). 그는 제2이사야 제자 또는 제자들이 선생의 예언 선포를 자기(들)의 상황에 새로 적용했다고 보았다.
Kraus는 엘리거의 테제에 반대할 근거있는 이론들이 아직 없다는 이유로 엘리거의 제3이사야 통일성을 받아들인다 (H.J. Kraus, "Die ausgebliebene Endtheophanie; Eine Studie zu Jes 56-66", in: ZAW 78 (1966), 317-332). 이 시기 나온 대부분의 연구들은 특히 40-66장의 통일성에 대한 것들이었다. (M. Haran, The Literary Structure and Chronological Framework of the Prophecies in Is XL-XLVIII, VT.S. 9 (1963), 127-155; B.O. Banwell, "A Suggested Analysis of Isaiah XL.-LXVI.", in: ET 76 (1964/65); J.D.Smart, History and Theology in Second Isaiah; A Commentary on Isaiah 35, 40-66, Philadelphia 1965; London 1967; F. Maass, "Tritojesaja", in: Das ferne und das nahe Wort, FS L.Rost, BZAW 105 (1967), 153-163). Morgenstern은 특히 49-55장과 56-66장과의 유사성을 찾고, 이는 제2이사야 그 이후라고 보고 이것이 제3이사야의 앞부분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J. Morgenstern, Isaiah 49-55, HUCA 36, 1965). 40장부터 또는 49장부터 66장에 대한 통일성에 대한 견해들은 폴쯔 이후 다수 저작설이 진행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다 60년대 중반 포러는 제3이사야서는 결코 한 사람의 저작일 수가 없고, 익명의 예언자들 아니면 저자들에 의해 그들의 말들과 문서들이 수집되어진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G. Fohrer, Das Buch Jesaja, 3Bd. Kap. 40-66, ZBK 19, 3, 1964). 그는 가장 오래된 본문은 63,7-64,11로 이는 제2이사야보다 더 이른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가장 나중 본문은 65장과 66,5-24로 이는 아마 4세기경이고, 60-62장은 포로기이후 초기 작품, 그리고 그 외 여러 잡다한 것들은 대략 5세기초 정도일 것이라 연대를 잡았다.
베스터만 (C. Westermann, Das Buch Jesaja, Kap. 40-66, ATD 19, 1966)은 오랜동안 발전되어오던 양식비평 방법론을 적용하여 제3이사야서 수집 연대를 다음과 같이 잡았다. 첫 번째층은 제3이사야의 구원선포를 담고 있는 핵심이 되는 60-62장으로, 백성들의 탄원내용을 담고 있는 59장과 63/64장 그 안으로 들어왔고, 이 구조안으로 몇몇 제3이사야의 짧은 개별적인 말들(57,14-20; 65,16b-25; 66,6-16그리고 아마도 58,1-12)이 전해져 오다가, 제3이사야것이 아닌 다른 말들과 후에 합해졌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층은 경건한자와 불경한자들간의 구분이 시작되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56,9-57,13; 57,21; 59,2-8; 65,1-16a; 66,3-4; 66,5; 66,17) 안으로 몇몇 단편적인 말들이 첨가되어 보이는 것들이다. 세 번째 층은 민족들에 대한 심판선언 (60,21; 63,1-6; 66,6.15f.; 66,20.22-24)을 중심으로 민족들에 대한 우호적이었던 것들을 수정한 부분들이다. 여기 구원선포에 묵시적 말들이 덧붙여지면서 배열되었다 (60,19-20; 65,17.25; 66,22-24). 끝으로 네 번째 층은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첨가구들로, 56,1-2.3-8; 66,18.19.21이고 이들은 공동체의 선교 개방과 안식일 준수가 특히 강조된 것이라고 보았다.
