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교실 37기 졸업등반
2024.05.19 일요일
북한산 인수봉
우정B 유석재 배소영 정선 박제영 이수영 김성진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졸업등반을 할 시기가 다가왔다. 백운대 하단에서 보았던 인수봉을 떠올리니 문득 겁이나 잠깐 아프다고 해볼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산에 벽 타러 간다고 친구들이고 회사고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녀서 핑계 대고 빠질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직장동료분들도 선님 이번엔 산에 언제 가요? 하고 인사하신다.
하긴 회사 책상 달력에 표시를 이렇게 해 놓으니 지나가시는 분마다 산에 가냐고 여쭤보시긴 했다… 아무튼 ‘안녕히 계세요 저는 실내 암장만 전전하는 졸업포기자가 되겠습니다.’ 라는 속내는 생각으로만 스쳐 지나가고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ㅎㅎ
유쌤과 선배님들 뒤를 쫄래쫄래 따라 북한산을 등반했다. 우정B 루트가 나와 있는 지도를 보내는데 그냥 내 눈에는 점과 선으로 이어진 이상한 지도여서 어떤 길을 가게 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첫 시작은 슬랩이었다. 유쌤은 여긴 그냥 길이라고 그냥 걸어가면 된다고 슉슉 올라가시길래 참 쉬워 보였다. 역시 하는 게 쉬워 보인다면 그건 그 사람이 고인물이라서 그런 거라는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한 발짝 올라가자마자 바로 아니 여길 어떻게 쉽게 가신거람? 이라는 소리가 육성으로 나왔다. 그냥 길이라면 서요… 그래도 슬랩은 한 번 경험했고 신발도 바꿔서 그런지 생각보다 미끄러지지 않고 나름 수월하게 올라갔다. 그렇게 두 번을 올라갔는데 아직 여긴 피치가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다.
녜? 제 아킬레스건은 이미 나락을 가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요? 이미 2피치를 올라온 기분인데 아직 0피치이고 본격적으로 4피치를 올라가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나는… 글렀어… 근데 못 내려가… 하고 울적했다. 근데 벽에 붙으니 올라가 지긴 하는 게 신기했다.
1피치는 무난하게 올라갔다.. 이쯤 높이 정도 되니 높아서 무섭다 보다는 그냥 벌써 힘들어 죽을 거 같아서 높이고 뭐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끙끙거리며 확보를 하니 소영선배님은 잘 올라왔다며 따숩게 칭찬해 주시고 유쌤은 벌써 앓는 소리 내면 어떡하냐고 잔소리를 하신다. 그치만 진짜 힘들었는걸요…
시작이 나름 순조로워서 그런지 2피치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진짜 쪼…금 생겼다. 오른쪽으로 살짝 갔다가 튀어나온 부분을 넘어 왼쪽으로 가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발을 잘못 디뎌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이번에서 절벽에서 반바퀴를 굴렀다. 근데 힘들어서 정신이 나간 것인지 덜컥 겁먹기보다는 으허헛 하는 요상한 웃음이 나왔다. 위에서 유쌤이 별거 아니라고 올라오라고 하는 말에 해맑게 네~ 하고 대답하고 벽에 고정된 고리나 볼트 있는 거 다 잡아가면서 여차저차 올라갔다.
밑에서 제영선배님과 성진선배님이 발자리 손자리 알려주시고 잘 올라가고 있다고 해주시고 수영언니는 화이팅 외쳐준 게 큰 힘이 되었던 거 같다. 소영선배님은 시스템 잘한다고 말해주니 잇몸 만개 돼서는 순식간에 목이 바짝 탔다. 히죽 해죽 웃느라 바람에 입안이 다 말라버린… 얼른 물을 조금 마시고 입을 닫아야 했다.
밑에서 올라오시는 제영선배님 빌레이를 보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을 때(아마 제영선배님은 줄 없이 올라오는 기분이셨을 거라고 예상해봅니다…) 소영선배님께서 미니 약과를 입에 넣어주셨다. 진짜 꿀맛이었다.
