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음악: 신중현과 뮤직파워 - 아름다운 강산 (1980 )♬
스마트폰
스페인 오는 날부터 처음엔 와이파이 문제로 고민.
스페인 유심칩은 잘되는데 내 영국제는 잘 안됨
다음 날부터 문제는 충전이 보통 8시간 이상 걸려
숙소 도착하면 충전기부터 찾음.
순례 중 가장 큰 스트레스는 충전
필요한 사진만 찍고 나머진 카메라로 촬영.
9일 째 되는 어제 드디어 문제 발생.
침대 옆, 화장실 복도, 개인 사물함등
모든 콘세트에도 충전 안됨.
잔량을 보니 45% 2~3초마다 1%씩 감소
얼른 전원을 끄고 마지막 가족인사 할 것 생각.
밤새 잠을 못 이루며 이것도 주님의 뜻이다,
순례에 집중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깜깜이 여행에 대한 섭섭함과 걱정.
4시에 일어나 밥먹고 5시 출발.
어제 개사한 순례자 찬가를 부르며
별을 보고 씩씩하게 걷기 시작
컴컴한 데서 까미노 사인 찾기가 정말 어려움.
얼마 안 남은 스마트폰 불빛으로 확인하며 걷다 추월 당함
하지만 갈래길에서 추월한 그가 잘못 길을 선택한 것을 보고
소리질러 되돌아 오게 함
까미노 걸으며 드는 생각
매일 마트에서 아침거리 장만하고 하루 살 일만 걱정.
성서 말씀대로 어제 일, 미래는 걱정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삶 체험
까미노 사인을 찾으며 찾게 되면 안도감.
우리 인생길도 목적지가 있고,
길이신 예수님을 쫓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 재확인
9시경 간식과 맥주 500cc먹고 있는데,
그제 물집이 생긴 발가락 치료를 내가 도와주었던 한국청년 도착.
스마트폰 고민 말하자 친절히 듣더니
잭이 문제일 수도 있다며 자기가 갖고 있던 여분의 잭을 줌
별 기대 안 했지만 숙소에 와서 꽂으니 충전이 됨.
그것도 엄청 빨리
알렐루야!!
어제 밤새 고민하던 마음을
모든 것 주님의 뜻대로 해 달라고
까미노 길에서 의탁하고 포기하는 순간 해결됨.
게다가 숙소가 대성당 딸린 곳으로
7시 주일미사와 성체 강복도 있다고.
오는 길에 5유로 습득
은총의 까미노.
고맙다 학생
분실물 → 물비누 5일차,
습득물 → 5유로 10일차
1번 사용 → 두꺼운 윈드자켓, 아침 반팔차림
미사용 물품→ 베개, 판초우의, 각종 약, 헤드램프,
깔개, 스타킹같은 바지 등.
용감한 자들의 십자가
역사적으로 비옥한 그라뇽의 땅은 늘 다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세기 초반에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와 그라뇽이
두 마을 사이에 위치한 데에사 밭을 두고 싸운 것이었습니다.
마을에서 대표로 한 명씩을 뽑아서 목숨을 걸고 결투를 해서
이긴 쪽 마을이 땅을 차지하기로 정했습니다.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은 그라뇽의 마르띤 가르시아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결투를
‘용감한 자들의 십자가’(Cruz de los Valientes)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결투가 일어난 자리에
십자가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라뇽에는 마르띤 가르시아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으며
마을의 주일미사에서는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풍습이 남아있습니다.
그라뇽 마을
리오하 주에서 까미노 데 산띠아고가 지나는 마지막 마을입니다.
산토 도밍고 칼사다 숙소에서 7킬로(1시간 30분) 온 지점
시계는 6시 30분을 가리킴
아직도 해가 뜨지 않는 여명의 시간
산 후안 바우띠스따 성당(Iglesia de San Juan Bautista)
레데시아 델 까미노는,
순례자들이 부르고스 지방에 들어와서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마을입니다.
