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가 다시 들먹이는 어룡동 뒷산에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묻은 ‘레오’를 떠올리니, 그 놈이 ‘레오’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집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어리숙하니 커다란 슬픈 눈과, 얍삽한 잔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그 멍청함과, 지금은 ‘제니’라는 꼬봉을 괴롭히며 권좌를 누리는 ‘예삐’란 놈이 자기 앞에 불쑥 나타났을 때 한 순간 주인을 바라보며 짓던 그 원망의 표정이며, 표독스런 작은놈에 얼마지 않아 순순히 서열 뒷전으로 물러서, 항상 형. 아우 그 서열을 지켜 먹이를 주는 우리 집안 식구의 배려가 아니면 제 밥그릇조차 스스로 챙기지 못할 위인으로, 결국 이빨이 빠져 빠득빠득 먹이도 제대로 씹지 못하고 관절염을 앓는지 몸까지 꾸부정해져 뒤뚱거리다 주인이 여행에서 돌아오는 마지막 한 순간을 더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은 숨을 거둔, 그 놈이 새삼스럽다.
‘레오’가 가고 그렇게 괴롭히던 ‘예삐’란 놈이 식음을 폐하고 기력을 잃어 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하염없이 먼 산만 응시하다가, 밤이 되면 우우∼ 울어대는 통에 할 수 없이 지금의 ‘제니’라는 이름표를 단 철부지 강아지새끼를 들여놓았더니 그제야 활기를 회복하고 작은 놈을 군기 잡으며 평상으로 돌아왔다. 용주가 되풀이해서 듣는 그 곡을 내가 다시 들어보니 아무리 지금 불어도 그 처연한 느낌을 살릴 자신이 없다. 옛날.....
그놈 이름은 ‘메리’였다.
영어로 ‘Mary’인지 ‘Merry’인지 아직도 불분명하다. 그 당시 동네에 몰려다니든 집에 묶여있던 개들은 거의가 똥개였고, 고작해야 세파트 피색은 묻어 있으나 덩치가 좀 있을 뿐 똥개라 불러도 전혀 섭섭지가 않을 잡종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다들 정체불명의 외래어 이름들은 하나씩 갖고 있었다. ‘워리’도 있고 ‘독구’도 있고. 그것이 명사든 형용사든 상관이 없었다. 황당하기로 치면 ‘독구’가 으뜸이 아닐까. 분명 dog의 음역이 분명한데 ‘독구야’라 부르는 것은 ‘개야’라 부르는 셈이니... 가장 흔해빠진 ‘Merry’나 ‘Happy’ 같은 이름은 명사도 못되는 것이 왜 ‘늑대와의 춤을’ 그 영화에 나오는 ‘주먹 쥐고 일어서는’이란 이름의 인디언처럼 버젓이 이름 행세를 했고 동네 전체에 동명이견(同名異犬)들이 수두룩했다. 아무리 서양투의 이름 하나씩을 달고 다녀봤자 짖는 소리에는 똥개의 발성 그대로가 담겨있고, 아름다운 이름의 ‘Mary’도 예외 없이 죽을 때는 감나무에 내걸리거나, 철뚝 선로에 목이 죈 채 흠씬 두들겨 맞아 생을 마감하기는 여느 똥개나 마찬가지였다.
시골 면단위 가로변에도 ‘애견센터’가 버젓이 성업 중인 걸 보면, 사람들이 애완동물 하나쯤은 다들 끼고, 물고 빠는 형국이 된 듯한데, 요즈음과는 달리 그 당시 어른들은 어린 우리 눈에는 참 무심해보였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어서도 그랬겠고, 밤낮으로 밭일 논일 바쁜 중에 언제 집안의 개새끼한테 신경 쓸 겨를이나 있었을까. 먹고 남아야 밥찌꺼기 냄새나 겨우 맡아볼 수나 있지, 집안의 잔반이 쉽게 나오는 시절이 아니니 묶여있는 개한테 끼니라고 할 것이 없어 굶기 일쑤였다. 개집 근처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개 밥통은 항상 비어있었고, 허기를 밥통이나 이리저리 공 굴리듯 차고 다니며 달래보다 마침내는 하늘을 향해 ‘으어∼, 어우∼,’ 기약 없는 희망을 실어 보냈던 것이다.
