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운동은 80년대 이후 30여년 동안 장족의 발전을 해왔으며 수많은 단체들이 출현했다. 하지만 무한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했던 한국의 민중운동과 시민운동도 여러 지점에서 발전의 '병목지점'에 도달해 있으며, '전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면 일본의 사회운동은 대체로 '실패의 역사'로 한국에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패에서도 배울 점이 있으며, 실패의 역사라는 피상적 인식 이면에서 전개되어온 건강한 운동들은 정체기로 진입해가는 한국 사회운동 진영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런 취지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을 전공하는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와 일본 사회운동을 전공하는 케이센대학교의 이영채 교수가 일본 사회운동의 중요한 전환점과 위기의 지점들에 대해서 성찰적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활동가나 학자 등을 두루 만나 연쇄 인터뷰를 진행했다. 호사카 노부토(사타가야 구청장), 가와사키 아키라(피스보트 공동대표), 토리이 잇페이(노동운동가), 아하시 마사아키(학자), 요시다 유미코(생협운동 이사장), 우쯔미 아이코(평화운동가), 무토 이치요(신좌파 활동가), 우에무라 히데키(인권활동가) 등이다.
다섯번째로 요시다 유미코 동경 생활클럽 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났다. 편의상 두 교수의 질문은 구분하지 않고 '조희연+이영채(조+이)'로 통일했다.<편집자>
생활클럽 생협은 일본의 생협 중에서도 가장 시민참가가 많고 시민참여형 지역정치를 실현하고 있는 단체이다. 이사장 요시다 유미코는 가정주부로서 처음 생협활동에 참여하여 지역반장, 도쿄남구지역 이사장을 거쳐 현재는 생활클럽 도쿄 이사장을 담당하고 있는 전형적인 시민출신형 여성리더이다. 지역공동체의 변화, 글로벌리즘과 신자유주의의 확산 그리고 3.11 대지진이후 격변하고 있는 일본사회 속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시민운동인 생협을 이끌어가 가고 있는 여성리더에게 그 현황에 대해서 의견을 들어보았다.
▲ 요시다 유미코 동경 생활클럽 협동조합 이사장ⓒ조희연 이영채
조+이 : 세계적인 생협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인데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생활클럽(세이가츠 그라부) 동경지부를 탐방해서 그 활동을 접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일본 생협은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영역에서부터 지역공동체의 포괄적인 삶의 영역까지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민운동이자 시민운동으로 한국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오랫동안 중앙권력에 대항하는 운동이 중심이었습니다만, 생활세계의 문제로도 관심이 확대되면서 2000년대 이후 생협운동이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많은 조언을 들었으면 합니다.
이사장님은 '전형적인 주부 시민으로서 아래로부터 성장한 여성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시는 것 같은데, 개인소개와 함께 어떻게 생협에 관여하게 되었는지 소개해 주시지요.
요시다 : 저는 평범한 주부로 생협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남편은 동경출신이지만, 오랫동안 회사일로 지방에서 전근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동경에 부임했을 때, 이곳 세타가야구의 사택에서 살게 되었죠. 사택에 들어와 살고 있을 때 생협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언젠가는 생협활동에 가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해왔는데, 뜻하지 않게 초대를 해주어서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협에는 반장(*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자료 및 정보를 계획적으로 공동구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연합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반은 생협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이고 민주적인 참가와 자주운영, 연대를 만드는 공간으로 생활클럽은 규정하고 있다)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순번대로 조장을 하는 것입니다. 반장을 하던 중 제비뽑기를 해서 매 번 지부장을 선출하는데 우연히 제가 뽑아버린 것입니다. 주부에서 시작해서 생협활동을 시작했다가 일종의 활동가가 되어버린 셈이지요.
활동 중에 많은 분들이 지원을 해주셔서, 부이사장, 나아가 이사장까지 되어서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매번 자신의 직책이 올라갈 때 언제나 주저하기도 했지만 꼭 싫지는 않았습니다. 새로운 직책을 맡게 될 때마다 새로운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죠.
생활클럽 생협에 처음 가입했던 것이 20년 전이고요, 추첨, 즉 제비뽑기를 해서 당첨된 것이 95년 경이었습니다. 동경 생활클럽의 이사장을 맡기 전에는 동경 23구 중 남구지역 생활클럽의 지역 이사장을 했습니다. 이곳 동경전체 지역의 이사장을 맡은 지 5년째 입니다.
조+이 : 생활클럽은 어떤 단체로 이해하면 될까요? 생협 중에서는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능하면 현재 조합원 수나 연간 예산 등에 대해서 소개해 주시지요. 생협의 단어는 알고 있으면서 실제 그 구조에 대해서는 익숙치 않은데, 현지 생산자, 유통, 소비자로 이어지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시죠.
요시다 : 생활클럽 도쿄의 경우, 전체 예산은 약200억엔 규모입니다. 총매출액은 이것과는 다릅니다. 전체 예산중에서 26%가 소요경비입니다. 전조합원은 약35만 명이고 동경지부는 약 7만명 정도입니다.
생활클럽은 일종의 소비자단체이면서도 연합사업체입니다. 상근직원들이 기본 적으로 실무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는 연합소비위원회라는 조직에서 결정합니다. 조합조직이므로 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취급물품에 대해서도 연합소비위원회 내에는 각 담당위원회가 있어서 거기서 결정합니다. 상품의 물류유통의 경우는 관련단체들인 생활클럽 연합회라는 조직에서 담당합니다.
