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독도 강치 넥타이가 화제였다. 새 정부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하는 자리에, 문재인 대통령은 주황빛 실크 넥타이를 매고 나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저 주황색 넥타이로 보고 지나쳤을 텐데,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넥타이까지 다시 조명을 받았나 보다.
문 대통령이 강치넥타이를 맨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과거 야당의 대표 시절에도 주요 행사에서 매었으며, 최근에는 야당 원내대표 회동에서도 강치 넥타이를 매어 대통령의 철학을 패션으로 나타내려는 노력이 느껴져 그 진정성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세심한 노력이 말로 하는 주장보다 때로는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여 잠든 역사의식을 깨어나게 한다. 실제로 강치넥타이는 완판 되었고, 강치와 독도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졌다.
이 넥타이의 이름은 ‘독도강치’라고 한다. 2012년 어떤 브랜드에서 독도주권 선포의 날을 기념해 ‘독도를 말하다.’ 라는 주제로 만든 제품이다. 넥타이에는 한때 독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바다사자 강치와 파도문양이 주황색 바탕에 가득 그려져 있다.
독도 강치는 물개의 일종인 바다사자로 18세기까지는 독도 인근에서 번식하였으나, 일본의 강점기 시절 일본 어부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포획되어 최근에는 거의 멸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에서는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홍보입간판을 세웠는데, 강치를 캐릭터로 만들었다고 한다. 독도의 수호신 강치가 놀라서 살아 돌아올 일이 아닌가.
독도는 한자로 ‘홀로 독, 섬 도’이니, 외로운 섬인 것은 운명적으로 타고난 것인가. 그렇지만 유유자적 동해 푸른 물결에 홀로 있고 싶은 이 운명의 섬은 오랫동안 고난의 시간을 보내왔다.
독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중가요로도 널리 알려진 것처럼 신라 지증왕13(서기 512)년에 이사부 장군이 울릉도와 함께 우산국(독도의 옛 이름)의 영토로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권에 편입되었다. 이러한 독도는 작은 외딴섬이기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바다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점차 새로워져 가면서, 독도는 정치, 경제, 군사, 학술 등 다방면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라를 빼앗긴 조국의 현실 속에서 민초를 일깨우기 위한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 같은 위대한 삶을 살 수는 없더라도 선생의 높은 뜻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똑 같은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독도에 대한 공부를 해 보았다.
독도는 쉽게 갈 수 있는 섬이 아니다. 한 마디로 큰 맘 먹고 가야하는 곳이므로 인터넷으로나마 독도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독도를 직접 가지 않아도 독도를 알 수 있는 길은 있었다. 서울 서대문구의 ‘독도체험관’이나 파주시 법흥리의 ‘영토문화관 독도’가 그것이다. 큰 맘 먹지 않아도, 작은 관심만 있어도 얼마든지 독도를 다양한 방법으로 알 수 있었다.
우선 나는 울릉도에 있는 독도박물관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았다. ‘독도를 지키는 것은 반만년 역사를 지키는 것입니다.’ 라는 글이 첫 눈에 들어왔다. 또한 독도박물관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터무니없는 몰역사적 억지 주장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 급변해 가는 국내외적 상황 속에서, 1997년 8월 8일 탄생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 두 개의 큰 섬과 89개 부속도서로 구성되어 있다. 동도에는 독도 등대와 위성 안테나가 설치돼 있고, 서도에는 주민과 울릉군청 직원이 거주하는 숙소가 있다. 주민, 등대관리원, 경찰공무원 등 약 50명이 살고 있으며, 2005년 동도 입도 신고제 이후 2015년까지 10년간 방문 인원이 150만 명이 넘었다. 행정구역의 변천은 강원도, 경상남도에 이어 1914년 경상북도 울릉군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48년 남면 도동리 1번지로 주소를 부여 받았다가, 새주소 변환에 의하여 서도는 울릉읍 독도안용복길 3(주민숙소), 동도는 독도이사부길 55(독도경비대), 독도이사부길 63(독도등대)로 변경 되었다.
독도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953년 한국전쟁 직후이다. 당시 홍순칠 대장이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여 1956년 까지 3년 8개월간 독도를 지켰다. 전쟁 후 불안정했던 우리의 국내외 상황을 돌이켜보면 호시탐탐 넘보는 일본에게 독도를 넘겨주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독도수비대는 동도 바위벽에 ‘한국령’이라 새겨 넣었고, 독도 방파제를 설치하였으며, 일본 순시선에 맞서 독도를 지켰다. 이후 1968년 울릉도 주민 최종덕 씨가 독도에 건물을 짓고 어로활동을 하며 상주하였다. 1987년 돌아가시기 직전인 1986년에 딸 최경숙 씨 부부가 주소를 옮겨와 1993년 까지 살았고, 현재 독도리 이장인 김성근 씨와 부인이 1991년부터 살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 한일 강제병합은 물론 해방 이후에도 독도를 침탈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독도가 일본 땅인 이유 10가지를 10개국의 언어로 표기하여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과 한국의 독도 불법 점거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이슈화하고,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논쟁하기 위한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독도에 대한 지속적 연구와 역사교육을 지켜보면, 이제 얼마 안 있어 일본인들이 뜻을 이루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과거 우리의 영토를 침략했던 그들의 만행은 이제 역사마저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으로 왜곡, 돌려놓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검정에 대한 태도 역시 이러한 우려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극우세력의 득세로 우경화 경향 속에 역사교과서 왜곡이 심각하게 진행 되고 있으며, 초, 중, 고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버젓이 표기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2015년 일본 문부과학성 역사교과서 검정결과, 고등학교 사회교과서 35종 중 무려 27종이 ‘독도는 일본의 영토,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싣고 있다. 그리고 일본역사교과서 17종 가운데 11종이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하여 강제성에 대한 언급 없이 '여성들이 전쟁터에 보내졌다'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일본 중학교 사회과 학습 지도 요령 해설 편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교육해야 한다는 지침까지 있다고 하니 그들의 야욕은 이제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이다.