베스터만은 첫 번째층의 시기는 537년에서 521년 사이, 대략 530년일 것으로 보지만, 나머지 층들의 연대는 분명하게 확정짓질 않았다. 다만 두 번째층은 경건한 자와 불경건한 자들간의 구분이 분명하게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제3이사야보다 그리 늦은 시기는 아닐 것이라고 보고, 세 번째층의 묵시적 첨가구는 제3이사야서가 분명 묵시문학 시대 그 이전에 완결되었음을 가리켜준다고 말한다. 또한 세 번째층에 속하는 본문들이 60-66장 안에만 나타난다는 것은 56-58장, 60(또는 59)-66장이 우선 이미 완결된 수집물들이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본다. 그 외 60년대 다수 저작설을 주장한 이들로는 O. Eissfeld,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Tubingen 31964; J.L. McKenzie, Second Isaiah, 1968; J. Schreiner, "Das Buch jesajanischer Schule", in: wort und Botschaft, Hg. J.Schreiner, Wurzburg 1967, 143-162 등이 있다.
Bonnard(P.-E. Bonnard, Le Second Isaie, son disciple et leurs editeurs, Isaie 40-66, EtB 1972)는 이전 엘리거나 케슬러가 본 것처럼, 제3이사야서의 첫부분과 마지막부분(56,2 또는 3-7절 또는 8절과 66,16 또는 17-24절)만이 제3이사야의 것이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하여, 그 외 다른 두 큰 부분인 63,1-6과 63,7-64,11이 타인의 작품이며 그 외 56-66장 대부분은 537년에서 520년 사이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던 바로 제3이사야 자신의 것이라고 보았다.
제3 이사야서 연구의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 준 이는 Pauritsch이다 (Karl Pauritsch, Die neue Gemeinde: Gott sammelt Ausgestoßene und Arme (Jesaja 56-66), Analecta Biblica 47, Rom 1971). 그의 연구는 무엇보다도 현재 보여주는 제3이사야서 자체의 문학적 구성을 보여주는 것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현재의 구성을 이루게 되었는가에 대한 편집사연구에 새로운 장을 연 것이었다. 그는 각 장마다 문서, 유형, 양식비평방법들을 보여주고 그로부터 당시 예루살렘 공동체의 "삶의 자리"는 제의가 아니라 오히려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보았다. 이로부터 그는 제3이사야서는 여러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결론짓는다.
대부분의 것들은 521-510년 사이의 것들이며, 단지 63,7-64,11만 587년경이라고 본다. 그는 현재의 최종형태의 모습을 이루게 된 구성의 요인으로 56,3-7에 나오는 이전 제의 토라법에 의해 공동체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던 '이방인'과 '고자들'이 예언자(그 자신이 바로 편집자 일 수도 있다고 본다)에 의해 새로이 야훼 공동체 구성원이 된다는 선포에 의존한다. 이러한 야훼의 구원선포가 달라진 것에 대해 편집자는 바로 계약파기와 사회 부정과 불의, 그리고 백성들의 자신들만의 구원에 대한 고집에 반대하는 야훼의 현현 선포라고 본다. 야훼의 오심을 당시 저들은 제2성전의 재건으로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전 백성들의 기대와는 달리 새로 야훼가 선택하고 모으는 새 공동체는 바로 쫓겨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이라는 것이 제3이사야서 편집자의 선포의 중심이라는 것이 그의 주요 논지이다. Pauritsch하곤 상관없이 Sehmsdorf 역시 편집사연구를 이어나갔다 (E. Sehmsdorf, "Studien zur Redaktionsgeschichte von Jesaja 56-66", in: Teil I. u. II. ZAW 84 (1972), 515-576).