각 지역단위, 즉 저희들은 ○○단이라고 부르는데, 각 단별로 이사회가 따로 있습니다. 물론 조합조직의 형태입니다. 그래서 각 단 별로 책임제를 가지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단내에서도 매일매일의 운영에 대해서는 단 내의 각 각의 위원회 및 현장단위에서 책임을 집니다. 기본적으로 조합원이 주인인 조합조직이므로, 각 단 내부의 현장 조합원들과 그 조직의 대표들간의 의사결정을 통해서 거대한 조직이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이 : 2002년 기준으로 일본에는 약 650여개의 생협이 있고, 그 조합원수가 2,200만명에 이른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전체인구가 1억 2700만 내외라는 것을 감안하면, 약 17-18%에 이르는 사람들이 생협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일본생협의 발전에는 역사적으로 어떤 요인들이 있었다고 보십니까?
요시다 : 일본 생협의 전체 역사를 설명 드리기에는 제가 너무 경험이 없고요. 생활클럽에 한해서만 말씀드리자면, 약45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1965년에 생활클럽이 처음 출발하였고,그 배경은 우유의 공동구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우유공급은 기업이 독점하고 있었는데, 주민들의 공동구매를 통해 기업의 독점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값싼 우유를 공급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우유의 공동구매를 주장했던 창설자는 처음부터 우유를 선정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냥 결집을 해서 전품목의 공동구매를 하는 운동을 촉발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공동구매 운동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특정한 품목의 선정과 공동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중요한 우유를 설정했고, 우유공동 구매운동을 통해서 소비구매시스템 전반을 함께 바꾸자고 한 것이지요. 이 운동이 이곳 세타가야구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생활클럽은 생활공간으로서의 시민들의 지역운동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죠.
요시다 이사장과의 인터뷰 ⓒ조희연 이영채
생활클럽의 탄생배경
1960년 일본에서는 미일 안전보장조약의 폐기를 요구하는 격렬한 대중운동이 일어났다. 연일 국회를 둘러싼 대중운동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일 안전보장조약은 성립하였고, 이후 일본은 당시 키시정권이 사임, 이케다 내각을 중심으로 정치의 계절에서 경제의 계절로 변화해 간다. 신임 이케다 내각은 [국민소득증배운동]이라는 경제정책을 내세우면서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이끌어 가고자 했다. 하지만 고도경제성장은 공해병 등 사회전반에 여러가지 모순을 가져왔으며, 이에 대항하여 주민운동과 사회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1965년 도쿄도 세타가야구의 주택가에서 수명의 부인, 청년활동가들이 [생활클럽]이라는 임의의 시민그룹을 만들었고, 생활과 지역에 뿌리를 둔 새로운 사회운동을 구축하고자 했다. 60년 안보투쟁 패배 이후 일본의 사회운동은 거대권력에 대항한 민주주의가 아닌 지역에서의 새로운 민주주의의 창조를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유는 1년에 3번이나 가격인상 조치가 있었고, 이 우유를 하나의 사례로 공동으로 구매하는 운동을 실시하였다. 당시 주민들의 주문을 받아서 329병(180cc)의 우유를 공동 구매함으로서 1병에 18엔 하던 우유를 15엔에 구매하는 것이 가능해 진 것이다. 독점기업이 지배하고 있던 가격구조을 폭로한 계기도 되었다.
당시 일본사회는 공해와 인플레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었고, [생활클럽]은 공동 구매 운동은 취급품목을 서서히 확대해서, 1968년에는 회원1000명, 매월 매출이 400만엔에 이르렀다. 사업운영에 있어서도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고, [생활협동조합]의 형태를 채택하였다. 이후 생활클럽 생협은 생활에 필요한 소비재를 [반]에 예약공동구매 운동으로 확대하였다.
1977년에는 제휴생산자단체인 [생활클럽 신생회]를 발족하였고, 합성세제를 그만두고 비누 이용운동을 본격화하였다. 이때 행정부의 무시와 반대에 부딪힌 경험을 통해 1978년에 정치단체 [그룹 생활자](현 생활자네트워크)를 결성하여 이후 생협의 시민정치참여의 길을 열었다. 현재 약 60여명의 시, 구, 도의원을 배출하고 있다. 정치적 성향으로는 민주당 및 사민당(구 일본사회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이 : 일본의 다른 생협의 규모들은 어떻습니까.
요시다 : 생협에는 여러 단체들이 있습니다. 코프도쿄(*생활협동조합 COOP도쿄, 1957년 설립, 동경도와 7개현에서 운영, 일본공산당계열)의 경우 동경에만 조합원이 약 100만 명이 있는 큰 조직입니다. Pal시스템(*영어 Pal의 동료, 친우와 시스템의 합성어. 코프네트워크가 제1의 규모조직이라면 Pal시스템은 제2의 규모, 1977년에 설립, 동경도와 9개현에서 운영, 신좌익계열)은 약 30만명의 규모이고요. 토도 생협(*東都生協, 1973년설립, 산지직접생산의 원칙, 공산당계열)이 약 20만명 정도될 겁니다. 이처럼 큰 생협만이 아니라 소규모의 다양한 생협들도 존재합니다.
코프도쿄는 전국 생협의 물건들은 다 소비품목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Pal 시스템도 일부는 전국 생협의 물건들을 취급하지요. 토도생협의 경우는 생협 연맹의 것을 취급합니다. 저희 생활클럽은 생협연맹의 품목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물론 생협연맹에는 속해 있습니다. 생활클럽의 경우는 조합원들이 생산하는 현장 품목을 활용하고자 하는 운영방침이 있습니다.
