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수필】 어느 전직 경찰의 ‘강인한 정신력’
돈이나 명예보다 소중한 것
- 부러운 전직 경찰 이야기 -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재향경우회 홍보지도위원, 『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 저자
퇴직 경찰관들은 과거 어렵고 힘든 직장에서 오랜 세월 고락(苦樂)을 함께했다고 해서 ‘옛 동지(同志)’라는 호칭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경우(警友)’라는 호칭이 더 편안하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전직 경찰로서 40여 년 인연을 맺어온 김용인 재향경우회 중앙회장도 내게 꼭 ‘윤승원 경우 님’이라고 존칭을 붙인다. 연세로 보나, 사회적인 지위로 보나, 허물없이 지내는 친분으로 보나, 깍듯이 존대하지 않아도 결례가 되지 않는 사이인데, 꼭 ‘경우 님’이라고 호칭한다. 남달리 다정다감하고 친근한 정까지 느끼게 하는 호칭이다.
오늘은 일선 경찰서 정보 부서에서 오랜 세월 동고동락해온 한만환(韓萬煥) 경우(警友)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데, 새삼 호칭이 마땅치 않다. 경찰서 재직 당시 익숙하게 써 온 호칭은 ‘한 주임’이었다. ‘주임’이라는 공식적인 경찰 계급은 없지만, 경찰관 사이에선 언제부턴가 중간 간부인 경위 계급을 ‘주임’이라 불렀다.
‘지서 주임(지서장 : 훗날 파출소장)’도 그렇게 불렀고, 경사 계급은 통상 ‘부장’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퇴직 후에까지 현직 경찰관 시절의 계급을 호칭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서장’이나 ‘청장’ 등 고위 직위는 퇴직 후에도 대우 차원에서 현직 시절 직위를 그대로 친숙하게, 또는 존중의 의미로 부르는 예는 있다.
아무튼, 경찰공무원으로 퇴직한 지 어느덧 10여 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라면 한만환 경우(警友)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디 한 군데 아프다거나 불편한데 없이 건강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경우(警友)인 까닭이다.
코로나 이후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내가 그분의 건강을 무엇으로 증명해야 실감이 날까? ‘건강검진 진단서’라도 보여 달라고 할까?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체력이 완벽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을 최근에 발견했다.
『백두대간, 9 정맥, 6 기맥, 162 지맥 완주』라는 제목에다가 성명이 박힌 특수 도안 글귀와 함께 ‘완주 패’ 사진을 SNS로 받아 보고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완주 패’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당신을 ‘가야산’이라고 부릅니다. 풍부한 산행 경험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득하게 여겨왔던 백두대간, 9 정맥, 6 기맥, 162 지맥을 완주하였으므로 모든 산악인의 존경하는 마음을 이 패에 담아 드립니다. - 2021년 10월 16일 보만식계의 산길 따라 회원 일동”
여기서 ‘보만식계’란 대전광역시 주위를 감싸고 있는 보문산(457.6m) ~ 만인산(537.1m) ~ 식장산(598m) ~ 계족산(423m)의 앞머리 글자를 따서 부르는 종주 코스다. 산악인들이 편의상 사용하는 명칭이라고 하는데, 무박 2일로 60km를 산행하는 대장정이다. 그 어떤 산행보다 힘이 들고 체력 소모가 심하다고 한다.
한만환 경우(警友)의 추가 설명을 들어보니, 요즘 웬만큼 산을 타는 사람이라면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9 정맥까지 완주한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6 기맥 162 지맥을 완주한 사람들은 흔치 않다고 한다.
6 기맥은 100~150km 거리를 가진 6개의 기맥이고, 162 지맥은 30km 이상 100km 미만의 거리를 가진 지맥이다. 야트막한 뒷산 산책이나 즐기는 나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기 어려운 산악 코스이다.
‘보만식계’라는 한 지역의 산악 종주 코스도 힘든 일인데, ‘백두대간 162 지맥 완주’라니, 종합병원에서 아무리 완벽한 건강검진 진단서를 받는다고 해도 이만큼 놀라운 ‘체력 검증 패’의 문구를 뛰어넘기야 하겠는가. 아무나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전직 경우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럽다.
경찰 직업에 종사해온 사람들은 다른 어느 직종보다 격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사건·사고 현장에서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로 경찰공무원은 일반 직장인보다 퇴직 후 조기 사망률이 현저히 높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그런 까닭에 평소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여 퇴직 후에도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경우(警友) 들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
“대단하십니다. 10여 년에 걸친 대장정을 마침내 이루셨군요. 축하합니다.”라는 짧은 댓글을 보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칠 순 없었다. 누구보다도 그의 부인에게 축하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았다. 가정에서 부인의 따뜻한 내조와 응원이 아니었으면 그런 성취가 가능하겠는가.
내가 알고 있는 그분의 과거 가정생활도 부럽다. 부인이 경찰관 남편을 대하는 지극한 정성과 사랑에 감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한 감동은 내 글 속의 주인공이 되어 경찰 동료들에게 부러움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그의 부인으로부터 정성 어린 ‘뜨개질 선물’도 받았다. 과거 나의 졸고 수필 「어느 경찰관 아내의 뜨개질 선물」 (국정브리핑 2004년 7월 3일 자)의 한 대목이다.