과거부터 이곳은 중세 프랑크 왕국의 중요한 점령지여서
많은 순례 객들로 항상 붐볐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 마을에는 순례자를 위한 병원이 두 개나 있었습니다.
까미노의 성모 성당 (Iglesia de Nuestra Senora del Camino)
11세기에 만들어 진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 17~18세기에 재건축되어
로코코 양식의 제단화와 가구 그리고 아름다운 세례반이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세례반은 11세기 작품으로,
비잔틴, 모사라베 양식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까스틸델 가도
화려한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마을의 이름은 비야뿐(Villapun)이었습니다.
16세기에 베르베라나 백작 가문이 여기서 시작되어
루고와 하엔의 주교였던 돈 곤살로 힐 델가도(Don Gonzalo Gil Delgado)를
기리면서 마을의 이름을 가스띨델가도로 바꾸었습니다.
.
산따 마리아 라 레알 델 깜뽀 소성당
(Ermita Santa Maria la Real del Campo)
중세에 순례자를 위한 병원에 딸려있던 부속 성당이며 18세기의 현관이 아름답습니다.
산 뻬드로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Pedro)
산 뻬드로 성당은 16세기에 만들어진 후기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아름다운 봉헌화와 조각, 유화 등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성모 마리아가 무릎에 예수를 앉힌 13세기 성모상이 돋보입니다.
성당에는 루고와 하엔의 주교였던 돈 프란시스코 델가도의 무덤이 있습니다.
빌로리아 데 리오하
마을의 주민은 백 명이 채 안되며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모든 순례자들에게 친절합니다.
또한 스페인 사람 들의 존경을 받는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는 1019년 빌로리 아 데 리오하에서 태어나
1109년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에서 90세에 사망했습니다.
그는 까미노에 다리를 축조 하고 길을 닦고,
병원을 설립하는 등 산띠아고로 가는 순례자를 위해 평생을 살았습니다.
순례자라면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의 생가 유적과
그가 세례 받은 세례반을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5월 12일 마을에서는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를 기리는 축제가 열립니다.
성모 승천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la Asuncion de Nuestra Senora)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이 성당에는
까미노의 성인인 산또 도밍고 데 라 깔사다가 세례를 받았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세례반이 있습니다.
Paulo Coelho(파울로 코엘료)
브라질의 작가.
저서로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악마와 미스 프랭>,
<피에드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등이 있다.
대학을 중퇴하고 대중음악의 가사를 써서 유명세를 탔다.
여행을 다니던 중 산티아고를 지나게 되어 후에 코엘료의 처녀작인
<동방박사의 일기(O diario de um mago)>(1987)의 바탕이 되었다.
이 작품은 1992년에 영역되었고,
1995년에 <순례(The Pilgrimage)>라는 제목으로 재발행되었다.
1988년 <연금술사>를 발표하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브라질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코엘료가 묵었다는 알베르게
비야마요르 델 리오
벨로라도와 같은 마을이었다가
18세기에 새로운 마을로 분리되었습니다.
조용한 이 마을에도 매년 9월 1일에는 산 힐을 기리는 축제가 열립니다.
산 힐 성당 (Iglesia de San Gil)
과거에는 벨로라도에 속한 위치에 있었는데,
18세기 중반에 마을이 분리되며
비야마요르 델 리오의 주요한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벨로라도
띠론 강변에 위치한 도시로 벨로라도라는 이름의 어원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벨로라도의 성당,
까미노 길이 지나가는 마요르 길의 문장으로 장식된 집,
나무로 만든 간주가 돋보이는 집,
마요르 광장에 면한 테라스가 있는 집들은
특유의 아름다움 뽐냅니다.
