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공동구 2.
오전 8시경, 대로변에 위치한 대전 시설관리공단 산하 둔산공동구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
카니발이 깜빡이를 켜며 들어가 정차하고, 뒤따라온 아반떼는 주차장 위치를 확인한 후 지나쳐서 서서히 사라졌다.
주차하고 계측 장비와 증폭기가 든 가방을 들고 내린 최근상과 마해송은 공동구 관리사무소 현관으로 걸어갔다.
입구 카운터에서 간단히 접수하여 출입증을 받아 목에 건 그들은 입구 우측의 종합관제실로 들어갔다.
종합관제실 벽면의 커다란 멀티스크린에는 여러 갈래의 지하 공동구 내부평면도가 나타나 있고, 몇 군데 중요한 지점의 영상이 부분적으로 비치고 있다.
내일 월요일에 공동구 유사 이래 최고위층 내빈인 러시아 총리의 방문을 앞두고, 휴일인데도 당직자 여러 명이 나와서 스크린 아래 각자의 책상에 앉아 열심히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작업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종합관제실의 벽 쪽에 난 작은 도어를 열고 장치실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실내의 여러 종류 키 높이 장치 중에서 ‘무선통신 보조설비’ 팻말이 부착된 장비 앞에 잠시 머물렀다.
전압계와 전류계의 지시치가 어제 퇴근할 때 체크한 수치와 같은지 확인하더니 장치실 구석의 쪽문을 열고 지하 공동구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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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부산진역 근처 남해지방 해양경비 안전본부 상황실.
인천에서 헬기로 날아온 해양경비 안전본부장인 치안총감의 주재하에 을숙도 방화사건 상황 보고 회의가 열리고 있다.
경위급 이상 간부들의 심각한 분위기 속에 구석 의자에 앉아있는 경장 계급장 이정훈의 모습도 보인다.
“현재까지 종합된 을숙도 방화사건 경위는 차트와 같습니다. 방화범은 어젯밤 대변항 무인 모텔에서 검거된 한충석으로 밝혀졌습니다. 사건의 목적과 동기는 현재 취조 중이나 범인 한충석의 묵비권행사로 아직 밝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충석이 타고 나갔던 미역 채취선 선장 박창배도 함께 검거되어 취조 중입니다. 박창배는 사건 당일 한충석을 선원으로 고용했을 뿐이라고, 밀수 관련 사실은 극구 부인하고 있습니다. 대질신문 등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남해 해경 본부장이 벽면 스크린에 비친 차트를 가리키며 열심히 브리핑하고 있다.
“방화사건이 이미 방송을 타고 전국에 보도된 상태라 매스컴에서 수사 진행 문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48시간 이내에 사건전모를 밝혀서 보도 자료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보고하는 남해 해경 본부장이 얼굴에 흐르는 진땀을 훔쳤다.
회의장에 설치된 티브이 화면에도 시커멓게 타버린 을숙도 갈대밭을 배경으로, 우연한 화재가 아니라 누군가 폭발물을 설치하여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는, 앵커들의 추정 보도와 자막이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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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전 공동구 점심시간.
오전 작업을 마치고 나온 최근상과 마해송은 장비와 짐을 카니발 안에 넣어둔다.
그때, 근상의 핸드폰이 울렸다.
“야, 코모도! 오랜만이다. 그래, 잘 지내나? 전화했었어? 아하, 땅속에 들어가 있어서 핸드폰이 안 터진 거지. ···애국은 무슨, 먹고 살자고 마지못해서 하는 일이지. 하하. 응, 귀경길에? 음, 6시면 가능해. 그때 보자. 공동구 관리소 위치는 둔산 지구대에 가서 물으면 가르쳐 줄 거야. 그래, 알았어. 반갑다야, 생각지도 않았는데. 하하.”
근상이 싱글벙글하는 걸 보니 고문도가 대전에 들른다고 전화를 한 모양이다.
“야~ 최 대리님 친구분이 대전까지 만나러 오시나 봅니다. 하하.”
카니발 시건장치를 잠그지 않은 채 문만 닫고 나온 마해송이, 일부러 히죽거리며 근상의 주의를 분산시켰다.