그는 무엇이 제3이사야의 것이고, 그리고 기본 제3이사야층에 어떤 것들이 어떻게 모아지면서 현재 최종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로 제3이사야서의 약속본문 65,16b-19a이 신명기적 손길들이 들어있는 65,1-16a와 19b-24절에 따라 배치된 것이며, 이는 신명기 신학과 언어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편집본문들로는 56,1-8; 58,13f.; 60,18a; 62,8f.; 66,1-4이고, 60,19f.; 65,25와 66,17-24에는 묵시적 요소를 담고있는 최종편집본문이라고 보았다. Kaiser역시 Sehmsdorf의 견해를 받아 56-66장의 최종생성과 그것들에 있는 편집층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이어나갔다 (O. Kaiser,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eine Einfuhrung in ihre Ergebnisse und Probleme, Berlin 1973, 41978; 51984). Wallis는 저자 문제에 대해 끼여들려 하지 않았다. 비록 여러 본문들로부터 여러 저자들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는 전체가 분명 어떤 의도를 갖고 모아진, 그러나 특별한 편집자에 의해 추가적인 작업이 없는 단순한 편찬(Kompilator)으로 본다 (G. Wallis, "Gott und seine Gemeinde. Eine Betrachtung zum Tritojesaja-Buch", in: ThZ 27(1971), 182-200).
편집사적 관심은 Whybray (R.N. Whybray, Isaiah 40-66, NCeB 1975)나 Hanson (P.D. Hanson, The dawn of apocalyptic. the historical and sociological roots of Jewish apocalyptic eschatology, Philadelphia 1983)등에게도 없었다. Whybray는 제3이사야서의 많은 부분이 제2이사야서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지만, 어떤 것이 현재의 최종모습을 드러내게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 역시 여러명의 저작설에 기대어 있고, 대부분의 주요저작들은 포로기 이후 한 두 세대간에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핸슨은 Smart나 Torrey의 40-66장의 통일성에 대해 반대하고, Volz나 Westermann의 56-66장의 비통일성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는 제3이사야서는 여러 단계를 거치는 종말론에 기대어 있던 제2이사야 제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보았다. Vermeylen은 제3이사야서 안에 여섯단계의 편집층이 있다고 보았다 (J. Vermeylen, Du prophete Isaia a l'apocalyptique : Isaie, I-XXXV. miroir d'un demimillenaire d'experience religieuse en Israel, Tome II, EtB, Paris 1978, 451-517).
Polan의 56-59장의 수사학적 연구는 시적 구성뿐 아니라 주제별로도 이는 하나의 완결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G.J. Polan, In the Ways of Justice Toward Salvation, A Rhetorical Analysis of Isaiah 56-59, American University Studies Series VII Theology and Religion Vol.13., New York, 1986).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사야서 연구는 무엇보다도 방법론적으로 큰 선회를 하게된다. 이는 제3이사야서의 최종형태에 대한 관심을 두는 것이었으며, 특히 이는 제3이사야서를 단독적으로 그 앞의 제1이사야서나 제2이사야서하고 별도로 나누어 보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서 전체 즉, 1장부터 66장 그 전체 이사야서와의 관련속에서 보는 관점의 변화를 말한다. 이런 관점의 첫 시도는 바로 챠일즈였다 (B.S. Childs,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 as Scripture, XVII Isaiah, London 1979, 311-338). 그의 관심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이사야서 정경의 구조였다 (여기서 정경이라는 개념에 대한 논의는 특히, I. Baldermann u.a. (Hg.), Zum Problem des biblischen Kanons, JBTh 3, Neukirchen-Vlyun 1988를 참고하라).
그 밖에 아크로이드(P.R. Ackroyd, 'Isaiah I-XII. Presentation of a Prophet? in: VT.S 29 (1978), 16-48), 클레멘츠(R.E. Clements, Beyond tradition-history: Deutero-Isaianic development of First Isaiah's themes? in: JSOT 31 (1985), 95-113; 같은 이, The unity of the Book of Isaiah? in: Interpretation 36 (1982), 117-129)등은 이사야서 1장에서 39장까지의 최종형태에 대한 관심을 갖었고, 40-55장에 대한 최종형태 연구는 Melugin (Roy F. Melugin, The formation of Isaiah 40-55, BZAW 141, Berlin/New York, 1976)에게서 나타난났다 (최근 40장에서 55장까지 연구에 대한 논의들을 보려면, John Goldingay, Isaiah 40-55 in the 1990s : among other things, deconstructing, mystifying, intertextual, socio-critical, and hearer-involving? in: Biblical interpretation. 5,3 (1997), 225-246을 참고하라).