일러스트 이정운
『그의 표정은 늘 밝다. 그의 행복의 원천은 아마도 집안의 아내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역시 가정에 돌아가면 아내에게 그런 행복한 표정과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는 좋은 남편일 것으로 짐작된다.
‘금실지락(琴瑟之樂)’이란 말은 어쩌면 H 형사 내외와 같은 모습을 두고 일컫는 말이 아닐까 싶다. 맛있는 음식기행도, 산수 경개 좋은 명소 관광도 꼭 부부동반이라고 하니, ‘바늘과 실’이라는 비유도 그들 부부에게 썩 잘 어울리는 표현일 듯싶다. 내가 아는 그들 부부의 최근 모습을 살짝 공개한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출근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러고 나서 ‘점심값’ 명목의 용돈을 손에 쥐여주면서 “동료 직원분들과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고 덧붙인다고 한다.
어찌 보면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인사말 정도는 누구에게나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 이런 아기자기하고 다정한 말을 들어 본 적도, 스스로 건네 본 적도 없는 나 같은 구식남자(?)는 그런 따뜻한 부부간의 대화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퇴임 후 오랜만에 한만환 경우(警友)의 부인에게 특별히 ‘축하의 인사’를 보내면서 과거 나의 졸고 수필 서두 부분을 옮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는 좋은 아내를 얻은 사람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처지를 바꾸면 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는 좋은 남편을 얻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가까운 데에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조건이 따른다. 겉모습만 보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긴 어렵다. 행복의 기준 역시 몇 가지 드러난 사실만으로 한 사람의 내면의 행복까지 점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함께 근무하는 H 형사를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하면, 동료 경찰관들도 동의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여기 등장하는 ‘H 형사’가 바로 한만환 경우(警友)다.
돈 많은 부자보다, 높은 벼슬을 한 고관대작의 명예보다 더 값진 ‘건강한 삶’을 강인한 정신력으로 일구어내는 한만환 경우(警友)의 행복이 부럽다. ■
2021.10.31. 윤승원 記
첫댓글 '한만환경우님'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설악산 오대산 속리산 계룡산 지리산 내연산 울릉도성인봉(독도포함) 한나산 등을 등반하였던
나로서는 한만환경우님의 산행과 투지를 웬만큼 짐작할만합니다.
산악인들은 산악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치고 경험하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그 무엇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로 뭉뚱그려서 철학이며 예술이며 진리라고도 말합니다만
나는 여기서 "그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어로는 "it"이겠지요.
"You are it." (당신은 참 멋지네요!)라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나는 "He is it!"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정말로 그는 멋지십니다. 162지맥을 완주한 그가 어찌 멋지지 않겠습니까.
예술과 철학의 모든 분야를 완성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글로 "He is it."의 경지를 소개해주신 장천선생에게 감사하며 댓글을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청계산)
“정말로 그는 멋지네요”라는 지 박사님의 표현이 최고의 찬사입니다.
162 지맥 완주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지 박사님께서도 인정해 주시고,
따뜻한 격려의 말씀 주시니, 한만환 경우님의 남다른 투지력을 소개한
저의 기분도 좋아집니다.
그러고 보면 산악인의 강인한 정신력이 바탕이 된 162 지맥 완주는
종합예술이라 할만합니다.
‘예술과 철학의 완성’이라는 지 박사님의 차원 높은 격려 말씀 속에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만환 경우님과도 지 박사님의 귀한 격려 댓글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천 선생의 한만환 경우님의 소개는 한편의 영화 같습니다. 호칭에서 시작하여 건강의 지표를 살며시 제공하고, 등산의 내용, 그리고 가정의 문제로 돌아서 행복한 삶이란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한만호 씨가 종관한 총도상거리를 우리 리 수로 환산해보니 3만 3천리가 되네요. 화목한 가정은 인간 삶의 가장 복된 환경입니다.
이 멋진 글을 올사모 전 회원에게 읽기를 추천합니다.
정 박사님의 격려 댓글이 과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댓글을 읽는 기쁨과 즐거움을 한껏 누립니다.
특히 “한만환 警友가 종관한 총 도상 거리를 우리 里수로 환산해보니 3만 3천 리가 된다”는
놀라운 수치 앞에 꼼짝없이 감탄과 즐거움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역시 한평생 연구실에서 학문을 연구해 오신 역사학자님의 격려 말씀은
정곡을 짚으시면서 치밀하시거든요.
그냥 재미로 읽거나 대충 읽고 지나치기 쉬운 장문의 졸고 수필임에도
정 박사님은 세밀하게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하신 다음, 내용을 압축하여
요약까지 해 주시고, 귀한 소감을 덧붙이셨습니다.
어느 문학평론가의 촌평보다도 핵심을 꿰뚫어 주시고,
필자에게 힘과 용기까지 주시는 격려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혼자 읽기 아까운 귀한 댓글이어서
글 속 주인공인 한만환 警友와도 공유코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