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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2월 27일 토요일
[(백)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요한 사도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명이다. 어부 출신인 그는 제베대오의 아들로, 야고보 사도의 동생이다. 두 형제는 호숫가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되었다. 요한 사도는 성경에서 여러 차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로 표현되며, 예수님의 주요 사건에 함께하였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성모님을 맡기셨다. 전승에 따르면, 요한 사도는 스승을 증언하였다는 이유로 유배 생활을 하였고, 그 뒤 에페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체험한 참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한다(제1독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들은 두 사도는 무덤을 찾아가 빈 무덤을 확인하고 그분의 부활을 믿는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 요한 1서의 시작입니다. 1,1-4
사랑하는 여러분, 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8
주간 첫날, 마리아 막달레나는 2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탄 팔일 축제 기간의 전례에는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들이 나옵니다.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26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28일), 성 토마스 베케트 주교 순교자(29일)이지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태어나신 분 때문에 생명을 빼앗긴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핏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참생명이 무엇인지 묵상하게 합니다.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인 오늘, 복음은 요한 사도를 엊그제 태어나신 주님의 무덤으로 데려갑니다. 무덤과 수의가 아기 예수의 탄생과 상관이 있을까요? 상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자 태어나셨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당신 몸을 먹이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이것은 아기 예수님께서 짐승의 밥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사실에 담긴 하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누이신 구유는 죽은 이를 넣는 관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동방 교회의 성탄 이콘 가운데 루블료프의 성화에서는 아기가 누워 있는 구유가 마치 작은 관처럼 보이는데 그 관은 저승처럼 깊은 어둠 속에 놓여 있지요. 아기의 옷 또한 신생아의 배내옷이라기보다 시신을 싼 수의처럼 보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위하여 태어나셨고, 우리를 살리시려고 돌아가셨음을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무덤에 가장 먼저 도착하였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티베리아스 호숫가에 나타나셨을 때 그분을 가장 먼저 알아볼(요한 21,7 참조) 만큼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누렸던 요한 성인은 이 모든 진리의 생생한 증인입니다(1요한 1,1 참조). 주님께서 가르치신 ‘사랑’을 끝까지 증언한 사랑의 성 요한 사도의 말을 새겨들읍시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앞으로는 물고기 말고 사람을 낚아 봅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열두 사도들 가운데 참으로 특별하고 신비로운 인물이 한분 있었으니,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요한 사도입니다. 그는 어부였던 아버지 제베대오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야고보와 함께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낚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의 인생에 개입하십니다. ‘고기는 이제 신물나도록 잡았으니, 나랑같이 사람을 낚아보자.’며 그를 부르십니다. 배며 그물이며, 아버지마저 뒤로 하고 스승님을 따라나선 요한은 천둥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성격이 과격했으며, 동시에 열정으로 충만했습니다.
요한은 베드로 야고보 사도와 함께 예수님의 초기 및 핵심 제자단에 속하게 됩니다. 스승님께서 그를 총애하신 사건이 복음서 몇 군데 소개되고 있습니다. 타볼산에 오르실 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요한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랑받는 제자’란 표현이 요한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마리아와 함께 끝까지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요한은 베드로 사도와 함께 초대 교회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불치병 환자에게 치유의 기적을 행하는가 하면, 유다 본산 산 헤드린 앞에서도 당당히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입지가 애매했던 바오로 사도의 사도권을 인정하고 그의 이방 선교를 지지했습니다.
요한은 특별히 문서를 통한 복음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요한 복음서, 요한 1,2,3서, 요한 묵시록을 저술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승에 따르면 요한은 다른 사도처럼 순교하지 않고 자연사했습니다. 요한은 100세 가까이 생존하였지만, 순교한 사도들 못지 않게 갖은 박해와 고초를 겪으며 백색 순교자로 살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년을 보낸 에페소에서 저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요한1서는 복음의 진수(眞髓)이자 핵심을 간결하고도 명료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1서를 읽다보면 수시로 등장하는 단어가 사랑입니다.