“예, 의경 동긴데, 부산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들러서 간만에 술이나 한잔하자네요.”
두 사람은 식욕이 돋는지 늘 다니던 근처의 식당 골목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그 들이 골목으로 사라지자 은회색 아반떼가 카니발 옆에 다가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채일권이 잽싸게 카니발로 들어가더니, 벽돌만 한 알루미늄 케이스 증폭기 한 개를 들고나와 아반떼를 몰고 사라졌다.
인적이 뜸한 골목길에 주차한 차 안에서 증폭기 뚜껑을 살펴보는데, 뚜껑과 몸체가 번호가 적힌 작고 동그란 스티커로 좌우 양쪽 모두 밀봉되어있다.
잠시 망설이더니 결심한 듯 스티커를 카터로 살며시 찢고, 드라이버로 나사를 풀어 증폭기 뚜껑을 열었다.
내부 회로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예상보다 회로가 복잡한지 눈살을 찌푸렸다.
잠시 후 증폭기의 전원 부분을 찾았는지, 휴대용 납땜인두기로 제법 능숙하게 이리저리 점퍼 와이어 배선작업을 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고성능 폭발물로 보이는 조그만 물체를 꺼내어, 연결 잭에 조심스럽게 꽂아 내장시켰다.
작동 딥-스위치를 ‘ON’ 위치로 올리고 증폭기 뚜껑 나사를 조여 원위치했다.
30분이 훨씬 지나서 증폭기를 다시 카니발에 가져다 놓은 채일권이, 주변을 살피며 아반떼를 몰고 유유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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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총참모장 리영길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김춘삼이 거수경례를 붙이고 차려 자세를 취했다.
“음, 앉으라우.”
김춘삼이 들고 온 붉은 색 보고 파일을 쳐다본 리영길 총참모장이 책상에서 일어나 소파로 걸어가며 손짓을 했다.
“조금 전에 남조선 대전, 지하 공동구 작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네다, 총참모장 동지.”
소파에 앉아서도 자세를 꼿꼿이 세운 김춘삼 작전국장이 얼굴에 자신감을 보이며 보고했다.
“기래? 내일이면 남조선이 발칵 뒤집어지겠구먼! 크크.”
“남조선 뿐이갔시오, 우리 인민공화국도 곧 뒤집어질 것입네다, 총참모장 동지.”
“기래야디. 외화벌이네 경제네 하며 설치는 자본주의 물이 든 족속들은 서서히 모두 제거시켜야 될기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도 맡고 있는 리영길은 북한 군부의 최고위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지금 김정은의 신임을 등에 업고 중국과 러시아 등 동맹국 외교를 좌지우지하며 군부를 우습게 여기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김양건 부장 등, 군부의 대남공작 부서인 정찰총국과 대립 관계에 있는, 통일전선부 핵심 세력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번 작전이 성공되면 통일전선부 원동연 제1부부장부터 제거될 겁네다.”
“확실히 엮어야 돼!”
“중국 삼합회에서 우리 조직과 별도로 엉성한 유령작전을 진행하고 있습네다. 대전 공동구 근처에 있는 연구단지 내 건물 한 개를 조금 폭파할 겁네다.”
“그렇디. 그놈들은 통일전선부 원동연이가 지시한 줄로 알고 있겠지비?”
“그렇습네다. 지하 공동구가 폭파되면 나중에 남조선과 중국 공안이 공조수사를 하게 될 거이고, 유령작전 하는 기놈들이 곧바로 검거될 것입네다. 기놈들 동선이 우리와 비슷해서리 동일범인 줄로 알갔지요. 그리되면 원동연 제1부부장이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뒤집어쓰고 숙청될 겁네다!”
“좋아, 아주 좋아! 이번 일이 성사되면 김 국장 장래는 내가 확실히 보장하갔어! 흐흐.”
이들은 이번 거사의 결과 기존의 대남작전을 수행하는 통일전선부 원동연 제1부부장이 숙청되도록, 대덕연구단지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모함작전을 별도로 병행해서 펼치고 있는 중이다.
( 소설의 현 시점은 2015년 2월입니다.
이어서 다음에는 ‘해경 특공대 10 – 지하 공동구 3’ 편이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