특히 독일 학자들중에 이 부분에 대해 가장 먼저 문제제기를 한 이가 렌토르프이다 (R. Rendtorff, "Zur Komposition des Buches Jesaja", in: VT XXXIV, 3 1984, 295-320 (같은 논문, 그의 책, Kanon und Theologie, Neukirchen-Vluyn, 1991, 141-161; 같은 이 'Jesaja 56,1 als Schlussel fur die Komposition des Buches Jesaja? 그의 책, Kanon und Theologie, Neukirchen-Vluyn, 1991, 172-179).
최근 20년간 이사야서 연구의 특징들은 이사야서 전체에 나타나는 한 쌍의 단어들의 반복, 중요단어들의 연결들을 갖고서 이사야서 전체 구조를 살피는 것들이 주종을 이뤘다. 이사야서 전체 구조에 대한 연구들이 그 동안 해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미 1930년대 Ziegler 역시 이사야서안에 짝을 이루는 단어들의 반복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지적했었다 (J. Ziegler, "Zum literarischen Aufbau verschiedener Stucke im Buche des Propheten Isaias", in: BZ 21(1933), 131-149. 237-254, 특히 253). 문학 비평 작업을 통해 이사야서의 전체 구조에 관심을 갖은 이는 Liebreich같은 이였다 (L. Liebreich, "The Composition of the Book of Isaiah", in: JQR 46 (1955-56), 259-277 JQR 47 (1956-57), 114-138). 문제는 그의 이러한 단순한 공시적 관점이 별다른 기술적 해석의 뒷받침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흠이었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1952년 Brownlee는 특히 쿰란 이사야사본에서 보이는 33장과 34장 사이에 있는 3줄의 간격을 보고, 1-33장까지와 34-66장까지의 구성(각각 7개의 단원으로 이루어진)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W.H. Brownlee, The Manuscripts of Isaiah From Which DSIa Was Copied, BASOR 127 (1952), 16-21; 같은 이, The Meaning of the Qumran Scrolls for the Bible. With Special Attention to the Book of Isaiaj, New York 1964).
그의 연구를 통해 공시적 측면에서 이사야서를 감싸고 있는 두가지 흐름이 있다는 것인데, 하나는 어떤 한가지 면을 계속 발전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과, 다른 한편으론 분명한 주제를 계속 반복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8세기 예언자로 이사야로부터 시작하여 시라아-에브라임전쟁의 위기를 지나 산헤립에 의한 예루살렘 점령과 포로기 이후를 넘어 메시아 대망에까지 뻗쳐있는데, 이는 이미 2장 1-5절에 나와 있고,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 Sweeney (M.A. Sweeney, Isaiah 1-4 and the post-exilic understanding of the Isaianic tradition, BZAW 171, Berlin u.a., 1988) 역시 이사야서 전체 구조에 있어서 40장부터 나누지 않고 34장에 둔다. 그 역시 이사야서 전체 최종형태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고, 1-39장은 그 다음 40-66장에 대한 서문 같은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를 전제로 그 다음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이 커다란 두 부분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체 이사야서가 나오게 된 생성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나누면 크게 4 단계가 있었다고 본다. 이를 거꾸로 보면, 첫째 5세기 중반 또는 말엽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개혁과 함께 최종형태가 마련되어졌고, 두 번째 6세기 말에 2-32장, 35-55장과 60-62장에 포로귀환과 성전재건을 계기로 편집이 이루어졌고, 세 번째는 7세기 말 요시아 종교개혁을 바탕으로한 5-23장, 27-32장과 36-37장에 대한 편집, 그리고 네 번째는 8세기 아모즈의 아들 예언자 이사야의 것으로 보이는 1-32장안의 여러 본문들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Sweeney에게서 보이는 특색은 이사야서에 대한 전체 공시적 조화와 통시적인 구분이 돌연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Watts는 자신의 두 권의 이사야서 주석을 통해(J.D.W. Watts, Isaiah 1-33, WBC 24, Waco, Texas 1985; Isaiah 34-66, WBC 25, Waco, Texas 1987) 다음과 같은 물음들에 연구의 중심을 잡았다: "무엇 때문에 대략 435년경에 이사야서 여러 본문들이 수집이 되었고, 또 그것이 무엇 때문에 최종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졌을까? 