3피치는 침니 구역으로 엉덩이와 상체를 기대 다리를 번갈아 디뎌가며 올라가는 곳이었다. 보자마자 아 여기가 선배님들이 말씀하시던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없다는 그곳이구나 싶었다. 처음에 유쌤이 너무 쉽게 올라가길래 할만해 보였다.(매번 하는 착각이다.) 소영선배님도 열심히 올라가시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처음부터 고비가 찾아왔다. 첫발로 올라가기 좋은 부분을 제영선배님께서 짚어 주시는데 이게 웬걸. 다리는 올라가는데 너무 높은 곳이라 힘이 안실린닼ㅋㅋㅋㅋㅋ 다리가 짧아서… 아, 내가 10cm만 더 컸어도… 아쉽… 결국 낑낑거리고 있으니 제영선배님께서 가방을 지탱해주시며 잡고 있으니 발에 힘주고 올라가라고 도와주셨다…. 감사합니다ㅠㅠㅜ 레이백으로 조금 올라갔어야 하는 데 힘을 어떻게 실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으니 역시나 이번에도 두 선배님들이 오른발 올리고 왼발 올리고 손은 위에 잡고 옳지옳지 알려주시는 소리를 들으며 등을 기대어 갈 수 있는 구역까지 도달했다.
하네스 중간에 소영선배님이 빌려주신 퀵을 걸고 가방을 밑으로 걸었다. 오른발 왼발 바꿔가며 끙차끙차 올라가는데 어째 위로는 가까워지지 않고 여전히 땅이 가까웠다. 아니 분명 많이 갔는데 왜 아직 반도 못 간 거죠? 중간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좀 쉴까 했지만 내 몸이 편하기 위해서는 올라가서 쉬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 죽을둥살둥 힘을 쥐어짜서 침니 구역을 열심히 엉덩이를 밀며 올라갔다.
마지막에 다 와서는 확보 줄을 걸어야 하는데 그 쉽고 짧은 길을 갈 힘이 다 빠져 자일을 잡고 올라가 앓는 소리를 내며 확보를 했다. 헉헉거리며 확보줄에 몸을 지탱하자 소영선배님께서 가방 벗고 있으라며 한쪽으로 치워주시고 빌레이 보고 있을 때 정신없으니 입에 오이도 물려주셨다.
오이가 참 달았다. 오이가 단맛을 낸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나도 모르게 감격해서 오이가 너무 맛있어요… 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이젠 마지막 4피치다. 드디어 이것만 올라가면 끝이라는 생각에 콩닥콩닥 설렜지만 소영선배님께서 아이씨를 외치시며 올라가는 모습이 아련해 졌다. 아… 망했다…. 난 저 벽에서 완전히 조져지겠구나… 옆에서 성진선배님이 여기가 쌍크랙이라 불리는 이유가 크랙이 쌍으로 있어서가 아니라 쌍시옷이 절로 나와서 쌍크랙이라고 하는 말씀을 들으며 무념무상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어차피 올라가야 할 것을 알기에….
역시나 1미터도 못 올라가서 계속 미끄러졌다. 왼발을 재밍해서 재빠르게 빼서 위로 올려야 한다고는 하시는데 오잉? 발이 안 빠져서 그대로 끼인 채로 주르륵 미끄러지고 내 빌레이를 봐주시는 소영선배님께 자일업!! 줄땡겨!! 줄!! 을 간절하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0cm 올라가고 10cm 미끄러지고를 반복하는데 밑에 계시는 제영선배님, 성진선배님 그리고 수영언니까 잘하고 있다고 많이 올라갔다고 우쭈쭈 오냐오냐해주는 소리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요령도 기술도 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는게 웃겼는데 밑에서 들려오는 응원과 칭찬의 소리가 넘 따수웠다. 위에서 유쌤이 정선! 안 올라오고 뭐해!! 하시는데 올라가고 있어요!!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니 미지근하다. 재촉하는 소리를 들으니깐 어우 내가 얼른 올라가고 만다! 라는 오기 생겼다.
