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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으로도 어디야.”
5월달 화엄법회 날에는 큰스님을 화엄전이 아닌 병원에서 뵈었다.
입원하신 줄조차 몰랐는데 마침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간다는 보살님들을 서울역을 출발하는 KTX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
“제일 편리하게 왔네?”
큰스님이 웃으셨다.
큰스님은 작은 침대에 운동화를 신고 누워 계셨었는데 일어나 앉으시고, 사양하는 방문객들에게 병실의 의자들을 다 끌어와서 편히 앉게 하셨다.
“가벼운 건데 병원에 가자고 해서 왔어.”하고 안심시키는 말씀부터 해주셨다.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유튜브에서 법문하신 법성게 법문에 대해서 모두 감사해한다는 말씀을 드리자, 천천히 법성게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셨다.
모두 큰스님의 유머에 웃고 “여러분들이 하나씩 다 마셔줘야 나는 또 새로운 것을 산다.”고 하시면서 자꾸 권하신 ‘아무에게나 안 파는 뉴케어’를 먹는 일도 멈추고, 조용하게 큰스님의 말씀을 들었다.
힘 드리러 간 곳에서 힘을 얻고 왔다.
*
다음카페 염화실에 이날 들은 말씀을 녹취해서 올렸다.
제목은 <무비스님, 법성게에 관한 가장 최신 생각 2026년 5월4일>이라고 했다.
-법성게는 대인의 경지로 세상사 인생사 그리고 시간 공간 또 깨달음의 세계 이런 것들을 설파한 것- 무비스님, 2026년 5월 4일-
법성게에 대해서 ‘화엄경을 품었다’ 등등 화엄경하고 연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의상스님이 화엄경을 공부하러 가 가지고 이렇든 저렇든 최후로 남긴 글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어.
그런데 나는 의상스님이 평생 공부의 안목으로 세상사, 인생사에 대해서 나름대로 파악한 대로 법성게에서 한번 설명해봤다는 생각이 들어.
화엄경 자체가 본래 우리 인생사나 이 세상을 깨달음의 안목으로 밝힌 것이지만,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아주 짧은 글로 의상스님은 당신이 본 화엄경과, 당신 나름의 깨달음을 근거해서 세상사 인생사 시간의 문제 공간의 문제 또 깨달음의 세계 이런 것들을 설파하는 것이다, 한번 설명해 본 것이다, 하고.
아까 법성게가 새겨진 목수건을 빨아서 여기다 걸어놨었거든.
그래놓고 여기 앉아서 이렇게 쳐다보고 있으니까 그 안에는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경계라는 말이 있어. 또 어디 가면 경계라는 말이 있지?
“지혜월 법성게 가져와. 수건.”
하긴 중생의 안목으로 이야기하려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겠지.
보다 더 다른 차원으로 이야기하고 싶었겠지.
그래 보다 더 다른 차원이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시방 부처님의 경계고 보현의 경계고 대인의 경계다, 거기도 경계라고 되어 있어.
경계가 독특한 경계다, 라고 하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거의 다, 이거 봐. 법성게는 정각의 경계야.
발심하자마자 바로 정각.
이건 뭐 크게 자리를 옮겨가면서 깨달은 그런 게 아니라, 본래 우리들이 다 갖추고 있는 경계지.
또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相共和)의 경계,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의 경계, 이게 다 아주 차원 높은 성인들의 안목으로 이 세상을 표현해 본 거다, 그런 것이지.
‘그 외의 것은 이야기가 안 된다’ 그런 내용이 꽉 차 있어.
법성게는 보면 볼수록 좋은 내용이 많아.
그러니까 저걸 여러 수백 번 쓰고 수천 번 읊조리고 수만 번 생각하고 그리고 잠잘 때도 법성게 한 구절을 가만히 떠올리면서 사유하면서 잠들면 좋다 이거지.
법성게에서 의상스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어.
거기 다 담겨 있어.
그건 이제 우리가 우리들의 사유를 통해서 건져내야 하는 거지.
건져내야지.
아, 대단해.
의상스님이 대단하고 화엄경도 대단하고 또 그 깨달음의 경계가 대단하고.
그것이 다 그 속에 함축돼 있는데 그것을 이제 우리가 자꾸 건져내야지.
저만한 글이 세상에 별로 없어.
글자가 불과 몇 자 안 되는 글자인데, 저렇게 짧은 글자가 어딨어.
이상입니다.
-2026년 5월 4일 병원에서-
(5월1일 입원, 검사, 이상 무, 5월 7일 화엄전에 복귀하심)
*
큰스님은 5월 7일에 화엄전에 복귀하셨다.
이날 저녁 잘 도착하신 사진이 <다음카페 염화실>에 실렸다. 그리고 다음날 용학스님의 밴드 <수암란야 화엄산림>에 대선스님이 비디오도 올려주셨다.
좀 더 안정을 취하고 휴식도 하셔야 한다고 권유하는 의사에게 “내 몸이 너무 커서 좁은 병실에 있다가는 더 병이 들 것 같다.”고 하시면서 의사에게 떼를 써서 서둘러 퇴원을 하셨다고 했다. 며칠간 비워두었던 화엄전에서 햇빛이 가득한 마당을 둘러보시면서 큰스님께서 이야기하셨다.
“태양빛 아니면 아무것도 안돼. 태양빛이 온전하지 않은 곳, 화성이나 금성이나 수성 이런 데는 생명이 못 살지. 지구는 절묘하게도 생명체가 살 수 있도록 태양빛이 비추고. 그거 생각하면 너무너무 신기해.”
*
5월 12일에 큰스님께서 직접 전화를 하셨다.
<다음카페 염화실 영상일기방>에 요즘 올리는 <쉽게 풀어쓴 화엄경 이야기>를 잘 보고 계시다고 했다.
“불심과 동행 구독자가 19만이 넘었어, 내가 컴퓨터에서 듣는데 화면이 크고 볼만하더라. 요즘 <화엄경 180권 AI로 요약하기>라는 것도 올랐던데 봤나?”하고 물으셨다.
마침 용학스님 법문 중에서 질질이시(疾疾而施) (빨리빨리 베풀어주라)는 대목을 녹취하고 있어서 얼른 <다음카페 염화실 감사메모방>에 옮겼다.
60화엄 80화엄 40화엄경 원문을 다 탑재시켜서 AI가 화엄경을 요약한 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고 했다.
“티끌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 있고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마음을 낸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부처님의 광명 안에 있다.”
*
<쉽게 풀어쓴 화엄경 이야기> 첫 번째 글에 오매불망 큰스님을 기다리셨던 보살님이 댓글을 남기셨다.
“불편은 하지만 불행은 아니다,스님이 주신 양약, 영양제!!!!”
큰스님께서 거기에 대댓글을 남기셨다.
“대원성보살님. 저의 좌우명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어디야.”
*
5월15일 스승의 날에 비행기를 타고 화엄전에 갈 거라고 하신 보살님께 염화실지에 쓰게 화엄전 소식을 좀 알려달라고 부탁을 드렸었다.
꽃이 가득가득 쌓인 화엄전에서 햇빛만큼이나 웃음이 쏟아지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셨다고 했다.
“내 생일날에도 올 건가요?” 하고 큰스님께서 전에 없이 물어보셔서 “당연하지요. 여행지에서 만난 도반들도 벼르고 있어요.” 하고 말씀드렸다고 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券第五十八
離世間品 第三十八之七
7. 十九門의 妙覺位答
오늘은 가지고 계신 교재 화엄경으로 59권째 458페이지(민족사刊 제3권) 밑엣단부터 시작한다.
오늘이 음력 3월 18일 지장재일이다.
엊그제가 보름날이었다.
3월 보름쯤 되면 보리수 꽃이 만발한다. 이팝도 그렇고 오동나무꽃도 그렇고, 우리가 지금 하는 이세간품이 지금 피는 꽃들처럼 풍성한 것 같다.
요번에 문수선원 도배를 싹 했다. 저 앞에 벽에 걸어 놓은 중도(中道)라는 글씨가 이세간품의 주제다.
이세간품 마지막 게송의 주제이기도 해서 오늘 여러분에게 특별히 이세간품 마지막 게송을 프린트 해드렸다.
이세간품에는 중도(中道)라는 말이 딱 한 번 나온다.
제일 뒤에 한 번 보시기 바란다.
익숙한 글이다.
연기는 있지도 않고
연기는 없지도 않고
참도 아니고
헛것도 아닌
이와 같이 중도(中道)에 들어가
말을 하지만 그 말에 대한
집착이 없네
교화하는 대상이라든지 내가 교화를 잘한다, 이러한 집착이 없다. 이러한 것들은 불교 전반에 흐르는 중도사상이다.
대표적으로는 어른스님께서 좋아하는 만선동귀집의 중도송, 만선동귀집 제일 뒤에 보면 중도송이 있잖은가.
수월도량이라고 하는 그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우리가 익숙하게 야마천궁게찬품에 나오는 게송이라든지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이라든지 천수경의 죄무자성종심기라든지 그런 것들이 대표적으로 중도를 표하는 말씀이다.
부처님의 불도를 중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세간이라는 것 자체가 ‘세간을 떠나지 아니하면서 세간을 떠난다’ 이런 말이다.
그 내용을 한글로 쭉 읽고 바로 수업 들어가도록 하겠다.
