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연
그녀의 정체 외
겨울 들판에서
얼었다 녹았다
푸르죽죽 거무튀튀
억척 어멈 같더니
뜨신 물속 들어가면
뽀얀 다리 새파란 속살
본색을 드러내고
맵고 매운 겨울 먹고 자랐어도
된장찌개에서나
라면탕에서나
은은한 존재감 잃지 않더니
어느새 봄 들판에서 살랑살랑
저 이제 나물 아니고
꽃이에요
배시시 웃으며
안녕 안녕
손 흔드는
냉이꽃
추울수록 향긋해지고
나이 들수록 예뻐져요
우리는 그래요
당신이 몰라줘도
나는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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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관문
겨우내 전정한 복숭나무 가지들
무릎 아픈 엄마가 쭈그리고 다니며 모아 놓았네
한 단씩 집어 파쇄기 밀어 넣으면
드르르 드르르
형체도 없이 갈리네
팔뚝만 한 나무토막도
드르르 드르르
산산 조각나 버리고
바싹 마른
콩 대궁 깨 대궁 고추 대궁
드르르 드르르
먼지 거름으로 돌아가네
삼천 평 복숭밭이 훤해졌다
그 나이를 셀 수도 없는
봄님, 수월케 오시겠네
너를 새로 맞이하기 위해서도
어제의 곁가지들
파쇄해 버리면 되겠네
어쩌면 나 돌아갈 자리도
이와 같으리
이정연|2017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유리구슬은 썩지 않는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