계속 끼고 미끄러지는 발재밍을 포기하고 그냥 벽 사이 팔을 뻗어 지탱하며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고비를 넘기니 분명 힘이 다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힘이 나온건지 숨통이 트이면서 4피치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이젠 정상이겠지? 싶었는데 아직 참기름 바위가 하나 남았단다. 심지어 그 참기름 바위까지 자일 없이 올라가는 구간이 있었는데 아니… 분명 워킹 이라고 하셨잖아요… 워킹의 기준이 저와는 많이 다른 거 같습니다만….
나를 지탱해줄 줄이 없으니 덜컥 겁이 나서 올라가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으니 제영선배님께서 동아줄을 내려주셨다…!! 근데 그 동아줄 마저도 내가 활용을 잘 못 하니 아예 팔을 잡아당겨 올려주셨다! 몸이 붕 뜨며 올라가는 기분은 무척이나 안락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선배님ㅠㅠㅜㅜ 그저 빛…또 한 번 올라가는 곳에서는 소영 선배님께서 나를 밀어 올려주시며 무사히 참기름 바위가 있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위에서 당겨주시고 밑에서 올려주시고ㅠㅠㅜ
참기름 바위가 눈앞에 보이고 제영선배님이 거기 내려온 자일은 오래된거고 우리께 아녀서 끊어질 수 있으니 너무 믿지 말고 보조용으로만 쓰라고 조언을 건네주시는데 죄송해요… 전 제 발을 더 믿을 수 없어요… 결국 자일을 잡아당기며 올라갔다. 드디어 정상!! 위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인수봉 정상에서 마주친 선배님들과 민지언니, 제선오빠, 희탁오빠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싱글벙글 정상에서 조금 쉬다가 이제 하강할 시간이 다가왔다. 하강은 생각보다 무섭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냥 이제 내려간다는 생각에 지배되어 시종일관 얼굴이 활짝 폈다. 하강은 의외로 재밌다고 느꼈다.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하강이 재밌다고 느껴지니 아 오늘 등반 재밌었다! 라고 생각회로가 바뀌어 버렸다!! 아니야.. 무섭고 힘들었어….난 다시 못해…
근데 또 6월 6일에 은지언니와 창훈이 졸업등반을 한다네? 아 은지언니 오는 건 못참지. 소식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6월6일에 함께 못할 거 같아… 창훈아 미안…안녕.. 하고 혼자 작별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함께하는 졸업등반? 무섭지만 눈물을 머금고 가야지요…. 그치… 은지언니도 온다는데… 37기 모두 졸업하자~~!!
첫댓글 ㅎㅎㅎ 요런 알콩달콩한 후기들이 선배들께 보은하는 거라는 거~
산에 가면 산과 나와 바위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사이사이 사람이 있지요.
몇년 뒤엔 선씨도 후배를 따숩게 응원하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그저빛같은 선배가 돼 있을 거예요. ^^
웃음이 절로 나는 후기네요!
반가워요~ 자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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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뭐든 잘할수 있겠네.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
남들한테 말해놔서 안갈수 없으니 가야되고, 힘들어 죽을것 같아서 무서운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ㅎㅎ, 절벽에서 반바퀴를 굴러도 웃음만 나오고, 힘들어 쉬고 싶지만 올라가서 쉬는게 낫겠어서 그냥 올라가고, 쌍시옷이 나와도 어차피 갈것이기에 무념무상으로 오른다!
이런 정신으로 뭐는 못하겠어? 곧 선등도 서겠어! ㅎㅎ
우리 동기 정선등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오이 기여워…
쭉 함께하자😘😘 나도 정상에서 너네를 계속 기다렸어❤️❤️
글이 너무 웃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