조+이 : 동경 생활클럽은 생협 중에서도 조합원과 시민들에게 밀접해 있다는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요. 다른 생협과 비교하여 두드러진 특징이나 차이는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요시다 : 세이카츠 그라브(생활클럽) 생협은 소속 조합원이 만드는 물품을 쓴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조합원의 오리지널한 품목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생협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제휴를 중시하지요. 그런데 생산자들이 꼭 좋은 품목만을 제공하는 가지고 오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자가 생산을 할 때, 그 생산물품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저희는 바로 거래를 중단하지는 않습니다. 해당 문제를 지적하면서 그것의 개선을 요구하지요. 개선을 요구하면서 그 생산자의 관계를 계속 유지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생산자가 새로운 물품을 생산할 수 있기 위해서도 소비자들이 공동구매를 지속해야 하는 것이지요. 한 번 계약을 하면 그 생산자와는 아주 오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생협활동의 중요한 정신입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지요. 히라타 목장(*1953년, 야마가타현(山形県) 히라타 마을(日平田町)에서 지역 청년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양돈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돼지고기로 소시지를 만드는 곳이지요. 그 곳은 나중에 알았지만, 소시지에 방부제를 썼고 돼지의 먹이로 인공적인 풀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조합원들은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은 소시지를 구매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그런 소비자의 목소리를 히라타 목장에 전달했지요. 그리고 저희와 함께 한 번 실험을 해보고 제안했습니다.
당시는 냉장차가 없는 상태에서 방부제 없는 소시지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지만 함께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시지는 썩지는 않았지만 조금 부풀어오른 정도의 상태로 납품되었습니다. 약간 부풀어 오른 물품을 납품한 히라타 목장은 거래가 중지될 까봐 그런 물품의 납품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조합원들이 집회를 통해서, 거래 중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소시지가 부풀어 올라왔는지, 그리고 개선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 토론했습니다. 그 결과 방부제 없이 그리고 부풀지 않는 소시지가 마침내 히라타 목장을 통해서 생산되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생활클럽은 히라타 목장의 소시지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조+이 : 지금 설명해주신 내용은 생협은 단지 소비자를 변화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역으로 생산자를 유기농업 또는 친환경산업으로 전환하게 하는 생산변화의 매개자의 역할도 하는 것 같군요.
요시다 : 그것을 저희는 [생산하는 소비자] 혹은 [생산적 소비자]라고 부릅니다. 사실 이 점이 생활클럽의 또 하나의 특징일 수 있습니다. 단지 주어진 결과물을 소비하는 조합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생산과 연계하면서 생산의 성격 자체를 바꾸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생활클럽의 다른 특징을 소개한다면,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생활클럽이 시작된 것도 사실은 지역공동체 살리기 운동 이었다고 볼 수 있죠. 우리가 사는 생활공간인 지역사회를 어떻게 좀 더 살기 편하고 안전한 커뮤니티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 저희 생활클럽이 지향하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주민들 스스로가 한 번 해보자고 모였고, 그 실현을 위한 행동이 생협으로 탄생했다고 할 수 있지요.
일본 생협운동의 간단한 역사
일본의 생협은 제2차 대전 이후인 종전 직후부터 대중적으로 폭넓게 발전한 대표적인 지역운동의 사례이다. 일본 생협은 그 목적에 따라 다양한 구분이 가능한데 역사적 접근에 따라 구분하면, 2차 대전에서의 패전 직후는 어려운 경제여건에서 전개된 일종의 '빈곤극복형' 생협 혹은 '생활방위형 생협' 운동이 전개되었다. 생필품이 극심하게 부족한 상황에서 식량을 확보하려는 주민들의 노력 속에서 전후 생협이 탄생하고 확산되었던 것이다. 47년 기준으로 전국에 약 6,503개, 조합원은 297만명에 이르렀다.
이후 냉전의 격화 속에서 미 점령군의 민주화조치의 중단, 한국전쟁 및 좌익탄압의 영향으로 노동자와 일반국민의 권리가 눈에 띄게 축소되고, 공동체 생활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탄생한 노동자들의 자구적인 생협을 '지역노동자형 생협'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출현하여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던 형태이기도 하다. 1951년에는 일본공산당 소속의 단체를 중심으로 '일본 생협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제2단계 생협의 붐이 노동자생협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공산당 주도의 관료적 방식에 반발이 일어나면서 생협운동은 새로운 분화 혹은 분열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공산당 중심의 노동자 생협운동의 한계는 이후 지역시민이 주도하는 제3단계의 시민 주도형 생협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 시민주도형, 주민밀착형 생협이라고 불리는 이들 생협의 대표적인 형태로는 생활클럽생협, 수도권 COOP, 그린 COOP(녹색생협) 등이 있다고 하겠다. (이영채 [일본의 사회운동]-생협운동의 역사와 현황(관련글 보기)
▲ ⓒ프레시안
조+이 : 일본에서는 생협에 대한 법적 지원체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요.
