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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bon sens)1)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
근대성(modernity)이라는 시대 정신을 열었다는 데카르트,
그가 비록 익명이지만 오랜 망설임 끝에 처음으로 세상에 내어 놓은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hode)』은 이 말로 시작하고 있다.
누구나 그렇지만,
특히 소심할 정도로 글쓰기에 예민했던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자신의 첫 번째 책의 원고를 앞에 두고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때 그는
"잘 판단하고, 참된 것을 거짓된 것에서 구별하는 능력,
즉 일반적으로 양식 또는 이성(raison)으로 불리는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천부적으로 동등하다"는
명제를 과감하게 선택한다.
천재의 세기로 일컬어지는 서구의 17세기,
데카르트는 이 시대를 연 핵심 인물이었고,
이 시대의 정신을 만천하에 천명한 것이 『방법서설』이었다.
중세라는 천년의 시간 속에
서구의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정신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인간보다는 신이,
이성보다는 은총이,
현세보다는 내세가
강조된 중세의 숙면을
휴머니티의 부활,
르네상스라는 노래가 서서히 일깨우지만
과거의 타성은 그리 쉽게 제거되지 않는 법이고,
이전의 권력 메커니즘은 여전히 현실 속에서 미세하게 작동한다.
르네상스가 인간성의 부활을 선언한다고 해서
1,000년 동안 전승된 사유와 행위의 규범을
결코 단번에 바꿀 수는 없다.
도처에 감시망이 깔려 있고,
많은 것이 감시와 통제에 단죄된다.
브루노가 화형당하고
갈릴레이가 재판에 회부된다.
수많은 천재들이 활동한 17세기는
그래서 혼돈의 시기고 위기의 시기이다.
여기서 위기를 기회로 삼고 혼돈에 빛을 주려는 천재들의 역량이 발휘된다.
인간의 이성이 동등하게 부여되어 있다는
데카르트의 주장도
감시와 통제, 혼돈과 위기 속에서 나온 절체절명의 외침이다.
『방법서설』은
보편적 방법을 통해
확실한 지식, 즉 진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야심찬 계획이
구체화되어 있는 책이다.
4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모더니티의 정체성과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논의가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데카르트가 남긴 철학적 정신의 중요성을 입증해준다.
데카르트는
참과 거짓을 식별하고
사태를 잘 판단하는 능력을 이성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제 신의 이성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이성이다.
모든 인간은
이런 이성 능력을 똑같이 갖고 있다.
많고 적은 은총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평등한 이성,
그래서 인간의 평등성을 주장한다.
주인도 노예도 모두 동등한 정도의 이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모두 이성을 통해
참과 거짓을 식별하여
진리를 인식할 수 있고
잘 행동할 수 있으며
그래서 잘 살아갈 수 있다.
좋은 삶은
더 이상 신의 보살핌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이성에게, 자신의 이성에게 달려 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영위할 수 있다.
은총의 빛, 계시의 빛이 아닌
자연의 빛, 이성의 빛으로
어둠을 밝힐 수 있다.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아가는 인간 삶의 여정은
이제 인간의 몫이다.
스스로 어둠의 길을 밝혀야 한다.
굴레에서 벗어난,
그러나 의지할 데 없이 홀로 길을 떠나야 하는 인간은
고독하고 불안하다.
자유와 고독은 동시에 발생한다.
평등한 이성은
자유와 두려움을 수반한다.
자연의 노예나 자연의 일부가 아닌 '자연의 주인'으로서
데카르트적 인간이 숙명적으로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데카르트는 그러나 이성의 평등성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을 잘 사용할 것을 주문한다.
"좋은 정신을 지니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공평한 이성이라는 주장이
神 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관심의 장을 옮긴 것이라면,
이성의 올바른 사용은
『방법서설』의 주제와 직결된다.
이 책의 원제목이 『
이성의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서설』인 것도 그 때문이다.
데카르트에게 철학의 임무는
이성을 그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활용해서
절대 확실한 진리를 발견하고,
이것을 토대로 잘 행동함으로써
후회 없는 삶, 만족한 삶을 영위하는 데에 있다.
"천천히 걷되
곧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과
"뛰어가되
곧은 길에서 벗어나는 사람" 중에서
데카르트는 전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아무나 천천히 곧은 길을 걸어갈 수는 없다.
이를 위해서는 '방법(methodus)2)'이 있어야 한다.