누구에게 주어진 것이었을까? 마지막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구성자/또는 저자든지 간에 그들이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의 대답은 가난한자 약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이 갖었던 생각은 첫째, 페르시아 주권으로 시작되면서 옛 시대는 끝나고 새시대의 시작으로 인식했고, 두 번째, 그러나 옛 왕권의 의미는 사라지고 새로이 야훼 왕권이 시온에서 이루어지고 온 민족이 그곳으로 순례를 떠나는 것, 세 번째 페르시아 국가권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에 이에 대항하는 그 어떤 것도 거절되는 것, 끝으로 네 번째로 예루살렘 희생제의와 이방제의에 대한 강한 비난 등이라는 것이다. 그 외로 이제 야훼는 이스라엘과 맺었던 옛 계약을 파기하고 이제 새로운 계약을 자기 백성과 다시 맺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무엇보다도 본문 외적인 것에 대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다는 것으로 비난을 사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어떤 쌍을 이루는 단어들의 반복적 사용과 중요 단어를 중심으로 이사야서 전체의 구조를 찾으려는 노력들은 사실 그보다는 오히려 여러 부분들, 각 단원들에 대한 각자의 구조들을 찾는 일로 나가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 면이 많다.
이사야서 전체를 통일성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들중에, Webb(B.G. Webb, "Zion in Transformation. A Literary Approach to Isaiah", in: JSOT.S 87, Sheffield 1990, 65-84)은 전체를 하나로 읽을 때에만 가장 기본 주제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사야 예언자시대 죄진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예루살렘은 깨끗해지고, 이제 종말론적인 기대의 예루살렘으로 온 민족이 순례를 오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개념인 "남은자"는 예언자의 한 아들의 이름인 "쉐아르 야슈브"(7,3)에 이미 들어 있는 점등을 들어, 그는 이사야서의 첫 단락은 1장에서 12장까지가 아니라 곧 1장에서 66장까지라고 말한다. Webb의 입장을 받아들여 진행시킨 Dumbrell은 이사야서 전체를 문학적으로 읽는 다는 것은 역사적이거나 사회학적인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W.J. Dumbrell, "The Purpose of the Book of Isaiah", in: TynB 36 (1985) 111-128). 그러나 이런 단순한 문학적 관점이 역사적이거나 사회학적 방법론에 반대하는 것일지는 의문이다.
Berges는 이상의 관점들이 매우 설득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단지 공시적 연구에만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 즉, 어떤 사회적 그룹들이 '남은자 신학'을 뒤에 갖고 있었는가 하는 것, 그리고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 대한 급진적 개방이 사회 정치적으로 실행되었었는지 등의 문제는 결국 최종형태 본문을 만들게 되어온 그 과정의 연구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U. Berges, Das Buch Jesaja. Komposition und Endgestalt, Freiburg u.a., 1998, 26). 전체이사야서 구조에 대한 관심에 대해 Conrad는 자주 반복되는 "두려워 말라"라는 것을 그 중심으로 삼기도 했다 (E.W.Conrad, Fear Not, Warrior: A Study of 'al tir' Pericopes in the Hebrew Scriptures, BJSt 75, Chico 1985). 이사야서 전체를 중요 주제를 중심으로 해석한 이들로는, Roberts의 '야훼의 거룩'과 이를 통한 '시온의 빛' (J.J.M. Roberts, "Isaiah in Old Testament Theology", in: Interp. 36(1982), 130-143), 그리고 Anderson은 특히 56-66, 24-27장 그리고 34-35장을 갖고 이사야서의 묵시적 영향이 곧 전체 이사야서를 이해하는 것으로 보았다(B.W. Anderson, "The Apocalyptic Rendering of the Isaiah Tradition", in: J.Neusner u.a.(Hg.), The Social World of Formative Christianity and Judaism, FS H.C.Kee, Philadelphia 1988, 17-38).