요시다 : 먼저 생협법(*소비생활협동조합법, 48월7월30일 제정)이 있습니다. 제정된 60년부터 한번도 바뀌지 않았는데, 2007년에 전면 개정되었습니다. 이 개정법은 생활클럽 내부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생협은 비영리사업이 허용되었는데, 개정법에 의해서 공제사업(*조합원간 연금 및 보험사업)이 허용되지 않게 되었습니다(*대부분의 생협은 조합원간의 공제사업을 실시해 왔으나 개정법에 의해 금지됨으로써 독자적인 공제회사를 따로 설립하여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음). 그리고 생협 운영 상의 몇가지 거버넌스(governance)의 변화가 초래되었습니다. 대표이사의 책임이 무거워진 것이지요. 개정법에 따르면 조직은 정식으로 이사회를 가져야 되고, 이사회는 대표이사를 감사하는 기구로 변화되었습니다. 생협을 일종의 기업식으로 책임운영하라는 형태로 법이 강제한 셈이지요. 다른 생협은 모르지만, 생활클럽 생협의 경우 이사회는 집행기구에 불과합니다. 개정 생협법은 실제의 생협 거버넌스와는 잘 맞지 않는 문제점이 있어요.
아무래도 최근의 일본의 생협들이 기업형으로 변화되어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법 개정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생협을 회사법에 준해서 회사로 만들어 가도록 요구하는 법입니다. 2013년에 개정법의 재개정이 이루어질 예정인데,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현실에 맞는 방향으로 재개정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이 : 일본의 생협 활동과 시민생활의 변화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요. 생협은 '지역사회 만들기(마치 쯔쿠리)에 생협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요시다 : 생활클럽은 지역사회가 활성화되고 지역사회와 함께 가는 생협을 만들고자 합니다. 기본적인 출발점은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가 이런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입니다. 예를 들면 나이를 먹더라도 계속 살고 싶어지는 지역, 그러기위해서는 내가 살고 싶은 지역의 구조가 필요하고 이를 스스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하겠지요. 그래서 조합원들의 개호문제(介護 : 실버타운 및 고령자복지)도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개호복지를 생활클럽의 하나의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건강할 때는 함께 생협과 생활하고, 나이가 들으면 다시 생협을 통해서 복지서비스를 받는 식으로 순환구조가 됩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내가 집에서 만든 음식은 걱정이 없는데 외식을 할 경우 음식에 대해서 걱정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도시락을 생각하게 되었고, 외식을 제공하는 식당과 외식용 식품을 파는 사업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조+이 : 도시화 및 핵가족화가 되면서 지역공동체가 불가피하게 해체되는 상황들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생협은 공동체 및 지역공동체를 활성화시키고 그 공동체에서 함께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되는 것 같네요.
요시다 : 사실 동경도 지역공동체가 거의 해체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점점 더 생활하기가 어려운 지역들이 증가되고 있는 상황이 됩니다. 생활클럽은 단지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하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지향이 있습니다. 3·11 대재해가 일어난 후 재해지역에서 지역안전망이 될 수 있는 것은 지역사람들 간의 유대관계였습니다. 아마 동경에서 재해가 일어났다면, 지역공동체가 많이 약화되어 있는 작금의 동경에서 동북지역과 같은 인간연대는 보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성과 생협의 관계
조+이 : 모두가 노동에 참가하는, 즉 '가사노동, 코뮤니티 노동+기업형 노동의 복합적 노동방식'을 제안하는 글을 본 회보에서 본적이 있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또한 생협에서는 여성이 특별히 중요한 위치를 갖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요시다 : 저희 생활클럽 생협은 지역에서 시작된 생협이지요. 40년 전 일본의 경우, 지역을 내려가보면 지역에 남아 있는 사람은 아이들과 여성밖에 없었습니다. 남성들에게는 회사가 자기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역사회는 여성의 공간이기도 했고요. 지역에 근거를 둔 생협은 자연히 여성이 주도하는 생협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경우를 보더라도, 처음에는 저와 가족에게 안심이 되는 음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참여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먹는 것이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먹는 것의 이면에는 경제적 구조, 사회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거기서 시야가 넓어지게 된 것 같아요. 우리 세대를 보면 생활클럽에 가입하면서 여성들이 사회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것을 발견합니다. 저처럼 이사가 되고 이사장이 되는 형태의 사회참여가 있기도 하고, 지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시의원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활클럽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결국 생활과 생활공동체 자체가 변화하게 된다는 의미이죠.
조+이 : 생협에서 공정무역을 하게 되면 외국의 물품을 쓰게 되고 그래서 때로는 국산품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강한 의견과 긴장이 있기도 한 것으로 아는데, 생활클럽에는 공정무역과 관련된 논란은 없습니까?
요시다 : 저희도 수입품을 취급하고 있는데, 특별한 긴장이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인도네시아 새우를 합니다. 필리핀의 바나나, 커피는 파파뉴기니에서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에는 ATJ(*Alter Trade Japan, NGO인 일본네그로스 캠페인 위원회(JCNC, 現APLA의 활동을 기반으로 생협 및 유기농산물의 판매 그룹. 시민들이 공동출자한 풀뿌리 무역회사이다. 필리핀의 네그로스섬은 오랜 식민지 정책 속에서 수전을 해온 논에 사탕수수를 생산하게 되었고, 섬 전체의 60%가 사탕수수밭으로 변함. 설탕의 국제가격이 폭락하면서 농민들의 생존권이 침해되었고,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반성으로 일본시민운동이JCNC캠페인을 실시하였다. 87년 네그로스로부터의 설탕무역을 통해 평등무역의 문제의식을 확대하였고, 현재 일본의 평등무역의 중심거점이 되고 있다)라는 평등무역을 담당하는 비영리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와 계약관계를 갖고 평등무역상품을 생활클럽이 취급하고 있는 것이지요. 생활클럽의 경우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것은 일본산 물품을 취급하고, 일본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은 평등무역을 하는 단체에 대한 신뢰성을 가지고 해당 생산품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조+이 : 외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규모는 어떠한지요? 소비자에게 일반 수입품과 공정무역에 의한 수입품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요시다 : 외국에서 수입하여 취급하는 품목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직접 인도네시아의 현지 생산지에 가서 생산현장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생활클럽은 공정무역이 주된 목적은 아닙니다. 식생활의 변화가 일차적 목표이지요. 우리의 식생활의 변화가 현지생산자의 생활에 어떤 영향이 있는가를 조사하러 가기도 합니다. 평등무역단체의 물품에 대한 공동구매의 대부분은 일반 상품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국내산과 동일한 상품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생협의 시민정치활동은? 지역정치에 대한 개입은?