비유컨대 요술쟁이가
갖가지 색을 나타내지만
그 속에서 찾아보면
색도 없고 색 아닌 것도 없어
보살도 그와 같아서
방편과 지혜의 요술로
가지가지를 다 나타내어
세간에 가득케 하네
깨끗한 해와 달
거울이 허공에 있는 듯
물속에 그림자 보이나
물과 석이지 않고
보살의 깨끗한 법륜
역시 그와 같아서
세상 사람의 마음 물에 비치건만
세상에 섞이지 않나니
자는 사람 꿈 가운데서
여러 가지 일 지어내면서
억 천 년 지낸다지만
하룻밤도 다하지 못해
보살이 법의 성품에 있어
여러 가지 일 나타내는데
한량없는 세월 다 간다 해도
한 생각 지혜 끝이 없나니
산골짜기나
궁전 속에서
여러 가지로 울리는 메아리
실상은 분별이 없나니
보살이 법의 성품에 있어
자유자재한 지혜로
여러 종류의 음성 널리 내지만
분별없는 것 그와도 같네.
우리 흔히 아는 일체 유위법 여몽환포영 색즉시공 그런 얘기들이 되겠다. 그리고 법성원융무이상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하면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라.
엊그제는 3월 보름날인데 범어사 해인사 할 것 없이 포살계를 한다. 포살계를 하게 되면 범망경에서 노사나 부처님을 모시고 한다. 노사나 부처님은 모양이 없어서 무상의 부처님이고, 노사나 부처님은 성품도 모양도 없는 무성의 부처님이다. 십회향품에 ‘무성으로 위성하고 무상으로 위상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범망교주 비로자나 부처님, 노사나 부처님께서는 모양이 없는 그 무상의 모양을 어떻게 나타내느냐?
천백억 화신으로, 천강유수 천강월로 나타낸다. 그것이 바로 중도정견(中道正見)이라고 할 수가 있다.
‘보살계를 받되 받은 바가 없다’ 고 하는 뜻이다.
누구든 아지랑이를 보고
물인 양 여겨
쫓아가지만 먹지 못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목만 더 말라
중생의 번뇌 마음
그와 같거늘
보살의 자비심으로
구하여 내네
이래서 응병묘약(應病妙藥)이라, 환과 같은 약으로 환과 같은 병을 치유한다.
만선동귀집에는 ‘영향여래라’라고 나왔다.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영향중생이다. 그림자 같고 메아리 같은 중생이다.
이런 걸 다른 말로는 제법부동본래적 구래부동명위불 이것이 중도정견이다.
새로 문수선원 벽에 걸어놓은 저 글씨는 통도사에 계셨던 우리나라에서 단청 제일 잘하셨던 혜각노스님의 글씨다. 금강산에 출가하셨던 혜각노스님은 제가 어릴 때 통도사에서 모셔보면 발우공양 밥 한 그릇도 우리 시자들이 따로 못차리게 하셨다. 7,80연세드셨어도 군불 땔 때도 “내가 뗀다”고 하셨다. "노스님 밥 떠 드릴까요?" "나한테 손이 있다."
우리가 그때 택시를 타고 오다가 노스님을 같이 모시고 통도사 일주문까지 모셨는데, 당신은 산문까지 다시 걸어갔다가 다시 올라오셨다. 택시를 안 타셨다. 고약하신 어른이셨다.
당신 살아생전에 보물급 자료를 많이 가지고 계셨는데 통도사 박물관에 다 기증하셨다.
글씨나 삶이나 아무나 중도를 쓴다고 중도가 되는 게 아니더라. 그분의 삶 자체가 제가 볼 때 그분은 ‘중도 중’이었던 것 같다.
여기 도배하면서 뭘 걸어놓을까 하다가 마침 이세간품을 하면서 중도(中道)를 걸어놓자고 했다.
초서로 쓴 길 도(道)자다.
아마 조금 무식해서 잘 못 읽으실 거 같다.
“저게 뭔가? 중자도 왜 반만 썼노?”
노스님이 부처 불(佛)하고 중도(中道)라는 글씨를 평생 많이 쓰셨다.
제가 어릴 때 노스님한테 받아놨던 중도하고 부처 불(佛)자가 많다. 그래서 제가 머무는 자리마다 부처 불자나 중도나 꼭 노스님 걸 걸어놓는다.
그다음 보겠다.
물질은 거품 모인 것
느낌은 물 위에 뜬 거품
생각은 아지랑이 같고
지어가는 일[行] 파초 같나니
인식하는 마음 환술과 같아
갖가지 일을 나타내지만
이렇게 오온을 알고
지혜로운 이 집착 않나니
파초허질(芭蕉虛質)은 비여구기(非汝久期)요 연화정토(蓮花淨土) 시여진귀(是汝眞歸)라. 우리 치문 할 때 배운 바로 그것이다. 연화정토가 중도정견이다.
파초허질은 생멸법이다. 파초가 허망하다. 잎이 무성한 것 같아도 조금만 추우면 한 방에 간다.
십이처(十二處)가 모두 고요해
기계가 돌아가는 듯
십팔계(十八界)의 성품이 없어
허망하게 나타나는 것
보살이 참 성품에 머물러서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고요한 첫째 이치를
가지가지로 연설하지만
마음은 의지한 데 없고
마음은 본래 없으니까 심무소의(心無所依)라
오는 데도 없고 가는 데도 없고
머물러 있음도 아니지마는
‘여래자(如來者)는 무거무래(無去無來)라’
이런 데 화엄경을 읽다가, 이세간법을 읽다가 중도의 소견으로써 금강경이 확 뚫려버릴 것이다.
번뇌와 업과 괴로움의 일
세 가지가 항상 흘러가
연기(緣起)는
모든 법이 인연 따라서 일어났다 하지만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고
참도 아니고 헛것도 아닌
이와 같이 중도(中道)에 들어가
말을 하지만 집착이 없네.
설지무소착(說之無所著)이라. 설명은 하지만은 거기에 착(著)할 바도 없고 중생수기득이익이다, 이런 뜻이다.
이 정도로 해서 이세간품을 읽어봤다.
*
요번 달에 하고 다음 달에는 이세간품이 마쳐진다.
그다음 달에는 입법계품을 하는데 아까 입승스님 또 여러 선배스님들하고 같이 의논한 바,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적당한 날짜를 정해서 매월 월요일은 정하는 바고, 하루를 더 정해서 열흘 뒤에 하든지 일주일 뒤에 하든지 한 달에 두 번 정도 입법계품 스무 권을 진행해서 최대한 빨리 마쳐서, 어른스님께서 건강하실 때에 대화엄법회 회향법회를 한번 했으면 싶다. 그 마음이 간절하다.
조금 조급한 마음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지켜 주시고 다른 하루도 참석해 주시기 바란다.
문수선원이 다른 곳에서 한 10년 공부하시다가 이리로 옮겨서 여기 문수선원에서 결사한 지가 어른스님 경전 결사가 올해로 만 30년이 채워졌다.
만일결사는 신도님들하고 다 끝났다. 그런데 우리 스님들하고 경전결사는 한 20년 가까이 되는데, 그것을 적당하게 해서 7천일을 회향하든지 8천사백일 회향을 하든지, 7천일 회향을 하면 되겠다.
7천일 회향을 해서 아마 20년 결사를 하는 데는 대한민국에, 대한민국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경전공부 이 장대한 시간을 하는 곳은 여기 뿐인 것 같다.
서울에서 어디 멀리 지방에서 오시는 스님들도 계시는데 가만히 보면 한 달에 한 번 공부해서 뭐 이렇게 공부가 되겠나 싶지만
“한 달에 한 번 화엄기도 원력하는 것도 저는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레 어른스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렇지. 공부는 각자 하는 거고 한 달 한 번씩은 모여서 발원하고 기도하고. 한 달 한 번씩 기도하는 성지순례하듯이 그래 하는 거지.”하셨다.
원효스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제 아래 제가 도배하고 책 정리 짐 정리를 하다 보니까 청남 오제봉 선생이 부산에서 굉장히 명필이셨는데 그분 글 중에 제가 받아 놓은 것을 이렇게 보니까 ‘원효성사의 말씀’해서 거룩할 성(聖)자, 거룩할 성자는 성 정성을 다하는 것, 지극하게 하려고 심(心) 마음을, 성심성의를 최대한 지극 극(極) 극도로 하는 것을 성이라 한다.
가만히 보니까 사람을 대할 때든지 일을 대할 때든지 지금 우리가 하는 이세간품의 이세간이란 말이 거룩할 성(聖)자가 되어야 이세간이란 말이 통용이 된다.
중도라는 말이 거룩할 성자, 거룩할 성자가 바로 중도정견인 것 같다. 부처님이란 말이 바로 거룩할 성자의 성중성(聖中聖)이라 거룩한 가운데도 거룩한 것이다.
진심(眞心)과 신심(信心)과 원력심(願力心)을 내가 바칠 수 있는 지극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하는 것, 지극정성으로 하는 것이 거룩한 인간이다. 거룩한 삶이다.
그 글씨도 나중에 어디 안쪽에나 바깥에 하나 걸어 놓겠다.
그렇게 족자로 해 놨는데 너무 나 혼자, 똘똘 말아 놓고 보기는 아까워서 바깥에 하나씩 하나씩 꺼내 놓겠다.
