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패(愼言牌)
김세명
누구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그렇다고 말과 행동과 글이 항상 생각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위해서건, 상대방을 위해서건, 한 번 한 말과 글과 행동은 그 사람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게 믿고 어울려 사는 것이다. 말은 잘 못하면 상처를 주는 말과 과장된 말, 남을 해치는 말, 욕하는 말, 이간질 하는 말은 분위기를 혼탁하게 한다.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내 나름대로 다짐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좋은 것은 말하고 나쁜 것은 말하지 않으며, 진실은 말하고 거짓은 말하지 않으며, 남에게 이익이 되면 말하고 해가 되면 말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원칙이다.
언행일치를 신조로 삼지만 이 또한 잘 안될 때가 많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면 믿음을 준다. 상대방 말을 믿지 못하는 인간관계란 생각하기 어렵다. 아무리 거짓말이 넘쳐나는 혼탁한 세상이라도 어찌할 수 없이 말을 믿고 관계할 수밖에 없다. 입은 재앙의 문이라 하여 연산군 때는 '신언패'라 하여 혀를 조심하라는 패를 관리에게 착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말은 늦을수록 좋고 행동은 빠를수록 좋으며 가급적 자신에 대한 말은 말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말은 자화자찬이거나 자학으로 듣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글의 경우는 어떤가? 글은 일반적으로 말과 행동보다 준비된 생각의 표시다. 그래서 언행일치해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오지만 글과 글을 쓴 사람의 행동을 결부시켜 말하는 경우가 드문 듯하다. 결국 글과 행동의 관계도 언행일치와 다를 것 없다. 어려운 시절엔 글 한 번 잘 써 가지고 갑자기 유명해진 사람이 가끔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행동이 엉뚱하면 그냥 손가락질을 받았다.
작가나 언론인이나 정치인은 말이나 글을 잘 써 인정받고 독자나 시청자와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유명인사가 되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대접도 받는다. 유명해진 만큼 영향력도 커지고 중요한 자리에 올라 영화도 누린다. 그들은 머리가 있고, 영합하는데도 능하기에 흠잡을 데 없는 그럴듯한 말과 글을 쓴다. 말을 많이 하면 그 중에 거짓말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치인을 불신하는 것도 신뢰치 못하기 때문이다. 공인으로서 한 말은 책임을 져야 하는데도 열두 번이나 약속한 세종시문제도 다른 말을 하니 정치를 불신 할 수밖에 없다.
말과 글재주를 이용해 영합하면서 명분을 살리고, 뒤로는 실속을 챙기며 지도층 행세를 하고 거짓과 위선이 드러난 경우도 있지만 끝내 안 드러나기도 한다. 충격이지만 정치와 언론을 보는 국민의 눈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판받아야 할 집단을 꼽는다면 아마 정치권과 언론일 것이다. 오랫동안 독재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던 과거에 대한 업보만이 아니다. 언행일치가 쉽지 않듯이, 글과 같이 행동하는 것은 쉬운 것이 더욱 아니다. 그렇지만 독자는 그렇게 믿고, 믿음이 깨질 때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렵더라도 노력해야 하는 것이 글 쓰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
비밀이 없는 마음은 개봉된 편지와 같아 개봉되지 않았을 때 궁금하듯 그런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 솔직한 게 탈이다. 비밀은 자기억제며 자기가 하려는 바는 말하지 말고 말해야 할 것은 행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남을 칭찬하는 말을 하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말로서 말 많으니 말하지 않을까 하노라’ 란 속담처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뜻도 새겨 '신언패'를 마음속에 차고 살아야 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