조+이 : 생활클럽은 생협활동을 통해 시민정치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생활클럽이 추천하는 후보를 당선시켜 정치적 개입을 해 나가는 네트워크로도 기능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생활클럽의 시민정치 활동에 대해서 그 배경을 소개해 주시지요. 특히 생활클럽 가나가와 지역의 시민정치활동이 매우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시다 : 네. 저희 생활클럽은 정치적 개입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입니다. 현재 생협이 지원하고 추천한 지역 의회의원이 전국적으로 약 60명 정도 됩니다. 생협의 정치활동과 관련해서는 [생활자 네크워크](*도쿄도에서 활동하는 지역정당, 정치단체. 생활클럽 생협의 대리운동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1977년 도쿄 네리마 지역에서 결성된 이후 확대되어와 왔다. 의원 입후보에는 로테이션제도와 3기 한정제로 특권화를 방지하고 있으나, 탈퇴하여 독자적으로 출마하는 경우도 있음. 기본적으로는 가나가와 지역네트의 방침을 준수하고 있다.)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생협법에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므로, 생활클럽이 직접 정치활동에 개입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조직이 [생활자 네트워크]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생협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역의 시민정치활동이 가장 활발한 것은 생활클럽 가나가와 지역네트(*가나가와현의 지역운동단체. 1980년 생활클럽 조합원을 중심으로 [합성세제추방 대책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의 제정 및 청구활동이 그 배경이다. 가나가와현 내에 20여명의 의원이 활동 중. 2기한정제)입니다. 지역정치에 생협이 개입하게 된 것은 생협활동을 하면서 사회적 문제의식이 생기기 때문이죠. 물론 사람에 따라 정치에 개입하게 되는 계기는 다른데, 예를 들면 비누운동(*1977년5월 교토부근의 비와호수의 담수적조현상 및 아이들의 피부병이 합성세제가 그 원인으로 지적되었고, 78년에 주부층을 중심으로 합성세제 추방운동이 전개됨. 80년7월에 가정용 합성세제의 사용 및 판매 금지 등을 명문화한 비와호조례가 제정되었다. 이후 도쿄 및 전국에서 합성세제 추방 및 비누사용 운동이 전개되었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정집에서는 대개 세탁을 할 때, 물오염을 일으키는 합성세제를 쓰고 있지요. 저희는 합성세제를 쓰지 말고 친환경적인 비누를 쓰도록 행정부에 요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명운동을 시작했고요. 가나가와 지역이 이 비누운동을 매우 적극적으로 전개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행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결국 비누운동은 실패의 쓴 맛을 보게 되었죠. 네리마 지역에서도 서명운동을 했는데 행정부에 의해 무시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동료들을 의회에 보내자는 인식전환을 하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가 생활정치의 주체가 되자고 선언한 것입니다.
생협의 시민정치 참여에는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지역 내에서 유통되는 음식의 안전성 문제를 생협이 제기하였고, 이제 의회 및 시청 및 구청의 행정부가 음식안전을 이야기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먹거리의 안전성은 행정부의 주요한 의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생활클럽은 우리의 동료들을 의회로 행정부로 보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시민정치인들을 당선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한 것이지요. 생협은 물품의 공동구매를 기본적으로 하는 조직이지만, 결국 공동구매도 국가정책이나 지역권력을 바꾸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는 자각이 지역에서의 정치참여를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협조직의 특성에 기인하겠지만, 이들 시민참여 의원들의 거의 대부분이 여성입니다.
조+이 : 시민의 정치참여라고 하지만, 정치에 개입하면 개인적인 정치적 야망과 조합원간의 불평등 문제도 생길 것 같습니다만, 생활자네트워크의 지원을 받아서 의회 및 행정부로 진출하는 의원의 경우 임기 제한 등의 가이드라인이 있습니까?
요시다 : 생활자 네트워크에는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친환경적인 후보를 적극 지지하고요. 한 사람이 독점하지 않도록 추천되는 후보는 로테이션을 하게 됩니다. 2번에 8년, 최장 3년까지 허용이 됩니다. 대신 정치자금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조+이 : 생활자네트워크 지원의 지역 의회 의원과 생활클럽 생협과의 상호관계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습니까.
요시다 : 어려운 질문인데요. 생활클럽 생협이 조직적으로 해당 후보를 추천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생협법에 의해 이사회가 추천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협활동을 하다보면 개인들이 무엇인가를 함께 하게 되지요. 선거가 있을 때만이 아니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도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조사활동을 함께 한다거나 행사에 참여하게 되는 형태로요. 그런 과정에서 생협의 운영위원으로 뽑히는 사람과 지역의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의식있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들 중 의원으로 진출하도록 여러형태로 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지요. 생협활동을 하다보면 정치활동에 센스를 가진 사람이 있고 그런 것을 잘 하는 체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한테도 정치하라고 제안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생협운영 쪽이 더 맞는 것 같아요.(웃음) 어느 경우는 내부적으로 생협의 이사로 키워왔는데,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조+이 : 생활자 네트워크에 의해 배출된 국회의원이 있습니까.