지금도 개를 바라보는 내 안목이라는 것이 그 당시의 것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요즈음 각양각색의 이름도 다양한 각종 개들이 엄청난 몸값으로 행세를 하고, 그들의 신기한 재주 또한 놀랍기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똥개에 익숙하다.
우선 무엇보다 똥개는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색깔이 까망이나 하양의 원색이 아니라 그답게 누러팅팅한 것에서 원색이 주는 단호하고 매몰찬 까다로움 같은 것이 없어보였다. 대개가 턱주가리 또한 뾰족하거나 불독처럼 우악스런 각이 지지 않고 펑퍼짐하면서도 적당한 너비의 순한 각을 이루고 있으며, 무엇보다 나는 똥개의, 특히 강아지 시절의 그 놈의 귀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물론 어린 시절에야 우리집 개가 똥개라는 것이 속상해고 창피해서 어떻게든 그 놈의 귀를 세파트처럼 하늘로 곧추선 귀로 만들어 보겠다고, 보일 때마다 그 놈의 귀를 위로 잡아당기곤 하다 여의치가 않아 나중에는 귀에 심을 박아 기워버릴까도 궁리해 본 적도 있긴 하다만, 그건 남의 눈을 의식해서이지 실은 나는 그 귀가 좋았다. 귀의 절반을 척하니 접어 앞으로 늘어뜨린, 얼짱의 기준이야 사람마다 다르다 치면 내가 개의 얼굴을 놓고 얼짱이라고 여기는 몇 가지 조건에 잘도 부합되는 것이니.... ㅉㅉ
눈은 어떻고... 유별나게 소 눈깔을 내가 좋아하는 이상취향은 두고라도, 똥개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나는 가슴이 저릿하다. 도대체 이 놈들은 이런 슬픈 눈을 갖고 어찌 살라꼬 세상에 낳을까 싶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 내 눈에도 하염없이 연민이 솟구치는 그런 눈과 함께 그렇게 굶겨 놓고도 주인이 버럭 소리를 내지르면, 원망은커녕 뒤로 꼬리를 뒷다리 사이로 감추며 몸을 사려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한편으로 그런 비루하게 못난 몸짓에 때로는 분노까지도 슬그머니 솟구치게 하는... 심지어 꼬마주인이 마음이 내켜 한 두어 번 머리도 쓰다듬어 주다가도, 괜한 심통에 냅다 발로 내질러 버리는 화풀이나 또는 알량한 먹거리를 손에 쥐고 똥개의 지능과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재주 따위를 강요하다, 기대에 못 미치면 퍼붓는 온갖 변덕스런 패악질을 고스란히 감당해 내는...
출처도 족보도 불분명한 강아지를 데려다 놓고, 다가오는 복날까지 이슬이라도 먹고 자라 훑어낼 고기 근수나 가늠하며 입맛을 다시는 어른들 눈에 유난히 그 똥개를 안고 뒹구는 얼라들을 보면 쯧쯧 혀를 차곤 했다. 그럼에도, 학교를 파한 시골의 오후, 그것은 적막 그 자체였다. 온통 사위는 고요하고, 눈에 띄는 것이 모두 변화 없이 언제나 익숙하여, 정신과 몸이 성장하는 속도와는 턱없이 정체되어 있는 환경은 무미와 지루함이었으니 마당 한켠에 묶여 자기가 보내는 송신에 빠르게 반응하는 개는 좋은 놀이친구가 될 수밖에... 그러나 때가 되어 어른들이 올가미로 목을 죄어 끌고 나갈 때, 속수무책 얼라들은 저 멀리 지켜보기만 했지 어른들에게 달려들어 그놈의 구명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그런 문화가 아니었다. 유난을 떨면 오히려 핀잔의 대상이 되거나 고추를 달고 심대가 그렇게 약해 무슨 큰일을 할까하고 꾸중을 들으면, 그러면 ‘고추’와 ‘큰 일’에 담긴 뜻의 위세에 기가 꺾기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고, 이집 개 아잉가... 아매도. 철뚝 넘어 이장집에 널자빠져 헐떡거리고 있는 개가...”
