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아 길을 떠나다 꿈을 이루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당위성을 찾아야 했다. 서른을 맞으면서 “꿈과 행복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은 내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이 화두에 대한 답을 길 위의 경험들을 통해서 찾고 싶었다. 때로는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으니까. 진정한 꿈과 행복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왕궁을 떠났을 때 부처님의 나이는 스물아홉이었다. 그렇게 집을 떠난 부처님 역시 길 위에서 깨달음과 행복을 찾지 않았던가. 우리 집안은 전체가 불교를 믿어왔다. 중학생 때부터 부모님이 한결같이 참선 수행을 단정하고 정성스럽게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대학생이 된 후 자연스럽게 참선 수행과 인연을 맺었다. 참선 수행을 통해 나는 참으로 소중한 인연을 맺었고 나 자신의 마음자리와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결국에는 내 안에 모든 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길을 떠난 이유는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은 호기심과 모험 때문이었다.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 도착하다 미약한 불교 수행과 이론만 간직한 채 출발한 나의 여행은 티베트, 네팔과 인도의 국경지역 소나울리(Sonauli)를 넘어 바라나시(Varanasi)에 닿았다. 인도에 들어오면서 나는 내내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비록 신실하지 못한 불자이긴 했지만 부처님이 계셨던 이 나라에 지금 내가 있다는 기쁨과 흥분이 훨씬 컸다. 나는 부처님과 관련된 곳들을 방문해 보는 여정을 계획했다. 신성한 강 갠지스(Ganga)가 흐르는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는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바라나시는 바로 부처님이 처음 설법을 하신 녹야원(현재의 사르나트Sarnath)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2500년을 거슬러 현재와 역사가 맞닿은 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로 결정하자 마음이 너무나 벅차오르면서 경건해진다.
▲ 사르나트(Sarnath)
사르나트에서 느낀 벅찬 감동
사르나트에 가려고 마음을 먹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려는데, 일본 친구 한 명이 자기도 그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오토릭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인도에서 택시보다 흔히 만날 수 있는 교통수단은 요란한 소리를 내는 소형엔진을 단 삼륜차, 바로 오토릭샤다. 일본인 친구와 함께 혼잡한 바라나시 거리를 달려 12km 남짓 떨어져 있는 사르나트로 향했다. 인도에서는 무더운 시기에 해당하는 3월이라 온 몸에서 후덥지근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는데, 사르나트에 도착하자 뭔가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청명하고 맑아지는 기분. 그렇게 혼돈과 번잡 그 자체인 바라나시에서 불과 몇 십 분 떨어진 곳에, 그것도 카오스의 나라인 인도에 이렇게 정갈한 곳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사르나트의 다른 이름은 녹야원(鹿野園). 부처님께서 35세에 깨달으신 이후 첫 설법을 하신 곳이다. 무려 높이 34m에 이르는 다멕 스투파를 따라서 한 바퀴 걸어 본다. 그렇게 2500년 전과 현재가 맞닿는다. 이 사이에 이 곳, 사르나트에서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이 태어나고, 사랑하고, 진리를 찾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다들 삶이라는 장을 경험했겠지. 그 수많은 사람들을 거슬러 2500년 전과 지금의 내가 한 공간에서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혹시나 내가 부처님이 계셨던 당시에 이 주위를 스쳐 갔던 촌부만 되어도 얼마나 큰 복일까 라며 잠시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 인연으로 지금 내가 이곳을 다시 찾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정갈한 신도들과 순수한 아이들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스리랑카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신도들이 하얀 옷을 정갈하게 차려 입고 차분히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부처님 계실 시에 이렇게 가르침을 받았던가 싶다. 그렇게 소소하게 시작된 가르침이 전 세계에 걸쳐, 몇 천 년의 시간에 걸쳐 개인 개인에게 닿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 그나저나 역시 인도는 인도다. 호기심 많고 장난기 많은 아이들에게 부처님의 첫 설법지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볼 때마다 빠져들 것 같은 검고 큰 눈을 가진 어린 아이들은 외국인들과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카메라가 궁금했나 보다. 한 치의 거리낌도 섞이지 않은 순수함. 어쩌면 먼 길을 돌아서라도 우리가 다시 찾고 싶어 하는 본 모습은 이런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인지도 모른다.
▲ 보드가야(Bohdgaya)
값싼 침대칸 기차를 타고 찾은 보드가야
사르나트에서의 벅찬 감동을 간직한 채 아주 싼 가격에 잠을 자면서 이동도 할 수 있는 인도 기차, 슬리퍼 클래스(sleeper class)를 타고 보드가야로 향했다. 기차에 앉아 창밖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그 속도에 맞게 마을과 사람들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는 시간. 산들산들한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는 시간. 내가 인도 여행 중 정말 사랑하는 시간이다. 단순히 인도를 바라보는 외국인 여행객이 아니라, 아주 조금은 그 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가격과 청결도 면에서 모두 적절한 미얀마 사찰의 숙소에 머물기 위해 가던 길 위에서 나는 비하르 주의 실상을 조금은 접할 수 있었다. 비하르(Bihar) 주는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축에 드는 곳이다. 지나왔던 델리, 바라나시와는 또 달리 옷차림에서부터 풍족하지 않은 경제적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보드가야는 개발이 전혀 되지 않은 허허벌판의 시골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느껴지는 사람들의 밝음, 환한 미소는 다른 곳에서 쉽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처음에 3일을 계획하고 방문했지만, 이내 기간은 일주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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