요시다 : 국회의원까지는 없습니다. 도의원까지는 있고요.
생협 클럽 팜플릿 ⓒ조희연 이영채
국제적 네트워크로서의 생협
조+이 : 생활클럽의 국제활동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주시지요.
요시다 : 우리가 공동구매 사업을 하여 지원하는 것 중에는 [바나나 기금] 같은 것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ATJ의 페어트레이드(평등무역)의 물품을 구입하게 되면, 그 물품에는 기금이 포함되어 있어서 바나나를 생산하는 필리핀의 민다나오의 현지 주민들의 생활개선에 지원을 하게 됩니다(*민다나오섬은 필리핀 제2의 크기의 섬으로 제2차 세계대전 경 약 2만명의 일본인들의 거주지. 전쟁말기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수만명의 일본인 민간인 및 군인들이 사망하였고, 일본의 지배에 의해 현지 주민들에 대한 억압과 학살이 발생하였다. 민다나오 주민들은 수세기에 걸쳐 스페인, 미국, 일본, 필리핀에 대항하여 지금까지도 독립투쟁을 해 오고 있다, 일본의 시민단체들은 민다나오의 바나나를 평등무역으로 취급하고 있다) ATJ 만이 아니고 이런 페어트레이드 활동을 하는 국제협력단체와 교류를 하는 것이지요. 이런 활동은 비단 생협만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시민단체들도 협력하는 사업입니다.
생활클럽은 많은 국제지원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닌데, 파키스탄의 경우 학교를 건립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서 조합원들이 헌 옷을 모아서 현지의 파트너단체에 보냈습니다. 현지에서 그 옷을 판 수입으로 학교를 만드는 사업에 활용하였고요.
조+이 : 아시아, 일본, 중국과 자매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있는 경우가 있습니까.
요시다 : 아시아 국제네트워크로서는 저희 생활클럽 생협만이 아니라 저희가 속한 생협연합회의 여성위원회 차원에서 국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여성위원회에는 여러 단체의 이사장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의 생협연합회와 한국의 주부연맹생협 및 여성민우회, 그리고 타이완의 소비연맹간의 3지역단체 간 자매결연을 맺고 정기적으로 공동회의 및 교류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정기회의는 2년에 한번씩, 지금까지 3번을 했습니다. 제가 그 회의의 간사를 담당하고 있고요. 제1회는 대만, 제2회는 한국이었습니다. 2년에 한번 씩 돌아가면서 해왔고요. 일본에서는 치바에서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조+이 : 한국에서는 예컨대 생협을 하는 여성민우회의 경우, 여성운동단체로서의 활동도 합니다. 여기서는 일반 사회운동과 생협이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까.
요시다 :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공동구매사업과 생협 활동 자체가 우리의 사회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협 자체가 식생활의 새로운 대안운동이기도 합니다. 먹거리 혹은 식문제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와 연관되지요. 먹거리를 만드는 것은 대지이고 환경입니다. 그것이 오염되면, 모든 것이 오염된다고 봐요. 우리가 대지의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거기에서 또한 지역의 복지문제도 파생되는 것이고요.
자기지역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자기가 주체적으로 시작한 운동이 생협이라는 공동사업이고, 그 사업 자체가 곧 사회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11대재해 이후 방사능 유출문제가 심각한데 우리가 해 온 안전한 먹거리를 공동으로 구입하고 소비하는 운동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그런 인식이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 생협의 의미는
조+이 : 세계화 시대는 생협에게도 여러 측면에서 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글로벌 대기업의 영향력이 일반 시민의 일상적 삶에도 들어오고 있는데, 어떤 도전들이 있는지요.
요시다 : 아주 많습니다. 매우 위협적이지요. 글로벌 기업들이 생협의 이미미와 콘덴츠를 모방하고 자기 식으로 전유·활용합니다. 생협적 가치를 대기업이 자사의 광고에 활용한다거나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지요. 때로 생산자들의 사진을 붙여놓는 등 그동안 생활클럽이 아래로부터 만들어온 것을 자본이 상업적으로 전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것들은 표면적이고 모방이지만요. 예컨대 트레이스빌리티(*traceability, 물품의 생산과정, 유통과정, 소비 및 폐기과정까지 추적이 가능한 유통상황을 의미)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원재료부터 생산 유통까지 투명하고 친환경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 온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트레이스빌리티라는 말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개념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내용없이 혼자 걸어다니는 것과 같은 현상이 존재합니다. 최근에는 홍보전략이 오히려 중요해지는 사회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합원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해서 알리는 것이 우리 생협의 장점이었는데, 이제는 대기업 광고와 경쟁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조+이 : 대자본과의 경쟁과 가치의 전유라는 문제는 생협의 근본적인 토대를 흔들고 있는 위기의 시대라고도 인식되는데요. 생협차원에서는 어떠한 대응들을 하고 있는지요.
요시다 : 시장과 기업이 우리의 가치와 지향을 전유해버리게 될 때, 우리는 더욱 앞으로 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되지 못하는 위기 속에 있습니다. 생협은 생산자 및 환경친화적인 생산을 지향합니다. 그런데 대자본은 싼 가격으로 그 영역으로 파고듭니다. 우리의 가치와 가격경쟁력을 모두 갖춘 대기업의 진출이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른 사회운동도 그러하겠지만, 기업과 시장, 자본이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것, 그리고 우리의 고유한 장점과 특징을 전유하고 차용할 때, 우리들은 위기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보면, 어떻든 우리가 지향했던 것이 실현되는 것이니까 좋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느긋하게 생각하자고 말하기도 합니다. 위협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대응 방법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장해 온 가치들이 실현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우리가 현실보다 한 발 앞서나가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노력인 것 같습니다.