다. 菩薩의 坐道場時十種奇特未曾有事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坐道場時에 有十種奇特未曾有事하니 何等이 爲十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坐道場時에 十方世界一切如來가 皆現其前하사 咸擧右手하야 而稱讚言하사대 善哉善哉라 無上導師여함이 是爲第一未曾有事요 菩薩摩訶薩이坐道場時에一切如來가皆悉護念하사 與其威力이是爲第二未曾有事요
菩薩摩訶薩이坐道場時에宿世同行諸菩薩衆이悉來圍遶하야 以種種莊嚴具로恭敬供養이是爲第三未曾有事요 菩薩摩訶薩이坐道場時에一切世界草木叢林諸無情物이皆曲身低影하야 歸向道場이是爲第四未曾有事요 菩薩摩訶薩이坐道場時에入三昧하니 名觀察法界라 此三昧力이能令菩薩一切諸行으로 悉得圓滿이是爲第五未曾有事요 菩薩摩訶薩이坐道場時에得陀羅尼하니 名最上離垢妙光海藏이라 能受一切諸佛如來大雲法雨가是爲第六未曾有事요 菩薩摩訶薩이坐道場時에以威德力으로 興上妙供具하야 徧一切世界하야 供養諸佛이是爲第七未曾有事요 菩薩摩訶薩이坐道場時에住最勝智하야 悉現了知一切衆生의諸根意行이 是爲第八未曾有事요 菩薩摩訶薩이坐道場時에入三昧하니名善覺이라 此三昧力이能令其身으로 充滿三世盡虛空界一切世界가 是爲第九未曾有事요 菩薩摩訶薩이 坐道場時에 得離垢光明無礙大智하야 令其身業으로 普入三世가 是爲第十未曾有事니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坐道場時에 十種奇特未曾有事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 열 가지 기특하고 미증유한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시방세계의 모든 여래가 그 앞에 나타나서 다 같이 오른손을 들고 칭찬하시되 ‘훌륭하고 훌륭하여라. 위없는 도사(導師)여.’라고 하나니, 이것이 첫째 미증유한 일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모든 여래께서 모두 보호하여 염려하시고 위덕의 힘을 주시나니, 이것이 둘째 미증유한 일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지난 세상에 함께 수행하던 보살들이 모두 와서 둘러싸고 갖가지 장엄거리로 공경하고 공양하나니, 이것이 셋째 미증유한 일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모든 세계의 초목과 숲과 온갖 무정물(無情物)들이 다 같이 몸을 굽히고 그림자를 낮추어 도량으로 향하나니, 이것이 넷째 미증유한 일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삼매에 드시니, 이름이 ‘법계를 관찰함’이라. 이 삼매의 힘으로 보살의 일체 모든 행이 모두 다 원만하여지나니, 이것이 다섯째 미증유한 일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다라니를 얻으니, 이름이 ‘가장 높고 때를 여읜 묘한 빛 바다 창고’라. 능히 일체 모든 부처님 여래의 큰 구름 법의 비를 받나니, 이것이 여섯째 미증유한 일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위덕의 힘으로 훌륭한 공양거리를 일으켜 일체 세계에 두루 하여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나니, 이것이 일곱째 미증유한 일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가장 수승한 지혜에 머물러 일체 중생의 모든 근(根)과 뜻의 행을 밝게 아나니, 이것이 여덟째 미증유한 일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삼매에 들어가니 이름이 ‘잘 깨달음’이라. 이 삼매의 힘으로 그 몸이 세 세상의 온 허공계와 일체 세계에 가득하게 하나니, 이것이 아홉째 미증유한 일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때를 여읜 광명과 걸림 없는 큰 지혜를 얻어 그 몸의 업으로 세 세상에 두루 들어가게 하나니, 이것이 열째 미증유한 일이니라.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에 열 가지 기특하고 미증유한 일이니라.”
*
보살(菩薩)의 좌도량시십종기특미증유사(坐道場時十種奇特未曾有事)
*
불자(佛子)야: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좌도량시에
유십종기특미증유사(有十種奇特未曾有事)하니 : 유십종기특미증유사하니
하등(何等)이: 하등이
위십(爲十)고: 위십고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 도량에 앉을 때에
시방세계일체여래(十方世界一切如來)가:시방세계일체여래가
개현기전(皆現其前)하사: 모두 그 앞에 나타나서
함거우수(咸擧右手)하야: 다 함께 오른손을 들어서
이칭찬언(而稱讚言)하사대: 칭찬하여 말씀하시기를
선재선재(善哉善哉)라 : 선재선재라,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무상도사(無上導師)여함이 : 위없는 최고의 인도자여 하신다.
시위제일미증유사(是爲第一未曾有事)요:이것이 제 첫 번째의 기특한 일이다. 열 번의 기특한 일 중에 제일 첫 번째의 기특한 일이다.
*
특별하고 일찍이 없던 일이 있는데 그 열 가지가 뭐냐?
이렇게 말해놨다.
‘학도지문(學道之門)은 별무기특(別無奇特), 기특한 것은 없다’
그러면 여기서 기특한 것, 일찍이 미증유한 것이 열 가지 나타난 것은 왜인가? 부처님의 결과, 성불의 징조를 미리 나타낸다.
먼동이 트기 전에 동쪽 하늘이 붉어지는 것처럼 바깥으로 외적으로 희유한 경계가 나타난다.
사람이 아프더라도 몸이나 얼굴이나 이런 데 조짐이 나타나듯이, 또 이렇게 기분 좋으면 미소가 번지듯이, 오른손을 들고 이런 것들, 조짐이, 특별한 일이 나타난다, 요런 뜻이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 도량에 앉을 때에는 보살마하살, 진정하게 거룩한 수행자가 도량에 딱 제대로 앉을 때는.
여기서 보살마하살이라고 하는 것은 진짜 제대로 우물을 판 사람이다. 이 화엄경 같은 것은 제대로 된 우물이라서 무갈지용천(無竭之涌泉)이라.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화엄경 왕복서에 있잖은가.
무갈지용천이라.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들은 다 와서 마셔라, 먹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목마른 사람이 물을 퍼먹으려는데 두레박 끈이 짧은 것은 자기 문제다. 남의 우물 깊은 것을 탓하지 말고, 화엄경 어려운 것을 탓하지 말고, 내 두레박 끈 짧은 것을 탓해야 된다.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을 때
일체여래(一切如來)가: 모든 여래께서
개실호념(皆悉護念)하사: 모두 다 그를 보호하고 생각하여 지켜 주시며
여기위력(與其威力)이: 그에게 위신력을 더해 주신다.
시위제이미증유사(是爲第二未曾有事)요: 이것이 제 두 번째 미증유사다. 일찍이 없던 특별한 일이다.
부처님이 그에게 위신력을 더해 준다는 것도 전강이라든지 달마대사가 혜가에게 법을 전한다든지, 전수자에게 특별히 그 기미를 보이는 것이다. 아무나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나 안 주고 할 만한 사람한테 부촉을 한다. 가섭이 아난에게 부촉하듯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안 줘도 ‘나는 받았다’ 이래버리면 그때부터 골치 아픈 것이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 도량에 앉을 때에
숙세동행제보살중(宿世同行諸菩薩衆)이: 지난 세상에 함께 수행했던 여러 보살들이
실래위요(悉來圍遶)하야:모두 둘러온다. 둘러싸며
이종종장엄구(以種種莊嚴具)로: 온갖 장엄구로
공경공양(恭敬供養)이:공경하고 공양한다. 서로가 아는 것이다. 진정한 수행자는 진정한 도반들이 다 알아준다는 것이다.
시위제삼미증유사(是爲第三未曾有事)요: 에밀레 종소리가 어디서 나는 것 같다. 에밀레 소리가 신라 시대 때 한번 딱 만들어지고 난 뒤에 그 소리를 잃어버리지 않고 지금도 두드리면 천 년의 소리가 고대로 나잖는가. 신라의 마음이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완전한 한 사람의, 그때 진실했던 수행자들의 마음이 지금까지 이렇게 전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소리가 굳이 안 들리는 데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다,
어제 아래 제가 무슨 연기문을 쓰다가 그래 놨다.
범어사에 개금불사하는데 연기문을 써달라고 했다.
“나 연기문 못 쓴다.”
하는 수 없어서 오늘 새벽에 끄적거렸다.
‘부처님은 모습이 없으나 중생을 위하여 일부러 개금으로 모습을 나타내주고 부처님은 음성을 들을 수 없으나 소리가 없지만 중생들의 염불소리로 음성을 새겨 넣는다.’
이렇게 글을 쓰다가 말았는데 그게 전부 화엄경 중도로 보면 그런 소리를 쓸 수가 있겠다.
*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 도량에 앉을 때
일체세계초목총림제무정물(一切世界草木叢林諸無情物)이: 일체 세계의 초목과 총림 빽빽한 것 총림을 ‘목불난장왈총(木不亂場曰叢)이라’ 이렇게 한다.
치문에서 그렇게 배웠다.
‘총림지하(叢林之下)에 도업(道業)이 유신(維新)하야 상상지기(上上之機)는 일생취판(一生取辦)’이라는 대목이 있잖은가.
총림(叢林) 빽빽한 숲, 바람이 되게 불어도 앞나무가 서서 바람을 막아주면 뒤의 숲이 잘 자라잖는가.
총림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한다. 법화경 약초유품에는 초(草)는 이승이나 연기법, 사성제 같이 쪼잔한, 교리로 공부하는 사례라면 목(木)은 보살수행자들을 나무, 큰 거목에 비유한다.
세상에는 그것도 안 되고 용사혼잡으로 독풀도 있고 잡풀도 있고 그렇다. 제무정물이 여러 무정한 것들이
개유신저영(皆曲身低影)하야: 몸을 굽히고 그림자를 낮추고
귀향도량(歸向道場)이: 도량을 향해 귀의한다. 온갖 삼라만상이 그 보살 수행자를 향해서 귀의한다.