1,000년경에 하늘에서 불이 비처럼 쏟아져
온 도시를 휩쓸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이후 이 도시는 마치 불사조처럼 살아나
활력으로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산따 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산따 마리아 성당은 16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성모상과 순례자 산띠아고,
이슬람인들을 죽이는 산띠아고상이 보존돼 있습니다
중앙광장에 있는 산 페드로 성당
마을마다 있는 성당
마을마다 성당이 있지만 문이 잠긴 곳이 많음
하지만 시간마다 종을 쳐 중세시대로 돌아온듯
숙소마을에서는 잠자리에서 계속 종소리를 듣는데 시끄럽지않고 운치가 있음
어제 까미노를 걷다 문득 순례자 노래를 만들고 싶어
길을 걸으며 개사하여 계속 부르며 걸었음
매일 걷는 것이 일상이기에 이 노래가 마음에 와 닿았음
오늘도 걷는 다마는
희망에 찬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은총이었네
마을 성당 종소리가 축복을 비네
순례자 나갈 길은 산티아고네
지금 5시 밖에는 비가 내림.
내일은 힘든 여정이 될 듯.
주님께 모든걸 맡기고 내일 6시 떠나야지
오늘 7시 벨로라도 산타마리아 성당에서 미사 참례 후
소성당에 함께 모여 기도(각 나라말로)바치고
노래 부르라고 해 한국대표로 아리랑을 부름.
신부님이 미사 후 안수해 주시고
대주교 십자가(맨 아래 사진)를 목에 걸어 주심.
감동적인 주일미사 바침
미사후 숙소 로비에 알베르게 봉사자부부(독일인)와 신부님이 와인을 마시고 계셔
같이 와인 마시며 짧은 언어로 대화
대주교 십자가는 스페인에서는 카라바카의 십자가라하고
프랑스에서는 로레나의 십자가라하며
대주교님들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대주교의 십자가로 불리게됨.
가로 2개의 선과 세로는 하나의 선으로 구성됨
위의 짧은 가로선은 띠뚤루스 크루치스라하며
본시오 빌라도가 나자렛 예수는 유다인들의 왕이다 라고 써붙인 곳이고,
아래 긴 가로선은 빠띠불룸이라하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곳을 상징
콘스탄틴황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시작한 나무십자가 경배 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대주교님들이 이 십자가를 사용하게 됨.
오르테가 성당벽에 새겨진 이 대주교 십자가 문양은
12세기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며,
중세시대 문헌에 의하면 이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성당에서만
순례자들이 전대사를 받을 수 있었다 함
불굴의 한국인 순례자
10일차 만난 김그레고리오 형제(68세)는 건축관계 일을 하며 승승장구.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많은 업적을 회사에 안겨 주었는데
50대 초반 과로한 업무로 인한 뇌경색으로 한쪽이 마비가 와
치료했는데 아직도 한쪽 다리를 절며 걸음.
내가 10일 온 거리를 17일 만에 도착 만나게 됨.
그 형제에 의하면 왜 사람들이 빨리 걷는지 모르겠다.
하느님 창조물을 찬미하며 경치와 꽃들과 대화도 하고,
다른 순례자들이 기원한 글들도 읽어 보며 걸어야지
급하게 걸으려면 뭐하러 순례길에 왔냐고 함
그가 타인이 써놓은 글을 소개하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을 말해 신자냐고 물으니
그레고리오라 하며 부인 때문에 오랜 기간 쉬고 있다고.
오늘 저녁 미사참례 권유하자 안 하겠다 함
의사가 술 먹지 말라 했지만
오늘 기분 좋으니 먹자고 해 맥주 1000cc씩 마심
그는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고
그 긍정의 힘이 회사에서 발휘되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 술 마셔도 괜찮다함.
순례는 힘 닿는 대로 걷고 쉬고 하며 완주할 생각이라 함.
5월 4일 한국 출발 7월4일 귀국예정.
나보다 3살 위인 한국계 미국인 자매와 형제 셋이 500cc 2잔씩 마시고
자유로운 한국어로 대학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