생협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및 새로운 대안의 방향
조+이 : 세이가츠 창시자인 이와네씨가 "개인의 자립자치를 생각하면, 다음 단계의 운동은 '협동조합'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현재 일본의 생협운동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나 그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요시다 : 이와네쿠니오(*岩根邦雄, 생활클럽의 창시자)씨는 처음 사회운동을 지역에서 시작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역에는 여성과 애들 밖에 남지 않았었고, 그래서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생협을 전개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여성도 지역을 떠나버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단순히 여성들이 지역공동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넓은 공동체의 범위에서 일을 하고 있지요. 궁극적으로 지역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지역을 떠난 다음에도 최종적으로 다시 돌아오는 곳은 자신이 성장한 지역이므로, 지역사회를 나가서 대도시 등에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돌아갈 지역사회도 중요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지역에서 일을 만들고, 지역을 떠나갔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그런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 것을 생협이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40년 전에는 지역에서 별로 볼 수 없었던 남성들이 자신의 출신지역으로 돌아오는 귀향현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에 자신의 기반을 만들지 않고 무작정 나갔기 때문에 정작 돌아와서 그 남성들이 있을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가 지역에 남자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우리가 지금의 지역사회 및 커뮤니티를 잘 만들지 않으면, 언젠가 돌아올 지역사람들이 돌아와서 있을 공간이 없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협의 문제의식이 먹는 문화와 함께 지역의 복지문제와도 연결되는 등 그 형태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이 : 생활클럽이 처음 출발할 때와 많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요시다 : 조직운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조합원들이 필요한 것을 사왔고, 모든 조합원들이 거의 다 조직운영에 참여했습니다. 요구하는 물품의 확보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러나 다음 세대는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구매구조가 존재하니까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지 않아도 자기가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형태로 조합원이 조직운영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공동구매를 하는 식으로 변화를 했습니다.
조+이 : 생협에 대한 비판 중에는 예컨대 여성들의 자원봉사 노동을 이용해서 영리를 취한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요시다 : 그런 비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생활클럽도 하나의 사업자이므로 절약하고 많은 수익을 내도록 노력하는 영리행위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생협은 원래 조합원들간의 참여를 전제로 운영해 온 조직인데, 참여자 중에는 자발적인 참여와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협이라는 네트워크 속에서 개인의 안전한 물품의 구매는 요구하지만, 개인의 봉사는 고려하지 않는 조합원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조직운영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은 한정되어 있고요.
조+이 : 생협은 자본주의적 유통구조에 대항하기 위한 대안적 유통운동인데, 자본주의적 시장유통에 편승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비판도 제기되는데요.
요시다 : 사실 생협 물품이 일반 유통회사의 물품보다 조금 비쌉니다. 그래서 현재의 가격구조가 조합원들에게 동의를 얻고 있지 않으면 구매자체가 유지될 수가 없지요. 생협의 물품이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대형유통회사의 싼 상품에 비해서 정당한 가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죠. 저희는 생협 물품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그러한 이해를 통해서 생협활동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협물품의 가격은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적정가격이 필요하니까요.
조+이 :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양극화가 확대되고 젊은층의 비정규직이 증가하면서 24시간 편의점의 값싼 도시락은 오히려 이들의 생존을 위한 도구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들은 생협의 네트워크에 들어갈 수 없는 빈곤층인데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요시다 : 젊은층들의 빈곤이 24시간 편의점에서 값싼 도시락을 사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밤에도 일을 하면서도 더욱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형유통회사는 그러한 젊은 빈곤층을 겨냥해서 더욱 싼 도시락을 만들고 있으며, 빈곤층이 그것을 구입함으로서 대형유통회사는 돈을 벌지만 그들의 빈곤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의 구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수입이 적은 사람에게 싼 도시락은 좋은 것으로 보이겠지만, 유통을 계속하면 그것이 새로운 빈곤을 만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흐름에 빠지지 않도록 오히려 젊은 층도 식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생협의 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싼 것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구조는 언젠가는 붕괴합니다. 저희로서는 솔직하게 싼 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유효한 대안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250엔짜리가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또 다른 빈곤층의 노동착취에 의존하거나 개발도상국의 싼 물품에 의존해서 만들어진 것들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약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딜레마에 있는 것입니다.
조+이 : 조합원 중심의 조직운영에서 점차 상근직원 중심으로 일종의 관료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지적도 가능하다고 봅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시다 : 그런 문제점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제도 개선보다는, 우리는 원래 조합원 중심의 생협이라는 것을 직원들이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도개선 도 중요하지만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지요. 제가 오늘날 여기까지 운영에 참여해 오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직원들이 '조합원 주권'을 중시하는 의식이 강화되는 것, 그런 의식을 가지고 성실히 일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항상 강연할 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치하는 시민, 자립하는 시민의 등장입니다. 이러한 자립적 시민의 확대는 누군가가 그런 방향으로 제안하고 노력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생활클럽은 자립하는 시민의 확대라는 방향을 제안·지향하면서 노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직원들의 관료화 현상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직원이 조합원을 손님 대접을 해버리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이사장이나 이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직원의 역할이 생협에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조합원이 주인이라는 것 속에는 이런 주인들을 길러내는 직원들도 주인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에게도 그런 조언들을 주변사람들이 해 주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고요.