청년 시절에
나는 어떤 길을 발견했는데,
이 길을 따라 몇몇 고찰들과 격률들에 이를 수 있었고
또 이로부터 하나의 방법을 만들어 내었으며,
이 방법을 통해
내 인식의 폭은 점차 증대되어 마침내 평범한 내 정신과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애가 허락하는 최고의 정점에까지
조금씩 내 인식이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미 이 방법을 통해 여러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실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주었고,
그래서 "인간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정말로 좋고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 제2부에서 방법이론을 제시한다. 이것이 사실 이 책의 핵심 주제다. 나머지는 모두 다른 이야기이다. 하지만 중심은 여전히 방법론이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규칙이 기존의 논리학3), 고대의 해석 및 근대의 대수에서 착안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 것의 장점을 겸비하면서 그 결함을 갖지 않는 어떤 다른 방법을 발굴"했고,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이른바 '명증성의 규칙', '분해의 규칙', '합성의 규칙', '열거의 규칙'이라는 네 가지 규칙이다.
'명증성의 규칙'은 명증적으로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분해의 규칙'은 검토할 어려움들을 각각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분해할 것을, '합성의 규칙'은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단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도달할 것을, '열거의 규칙'은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사를 어디서나 행할 것을 요구하는 규칙이다.
사실 이 네 가지 규칙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데카르트의 시대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던 규칙들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갖고 있는 장점은 결코 간과될 수 없다. 그것은 방법을 위한 방법, 논리를 위한 논리가 아니라, 이성을 지도하기 위한 방법, 제반 학문에서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 행복한 삶과 결부된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대체로 모르고 있는 진리를,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진리를 매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주는 만족감이란 내 정신을 온통 채워 버려 다른 일이 하찮게 보일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1637년 『굴절 광학』, 『기하학』 및 『기상학』과 더불어 형식적으로는 이 세 주제의 시론으로 출간된 『방법서설』은 방법의 필요, 내용, 효과 등에 대해 위와 같이 진술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집필 연도가 1628년경으로 추정되는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Regulae ad directionem ingenii)』에 더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은 미완의 논고이고, 출판용으로 집필된 책도 아니다. 청년 데카르트가 기존 학문에 대한 개혁의 뜻을 품고 자습용으로 지은 것이다.
『방법서설』에 소개된 네 가지 규칙은 이 책의 내용을 압축해서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방법서설』은 그리 대단한 책이 아닌 셈이다. 이 책은 방법론 이외에 소년 데카르트의 학문 여정, 그가 구상하고 있는 형이상학 및 자연학도 포함한 것으로서 소심한 데카르트의 세상 보는 눈이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우선 『방법서설』은 프랑스어로 집필, 익명으로 네덜란드 레이덴에서 출간된 책이다. 그가 왜 익명으로, 프랑스가 아닌 네덜란드에서 이 책을 출간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익명으로, 타국에서 출판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세상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그는 1633년에 『세계 및 빛에 관한 논고』를 집필했지만 갈릴레이의 유죄판결로 출간을 보류한 적이 있다. 시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또 『방법서설』의 출간에 앞서 그는 영원한 친구 메르센 신부에게 보낸 서신에서 세상 분위기에 대해 많은 자문을 구한다.
이와 같은 그의 소심함은 1641년에 출간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을 당대 학문 권력의 핵심인 소르본 신학부에 헌사하는 것에서 절정에 달한다. 『방법서설』이 당시 학자의 언어인 라틴어가 아닌 불어로 씌어진 이유에 대해 데카르트는, 이 책의 독자는 학자가 아니라 일반인이고 선입견에서 물들지 않은 일반 대중들만이 이 책의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러한 것들 외에도 『방법서설』은 분명 세상 떠보기용으로 출판되었음이 틀림없다.
조국이자 학문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를 떠나 타국의 조그만 도시에 은둔해 있던 데카르트, 돌이 갓 지나 어머니를 잃고 유모 손에서 자라난 탓에 허약한 육체와 소심한 정신의 소유자인 데카르트는 세상이, 특히 기존 학계가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해석할지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논고'가 아닌 '이야기' 또는 '우화'라고 말한다.
