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12. 나무날. 날씨: 봄 햇살이 따듯한데 오후 늦게쯤 되니 찬 바람이 조금 있어
자전거 타는데 손이 시렵다.
아침열기-수학-점심-청소-과학관목공-마침회-교사회의-교사회 베틀 연수
함정
드디어 관악산 용마골 골짜기에 간다. 파란 하늘과 봄 햇볕도 좋아 자전거를 타고 용마골에서 아침열기를 하기로 했다. 마음이 통했는지
낮은샘 아이들도 낮 공부 시간에 용마골에 간다고 한다. 마을 산책 범위를 과천동으로 넓혀 용마골까지 갈 수 있는 까닭은 자전거에 있다. 걸어서
다녀오면 시간이 더 걸리는데 자전거 덕분에 10시 수학 시간 안에 들어올 수가 있다. 높은 학년이기에 할 수 있는 활동이다.
오랫만에 용마골에 오니 그냥 좋다. 골짜기에 들어서자마자 졸졸졸 물소리, 예쁘게도 핀 얼음꽃, 아직 녹지 않은 두꺼운 얼음, 골짜기
바위와 나무들이 신이 아이들 얼굴 속에 모두 담긴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하는 개구리알과 도룡뇽알이 투명한 얼음 밑 곳곳에 있다. 손으로
만지면 화상입는 줄 알고 얼른 내려놓은 마음이 참 예쁘다. 물러가는 겨울과 흐르는 봄을 한꺼번에 느끼니 몸이 깨어나는 듯 하다. 두꺼운 얼음을
보니 용마골에서 얼음썰매 실컷 타지 못한 2월이 아쉽다. 용마골 골짜기에 오면 늘 가는 곳까지 올라가는데 가는 곳마다 옛날 아이들과 함께
얼음썰매 타고 움집을 지은 추억이 살아난다. 학교 가까운 곳에 가재와 도롱뇽, 개구리가 사는 골짜기가 있음이 고맙기만 하다.
"이 곳에서 진짜 얼음썰매 많이 탔는데... 기억나니?"
"네. 기억나요. 물놀이도 했잖아요."
"애들아 조심해. 가랑잎을 밟으면 발이 빠질 수도 있어."
"함정이네요."
"오후에 동생들 온다니 우리가 미리 함정을 걷어내며 가자."
"함정이니까 놔둬야죠. 한 번 빠져보게."
"그럼 동생들이 추울텐데..."
"그런 것도 겪어봐야죠. 히히."
"여기까지 올라오기 힘들겠지만, 여기는 건너기가 힘드니 징검다리 돌을 놔주자."
"에이 그 정도는 건너기 쉽죠."
"우리들이야 쉬워도 동생들은 안그럴 걸."
드디어 개복숭아나무 아래 작은 폭포에 닿아 쉬면서 봄 햇살을 맞으며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온 감각을 자연이 열어준다. 좔좔좔
졸졸졸 쪼르르촬촬 또르락또르락 물 흐르는 소리로 좁은 물길, 넓은 물길, 비탈진 물길을 찾아내는 아이들에게 자연은 관찰의 대상이고 그대로 우리와
하나가 된다. 그래 이렇게 늘 자연을 가까이 하고 자연 속에서 일하고 놀며 자라면 되는 것을. 개학 첫 주와 둘째 주 처음 하는 공부가 많아
하나 둘 계획하고 자세와 방법들을 익히느라 자연에서 실컷 놀지 못했으니 이제부터 슬슬 봄을 온 몸으로 만나야겠지. 산길을 내려오며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정겹다.
9시 50분, 학교로 돌아와 하루 공부 이야기, 피리, 영어와 천자문, 노래와 암송으로 바깥 활동의 힘찬 기운을 차분하게 정리해간다.
밖에서 활동을 하고 들어오면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쉬면서 책을 보곤 한다. 누가 책 보라고 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책을 골라 본다. 물론 만화책을
더 좋아하지만.
수학 공부로 자치기를 할 어미자와 새끼자를 만들기로 했다. 목공 수업에서 자주 쓸 줄자를 아이마다 지니고 있어 나무를 구해 줄자로 재고
톱으로 자르려는데 앗 구해 놓은 나무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나무 찾아다니느라 본디 계획한 자치기 분수 활동을 조금밖에 못해 아쉽다.
나무집을 지으려면 톱질을 잘해야 하는데 오히려 가는 나무막대기 톱질하기가 더 어렵다. 혼자서 발로 나무막대기를 밟고 한 손이나 두 손으로 톱질을
해야 하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줄자로 30센치, 40센치를 재서 저마다 원하는 어미자 길이로 자르고, 새끼자는 5센치로 했다. 드디어
자치기 놀이를 시작하는데 점심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미리 나무를 확인했으면 수업 구성을 더 잘할 수 있을텐데 또 실수다. 어쨌든 둘씩
편을 갈라 민주와 선생이 한 편이 되고, 성범이와 원서가 한편이다. 언제나 놀이는 신이 난다. 민주가 첫 단계 뜨기를 성공해서 열네 자를
쟀다. 자치기로 어떻게 분수를 하고 셈을 하는지 아이들이 궁금해 하니 그도 재밌다. 30센치 어미자로 열네 자를 쟀으니 곱하기가 되고, 열네
자를 선으로 그려 열넷 조각을 내어 표시를 했다. 활동지와 그림 공책으로 하던 전체와 부분을 땅에서 선으로 그려 보는 거다. 1/14부터
13/14까지 나누고, 8/14을 약분하면 4/7가 되는 것을 어미자로 재면서 다시 확인하니 지난 번 수업 때 배운 기약분수와 약분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 번 선을 그려놓으니 두 번째 단계 두 손으로 치기로 더 멀리 나간 새끼자까지의 거리를 다시 재기에 편하다. 거리를 가늠하며
목공 수업에 필요한 눈을 기르는 재미도 있다. 못치기로 도형 놀이 하듯이 자치기로 사칙 연산 모두 할 수 있다. 놀면서 셈도 익히고, 가늠하고
할게 많아 수업 구성을 잘 해 놓아야 한다. 다음엔 그냥 진짜 자치기 놀이에 푹 빠져야겠다.