3·11 대지진이 생협활동에 미친 영향
조+이 : 3·11 대재해 이후의 생협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요시다 : 3·11 대지진과 원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생활클럽은 무엇보다 먼저 현지 지원을 우선했습니다. 생활클럽만이 아니고, 생협 전체가 함께 움직였습니다. 물자지원도 했고 인적 지원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될 수 있으면 소비재가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을 했고요. 지진 이후에는 실제 여기저기 물품이 많이 도착하지 않았는데, 생산자들도 다들 열심히 도와줘서 생활클럽은 물품이 거의 끊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합원들이 자기들 힘을 새롭게 확인하게 되었죠. 생활클럽에 가입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게도 되었고, 생산자 네트워크에 감사하게도 되었고요.
그런데 3·11 사태에서 중요한 것은 방사능 유출이고 각종 물품이 방사능에 노출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겨난 문제는 지금도 전혀 해결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조합원들에게 불안감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생산자와의 제휴를 중시하고, 생산자와의 관계에서 우리들이 납득하는 물건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피해지역의 생산자와의 관계는 지속할 것입니다. 그들이 파산하면 우리의 먹거리도 파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 조합원의 불안이 없도록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 나아가 생산자와의 관계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방사능 누출이 문제가 되면서, 저희는 될 수 있으면 전품목을 검사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직접 방사능 측정기를 샀고요. 측정 결과의 정보는 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조합원들이 서로 만나서 공개된 정보를 같이 판단하고자 하는 장을 만들고도 있습니다. 방사능과 관련해서 우리가 정보를 공개한다고 하더라도, 공개된 정보를 어떻게 읽고 판단하는가가 오히려 중요합니다. 공개하고 개인에게 맡겨버리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지요. 지역에서 조합원들이 공개된 정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자기 판단을 하는 여러 모임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조+이 : 정부에 대해서는 어떤 것들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요시다 : 행정부에 대해서는 구청 의회에 정책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생활클럽 전체의 입장에서는 국가에 우리의 의견을 제시하고도 있습니다. 생활클럽은 최근에 회의를 열어 탈원전 방침을 공식적으로 정했습니다. 그동안 명확한 입장 없이 원전반대활동에 참여해 왔지만, 장기계획이나 중단기계획 속에서 최종목표가 탈원전이라는 것을 이번에는 명기했습니다. 탈원전에 대한 입장표명만이 아니라 그 대안과 관련해서 동경이나 가나가와현 치바현 지역에서는 생협을 중심으로 풍차를 세우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각 지역에 세운 발전시설을 이용하여 생협운영에 활용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이 : 재해지역을 지원하기 위해서, 재해지역의 생산물이나 식품을 먹자는 캠페인도 있는데요. 재해지역의 제품을 소비할수록 방사능에 더 노출되는 딜레마가 있을 텐데, 그런 캠페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시다 : 방사능 오염식품의 경우 내부 피폭이 일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저희는 자체 측정기를 도입해서 전 품목을 측정하면서 이러한 위험성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고기나 달걀의 경우 검사를 계속하고 있고요. 앞서 이야기한대로 수치를 공표하고 있는데, 쇠고기는 사지 않는 조합원들도 많이 있습니다. 후쿠시마에서 난 것이 아니더라도 잘 안 팔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조+이 : 일본의 생협의 경험에 비추어 '후발생협'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생협운동에 제언이 있다면 한마디 해주시죠.
요시다 : 제안할 것은 따로 없고요. 오히려 한국의 생협법 및 사회운동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국의 운동이 역동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요. 일본 생협에 비해서, 한국의 생협이 늦게 만들어져서 오히려 진일보한 요소도 있다고 봅니다. 일본에서는 생협이 일본사회 내에서 특정한 주도적인 위치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일개 사업체에 불과하지요.
한국 생협법은 생협이 한국사회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것은 생협운동에서 보면 매우 진일보한 것이고 대단한 것입니다. 생협법 속에서 공공건물을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것은 대단히 좋은 조항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서는 생협의 이름으로 시나 구의 공간을 빌릴 수가 없습니다. 비영리단체 등록도 안되고요. 심지어 생협이 영리단체가 아님에도 행사에 오는 사람들을 단체 회원으로 가입시키려하니까 영리단체로 간주된답니다.
한국의 생협이 후발주자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더 중요한 사회적 위상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이 지속되어서 한국이 생협 선진국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조+이 : 바쁘신데 긴 시간 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의 후원으로 진행됐으며 시민사회신문에도 요약본이 실릴 예정입니다.
인터뷰 진행자
조희연 교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 현재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대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소장,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역임. 저서로는 <한국의 국가 민주주의 정치변동>,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빈곤과 계로>, <박정희와 개발독재체제>, <동원된 근대화> 등이 있다.
이영채 교수 : 일본 케이센대학교(惠泉女學院大學校) 국제사회학과 교수. 케이오대 및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일본 PARC(아시아태평 자료조사센터) 연구원 및 현장잡지 [노동정보]편집위원 역임, 야스쿠니 반대 동아시아 촛불행동 일본실행위 사무국장. <참세상>에 일본사회운동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 일본의 노동현장 잡지 [노동정보]에 한국의 사회운동의 글을 연재하는 등 한일시민/민중연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初恋」からノムヒョンの死まで』(梨の木舎), 『なるほど!これが韓国か--名言・流行語・造語で知る現代史』(朝日新聞社),『IRISで分かる朝鮮半島の危機』(朝日新聞社)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