시위제사미증유사(是爲第四未曾有事)요: 이것이 네 번째 일찍이 없던 특별한 일이다.
어떤 스님은 타행을 하면 난초 향기가 온 마을에 가득했다고 하고, 돌아가실 때도 온 산에 향기가 가득하다 그랬다.
자장스님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도량에 앉을 때
입삼매(入三昧)하니: 삼매에 드니
명관찰법계(名觀察法界)라:명관찰법계라. 그 이름이 법계를 관찰하는 삼매라 한다. 보살삼매를 관찰법계라
차삼매력(此三昧力)이 : 이 삼매의 힘으로
능령보살일체제행(能令菩薩一切諸行)으로 :보살로 하여금 온갖 모든 수행을
실득원만(悉得圓滿)이: 모두 원만하게 성취하게 한다.
시위제오미증유사(是爲第五未曾有事)요: 이것이 제 다섯 번째 일찍이 없던 특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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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 좌도량시에
득다라니(得陀羅尼)하니: 다라니를 얻으니 득다라니 하니
명최상이구묘광해장(名最上離垢妙光海藏)이라:이름이 최상이구묘광해장이라. 가장 최고의 때를 떠난 미묘한 빛의 바다와 같은 보배창고라.
능수일체제불여래대운법우(能受一切諸佛如來大雲法雨)가:이로써 능히 부처님 여래, 제불여래의 큰 구름 법의 비를 받아들인다.
시위제육미증유사(是爲第六未曾有事)요: 이것이 제 여섯 번째 일찍이 없던 특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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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 도량에 앉을 때에
이위덕력(以威德力)으로: 위엄과 공덕의 힘으로
흥상묘공구(興上妙供具)하야:가장 뛰어나고 미묘한 공양물을일으켜서
변일체세계(徧一切世界)하야:모든 세계를 두루하는
공양제불(供養諸佛)이 :여러 부처님께 공양한다.
시위제칠미증유사(是爲第七未曾有事)요: 이것이 일곱 번째 일찍이 없던 특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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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도량에 앉을 때
주최승지(住最勝智)하야 : 가장 뛰어난 지혜에 머무른다. 최승지는 불지(佛智) 부처님의 지혜를 최승지라 한다.
기신론 같은 데 첫 번에 뭔가?
부처님을 ‘최승업변지(最勝業徧知)시며 색무애자재(色無礙自在)하신 구세대비자(救世大悲者)’ 이렇게 얘기한다.
실현요지일체중생(悉現了知一切衆生)의: 일체중생의
제근의행(諸根意行)이: 근기와 마음의 작용을 모두 드러내 안다.
시위제팔미증유사(是爲第八未曾有事)요:이것이 여덟 번째 일찍이 없던 특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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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 : 도량에 앉을 때에
입삼매(入三昧)하니:삼매에 또 들어가니
명선각(名善覺)이라:그 삼매 이름이 선각이라. 이름 좋다. 선각이라.
차삼매력(此三昧力)이: 이 삼매력으로
능령기신(能令其身)으로 : 일체 그 몸으로 하여금
충만삼세진허공계일체세계(充滿三世盡虛空界一切世界)가:충만삼세진허공계 일체 세계가
시위제구미증유사(是爲第九未曾有事)요: 아홉 번째 미증유사라. 그 몸으로 하여금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다하고 허공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계에 가득 차게 된다.
이것이 아홉 번째 일찍이 없던 특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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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도량에 앉을 때에
득이구광명무애대지(得離垢光明無礙大智)하야:때를 여의고 맑은 광명에 걸림 없는 큰 지혜를 얻어서
영기신업(令其身業)으로: 그 신업으로 하여금
보입삼세(普入三世)가: 삼세에 과거 현재 미래에 두루 들어가는 것이
시위제십미증유사(是爲第十未曾有事)니: 이것이 열 번째 일찍이 없던 특별한 일이다.
불자(佛子)야:불자여
시위보살마하살(是爲菩薩摩訶薩)의: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좌도량시(坐道場時)에: 도량에 앉을 때
십종기특미증유사(十種奇特未曾有事)니라 :십종의 기특한 아주 귀하고 특별한 일찍이 없던 미증유사다.
라. 菩薩의 坐道場時觀十種義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坐道場時에 觀十種義故로 示現降魔하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爲濁世衆生이 樂於鬪戰하야 欲顯菩薩威德力故로 示現降魔하며 爲諸天世人이 有懷疑者하야 斷彼疑故로 示現降魔하며 爲敎化調伏諸魔軍故로 示現降魔하며 爲欲令諸天世人의 樂軍陣者로 咸來聚觀하고 心調伏故로 示現降魔하며 爲顯示菩薩所有威力이 世無能敵故로 示現降魔하며 爲欲發起一切衆生의 勇猛力故로 示現降魔하며 爲哀愍末世諸衆生故로 示現降魔하며 爲欲顯示乃至道場히 猶有魔軍이 而來觸惱라가 此後에야 乃得超魔境界故로 示現降魔하며 爲顯煩惱의 業用羸劣하고 大慈善根의 勢力强盛故로 示現降魔하며 爲欲隨順濁惡世界所行法故로 示現降魔가 是爲十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량에 앉았을 때에 열 가지 뜻을 관찰함으로 마(魔)를 항복받음을 나타내 보이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혼탁한 세상의 중생들이 싸움을 좋아하기에 보살마하살의 위엄과 도덕의 힘을 나타내려고 마를 항복받느니라. 천신과 세상 사람들이 의심하는 이가 있기에 그 의심을 끊으려고 마를 항복받느니라. 모든 마의 군대를 교화하고 조복하려고 마를 항복받으며,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의 전쟁을 좋아하는 이들로 하여금 다 와서 보고 마음이 조복되게 하려고 마를 항복받느니라.
보살의 위엄과 힘을 세상에 대적할 이가 없음을 보이려고 마를 항복받으며, 모든 중생의 용맹한 힘을 일으키려고 마를 항복받느니라.
말세의 모든 중생을 불쌍하게 여기어서 마를 항복받으며, 도량에까지 마의 군대가 와서 시끄럽게 하나니 이런 뒤에야 마의 경계를 초월함을 보이려고 마를 항복받느니라.
번뇌업의 작용은 용렬하고 큰 자비와 착한 뿌리의 세력은 강성함을 나타내려고 마를 항복받으며, 혼탁하고 악한 세계에서 행하는 법을 따르려고 마를 항복받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
보살(菩薩)의 좌도량시관십종의(坐道場時觀十種義)
*
그다음에는 마군을 항복받는다는 대목에 들어간다. 열 가지 뜻.
부처님께서 처음에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 아래서 보리수를 이 이세간품하고 똑같은 경전이 도세품경이다.
도세(度世) 이세(離世) 도세품경에 보면 보리수를 불수(佛樹)라고 해 놨다. 부처님의 나무, 각수(覺樹) 불수 이렇게 얘기한다.
보리수 각수 불수 다 똑같은 말이다.
각수라면 완전 한문을 해석한 것이고, 불수라면 부처님의 인격을 해석한 것이고, 보리수라면 부처님의 법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렇게 하는 것이다.
불자(佛子)야: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보살마하살이
좌도량시(坐道場時)에: 좌도량시에
관십종의고(觀十種義故)로: 열 가지 뜻이 있는 까닭으로
시현항마(示現降魔)하나니: 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시현한다. 항마를 나타낸다. 시현하는데
하등(何等)이:어떠한 것이
위십(爲十)고:열 가지인가?
왜 항마부터 나오겠는가? 여러분들 나눠드린 과판 다섯 개 중에 네 번째인데 항마를 받게 되면 정각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제 곧 묘각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청량국사가 해석하기를 “정각 직전이라서 마를 완전히 꺾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각이 드러나기 전에 먼저 사악한 힘을 꺾어 버려야 된다.
굉장히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저번 강의 시간에 그랬다.
이 대목에 와서 청량국사가 얘기하기를 ‘어떤 야간이, 들짐승이 있더라도 여우 족제비는 감히 사자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위세를 떨칠 수 없다’ 이렇게 해 놨다.
치문 같은 데는 ‘사자가 죽더라도 잡수(雜獸)들, 일반 백수들은 죽은 사자 옆에 일주일동안 가서 죽은 사자라도 그걸 뜯어먹을 생각을 못한다’ 라고 해놨다.
우리 불법도 다른 종교나 다른 외부 세력이 불교를 망하게 할 수는 없다.
사자신중충(獅子身中蟲)이 자식사자육(自食獅子肉)이라.
불교가 혼탁하고 정법이 바로 서지 못하고 망하는 것은 우리 자신 안에 사자한테 붙어사는 기생충 같은 부법외도 승려, 법을 가장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장 문제다, 이렇게 해놨다. 부법외도.
소위위탁세중생(所謂爲濁世衆生)이:소위 탁한 세상에 사는 중생들이
낙어투전(樂於鬪戰)하야: 싸움을 즐기고 다투기를 좋아하므로
욕현보살위덕력고(欲顯菩薩威德力故)로: 보살이 위덕력을 나타내기 위한 까닭으로
시현항마(示現降魔)하며: 마구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남을 이기려고 하는 것은 힘으로 이기는 것보다 덕으로 이기는 게 좋다. 덕원스님, 덕으로 이겨야 된다.
