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李恬)은 공민왕(恭愍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차례 관직을 옮겨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가 되었다. 우왕(禑王) 때 예의판서(禮儀判書)와 전공판서(典工判書)를 거쳐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승진하고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로 관직을 옮겼다가 공양왕(恭讓王) 때에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승진하였다.
팔관회(八關會)에서 중방(中房)이 밀직사에게 예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자 마침내 틈이 벌어져 서로 글을 올려 다투었는데 왕이 모두 보류하고 명령을 내려 보내지 않았다. 이념은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밤이 깊어지자 〈잔치가〉 파하여 〈왕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이념이 취하여 왕의 소매를 당기며 말하기를, “전하께서는 정창군(定昌君) 때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국사가 날로 어긋나는데 어찌하여 어린아이들을 믿으시고 대신은 경시(輕視)하십니까?”하고는 이윽고 모자를 벗어 땅에 내던지고 〈다시〉 말하기를, “원컨대 이 모자를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손으로 〈모자를〉 부숴버렸다. 왕이 노하여 그 모자를 발로 차고 언성을 높이며 말하기를, “이념이 술 때문에 이러는 것인가?”하였다. 〈그러자〉 환관 강인부(姜仁富)와 대호군(大護軍) 김정경(金鼎卿)이 〈그를〉 붙잡고 물러가서 순군에 하옥하고 국문하게 하였다. 이념이 만호(萬戶) 유만수(柳曼殊)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희들은 재상들이 되어서 불효하고 우애가 없다는 이름이 나서 대성(臺省)에서 다시 너희들을 논하고 있는데 어떻게 나를 국문하려는 것인가? 감히 간언하는 것은 죄가 아니며 술로 인한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만호(萬戶) 배극렴(裵克廉) 등이 오니, 이념이 맞이하며 말하기를, “유만수가 나를 거의 죽일 뻔했는데, 지금 〈그대들을〉 보니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구려.”라고 하였다. 배극렴 등이 국문하자 이념이 오히려 말하기를, “임금에게 간하는 것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후〉 배극렴 등이 왕에게 아뢰기를, “이념이 진짜로 술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노하여 천호(千戶) 김귀련(金龜聯)과 제공(提控) 정지도(鄭之度)를 〈순군에〉 가두었으며 배극렴과 유만수 등 만호를 파직하고 조준(趙浚)과 안익(安翊)·유순(柳珣)·김사형(金士衡)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산기상시(散騎常侍) 김진양(金震陽)과 집의(執義) 정희(鄭熙)를 불러 말하기를, “이념은 내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교유하여 비록 주운(朱雲)과 자릉(子陵)에 스스로 견주지만, 〈주운과 자릉은〉 진실로 이념과 같이 완악하고 경솔하지는 않다.”라고 하고는 김진양과 정희에게 명하여 〈이념을〉 순군에서 국문하게 하였다. 이념이 말하기를, “밀직(密直) 13명이 글을 올려 중방의 죄를 청하니 좌우가 모두 중방의 이유를 듣지 않소. 어린아이의 말만 믿고 대신을 경시하니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오.”라고 하였다.
김진양 등이 말하기를, “이념이 발광할 때 〈전하의〉 몸을 보호하고 도와드려야할 사람들이 〈이념을〉 막아내지 못했으니 청컨대 유사에 명령하시어 그들의 죄를 명확하게 밝혀 단죄하소서.”라고 하였다. 왕이 상호군(上護軍) 권유(權維)와 노필(盧弼)에게 명하여 대호군(大護軍) 홍서(洪恕)와 홍원성(洪原誠) 등을 순군에 가두게 하였다. 간관이 또한 상소하여 법에 따를 것을 청하였는데 우리 태조〈이성계〉가 왕에게 말하기를, “이념이 실제로 죄가 있으나 그 말은 지나치게 곧은 성격에서 나온 것이니 청컨대 그의 죽음을 면하게 해주소서.”라고 하였다. 왕이 이념에게 장형 100대를 가하고 합포(合浦)에 유배 보내었으며, 권유 등 9명에게는 태형을 내렸는데 얼마 있다가 이념을 경상도도절제사(慶尙道都節制使)로 삼았다. 이 이후는 본조(本朝)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