동네 어떤 아주머니가 대문을 밀고 들어서며 외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달리면서 신발을 수습했다. 그날, 한참 전에 쇠줄을 끊고 탈출을 단행했던 우리집 개 ‘메리’를 찾아 온 동네를 몇 바퀴를 돌다 지쳐 집에 돌아와 이러 저러 찾을 궁리를 하던 참이었다.
항상 집안에 묶어 가뒤놓았었다. 세파트 잡종개라 여느 똥개보다는 제법 몸집이 있는 놈인데, 개를 묶어놓으면 점점 사나워진다는 우려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밖으로 못나가게 튼튼하게 묶어놓았더랬다. 묶어 놓아야할 이유야 당연히 여럿이겠지만 나로서는 딱 한 가지. 전에 한 번 데리고 나갔다가 어디에선가 납작하게 굳은 똥덩어리를 덥석 물고 온 것이 아닌가. 그걸 목격한 순간 나는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아가리를 벌려 그걸 입에서 놓게 하려고 온갖 짓을 다했으나, 내 있는 힘껏 패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그 놈은 그 어떤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그 눈물어린 똥을 다잡아 물고는 그 물고를 견디어 낸 것이었다. 결국 똥 먹는 똥개임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는 최소한 똥개의 족보에 속해있어도 세파트 혈통의 고고한 피가 섞여있을 것이란 믿음이 한 순간 무너지는 순간이었으니 우리집개에 대한 그동안의 자긍심에 심대한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시치미를 떼고 동네 조무래기들에게는 그 사실을 끝끝내 숨긴 채, 나는 그 이후 그놈을 집 밖으로 절대 내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우리집 ‘메리’는 똥개가 아니라고 끝까지 뻥치고 다녔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철둑을 넘어 당도했을 때, 내 눈에 비친 그 놈은 완전히 죽어있었다. 잠긴 목소리로 나는 소리쳤다. ‘메리야∼“
잘못 보았을까. 내 눈에 잡힌 것은 지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을까 꼬리가 잠깐 가냘프게 흔들리다 숨이 빠져나가며 힘없이 늘어지는 모습을! 분명히...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외치고 흔들고 그 어떤 것에도 답신이 없었다. 죽은 것이다. 꼬마주인의 마지막으로 부르는 자기 이름에 끝끝내 마지막 목숨의 한 올을 아껴 답하고는 그렇게 숨을 놓은 것이다.
“아이고, 그 놈이 얼마나 미친 둣 들고뛰는지 기차 오는지도 모르고... 쯧쯧...”
내 몸 만한 덩치의 메리를 품에 안고 앙앙 울며 돌아오는 내 뒷전에 대고 이장님이 혀를 찼다.
동네 어귀로 한 발짝 들어서면 저 멀리 ‘컹!’ 하고 나를 맞던 그 소리도 이제는 그걸로 끝이었다. 내 헛된 허영만 아니었으면 최소한 복날 개잡는 집안은 아니었으니 그래도 지 수명은 보전했을지도.....
첫댓글 그래서 생명있는 것에는 함부로 정을 주지 말라고 했거늘...
그래도 나는 죽어도, 절대로 니한테서 정을 뗄 수가 없다.....
!
?
순서에 유의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