저는 아예 큰스님 안 하고 하나 더 붙여서 덕헌스님 하기로 했다. 큰 덕(德)자에 헌법할 헌(憲)자 법 헌자 있잖은가. 헌법 헌자 빨리 읽으면 ‘더큰스님’이 돼 버린다.
전부 어디 가면 다 큰스님 큰스님 하는데 저는 이름이 작은 스님이니까, 항상 어른스님 모시고 다니면 다 큰스님이니까 저는 항상 작은 스님이다.
그러니까 “저는 법명이 덕헌입니다.” 해놓으면 사회자가 부를 때 “오늘 더큰스님 오셨습니다.”
한 번은 찻집인가, 차 모임인가에 가서 진짜 그렇게 불러서 창피스러워서 죽을 뻔했다.
여러분들 써먹으시면 된다.
덕헌(德憲) 큰 덕자 헌법 헌자 그럴듯 하잖는가.
빨리 읽으면 무조건 더큰스님이다.
저는 서울 갈 때 작은 차 자가용 안 타고 꼭 큰 차 KTX를 타고 다닌다. 요번에 서울 갈 때는 큰스님 되는 게 아니고 높은 스님이 되어야 겠다 해서 비행기를 타고 갔다.
비행스님이라고.
자 집중하겠다.
위제천세인(爲諸天世人)이: 모든 하늘과 인간들 가운데
유회의자(有懷疑者)하야: 의심을 품는 이들이 있으므로
단피의고(斷彼疑故)로: 그 의심을 끊어주기 위해서
시현항마(示現降魔)하며: 마구니를 항복시킨다. 한번 보여줘야 믿는다.
옛날 어떤 무술인이 “그거 뭐 보여줘야 믿지.”하니까 진짜 그 실력을 딱 한번 보여줬다. 그랬더니 그 뒤로는 입을 딱 다물어 버렸다. 힘을 진짜로 보여 줘 버리니까.
말로 해서 안 되는 것이다.
진짜 딱 보여줘 버려야 된다.
미국 헤비급 참피언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다.
“링 위에 올라가기 전까지는 자기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계획이 있다. 찬란하게. 그런데 한 방 맞고 나면 그 계획이 다 무산된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도인 앞에 딱 서 가지고 여러 가지 나불대고 하다가 도인 앞에 한번 딱 서 가지고 한 번 두드려 맞고, 한 방망이 맞고는 찍 소리도 못 하고 끝나는 것이다.
위교화조복제마군고(爲敎化調伏諸魔軍故)로: 모든 마구니를 교화하고 조복하기 위한 까닭으로
시현항마(示現降魔)하며: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내며
위욕영제천세인(爲欲令諸天世人)의: 모든 하늘과 인간 가운데
낙군진자(樂軍陣者)로: 군진을 즐기는 이들로 하여금
함래취관(咸來聚觀)하고: 모여와서 보고는
심조복고(心調伏故)로: 그 마음이 조복되게 하기 위하여
시현항마(示現降魔)하며 :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낸다.
위현시보살소유위력(爲顯示菩薩所有威力)이: 현시나 제시나 명시나 똑같은 말이다. 제시한다. 명시한다 현시한다.
원효스님은 과목을 달 때 이 현(顯)자 아니면 밝을 명(明)자를 달았다.
명시 명현 똑같이 쓴다. 똑같은 글자다. 드러날 제(提)자까지.
제시 현시 명시 분명히 남에게 보여 준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확 드러내서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보살이 지닌 위신력과 위력이
세무능적고(世無能敵故)로: 세상에 대적할 사람이 없음을
시현항마(示現降魔)하며: 나타내기 위하여 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보이며
위욕발기일체중생(爲欲發起一切衆生)의:또한 모든 일체중생의
용맹력고(勇猛力故)로: 용맹한 힘을 일으키기 위하여
시현항마(示現降魔)하며: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낸다.
위애민말세제중생고(爲哀愍末世諸衆生故)로:또한 말세의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시현항마(示現降魔)하며: 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내고
위욕현시내지도량(爲欲顯示乃至道場)히: 또한 도량에 이르기까지도
유유마군(猶有魔軍)이: 오히려 마군이 와서 괴롭히지만은
이래촉뇌(而來觸惱)라가: 이래촉뇌라가, 천수경할 때 일체촉예처(一切觸穢處) 당가차자문(當加此字門)하잖는가
어릴 때 제가 어떤 대강백스님 한테 배울 때 일체촉예처는 ‘아마 촉자가 일체 탁예처 더러울 탁자가 잘못 전해진 것 같은데’ 하고 들었다. 그러고 나서 의문을 두고 계속 공부하고 공부하다 보니까 촉자 자체에 더럽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러울 촉자가 있다. 부딪치면 다 더러워지잖는가. 자꾸 저촉이 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촉자 자체가 탁자하고 똑같은 뜻이다.
천수경의 일체촉예처를 굳이 탁예처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거하고 또 다른 부분도 또 있다.
지옥자고갈(地獄自枯渴) 하는 것 있잖은가.
화탕자소멸(火湯自消滅)하는 것, 그것도 원래 대로 쓰는 게 맞다.
자꾸 ‘그 탕은 고가 되어야 된다’ 이런 식으로 글자를 자꾸 바꾸잖는가. 그런데 그게 아니다. 대장경 원문을 계속 찾아보니까 옛날에 우리 어릴 때 배웠던 것 그게 맞다.
어설프게 아는 강사들이 자꾸 바꿔 가지고 이상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모를 때는 반드시 어디에? 대장경 원문에 기대서 그쪽으로 가는 게 좋다.
왜 이렇게 바꿔놨을까 싶으면 그거는 나중에 보니 강조용법이다.
서장에도 그렇게 해놨다.
적나라(赤裸裸) 적쇄쇄(赤灑灑)가 바뀌어야 되지만 강조 용법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적나라적쇄쇄 그 대목도 바뀌어야 되지만 도치를 해서 뜻을 눌렀다가 용수철처럼 튕겨 올리는 어강법으로 강조했다. 강조용법이다.
머리에 확 박히도록 만들어 놨다.
옛날 어른들이 그렇게 탁월하게 잘해 놨던 것 같다.
자기가 이해 안 가면 어설프게 막 해석해 버린다.
차후(此後)에야 : 그 이후에야 마구니가 와서 괴롭지만 그 후에
내득초마경계고(乃得超魔境界故)로: 비로소 마의 경계를 뛰어넘어서 벗어나게 됨을 드러내기 위하여
시현항마(示現降魔)하며: 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낸다.
위현번뇌(爲顯煩惱)의: 또한 번뇌의
업용이열(業用羸劣)하고: 허약하고 미약하다. 몇 번 나왔다.
대자선근(大慈善根)의: 대자비의 선근이
세력강성고(勢力强盛故)로 : 매우 힘이 강대함을 나타내기 위한 까닭으로
시현항마(示現降魔)하며: 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내고
위욕수순탁악세계소행법고(爲欲隨順濁惡世界所行法故)로:탁하고 악한 세계에서 행해지는 법의 수순 순응하기 위한 까닭으로
시현항마(示現降魔)가: 마를 항복시키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라 : 이것이 열 가지이다.
마. 菩薩의 十種成如來力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成如來力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超過一切衆魔煩惱業故로 成如來力하며 具足一切菩薩行하야 遊戱一切菩薩三昧門故로 成如來力하며 具足一切菩薩廣大禪定故로 成如來力하며 圓滿一切白淨助道法故로 成如來力하며 得一切法智慧光明善思惟分別故로 成如來力하며 其身이 周徧一切世界故로 成如來力하며 所出言音이悉與一切衆生心等故로成如來力하며 能以神力으로 加持一切故로 成如來力하며 與三世諸佛로 身語意業이等無有異하야 於一念中에了三世法故로成如來力하며 得善覺智三昧하야 具如來十力하나니 所謂是處非處智力으로 乃至漏盡智力故로 成如來力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具此十力하면 則名如來應正等覺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여래의 힘을 이룸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온갖 마와 번뇌의 업을 뛰어넘었으므로 여래의 힘을 이루며, 모든 보살의 행을 구족하고 모든 보살의 삼매문에 유희하므로 여래의 힘을 이루느니라.
모든 보살의 광대한 선정을 구족하므로 여래의 힘을 이루며, 온갖 희고 깨끗한 도를 돕는 법을 원만하므로 여래의 힘을 이루느니라.
모든 법의 지혜 광명을 얻어 잘 생각하고 분별하므로 여래의 힘을 이루며, 그 몸이 모든 세계에 두루 하므로 여래의 힘을 이루느니라. 하는 말과 음성이 일체 중생의 마음과 평등하므로 여래의 힘을 이루며, 능히 신통한 힘으로 모든 것에 가지(加持)하므로 여래의 힘을 이루느니라.
세 세상 모든 부처님의 몸과 말과 뜻의 업이 평등하여 다르지 않으며, 한 생각에 세 세상의 법을 알므로 여래의 힘을 이루느니라. 잘 깨닫는 지혜의 삼매를 얻어 여래의 열 가지 힘을 갖추나니, 이른바 옳은 곳과 그른 곳을 아는 지혜의 힘과 내지 번뇌가 다한 지혜의 힘이니라. 그러므로 여래의 힘을 이루느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열 가지 힘을 갖추면 여래 응공 정등각이라 이름 하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성여래력(十種成如來力)
*
불자(佛子)야: 불자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성여래력(有十種成如來力)하니: 열 가지의 성여래력하니.
