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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논단 2012년 9월호
<읽을 만한 책> 쿠데타로 무너지는 ‘3대 세습 왕조’ 무명작가 정광수의 近미래 역사소설 「고래를 잡아라」 조 규 석 / 언론인
2012년 9월 1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한다. 참으로 갑작스런 일이었다.이날 오전 11시 20분, 해주에 있는 정찰총국 301정찰여단에 공화국 인민군의 젊은 최고사령관이 도착한다. 강화도 앞에 있는 교동도의 기습 점령을 가상하여 실시될 예정인 대규모 기동훈련을 ‘현지지도’하기 위해서였다. 정찰총국 내에서 가장 충성심이 강한 것으로 이름난 301 정찰여단은 과거 아웅산 테러작전에도 동원된 부대다.
이날 기동 훈련에는 301부대는 물론 4군단 70저격 여단과 서해함대의 29해상저격 여단, 8전대, 11전대의 쾌속정대대, 반잠수정대대 등이 참여하게 되어 있었다. 리정호 2호위국장, 어일식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김영국 작전국장, 김종옥 당 조직부 제1부부장, 김명건 통일전선부장, 정병두 서해함대사령관, 김동만 4군단장 등이 최고 사령관의 현지지도를 수행했다.
기동훈련에 대한 김철용 정찰총국장의 보고가 시작됐다. “이번 훈련의 목적은 남반부 미제 괴뢰 놈들의 간담이 떨어져 나가게 하는 대규모 입체 작전을 서울 근방에서 가함으로써 군사강성대국 공화국에 맞서는 놈들을 한 순간에 짓밟아 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목적은 12월에 실시되는 남반부의 대통령 선거에서 남북 화해를 내세우는 범사회주의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자는 것입니다.”
김철용의 보고가 끝나자 젊은 최고사령관은 “수고 많았소. 훈련을 꽤 많이 했갔구만'이라고 격려 한 후 작전대원들이 서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겨 간다. 잠시 후 최고 사령관의 손목시계가 11시 40분을 막 가리키는 순간, 우당탕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2층 여단장실에 숨어있던 부대원들이 뛰어 내리면서 자동보총을 무차별 난사한다. 현장은 순식간에 피바람에 휩싸인다. 쿠데타는 그렇게 시작됐다.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은, 바로 전에 이날 실시될 훈련 내용을 보고한 그 정찰총국장 김철용, 거사 실행을 현장에서 지휘한 인물은 그의 심복인 301 정찰 여단 부사령관 민성곤 대좌였다.
물론 북한에서의 쿠데타 발생은 픽션(Fiction:허구)이다. 무명작가 鄭光壽(정광수)의 첫 장편소설 ‘고래를 잡아라.’(도서출판 ‘기파랑’ 발행)에서 묘사된 내용이다. 그러나 3대 세습 정권의 출범 200여일이 지난 지금,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북한의 變故(변고)가 머지않아 현실화할 수 있음을 소설은 실감나게 전한다. 그래서 소설 ‘고래를 잡아라’는 허구와 사실이 겹치는 팩션(Faction)으로도 읽힌다. 그만큼 3대 세습 정권의 권력 내부 동향과 국제 정세의 추이에 대한 작가의 치밀한 탐구가 소설의 내용을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북한 쪽 인물들은 김일성, 김정숙, 김영주, 김정일만이 실명이다. 그러나 가명의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성명 세 글자 가운데 한 글자만 바꾸어 독자가 쉽게 실제인물을 파악 할 수 있도록 했다. 소설 속 최고사령관 '김정운'은 당연히 현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겸 인민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은이고 정찰 총국장 김철용의 실제이름은 김영철이다. 소설 속 남한 쪽 이명석은 이명박 대통령, 김관직은 김관진 국방장관-그런 식이다.
정찰 총국장 김철용은 왜 쿠데타를 일으켰는가. 한마디로 숙청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일찍이 감지했기 때문이다.(이 대목을 통해 현실에서 북한 인민군 전 총참모장 이영호의 숙청을 떠올리게 되는데 소설이 지난 7월 1일에 발간되었음을 감안하면 작가의 예견이 놀라울 정도다). 소설 속에 묘사된 쿠데타 모의-성공까지의 과정이 독자에게 마치 충분히 발생가능한 시나리오로 전달되는 이유다.
