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 맨홀 뚜껑에도
정체성 반영한
제품 설치 시대…
강화 정수사의 단청에서 연꽃무늬를 추출해 먼저 모사를 하고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한 패턴을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제품에 적용 할 수 있다. |
서울시내 통행로 맨홀 뚜껑에 역사 문화 지역정보를 담은 디자인이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인사동이 첫 번째 지역으로 선정됐고, 시민 공모를 통해 최우수 작품으로 매듭을 형상화한 작품이 지난 3일 뽑혔다. 세계와 한국을 이어주는 장소라는 점에서 ‘연결과 맺어짐’이라는 인사동의 성격을 전통공예인 매듭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울시의 ‘걷기편한 행복거리 만들기 시즌2’의 일환이다. 선정된 매듭문양 맨홀은 현장 실정에 맞게 재조정돼 8월 안에 인사동길 57곳에 설치될 예정이다. 지자체 환경정비사업에 전통문화를 접목한 예이다.
대기업의 경우 오래전부터 기업로고에서 안내판에 이르기까지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담은 통일감 있는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 디자인을 위해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이르는 지출도 감당한다. 그만큼 정체성이 깃든 디자인은 기업홍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업이 혁신을 부르짖을 때는 진취적 힘이 느껴지는 형상과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교는 이런 사회적 흐름에 동참하고 있을까?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 2013년부터 불교고유문양을 발굴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적용한 기념품도 선보이고 있다.
장마와 뒤를 잇는 폭염. 여름에도 나름 일정한 패턴이 있다. 올 여름 템플스테이 참가자라면 부채하나 얻는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진화스님)이 불교문화상품 전문브랜드 ‘본디나(VONDINA)’ 한지부채를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꽃살문양 명함집, 볼펜세트. |
사찰을 드나든 사람이라면 이들 부채의 반복적 디자인에서 친근함을 느낄 것이다. 단청과 범종에 새겨진 문양에서 사천왕 얼굴에 쓴 화관까지 다양한 불교 속 문양들이 담겨있다. 보고 있자니 즉흥적으로 부채를 만들기 위한 디자인이라기 보단 체계적인 큰 틀에서 파생된 디자인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본디나’ 브랜드 도입은 2014년 6월이다. ‘본디 나로 돌아가다 본연의 나를 되돌아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실제 연혁은 이보다 앞선 2013년 7월 한국디자인진흥원과 업무협약을 하면서부터다. 사찰 구석구석 오롯이 남아있는 불교전통문양에서 디자인적 요소를 단순히 추출하는 모사를 뛰어넘어 불교의 정체성을 담은 현대적 재해석을 해마다 주제를 정해 실시하고 있다. 본디나는 이 디자인을 근간으로 사무용품, 여행상품 등에 잊혀 가는 우리 것을 되살리고 일상속의 쉼표가 될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대중과 접점이 되는 상품화된 본디나 제품은 얼마 되지 않고 만나기도 힘들다. 왜일까?
합장주 USB. |
제품개발과 제작에 사용되는 총비용은 1년에 1억원 내외. 한 해 동안이라고 해봐야 3~4점의 불교문화 홍보를 위한 소량의 제품에 한정된다. 주로 템플스테이 참가자에게 지급되거나, 템플스테이 홍보를 위해 사용된다. 불교문화에 대한 국고지원 사업인 만큼 상업성은 배제된다. 그러므로 판매를 위한 유통망 또한 없다. 필요한 경우 서울 조계사 앞에 위치한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홍보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와 관련 불교문화사업단장 진화스님은 “이 작업은 불교문화에 내재돼 있는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풀어내어 우리의 일상에 이끌어 내는 것” 이라며 “본디나는 불교 디자인과 미래를 위한 발전의 근간”이라고 밝혔다. 어찌보면 본디나는 과실수의 열매에 해당하는 제품을 선보이기보다 씨앗을 심어서 가꾸는 종묘(種苗)단계에 가깝다. 과실을 맺어 수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한 튼실한 준비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캐리어 네임택(왼쪽)과 단청, 꽃살문 다이어리. |
그렇다면 본디나 제품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까.
자체기획상품과 불교문화상품공모전 입상작품 가운데 선정된다. 자체기획상품은 디자인과 박물관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단과 불교문화사업단 담당자들이 선정한다. 그리고 템플스테이 실무자와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회의를 열어 제품을 선정한다. 자체기획상품으로 올해 상반기 여름용 한지부채가 선보였다면, 하반기에는 템플스테이 실무자를 위한 크로스백과 참가자를 위한 미니수첩이 제작될 예정이다. 이런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근간에는 2013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불교전통문양 디자인이 자리하고 있다.
첫해에 사찰건축의 심미성을 드러내는 단청과 극락의 문을 의미하는 꽃문살에서 문양을 추출하여 현대 디자인적 요소를 가미했다. 2014년에는 사천왕상과 불전사물에서 문양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불교문화콘텐츠 디자인 가이드’ 책자를 2년 연속 발간했다. 올해는 사찰 내 불교를 상징하는 동물을 추가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불교문화사업단 관계자는 “일련의 불교문양 디자인 개발에 있어 주제를 정할 때 매년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걸쳐 선정하고 있으며 더불어 디자인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우치와 여권케이스. |
본디나의 또 다른 공급처는 불교문화상품공모전이다. 올해로 8회째를 맞으며 전통과 문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현대를 아우르는 참신한 작품을 선보였다. 여기서 선정된 작품 가운데 실생활에 유용한 작품을 제품으로 선보이기도 한다.
현재 본디나 상품은 자체기획과 공모전 상품을 병행하여 상품화하고 있지만, 자체기획상품이 틀을 갖추면서 큰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그동안 디자인진흥원과의 협업으로 축적된 불교문양을 불교문화상품공모전에 개방하여 또 다른 협력을 이끌어 내고 있다.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독자적 문양은 왜 중요한가?
영국 버버리사의 등록상표는 격자무늬를 형성하는 선들의 색상과 개수, 배열순서 등에 의해 수요자의 감각에 강하게 호소하는 독특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독창적인 정체성과 매력을 갖춘 문양은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선 무형의 재산이기도 하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속 ‘사천왕상 페이퍼토이’
불교상품 디자이너 정기란 씨와 그녀가 만든 사천왕상 페이퍼토이와 캐릭터 디자인 상품. |
불교문화상품공모전 당선작은 언제나 참신성이 돋보인다. 불특정 다수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이는 공모전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제6회 대상을 차지한 사천왕상 페이퍼토이는 여기에 또 다른 흥행요소를 갖추고 있다. 이로 인해 템플스테이 사찰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대부분의 공모전 당선작 상품화가 단발성으로 끝난 것에 비해 해마다 추가 발주가 이뤄져 벌써 3번째 제작에 들어갔다.
이 차별화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꼭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의 차이다. 꼭 필요한 것이 생활필수품이라면, 원하는 것은 기호품이다. 사천왕상 페이퍼토이는 템플스테이 사찰에 유용한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어린이가 동참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서 이 제품은 사찰 실무자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40~50분 동안 부지런히 종이를 자르고 풀칠을 해야 완성할 수 있다.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다. 템플스테이 실무자들은 “프로그램 시간 안배가 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두꺼운 종이위에 인쇄하는 단순한 과정으로 소요경비가 탁월하게 작게 들어간다.
사천왕상 페이퍼토이 작가 정기란 씨는 “우연한 기회에 공모전에 참여하게 돼 큰 상을 받은 것도 영광인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고맙다”며 “여기서 높아진 인지도를 발판으로 더욱 다양한 불교디자인상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불교신문3128호/2015년8월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