‘여기서부터는 진정한 묘각이다’ 우리가 32문이니 19문이니 나눠 놨다가 여기서부터는 청량국사가 진정한 묘각이라고 했다. 200가지 질문 중에 뒤에 네 가지가 남았다. 200가지 질문 중에 뒤에 네 가지가 완전히 묘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앞에 2회차부터 7회차까지 품수를 나눠서 2회차는 십신 3회차는 십주 4회차는 십행 5회차는 십회향 6회차는 십지 7회차는 등각 묘각으로 나눠진다.
7회차에 십정 십통 십인품 아승지품 여래수량 보살주처품까지 여섯 품이 있다. 이 중에 보살주처품까지가 등각이 되고 불부사의법품 십신상해품 여래수호공덕품은 묘각이다.
불(佛) 부처님이나 여래란 말이 들어갔을 때부터는 뭘로 치는가? 묘각으로 분류를 한다.
그러니까 제일 마지막 두 가지는 묘각 중에서도 보현행품과 여래출현품은 차별인과가 아니라 평등인과에 해당한다, 이렇게 해놨다.
묘각에 들어갔을 때가 차별과이고 묘각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차별인이다,이 말이다.
차별인의 내용이 상당히 길다.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까지가 차별인이다.
그다음에 묘각이 되면 차별과(差別果) 불부사의법품 여래십신상해품 여래수호공덕품 요게 차별과다.
그다음에 평등인과가 나오는데 평등인과 중에서 보현행품이 인(因)이다. 보현행이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여래가 출연하니까 여래출현품은 평등과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세간품은 무엇인가? 성행인과다.
소신인과는 1회차, 차별인과는 2회차 2회차부터 7회차까지가 차별인과 평등인과.
1회차는 소신인과 부처님에 대한 것이었다. 부처님의 의보와 정보에 대한 소신,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 그다음에 그게 잘 안 믿어지니까 2회차부터는 믿어라. 십신부터 차별적으로 단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가. 2회차, 3회차, 4회차, 5회차, 6회차, 7회차까지가 차별인과와 평등인과가 있었다.
그것이 끝나고 8회차는 성행인과다.
모든 차별적인 순차를 다 알았으면 성행(成行) 비로서 완성된 행동을 해야 된다. 보현행원을 실천해야 된다.
이 보현행원이 바로 중도정견 이세간품, 제 8회차 성행인과다.
성행인과를 다른 말로 뭐라고 하는가?
*
1회차는 뭐라 하는가? 거과권락생신분 신(信)
2회자부터 7회차까지가 수인계과생해분 해(解)
8회차는 탁법진수성행분(托法進修成行分). 탁법진수 보현행의 의지해서 수행을 닦아 나가는 성행. 행을 부처님과 같은 행동을 행위를 완성시켜야 된다. 성행분.
그다음 입법계품은 의인증입성덕분 선지식을 의지해서 반드시 부처님의 깨달음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 의인증입성덕분(依人證入成德分)부처님과 같은 공덕을 찾는다. 그 공덕 중에 53선지식 중에 가장 많은 공덕을 지은 분이 누구인가? 미륵보살이다. 그 미륵보살이 상징하는 것이 자비다.
그래서 미륵보살품이 77권부터 79번까지 방대하게 세 권이나 펼쳐져 있고, 그 뒤에 만나는 문수보살은 잠깐 눈만 깜짝하는 정도뿐이고, 마지막에 가서 보현보살을 만나서 80권에 회향을 한다.
80권을 회향하고 난 뒤에 80권이나 60권 화엄경에는 없지만 40권 화엄경에는 찰진심념가수지(剎塵心念可數知) 끝나고 난 뒤에 다시 한번 보현행원품이 이어지지 않는가.
찰진심념가수지(剎塵心念可數知) 끝나는 것이 80화엄경이고 60화엄경이다. 40화엄경은 찰진심념가수지까지가 끝이 아니다. 거기서부터 예경제불부터 칭찬여래에 들어가는 보현행원 있잖은가.
보현행원 항순중생해서 보개회향까지 보현행원이 끝나고 나서 화엄경 마지막 회향할 때 화엄경 마지막 구절 가지고 우리가 수계산림을 하든지 법회산림을 하든지 맨날 한다.
아차보현수승행 그다음 뭔가?
우리도 상강례에 하잖는가.
아차보현수승행 무변승복개회향 보원침익제중생 속왕무량광불찰 법문에는 제중생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가 염불할 때는 유정으로 바꿔서 한다.
수계산림 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수계공덕수승행 살짝살짝 바꿔서 한다.
우리는 간경공덕수승행 얍삽하게 바꿨다.
원래 아차보현수승행도 충분한데, 간경공덕수승행, 수계공덕수승행으로 바꿨다. 그래도 그 원래 원뿌리는 뭔가?
40권 화엄경의 마지막 부분이다.
결론 중의 결론은 중도정견이다.
자 여기서 여래의 력(力) 이렇게 나오면 여래력 아까 7회차에서 불부사의법품 여래십신상해품 여래수호광명공덕품 보현행품 여래출현품 전부 여래란 말이 다 붙어 있잖은가.
그 보현보살이 바로 여래가 중생을 교화시키는 것이다.
부처님이 직접적인 입장이 아니고 보살을 통해서 하잖는가.
보살행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여래라는 이름이 붙어야 묘각이다, 이 말씀이다.
그래서 여기도 청량국사가 묘각으로 분류했지 않느냐 이런 뜻을 제가 “이 연사 소리 높여 주장합니다.”
그 끝없는 앞에 한두 개는 해탈도, 그 앞엣 것은 방편도, 방편이 있다 보면 해탈로 가게 되고 해탈로 가게 되다 보면 이제 완성이 되는 것이다.
드디어 여기서는 완성의, 여래의 힘이 이루어진 걸 보이는 단계, 정각에 들어가는 단계다.
불자여 보살에게 열 가지로 여래의 힘을 성취하는 것이 있으니
*
하등(何等)이: 열 가지가
위십(爲十)고:무엇인가
소위초과일체중마번뇌업고(所謂超過一切衆魔煩惱業故)로:부처님의 입장에서 이른바 모든 마와 번뇌의 업을 능히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에
성여래력(成如來力)하며: 여래의 힘을 성취한다.
눈물이 다 난다. 이거 한다고 우리가 전부 머리 빡빡 깎고 여기 와서 어찌되는지 지금 모른다. 잘못돼 가지고.
책에 떨어졌는지 주지에 떨어졌는지 안 주지에 떨어졌는지.
잠깐 중간 광고하겠다.
서울 화곡동 보광사에서 민성스님께서 공양 올리신 물이다.
요번에 포살계한다고 갔다 왔는데 보니까 연세드신 분들에게 제가 뭐 그런 농담도 하면 안 되는데, 좀 친근감 때문에, 팔구십세 공부하시는 노보살님들 우리 문수선원에 마지막 회향 잘하시는 노보살님들이 백 명 이백 분 매주 나와서 정진하고 화엄경을 공부하신다.
노보살님들과 저는 서로 이물감이 없고 서로가 이해하니까 “아유 오늘 왜 영가가 많은교. 영 간다고 영간데.”
“스님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이러다가는
“스님 안 미워하기로 했어요. 네 영가 맞아요.”
이러면서 농담하고 한다.
그 절에도 가서 농담하면서
“아유 우리 절에도 전부 영가분들이 참 많으신데 여기도 영가다.”
거기는 젊은 분들 청년회가 너무 많으니까 영가, 영어로 영가다. 서울은 또 다르더라.
이 창창한 봄에 진짜 월정사 전나무숲처럼 창창하고 통도사 소나무처럼 아름드리 같은 청년들이 새카맣게 앉아 있었다.
머스마 청년들이 절에 오기 힘들잖은가?
‘와, 뭐 이런 동네가 있나’ 싶었다.
거기서 온 물이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에밀레 종소리를 만든 사람은 정성을 다해서 만들고 가셨지만, 그 소리는 남아서 우리에게 가슴 가슴 파고 드는데 부처님께서 어찌 역대전등 제대조사가 번역하고 번역하고 어째어째 이렇게 화엄경을 던져주고 갔는데 문수강당에서 우리는 또 부처님의 메아리가 되고 그림자가 돼 가지고 그 영향으로 같이 이렇게 우리끼리 하고 가지만.
‘별 공덕이 없을 것 같다’ 하더라도 제일 큰 공덕이 법회 모임의 공덕이라 하지 않는가.
정말 가까이 있으면서도 공부 안 하는 사람도 있지만 포항에서 진주에서 서울에서 세종에서 아이고 저기 전라도 저 먼 해남 끝에서까지 또 거창에서 연세도 많으신데 직접 운전까지 해오시는 스님들을 보면서 어른스님과도 이야기 나눴다.
“어떻게 대중들이 참 화엄경 어른스님 위신력도 그렇지만은 화엄에 대한 각자의 신심이 지극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지 한달에 두 번이라도 해 가지고 입법계품 있잖은가. 입법계품 324강을 미리 제가 20권을 다 해 놓은 게 있다. 어른스님께서도 강의해 놓으신 것이 있다.
참고로 그것만 하셔도 여기 와서 하는 건 한 달에 두 번 정도 해서 큰스님 좀 건강하실 때 빨리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 어른스님이 엊그제도 조금 쇠약하셔서 지금 조금 이렇게 계신데, 하루 좋으시다가도 하루 컨디션 안 좋으시고 그러신 것 같다. 그러니까 기약을 할 수 없으니까 어른스님을 생각해서라도 우리가 빨리 마무리를 하자.