점심을 먹으며 2학년 아이들과 같이 앉았길래 용마골 함정 이야기를 해주니 눈이 커지고 귀를 쫑긋한다.
"우철아 너 한테만 내가 알려줄게. 용마골에 가면 함정이 있어. 가랑잎 함정인데 그걸 잘 피해야 돼. 동생들 잘 챙기고 가려면 알아야 돼.
알았지. 가랑잎이 쌓여있으면 밟을 때 조심하란 말 동생들에게 알려줘. 알았지."
곁에 있던 예준이 다가와 비밀, 함정이 뭔지 다시 묻고, 지안이가 웃고, 조금 뒤에 지환이가 또 와서 묻는다. 아이들은 비밀을 좋아한다.
함정 만들기도 좋아한다. 그래서 비밀과 함정 이야기는 늘 솔깃한 이야기꺼리다. 녀석들 동생들에게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말했을까 궁금하다.
밥 먹고 교사실에 있는데 규태가 들어왔다.
"선생님 보세요. 제가 수력발전기 만들었어요."
"와 대단하다."
"이걸 돌리려면 물이 떨어지는 힘이 제법 커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숲속놀이터 개울에 댐을 만들어놨어요."
"아 그래. 성공하면 꼭 불러줘."
"네."
오전에 수력발전기 만든다고 알려주더니 드디어 만들어왔다. 숲속놀이터 옆 작은 개울에 댐을 만들어 놔서 거기에 놓을 거라고 보여준 걸 보니
부서진 바람개비 건전지에 새로 날개를 붙여 물레방아처럼 돌아가게 만들었다. 물의 힘에 의해 잘 돌아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스스로 만든 게
대단하다. 어제 후쿠시마 4주기 때 한 에너지 공부를 이어가는 것이 어찌나 이쁜지. 내일은 같이 보고 진짜로 돌아가며 불이 켜지도록
도와줘야겠다. 댐을 이용한 수력발전보다 자연에 이로운 소수력 원리를 들려주며 실험정신을 북돋워주는 것도.
슬프게도 과학관 목공 수업때 본디 만들기로 한 평상 크기를 줄일 수 밖에 없다. 과학관쪽 사정이라 1/4크기만 평상을 만들어야 한다.
나머지 3개는 학교에서 하든지, 달마다 한 개씩 줄곧 만들어 가던지 그렇게 할 수밖에. 지난 번도 그랬는데 자전거 타고 돌아오는 길이 더
편하다. 자세히 보니 같은 평지라도 약간의 경사가 있어 오르막과 내리막이 보이지 않게 있고, 바람이 불어주는 방향과도 관련이 있음을 아이들이
찾아내주었다. 6학년과 함께 하니 5학년 아이들이 배울 게 많다. 역시 권진숙 선생과 호흡을 맞춰 함께 주제학습을 벌이니 선생도 든든하고 좋다.
아침부터 태양열조리기에 넣어둔 달걀이 익지 않았다. 놓은 위치도 그렇고, 뜨거운 태양열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충분치 않나보다.
저녁 3월 교사 연수로 잡은 띠베틀을 배웠다. 종일 바깥 활동을 한 뒤라 저녁을 먹고 나니 몸이 풀려서 그런지 노곤하다. 그래도 날줄을
걸고 매듭 묶는 재미가 좋다. 씨줄과 날줄로 엮는다는 말을 자주 쓰곤 했는데 베틀로 걸어보고 묶어보니 그 맛을 조금 알겠다. 매듭을 단단히 묶는
것도 한참을 연습하고 나서야 익숙하다. 사람 관계는 오죽할까. 도투마리에 풀려나오는 날실을 걸어 잉아로 윗날 아랫날로 나누는 것까지 베웠는데 갈
길이 멀다. 권진숙 선생과 송순옥 선생이 배움을 나눠주는데 교사 연수로 줄곧 할 수 있어 좋다. 어릴적 어머니가 베틀과 바느질 하는 걸 보고
자란 기억이 나는데 스스로 해보니 참 쉽지 않다. 정말 끈기가 필요한 일이다. 다 같이 뭔가를 배우니 기분이
좋다. 교사회 중심은 이런 거 아니겠는가. 함께 밥을 지어 먹고 배움의 열정을 나누는 일부터가 같은 길을 걷는 동지를 깊이 신뢰하는 첫 삽이다. 아이들 앞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날마다 삶이 인격도야일 수 밖에. 어제 밤 꿈에는 갑자기 최명희 선생이 나왔다. 날마다 못 보니 그리운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