나는 이 글을 하나의 이야기로서 혹은 - 당신들이 원한다면 - 하나의 우화로서, 즉 이 안에는
본받을 만한 것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것도 많이 있을 수 있는 글로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세상 떠보기의 진면목은 『방법서설』의 제4부와 제5부에서 드러난다. 제4부는 형이상학에,
제5부는 자연학에 관한 내용이다. 제5부는 이전에 집필한 『세계 및 빛에 관한 논고』에 들어 있는 내용을, 제4부는 곧 출간될 『성찰』의 내용을 맛보기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세계 및 빛에 관한 논고』는 데카르트가 출간을 보류할 정도로 그 내용이 시류에 맞지 않는
것이었고, 『성찰』은 극도의 조심과 전략 속에 출간된 책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세상 떠보기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조짐은 『방법서설』 4부를 시작하는 문구에 이미 들어 있다.
이 나라에서 내가 행한 최초의 성찰들을 독자에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형이상학적이고 또 거의 일상적인 것이 아니어서,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을 자신의 형이상학을 기꺼이 제시한다.
이것이 논란을 야기한 문제의 저작 『성찰』의 예고편이었다.
그러므로 『방법서설』은 데카르트가 세상에 선보인 최초의 작품답게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학문'을 가능케 하는 방법 이론뿐만 아니라 이어서 출간될 후속 작품의 예고편이라는 전략적 성격이
강한 책이다. 은밀하고도 과격하게 '나'라는 1인칭 주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이 걸어 온 인생의 여정을 그린 자전적 형식의 책이 『방법서설』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또 다른 철학자들의 작품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일상적인 쉬운 용어로 난해한 철학을 설명하는 책이 『방법서설』이다.
그러나 이 책의 특징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니, 심하게 말하면, 이 책의 철학적 의미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이나 형이상학, 자연학의 개요를 알려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그의 다른 텍스트에 더 자세히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방법서설』만이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철학 사상이 아니라 그의 '철학함'이다.
『방법서설』은 데카르트의 철학 기행문이다. 이것은 때로는 아주 가볍게 또 때로는 피상적으로
독서된다. 주로 이 책의 제1부에 나타난 데카르트의 청년 시절은 또 다른 철학 거리를 보여 준다.
그것은 허약한 데카르트의 색다른 면모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것이다. 현재의 안락함에
안주하는 것, 관습과 타성에 매몰되는 것은 일상의 것이다. 그래서 비난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나 개혁과 혁명은 그로부터 나올 수 없다. 혁명아는 시대의 반항아고 풍운아이다.
풍운아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학문', '놀라운 학문'을 꿈꾼 데카르트적 혁명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돈 청년 시절에 이미 싹트고 있다.
데카르트가 자랑삼아 말하듯이, 그는 당대 석학들이 운집해 있던 라 플레슈 예수회대학에서
공부했다. 가능한 모든 학문들을 철저히 배웠다. 아주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았고, 원하면
학교에 남아 편안한 학자의 길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련 없이 그 길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무지하다는 것만 점점 더 발견될 뿐
그 어떤 이득도 없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많은 의심과 오류에 빠져 곤혹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거친 광야로 나아간다.
나는 내 스승들로부터 해방되는 나이가 되자 학교 공부를 집어치워 버렸다.
그리고 내 자신 속에서 또는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학문 외에
어떤 학문도 찾지 말자고 다짐했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으로의 전회는 "온갖 기질과 신분을 지닌 사람들을 방문하면서
갖가지 경험을 거듭하며, 운명이 나에게 몰아치는 여러 사건들 속에서
내 스스로를 시험"함을 의미한다. 그에겐 "학자들의 사색이란 아무런 결과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이며, 또 그것이 상식에서 벗어날수록 더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기지와 기교를 부리기 때문에 단지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20세의 청년 데카르트는 저잣거리로 들어간다. 여기서 깨닫는다.
"이로써 선례와 관습을 통해 확신하게 된 것을 너무 굳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우리 자연의 빛을 흐리게 하고 이성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는 숱한 오류에서
차츰 벗어나게 되었다." 세상이라는 책에서 얼마간의 깨달음을 얻은 후에,
그는 다시 "자신 속에서의 연구"로 나아간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 속에서 공부하고 얼마간의 경험을 쌓는 데 몇 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
나는 어느 날 나 자신 속에서 연구하기로, 또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데
정신의 온 힘을 기울이자고 결심했다.
'자신 속에서의 연구', 즉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데카르트는
"하루 종일 따뜻한 난로방에 들어앉아 편안한 상념의 시간"을 가진다. 이른바 '난로방의 사색'이다. 여기서 그는 한 명의 건축가가 완성한 건물이 여러 사람들이 개조한 건물보다
더 아름답고 잘 정돈되어 있음을, 또 한 명의 기술자가 자기 구상대로
벌판에 세운 규칙적인 도시가 옛 성곽 도시보다 균형이 더 잘 잡혀 있음을 확신한다.