요게 지금 나오는 묘각 요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 하면 씨앗을 뿌리는 상태라 그런다.
보리수 꽃이 피어서 보리자 열매가 보리수 안에서 맺혀있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다. 또 다른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정각은 씨앗을 뿌린다고 청량국사도 마지막에 그렇게 해석해 놓았다. 정각이 뭐냐? 깨달음이 뭐냐? 결과가 뭐냐? 과가 뭐냐? 과육 속에 핵심 씨앗과 종자가 있잖은가.
살구 속에 살구씨가 있잖은가.
그걸 정각이라 해놨다.
부처님 깨달음의 포장 속에서 또 다른 진정한 진심 요걸 계속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부처님의 정각의 의미는 “나의 정각이 또 다른 사람의 정각이 되고 정각이 되고 정각이 된다.” 그걸 묘각이라고 해놨다.
일파재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 해석을 보면 문득 멈추고 공부 안 하고 싶을 때가 많다.
‘아 이게 뭐, 글 보는 게 문제가 아닌데’ 이러면서.
구족일체보살행(具足一切菩薩行)하야: 모든 보살행을 원만히 갖추어서
유희일체보살삼매문고(遊戱一切菩薩三昧門故)로: 모든 보살의 삼매문에 노닐 수 있기 때문에
성여래력(成如來力)하며:여래의 힘을 성취하며
구족일체보살광대선정고(具足一切菩薩廣大禪定故)로: 모든 보살의 광대하고 깊은 선정을 원만히 갖추기 때문에
성여래력(成如來力)하며:여래의 힘을 성취한다.
원만일체백정조도법고(圓滿一切白淨助道法故)로: 원만이나 구족이나 똑같은 말이다. 원만이다. 구족이다, 원융이다. 말이 다르고 글자가 달라서 그렇지 뜻은 똑같다.
사실은 원만구족이다.
모든 청정한 백정조도법이라.
이 세상의 착한 법을 백법이라고 하고 모든 악한 법을 흑법이라고 한다. 선악. 선악법을 백법, 흑법 이렇게 얘기하는데 선과 악을 초월한 중도법을 백정법이라고 한다.
백정법.
청정한 조도법. 조도법은 앞에 네 가지 사염처를 가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정근, 사여의족 오근 뿌리가 있으니까 오근에서 오력이 나오고 칠각지 마지막에 팔정도의 법을 닦는다.
사염처를 가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37조도품의 마지막 결론이 무엇인가? 8정도다.
그걸 조도법이라고 한다. 바라밀의 옆에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여래력(成如來力)하며: 원만히 성취하기 때문에 여래의 힘을 이루며
득일체법지혜광명선사유분별고(得一切法智慧光明善思惟分別故)로: 득일체법 득이나 원만이나 구족이나 똑같은 뜻이다.
모든 법에 대하여 지혜 광명을 얻어서 선사유분별고로 잘 사유하고 분별하기 때문이다.
선사유삼매는 무슨 보살이 들어갔는가?
4회차 공덕림보살이 선사유삼매에 들어갔다.
방편바라밀은 누구인가? 법혜보살이다. 무량방편삼매에 들어가셨다.
금강당보살은 보살지광삼매 금강장보살은 보살대지광삼매.
보현보살은 불화장엄삼매에 들어가셨다.
부처님은 화엄경에서 삼매에 두 번 들어가신다. 찰라제삼매 와 사자빈신삼매다.
보현보살은 저 앞에서는 비로자나여래장신삼매하고 뒤에는 불화장엄삼매 부처님을 대신하는 삼매는 항상 누구인가?
보현보살이다.
보현보살을 화엄경에서 맏아들이라,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화엄경 계속 하시던 분들은 익숙하시고 ‘그렇지 그렇지’하는데 처음 듣는 분들은 머리가 복잡하실 것이다.
선사유분별고로
성여래력(成如來力)하며:여래의 힘을 이룬다.
기신(其身)이:그 몸이
주변일체세계고(周徧一切世界故)로: 일체 세계 두루한 까닭으로
성여래력(成如來力)하며:여래의 힘을 성취하고
소출언음(所出言音)이: 그 내는 말과 말의 음성이
실여일체중생심등고(悉與一切衆生心等故)로: 일체 중생의 마음과 평등하게 서로 맞기 때문에
성여래력(成如來力)하며: 여래의 힘을 성취한다.
말하는 게 모든 중생이 생각하는 만큼 부처님의 말씀도 많다 이런 말씀이다.
능이신력(能以神力)으로:신통력으로써
가지일체고(加持一切故)로: 일체를 가피하여 지니게 하기 때문에
성여래력(成如來力)하며: 여래의 력을 성취하고
여삼세제불(與三世諸佛)로:삼세제불과 더불어서
신어의업(身語意業)이:신어의업이 몸과 말과 뜻의 업이
등무유이(等無有異)하야: 평등하여 조금도 다름이 없어서
어일념중(於一念中)에: 한 생각 가운데에
요삼세법고(了三世法故)로: 삼세의 법을 환히 알기 때문에
성여래력(成如來力)하며:여래의 힘을 성취한다. 일념즉시무량겁이다.
*
득선각지삼매(得善覺智三昧)하야: 선각지삼매를 얻어서
구여래십력(具如來十力)하나니: 여래의 열가지 힘을 구족하니
소위시처비처지력(所謂是處非處智力)으로:소위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분명히 분별할 줄 아는 지혜의 힘으로부터
내지누진지력고(乃至漏盡智力故)로: 내지 누진지력고로 누진지력 누(漏)가 다 한다. 누는 번뇌 루자다.
번뇌가 다하는 지력 누진지력 그것을 아는 지혜의 힘에 이르기까지.
누는 찔찔 새는 것이다. 누수된다, 누전된다.
눈으로 욕심이 질질 새고 입으로 욕심이 새고 맛으로 흘러가고 말초 신경으로 욕심이 새는 것을 누라고 한다.
나중에는 눈으로 이렇게 누가 사라져 버리면 천안통이라 하고, 귀로써 듣는 힘이 완전히 생겨 가지고 듣는 데 촐싹거리지 않으면 천이통이 된다.
천이통이 되고 신족통이 되고 이렇게 해서 오신통이 다 갖춰지고 마지막에 정신이 생각머리가 찔찔해서 잡념에 흔들리지 않고 염도염궁무념처까지 자기를 밀고 나가 버리면 누진이 되잖는가. 누진통.
그러니까 타심통이니 뭐니 이런 걸 더 넘어서 누진통이 있다.
어떤 번뇌도 갖다 붙일 수 없는 것이다.
허공처럼 되어서 허공에 페인트 못 칠하듯이.
성여래력(成如來力)이: 여래의 힘을 갖춘다.
시위십(是爲十)이니: 이것이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모든 보살이
구차십력(具此十力)하면: 이 열 가지 힘을 다 갖추면
즉명여래응정등각(則名如來應正等覺)이니라 : 그 이름을 여래응정등각이라고 한다.
열 가지 힘, 십력이라고 하는 게 100%잖은가.
일본에 가면 십분소바라고 써놨다. 십분 백퍼센트 소바. 8푼이 아니고 10푼, 열분, 10분의 10, 100% 메밀로 만든 메밀국수다. 십분소바
십력 완벽하고 백퍼센트 백퍼센트가 아니라 천퍼센트, 완벽 구경이라 한다.
십력을 구경이라 한다.
열 십(十)자는 구경하고 똑같은 것이다. 퍼펙트.
이것으로 곧 이름해서 여래 응정등각이니라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 하듯이.
(9) 如來의 轉大法輪
가. 如來의 轉法輪十種事
佛子야如來應正等覺이轉大法輪에有十種事하니 何等이 爲十고一者는 具足淸淨四無畏智요
二者는 出生四辯隨順音聲이요
三者는 善能開闡四眞諦相이요
四者는 隨順諸佛無礙解脫이요
五者는 能令衆生으로 心皆淨信이요
六者는 所有言說이 皆不唐捐하야 能拔衆生의 諸苦毒箭이요
七者는 大悲願力之所加持요
八者는 隨出音聲하야 普徧十方一切世界요
九者는 於阿僧祗劫에 說法不斷이요
十者는 隨所說法하야 皆能生起根力覺道禪定解脫三昧等法이니 佛子야 諸佛如來가 轉於法輪에 有如是等無量種事니라
“불자여, 여래 응공 정등각이 큰 법륜을 굴리는 데 열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하나는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지혜를 구족하게 청정함이니라.
둘은 네 가지 변재를 따르는 음성을 냄이니라.
셋은 네 가지 참이치를 잘 열어 밝힘이니라.
넷은 모든 부처님의 걸림 없는 해탈을 순종함이니라.
다섯은 중생들로 하여금 마음이 다 깨끗하게 되고 믿게 함이니라.
여섯은 말하는 것이 모두 헛되지 않아서 중생들의 모든 고통의 화살을 뽑아내느니라.”
일곱은 크게 가엾이 여기는 원력으로 가지(加持)함이니라.
여덟은 내는 음성마다 시방의 일체세계에 두루함이니라.
아홉은 아승지겁 동안 법을 설하여 끊어지지 않음이니라.
열은 설하는 법을 따라서 오근(五根)과 오력(五力)과 칠각분(七覺分)과 팔정도(八正道)와 선정과 해탈과 삼매 등의 법을 모두 내느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께서 법륜을 굴리시는 데는 이와 같은 한량없는 일이 있느니라.”