그러나 물론 이런 묵시적 흔적들이 매우 빈번하게반복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할 지라도, 이것이 곧 이사야서의 마지막 구성을 가지고 온 것으로 보기에는 근거가 희박하다. Clifford는 제2이사야서에서 중요 세 주제, '출애굽-땅점령', '창조'와 '고레스'를 갖고 이를 전체 이사야서와의 관련을 보았다 (R.J. Clifford, "The Unity of the Book of Isaiah and Its Cosmogonis Language", in: CBQ 55(1993), 1-17). 예를 들면 '창조' 주제가 제3이사야서에는 '시온의 창조'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다. Ackroyd는 현재 정경의 본문이 주는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했고 (P.R. Ackroyd, "Theological reflections on the Book of Isaiah: three Interrelated studies", in: KTR 4(1981), 53-63; KTR 5(1982), 8-13.43-48), 하나의 이사야 신학, 그것이 전체 이사야서의 주제들을 담아낼 수 있는 게 무엇일까에 관심을 두었다. 그는 특히 1-12장 연구를 통해 예언자의 현재성, 그는 바로 심판과 구원 메시지를 선포한 이라고 본 것이다 (P.R. Ackroyd, "Isaiah I-VII, Presentation of a Prophet", in: VT.S. 29(1978), 16-48). 그렇지만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예언자 이사야에 대한 그의 주장은 1-12장 그리고 1-39장에까진 들어 맞을진 모르지만 40장이후로 갈수록 그의 입장은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
'예언자 이사야의 환상'으로 모든 66장을 맞춘 것은 가장 후대 정경작업에 의한 것이고, 이는 최종형태로서의 이사야서가 나올 때 비로소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Berges는 40-66장은 그 앞의 예언자 이사야라는 인물과는 정혀 상관이 없는 것이고, 단지 그 큰 두 부분이 서로 연결된 다음에 8세기 예언자 이사야가 중심인물로 들어왔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제 최종형태로서의 전체 이사야서 안에 그의 목소리를 곳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본다(U.Berges, Jesaja 30).
독일에선 성서본문의 이러한 최종형태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불러일으킨 이가 바로 렌토르프이다(이사야서에 대한 그의 이런 입장이 처음 들어난 것은 1983년 그의 구약개론(R.Rendtorff, Das Alte Testament - Eine Einfuhrung, Neukirchen-Vluyn, 1983)에서부터였고 그의 이런 관점은 계속 발전되어 올 해 1999년에 나온 구약성서신학 제1권(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Ein kanonischer Entwurf. Bd.1: Kanonischer Grundlegung, Neukirchen-Vluyn 1999) 이사야서편에서도 나타난다. 그 밖에, 그의 논문, "Between Historical Criticism and Holistic Interpretation: New Trends in Old Testament Exegesis", in: VT.S. 40(1986), 198-303, 특히 302이하; "The Paradigm is Changing: Hopes and Fears", in: BI 1(1993), 34-53 등을 참고하라, 물론 1938년 폰라트(G.von Rad) 역시 본문의 최종형태가 지닌 의미의 중요성을 지적한 바가 있다.
참고: G.von Rad, Fragen der Schriftauslegung im Alten Testament, Theologia militans 20, Leipzig 1938). 렌토르프의 중요 해석학은 '구성 Komposition'이다. 전체 이사야서의 현재 최종의 모습은 분명한 어떤 신학적 의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이에 대해선 특히 그의 논문, "Zur Komposition des Buches Jesaja", in: VT XXXIV, 3 1984, 295-320를 참고하라). Berges는 '구성 Komposition'은 '최종형태 Endgestalt'를 이룬 그 바로 전 단계들에 대한 연구라고 말한다.