나아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이 사람의 견해를 따라야겠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이제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이끌어 가야 한다"
는 것을 직감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어둠 속을 홀로 걸어가는 사람처럼 천천히 나아가고,
모든 것에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자고 다짐"
하는 것뿐이다.
이 어둠의 길에서
그는 모든 학문의 원리는 철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하지만 철학에서
아직 아무런 토대도 발견되지 못하고 있음을,
그래서 철학의 확실한 원리를 설정하는 일에 진력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이 깨달음에 대한 실현 작업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
이기에 좀더 성숙한 시기의 수행 과제로 넘긴다.
20세에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 속에서의 공부',
23세에 다시
'자신 속에서의 연구'로는
학문 개혁의 꿈이 실현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난로방'에서 나와 다시 수행의 길을 홀로 떠난다.
이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
지금까지 틀어박혀 이 모든 생각을 떠올린 난로방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해 겨울이 가기 전에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났다.
그 후 9년 동안
세상에서 연출되는 연극 속에서
연기자보다는 관객이 되려고 노력하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세상이라는 연극 속으로 다시 들어가
구경꾼의 입장에서
9년의 세월을 방랑한 끝에
데카르트는
"각각의 문제마다 의심스럽고 잘못하기 쉬운 점들을 반성"하고,
이전에 스며들어 있던 오류에서 차츰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32세의 데카르트는
방랑의 삶을 접고
"대도시의 편의성을 만끽하면서도
외진 사막에 있는 것처럼
유유자적하는 은둔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에 마지막 자리를 튼다.
이곳에서 8년을 칩거한 끝에
그가 40세 되던 1636년에 집필한 책이 바로 『방법서설』이다.
『방법서설』은
20세의 데카르트가
학교에서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으로의 전회,
23세에
'세상이라는 커다란 책'에서
'자기 자신 속'으로의 전회,
그리고 9년에 걸친 세상에서의 방랑의 산물인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방법에 대한 것만도,
형이상학이나 자연학에 대한 세상 떠보기용으로 내놓은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이 책의 원제목으로 생각한
"우리 본성을 더 높은 단계로 승화시킬 수 있는
보편학에 관한 기획"에 관한 책이고,
데카르트의 철학 여정이 녹아 있는 책이다.
독자는 이 책에서,
아니 오직 이 책에서만
그의 철학적 수행의 길이 얼마나 고독하고 험한 것이었는지,
그가 꿈꾼 학문 개혁이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는지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데카르트적 철학의 길은
세상에 반항하고 고행을 요구했지만
결코 굴하거나 거부하지 않았고,
의식의 어떠한 애매 모호성도 용납하지 않은 채
항상 명증성만을 요구했으며,
사변적 이론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종국적으로는 현실적 평안의 삶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는 것이
서구 근대의 여명기를 연 데카르트의 진정한 강인한 모습일 것이다.
1. 데카르트는
모든 지식을 수학적 확실성을 지향하는 모델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수학이
모든 학문의 모델이라는 인식은
고대 그리스, 중세 스콜라주의에서도 발견된다.
그렇다면 데카르트 사유가
이전의 지식 형태와 결정적인 차이점을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 사유에서
수학이 순수 이성적 존재를 그 학적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모든 학문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다면,
데카르트에게서 수학은
가장 완성적인 '인식방식'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모든 학문의 모범이다.
즉, 데카르트 철학의 특징은
방법적 사유에 있으며,
모든 인간의 지식체계를
수학적 확실성 위에 세우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보편학(mathesis universalis)의 이념이며,
기존의 스콜라주의와 차이를 보이는 점이다.
2. '자연의 지배자와 소유자로서의 인간'은
근대 사유에서 핵심적 특성 가운데 하나다.
데카르트 철학은 이러한 근대 사유의 지배적 특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데카르트 철학은
근대 세계 지배적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다.
자연(세계)을 수학적으로 기초된 방법적 연구의 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인식을 통한 인간(주체)의 세계 지배 가능성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근대 학문의 비약적 발전을 일구어냈고
동시에 근대의 역사적 정신, 즉 '새로움'과 '진보'에 대한 확신을 낳았다.
『방법서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