*
여래(如來)의 전대법륜(轉大法輪)
*
여래의 전대법륜이라, 부처님의 깨달음은 뭘 하시기 위해서 했는가? 법문을 굴려야 된다.
도가 성숙하면 감로의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다.
법문을 설하는 본체가 있고. 황금덩어리가 있으면 그 금덩어리로 가락지를 만들고 목걸이를 만들고 금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장식품을 만들고 각각 쓰임새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을 작용이라고 한다.
완전한 진심을 마음의 본체, 체성이라고 한다.
법체 본성 체성 진성심심 진성이라하기도 하고 법성이라 하기도 하고, 자성이라고 하기도 하고 불성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성의 입장에서 똑같은 말씀이다.
성을 나누어서 다른 곳으로 가는 걸 갖다가 법이라고 한다.
눈으로 가면 색법이 되고, 소리로 가면 성법이 되고 색성향미촉법으로 그런 것을 우리 현대식으로 문화라고 한다.
눈으로 가면 미술계, 귀로 가면 음악계, 입으로 가면 식당계 아니고 음식계 음식문화계, 머리로 가면 사상계 주의주장이 이렇게 형성이 된다.
그게 전부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열 가지 힘이 충만한 까닭으로 불법에 전하는 그 인연 따라 흐를 것이다. 불수자성수연성이다.
*
여래(如來)의 전법륜십종사(轉法輪十種事)
*
불자(佛子)야: 불자여
여래응정등각(如來應正等覺)이: 여래 응공 정등각이
전대법륜(轉大法輪)에:법륜을 굴릴 때는
유십종사(有十種事)하니: 열 가지 일이 있는데
하등(何等)이: 그 열 가지가
위십(爲十)고: 무엇이냐
일자(一者)는:첫째는
구족청정사무외지(具足淸淨四無畏智)요 :청정한 네 가지 무외 두려움이 없는 지혜를 원만히 갖추는 것이요
이자(二者)는:둘째는
출생사변수순음성(出生四辯隨順音聲)이요:네 가지 무외 사무외지라고 했지만 사무외변은 제9지 심자재지부터 형성이 된다. 선혜지라고 하잖는가.
아주 선혜 탁월한 지혜가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게 막힘이 없다. 말에 막힘이 없고 뜻에 막힘이 없고 그 형편에 막힘이 없다.
삼자(三者)는:셋째는
선능개엄사진제상(善能開闡四眞諦相)이요: 사성제의 진실한 모습을 잘 열어 밝히는 것이다. 이 사성제가 증폭돼서 사성제의 완성을 우리는 사홍서원이라고 한다.
사성제 처음엔 고제 고통을 받는 것은 중생이다. 중생이 과보를 받는 것, 그래서 중생무변서원도가 고제의 완성이다.
집성제를 번뇌무진서원단이라고 한다.
고통을 받는 것은 중생이기 때문에 중생무변서원도가 사성제중의 고성제의 완성이다.
도성제는 팔정도 ‘정법을 닦겠습니다’ 법문무량서원학으로 완성이 된다.
그리고 열반은 불도무상서원성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멸성제에서 증폭돼서 완성이 된다.
사성제는 나중에 사홍서원으로 귀결이 된다.
사자(四者)는: 넷째는
수순제불무애해탈(隨順諸佛無礙解脫)이요:부처님의 걸림없는 해탈을 잘 따라 수순하는 것이다.
묶어 놓으면 묶어놓은 대로 행복해야 되고, 풀어 놓으면 풀어놓은 대로 행복해야 된다.
아만이 많으면 묶여있으면 풀렸으면 싶고, 풀어놓으면 다시 조용하게 묶였으면 싶다.
무심하면 침대가 좁든지 넓든지 그냥 모르잖는가? 근데 생각이 많으면 내 입장에 맞춰서 침대가 작다. 그리고 또 작은 사람은 침대가 크다고 한다.
오자(五者)는:다섯 번째는
능령중생(能令衆生)으로: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심개정신(心皆淨信)이요: 마음을 깨끗한 신심을 내게 하는 것이다. 아이고, 이건 정말 힘든 일이다.
절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벼룩이 서말을 데리고 가지, 중 세 명을 못 데리고 간다.’
저는 처음에는 벼룩 세 마리인 줄 알았다. 서 말이다. 벼룩이 서말이면 얼마나 많이 뛰겠는가.
벼룩이 서 말보다 더 날뛰는 게 스님들이다 했는데, 스님들 뿐만 아니라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심개정신이라. 모든 사람을 심신내게 한다.
육자(六者)는:여섯 번째는
소유언설(所有言說)이: 모든 말씀이
개불당연(皆不唐捐)하야: 당나라 당자는 황당할 당자다.
헛되지 않다 이 말이다. 모든 말을 함부로 허투로 하지 않는다. 오직 한 마디, 한 마디 했을 때
능발중생(能拔衆生)의 :능히 중생의
제고독전(諸苦毒箭)이요: 괴로움과 독화살의 번뇌를 뽑아내는 것이다. 저는 이 반대 같다. 사람들한테 화살을 팍팍 못 박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할 때가 많다.
타고난 성질 머리가 지적법사다. 남 지적하는 걸 잘하고 전에는 안 그랬는데 강사하면서 자꾸 잔글씨를 많이 봐서 사람이 잔소리가 많아진 것 같다. 사전 같은 것은 보시지 말기 바란다. 큰 글씨만 보라. 산만한 것을 보라. 작은 글씨 많이 보는 사람들은 피곤하다. 쪼잔하다.
이제는 좀 마음이 넓어졌는가 제가 안경을 이거 쓰고 있는데 아무 안경이나 잘 맞는다.
저 스님이 안경 쓰는 거 내가 껴도 맞고, 이 스님이 쓰는 것도 맞다.
여러분들은 안경 도수 하나밖에 안 쓰잖가.
저는 이 도수도 맞고 저 도수도 다 맞는다. 그걸 우리는 천수천안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님은 자기 안경이 없다. 중생이 안경을 쓰면 그 안경으로 다 같이 바라봐 주는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이 못 될 바에는 관음재일날 태어나면 된다. 보니까 누구 생일이 관음재일이다.
칠자(七者)는:일곱 번째는
대비원력지소가지(大悲願力之所加持)요:큰 자비의 원력으로 가피하여 유지되는 것이다.
팔자(八者)는:여덟 번째는
수출음성(隨出音聲)하야:내는 음성이
보변시방일체세계(普徧十方一切世界)요: 시방의 모든 세계에, 보변시방 일체 세계에 두루 퍼진다. 일체 세계 널리 퍼진다는 것은 자비심이다. 귓속말하는 사람은 아주 야비한 사람이고 자비의 반댓말은 야비라.
*
구자(九者)는:아홉 번째는
어아승지겁(於阿僧祗劫)에:아승지겁동안
설법부단(說法不斷)이요: 설법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경전하는 거나 여러분들 공부하시는 모습이나 그 많은 세월 동안 몇 년이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왔지 않은가.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글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자주 쓰셨던 글이다.
원래 대매 법상선사의 법문이잖은가.
“스님 큰 길은 어떻습니까?”
“응 큰 길에는 말도 다니고 수레도 다니고 사람도 다닌다.”
“그거 말고요.”
“대도는 문이 없다.”
이렇게 해서 대매 법상선사가 어느 산에서 계시다가 도를 깨치고 바깥에 나올 이유도 없이 가만 계시니까 제자들이 찾아와서 물었다.
“스님 여기 계신 지 얼마나 됐습니까?”
“봄에 푸르다가 겨울에 누러니 낙엽지다가 얼마 지났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여러 번 선어록 같은 데서 봤는데 자기 갈 길을 잊어버린 사람, 새가 나뭇가지가 좋아 앉아서는 더 이상 먹이를 찾아서 나는 생각을 잊어버린 사람, 이 정도쯤 됐을 때 우리가 이렇게 같이 화엄경을 공부하고 논할 수 있지 않겠느냐.
더 이상 갈증이 없는 사람, 이무소득고라.
얻을 바가 없는 사람, 요게 됐으면 좋겠다.
저는 여기서 중강으로 앉아 있지만 저보다 연세드신 분들, 법납이 60년 70년 되신 분들이 계시잖는가.
굉장히 울림이 크다.
제가 법문하는 것보다 강의 하는 게 아니고 가만 계시는 그 강의가 저한테 울림이 더 크다.
건강을 유지하시면서 그 오랜 세월 동안에 계속 평생을 화엄경하고 같이 가신다는 그 자체가 저는 이렇게 건강해 보이시고 존경스럽고 그렇다.
십자(十者)는:열 번째는
수소설법(隨所說法)하야: 설하는 법에 따라서
개능생기근력각도선정해탈삼매등법(皆能生起根力覺道禪定解脫三昧等法)이니: 중생에게 근력과 깨달음의 길 각도 부처님의 길, 각도 부처님의 길 아닌가. 불도.
선정해탈삼매등법을 모두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불자(佛子)야:불자야
제불여래(諸佛如來)가:모든 제불여래께서
전어법륜(轉於法輪)에 :법륜을 굴리실 때는
유여시등무량종사(有如是等無量種事)니라 : 이와 같은 한량 없는 종류의 일이 있는 것이다. 무량 종의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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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_()()()_
‘부처님은 모습이 없으나 중생을 위하여 일부러 개금으로 모습을 나타내주고 부처님은 음성을 들을 수 없으나 소리가 없지만 중생들의 염불소리로 음성을 새겨 넣는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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