2015년에 일본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 일본의 한 시민 단체의 방문을 받았다. 이 단체는 놀랍게도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이 참여하여, 일본의 그릇된 역사관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일본의 교과서 채택과 역사인식을 설명하고 적극적인 대응 협조를 구한다.’는 말과 함께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와 지자체가 경제협력 등의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는 잠시 그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할 정도였다. 우경화되어가는 일본의 정치와는 별개로 역사를 바로 인식하고자 노력하는 그분들의 태도에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안이한 역사 인식을 지적당하는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문득 삼십년도 더 지난, 고등학교 국사 시간이 떠오른다. 선생님의 수업은 주로 딱딱한 정사에 재미있는 야사를 곁들여서 이야기하듯 수업을 하셨다. 덕분에 역사에 대한 흥미를 돋우는 동기가 되었다. 그 중 일제강점기 시절의 이야기를 하실 때엔 언제나 울분을 토하셨다.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과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 독립운동을 하다 죽어간 애국지사와 나라를 팔아먹고도 잘 살고 있는 매국노의 후예에 대한 강의를 하실 때면 어찌나 열변이신지, 옆 교실에서 수업 중인 것 까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선생님의 이름이 ‘고 정혜’ 선생님이라서, 수업을 듣는 우리들은 ‘선생님, 고정하세요.’를 외치며 수업에 몰입했다.
그 옛날 교단에서 동북아의 지도를 그리며 주인된 역사를 가르쳐주신 국사선생님, 수많은 침략 속에서도 지켜낸 이 땅의 얼을 가르쳐주신 국사 선생님이 존재할 수 없는 오늘날의 역사 교육으로는 안 된다.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배우고 자란 아이들이 언젠가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 일본의 정치인들과 싸웠을 때,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선뜻 내줄 지도 모른다.
오늘 날 우리의 역사 교육의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할 때이다.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선정을 위한 백만 서명까지 해서 2016년부터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기본 소양과 수험부담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출제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상 수능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는 한국사를 아이들이 얼마나 제대로 공부할 것인가. 여전히 시험 위주의 교육 방식으로서는 안 된다.
정조실록에 의하면 독도의 이름이 가지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지도에 가서 보니 가지어 네다섯 마리가 놀라며 뛰어 올라왔다. 생김새는 물소(水牛)를 닮았다(정조 8년). 강치의 또 다른 이름인 가지의 서식지였기 때문에 가지도라 불린 것 같다.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독도 근해에서 4만여 마리의 강치가 살았다. 일본은 독도를 강제로 편입하여 일본인에게 독도 독점어업권을 허가하였다. 강치의 가죽으로 군용배낭을 만들고, 강치의 기름으로 비누를 만들기 위하여 한 해 수 천 마리의 강치를 닥치는 대로 포획했다. 덩치가 크고 영리한 강치를 포획하기 위해 새끼를 이용해 어미를 유인하고, 가족을 지키러 온 수컷을 창살로 죽이고, 새끼는 서커스단에 팔았다. 1904년부터 8년간 일본 어부들에 의해 1만4천여마리의 강치를 몰살시켜 지금의 멸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지키지 못한 강치는 더 이상 독도에서 볼 수가 없다. 강치에게는 회귀본능이 있다고 한다. 그동안 독도에서 강치를 키우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정착하지 않고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땅에는 그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얼이 서려있다. 신라 이사부 장군에서 독도의용수비대에 이르기까지 독도를 지켜온, 수많은 목숨들의 얼이 서린 독도가 한민족의 영역으로 면면히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눈을 감고 먼 훗날의 독도를 상상해본다. 독도의 두 섬, 동도와 서도가 푸른 물결 위에 나란히 서 있고, 바다의 향기를 품은 바람이 섬의 두 봉우리 대한봉과 우산봉을 넘나든다. 하늘에는 괭이갈매기와 물수리와 솔개가 커다란 날개를 펴 높이 날고, 구절초 핀 바위틈에 어린 바다제비가 알을 낳고 있다. 바다 깊은 곳에는 감태와 모자반이 군락을 이루고, 해조 숲에 물고기가 떼를 지어 놀고 있다. 어디선가 동그란 눈에 흰 수염이 긴 강치가 놀라서 뛰어오른다.
첫댓글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독도의 부속도서가 89개라니 놀랍네요. 첨 알았어요~
그렇군요. 독도강치의 슬픈 이야기. 작년 가을 다행히 접안하여 작은 의무를 했다고 생각하였지요. 부끄럽습니다.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