김정일이 사망하기 3년 전, 김철용은 외화벌이 회사인 ‘룡화개발무역상사’를 통해 중국법인 광산 개발회사 대창마인즈의 실질적 소유주인 남조선 기업 ‘청풍’의 회장 전상협을 우연히 알게 된다. 부모가 북한 출신인 전상협은 김철용의 외화벌이 사업을 적극 도와준다. 김철용은 전상협을 재일동포 사업가로 위장해서 수시로 평양을 오갈 수 있도록 한 후 김정일과의 만남까지 주선하는 등 북한 내 인맥 구축을 도왔다. 그러나 김철용-전상협 커넥션을 애초부터 달가워하지 않는 그룹이 있었다. 그 중심에 바로 장현빈(실제로는 김정은 고모부 장성택)과 그의 부인 김경혜가 있었다.
김정일이 급사하자 장현빈은 보위부장, 호위사령관, 보위사령관 등과 손 잡고 정찰총국장 김철용이 당 기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여 대창마인즈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남조선 금광개발 간첩단 의혹사건’을 꾸며낸다. 그에 따라 당 조직부, 호위사, 보위부, 그리고 보위사가 연합한 최고 강도의 ‘검열 그루빠’(그룹)가 구성돼 김철용을 압박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당할 김철용이 아니었다.숙청의 회오리가 휘몰아치기 전에 선수를 써야했다. 때마침 김정운의 해주 방문 통보를 받은 김철용은 치밀한 사전계획 끝에 이날 최고사령관 김정운 제거를 과감하게 결행한 것이다.
상황이 끝났다는 보고를 받고 김철용은 당, 군 간부를 수습해 피격현장으로 데려갔다. 현장은 참담했다. 주검이 다된 김정운의 상태를 동행성원들에게 확인시켰다. RPG 로켓을 맞은 자국이 선명한 BTR-40 소형장갑차는 진입로 옆에 앞 부분을 아래로 처박았고, 주변에는 무장 병사와 군관들이 둘러서 있었다. 곧 여기저기서 수백 명의 병사가 모여들었다. 모두가 엄숙한 표정으로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진화작업 후 수색한 결과 군관 2명과 운전병은 즉사했고 김정운은 팔이 떨어져 나간 어떤 소좌의 사체 곁에서 피흘리며 누워있었다.
김정운은 파편에 우측 머리가 함몰하고 가슴도 관통된 상태였다. 얼굴과 상반신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즉시 독일제 전용의무차량에 실려졌다.대기하고 있던 담당 군의관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두부수술은 불가합니다. 화상 처치와 수혈, 그리고 봉합수술을 해보겠습니다.”고 간신히 말했다. 김정운의 상태는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끔찍했다. 처참한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그 장면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불과 수 분 전만하더라도 전체 인민을 떨게 했던 그는 신과 같은 '지존'이었다.인민의 주인이고 공화국의 전부였다. 그런데 20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저렇게 죽음을 맞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이날 거사에 가담한 301 부대 병사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전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여겨 왔던 일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수백만을 굶겨 죽인 인민의 원쑤 김씨 세습왕조! 불쌍하게 죽어간 한 많은 영혼들!... 우리는 인민과 나라를 위해 할 일을 했다. 혁명이다. 우리는 혁명군이다”.- 만세가 터져 나왔다.‘이런 것을 혁명이라 하는가?’ 병사들의 눈에서는 戰意(전의)의 불꽃이 튀는 듯 했다. 감격과 흥분을 누르지 못한 김철용은 소리쳤다. “혁명 만세! 혁명 만세! 혁명을 완수하자!”
쿠데타 발발 후 북한 인민군은 혁명군과 진압군으로 갈라졌다. 결국 한미 양국군과 중국군이 개입하기에 이르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육상과 해상 등 여러 전투 가운데 공중전 장면은 마치 TV 실황중계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주목되는 것은, 작가가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의 현재까지 공개된 무기체계와 한반도 유사시 작전계획 등을 바탕으로 가상 전투상황을 펼쳐 보인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폭넓은 군사지식과 풍부한 상상력이 확인되는 부분이다.
“제1전투비행단 소속 KF-16 021기 임영기 소령은 수원기지를 이륙, 군사분계선을 넘어 연백-봉천 회랑을 통과하고 있었다. 오산 제1방공지휘통제소로부터 다급한 교신이 들어왔다. “전방 60km, 봉산 상공! 미그-29 14대 출현! 아군기 피해 발생! 사리원 일대 1만m 이하 GPS장애! 통신장애! NN-EMP 탄(비핵 전자기펄스 탄) 폭발! EMP(전자기펄스)경보! EMP경보! 즉시 AV-12 수동모드 전환! 비상교신기 알파트랜지터 가동!편대, AV-12 수동모드! 알파트랜지터 온! AV-12 수동모드!.”- 임 소령은 나란히 날고 있는 편대기에 반복 지시한다.