Sheppard 역시 정경의 최종형태에 이르는 편집사적 과정들에 관심한다. 그는 이런 이사야서 연구의 변화에 대해 이젠 이사야서 각 부분들의 어떤 것들이 약간씩이나마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느냐가 아니라 연구의 과제는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서로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Gerald T Sheppard, The Book of Isaiah : competing structures according to a late modern description of its shape and scope? in: SBL. SP 31(1992), 549-582, 575). Anderson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분석으로부터 종합으로의 움직임"이라고 한다 (B.W. Anderson, 'The apocalyptic rendering of the Isaiah tradition“ in: The Social world of formative Christianity and Judaism“, J. Neusner (ed.), FS H.C. Kee, Philadelphia 1988, 17-38, 17).
분명 오늘날 이사야서 연구뿐 아니라 예언서 연구에 있어서도 쉬테크(O.H.Steck)의 지적처럼, 이제 예언자가 누구였는지를 찾거나 또는 어떤 본문이 더 오래된 것이고 무엇이 나중 본문인지를 가려낸다는 것은 비록 포기되어질 성격은 못되지만 그렇다고 이것만이 예언서연구에 자명한 것만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나누어진 문서들이 하나의 책으로 된 그 의도를 묻는 일로의 전환인 것이다(O.H. Steck, Die Prophetenbucher und ihr theologisches Zeugnis, J.C.B. Mohr, Tubingen 1996, vi). 쉬테크의 방법론은 그러나 철저하게 문서비평방법론에 의존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사야서 전체에 대한 관심은 바로 어떻게 어떤 과정들을 거쳐서 현재 전체 이사야서를 만들어 냈는냐에 관심한다. 그렇기에 그는 편집사적 비평방법론을 이끌어간다. 이런 변화에 대해 Berges 역시 이런 대전환은 그 동안의 통식적 연구방법들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오히려 이사야서 그 전체의 통일성을 보여주는데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U. Berges, Das Buch Jesaja, Komposition und Endgestalt, HBS 16, Freiburg u.a. 1998, 11). 그가 보는 이사야서의 최종형태에 대한 통일성 연구는 오히려 하나로 만들어 간 통일화를 이루게 된 그 무엇을 찾는 것이다 (Berges, Jesaja 36).
Childs의 정경비평방법론과 Gottwald의 사회비평학적 해석학을 서로 연관지어 본 이가 Brueggemann이다 (W. Brueggemann, "Unity and Dynamic in the Isaiah Tradition", in: JSOT 29 (1984), 89-107). 정경의 최종 모습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이 모습을 만들어 낸 그 시회적 요인들을 찾아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사야서 2-4장에 대해 수사학적으로 연구한 Wiklander는 무엇보다도 본문의 최종 사용자에 대해 관심한다. 이사야서의 정경에 대한 이해는 최종의 본문을 현재의 모습으로 이용하고 가지고 온 그들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B. Wiklander, Prophecy as Literature. A Text-Linguistic and Rhetorical Approach to Isaiah 2-4, Uppsala 1984).
대체로 지난 20년간 그리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는 이사야서 연구 논의 중심은 다음과 같은 물음중 어디에 그 중심을 둘 것인가 하는 것으로 모아진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공시적인 질문으로, "최종 형태로 주어진 본문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와, 두 번째는 통시적인 연구로 "어떻게 이사야서는 지금의 최종의 형태로 만들어져 오게 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R. Rendtorff, 'The Book of Isaiah: A Complex Unity. Synchronic and Diachronic Reading', in: New Visions of Isaiah, R.F. Melugin und M.A. Sweeney (Hg.), JSOT. Suppl. 214, Sheffield 1996, 32-49를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