전투 상황 묘사는 이어진다. “접전이 불꽃을 튀긴지 몇 분 후 EMP탄두는 사리원 목표상공에 진입했고 강한 섬광을 일으키며 지상 2km부터 7km에 이르는 고도에서 연달아 폭발했다. 갑자기 GPS가 오작동을 일으키고 통신에 심한 노이즈가 발생했다. 레이더가 일그러졌다. 통합 지휘망과 연결이 두절됐고 상호 교신이 불가능했다. 이때 순천 매하기지에서 출격한 미그-29 10여 대가 갑자기 나타났다...”
쿠데타로부터 아흐레 지난 9월 21일 오후 4시. 마침내 한갑철 특전사령관과 민성곤 정찰사령부 제1부사령관이 이끄는 특전사, 정찰사의 본대가 대동교를 건너 그 길로 김일성광장에 거침없이 진입한다. 순식간에 밀어닥친 혁명군을 맞이하는 평양시내 연도(沿道)는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시민의 행렬로 메워지고 있었다..
작가는 그 '역사적 광경'을 감성적 언어로 추상적으로 표현한다. “인형의 도시에서 새 생명의 핏줄기가 솟아나왔다. 붉은 숨을 팔딱이며 만수대를 넘어 대동강을 발길질했다. 정지했던 강물은 수정보다 맑은 폭포수를 맞고 폭발하듯 가슴을 찢었다. 가쁜 격류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검게 썩은 송림의 폐수를 밀어내고 단숨에 남포 갑문을 부수었다. 그리고 그리웠던 그 바다, 그 하늘의 품으로 끝없이 안기어 비산(飛散)했다.” -3대 세습정권은 그렇게 무너졌다.
김정운 정권 붕괴 후 북한 땅의 지배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드러내는 한반도 전략도 읽을거리다. 미국과 중국은 비밀협상 자리에서 북한지역에 군사적 개입을 확대하지 말라고 서로 상대에게 강력히 요구한다. 결국 중국은 청천강-함흥 라인을 새 분계선으로 하자는 미국과의 밀약을 수용하고 그런 긴박한 상황 한편에서는 북한 쿠데타군이 한미연합사에 지원증강을 요청하게 된다. 새삼 한반도의 엄혹한 안보 상황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소설은, 작가 후기를 포함해서 409쪽의 장편이다. 소설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래잡이’란 직접적으로는 인민군 동해함대사령부의 격파, 간접적으로는 김정은의 제거와 중국의 북한 점령 저지를 뜻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밝힌다. 포괄적으로는 한반도의 영구분단을 획책하는 모든 세력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책 후기에서 작가는 북한 동포들이 겪고 있는 생존의 어려움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 소설의 作意(작의)라고 했다. 북한 내부의 권력 갈등이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고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물린 강력한 폭발물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출판사가 소설 제목 위에 ‘근(近)미래 역사 소설’이라고 표기한 뜻을 알만하다.
남한 사회에서 ‘주사파’가 태동하고 지하조직을 확대해 간 1980년대에 대학생(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이었던 정광수는, 말하자면 ‘386세대’ 출신인 셈이다. 책 안표지의 작가 소개란에는 그가 자기 경력을 밝히기 꺼린다고 적혀있다. 본인의 말로는 “내세울 것도 없고 주로 백수로 지냈기 때문”이라는데 그 말의 含意(함의)는 그가 오랫동안 이념적으로 방황했다는 뜻일 듯도 싶다.
소설 ‘고래를 잡아라.’는 작가 정광수가 오랜 이념적 방황 끝에 도달한, 사회주의 혁명의 허구성에 대한 확신의 소산일 것으로 짐작된다. ‘주체의 나라’ 조선인민공화국에 대한 젊은 날의 환상이 한낱 迷妄(미망)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지 모른다. 그는 지금 다른 소설 집필에 매달리면서 ‘떠돌이’ 학원 강사로도 뛰고 있다고 한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
첫댓글 소설 "고래를 잡아라" 라 ..당장 사 봐야 겠네...뭣한 말이지만...방구가 잦아야 똥이 나온다고 이런게 자주 나와야 통일이 앞당겨지지 않겟나?...ㅋㅋㅋ
금년이 바로.................통일의 해......
오늘(8월 28일)부터 24일 남았네.
fiction 이 nonfiction 이 되기를....
12월 대선엔 북한주민도 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