제자단의 일원이자 예수님의 애제자(愛弟子)로서 공동체 생활, 그리고 초대 교회 공동체 지도자로서의 만만치 않았던 삶을 통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고, 산전수전 다 겪으셨던 사도 요한이었기에, 우리에게 건네는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그야말로 ‘뼈때리는’ 내용입니다. 요한 사도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마음이 찔리지 않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 요한 4, 20)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은 요한 사도의 축일입니다. 전승은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성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며, 교회의 귀중한 보물인 요한복음, 요한 서간, 요한 묵시록의 저자라고 합니다. 복음에서 요한은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께서 늘 가까이 데리고 다녔던 제자 중에 한 분이셨음을 알려줍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셨을 때도 요한 사도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죽은 소녀를 살려 주셨을 때도 요한 사도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을 때도 요한 사도는 함께 있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세상을 떠나실 때도 요한은 예수님 곁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니께는 요한 사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께 사랑을 받은 만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사도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요한 사도가 있어서 십자가 위에서도 눈을 감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한 사도가 있어서 행복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또한 요한 사도처럼 주님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때문에 주님께서 행복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은 인류의 경전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되는 책입니다. 마태오와 루카가 예수님의 족보를 아브라함과 아담으로부터 풀어내고, 마르코가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이야기를 열었다면, 요한복음은 시간과 역사를 넘어 ‘태초’에서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이 한 문장은 요한이 바라본 예수님의 높이와 깊이를 모두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며, 생명의 빛이며, 어둠을 밝히는 영원한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었고, 말씀은 곧 하느님이셨다고 선포합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의 핵심 주제는 ‘생명’, 그리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한에게 생명이란 육신의 호흡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 안에서 시작되는 순간이며, 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진리가 영혼을 깨우는 변화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영혼을 깨우는 절대적 초대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이 말씀들은 철학적 표현이 아니라 길을 잃은 이들을 향한 위로이며, 상처받은 영혼을 일으키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기적은 ‘기적’이 아니라 ‘표징’으로 기록됩니다. 표징은 더 깊은 실체를 가리킵니다. 가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사건은 기쁨의 회복을,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사건은 생명의 충만함을, 눈먼 이가 눈을 뜬 사건은 진리의 밝음을 뜻합니다. 요한은 모든 표징을 통해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구원은 곧 영원한 생명이고, 이 생명은 표징을 통하여 실체를 알아보고 믿음으로써 얻어집니다. 그리고 알고 믿음으로써 거듭 태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은 개인과 공동체는 서로 일치와 형제애를 나눔으로써 그 생명을 세상과 나누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요한 사도의 겸손함을 보았습니다. 그토록 사랑을 받았던 요한 사도는 베드로 사도보다 앞서서 빈 무덤에 도착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주님의 빈 무덤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 사도는 그 중요한 일은 베드로 사도에게 양보하였습니다.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많은 일이 다른 이들이 해도 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자리를 차지하는 것 때문에 실수하고 잘못하는 때도 있겠지만 자리를 포기하고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더 큰 실수와 잘못을 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여 준 요한 사도의 겸손함을 배운다면 우리는 주님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사랑>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사랑은
사랑을 낳으니
사랑께서
사랑하신 제자는
사랑을
사랑하는 제자가 되고
사랑을 닮아
사랑이 된 제자는
사랑으로
사랑이 묻히신 곳에
먼저 다다르고
사랑으로
사랑이 묻히신 곳에 들어가는
첫 자리를 내어주며
사랑으로
사랑을 보고
사랑으로
사랑을 믿습니다
오늘의 성인
성 요한(John)
신분 : 사도, 복음사가
활동연도 : +100년경?
같은이름 :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Joannes)은 갈릴래아의 어부로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야고보(Jacobus, 7월 25일)의 동생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삯군들과 배를 남겨둔 채 예수를 따라 나섰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카 5,1-11). 이들 형제는 성격이 매우 급하고 흥분을 잘 했기 때문에(마르 10,35-41), 예수님은 그들에게 '천둥의 아들들'이란 뜻의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마르 3,17).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중요한 행적, 예를 들어 예수님이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렸을 때(마르 5,37; 루카 8,51),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마태 17,1; 마르 9,2; 루카 9,28), 겟세마니(Gethsemane) 동산의 기도(마태 26,37; 마르 14,33)와 같은 극히 중요한 시기에 베드로(Petrus)와 함께 예수님 곁에 있었다.
또 성서 여기저기에는 요한이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라는 인상을 주며, 최후의 만찬 때에 스승의 가슴에 기댔던 사람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십자가상의 예수님은 그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맡기셨다(요한 19,25-27). 뿐만 아니라 부활 아침에는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의 빈 무덤으로 달려갔고(요한 20,1-5), 그분의 부활을 믿었으며,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보았다(요한 21,7).
사도행전에서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활동하며 투옥당하기도 했다. 성 바오로(Paulus)는 야고보와 케파(베드로)와 함께 요한을 일컬어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갈라 2,9). 후일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진리를 증언한 탓으로 파트모스(Patmos) 섬에서 유배생활을 했고(묵시 1,9), 에페수스(Ephesus)에서 여생을 지내다가 그곳에서 수를 다하고 선종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에 따르면 성 요한은 너무나 연세가 높아서 군중들에게 설교할 수 없었고, 다만 간단한 말만 하였다고 한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신약성경의 네 번째 복음서와 서간 3개 그리고 묵시록은 성 요한의 저작물이라고 전해져온다. 사도 요한의 문장은 독수리이다. 그 이유는 요한 복음서의 서두가 매우 높은 위치에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성녀 파비올라(Fabiola)
신분 : 과부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 +399년
같은이름 : 빠비올라
성녀 파비올라는 로마의 유명한 귀족 가문인 파비아가(Fabia family)에서 태어났고, 얼마 동안은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의 후원자로 활동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그만 두었다. 결혼한 남편의 너무나 방탕한 생활로 말미암아 이혼하였으나 그녀 자신도 사회생활을 떠나야만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위로를 찾게 되었고, 교회의 명을 어겼기 때문에 로마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스캔들이 되었다. 즉 이 스캔들은 그녀가 이혼한 상태에서 재혼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오래지 않아 두 남자가 모두 죽게 되자 그녀는 공적인 회개를 하고 교회로 되돌아 와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이때부터 그녀는 화려한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교회를 돕는 일과 자선활동에 헌신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395년에 베들레헴을 순례하였고, 그곳에서 성 히에로니무스를 만났다.
그녀는 그곳에 집을 짓고 정착하기를 원했으며, 성 히에로니무스의 성서 번역 사업을 후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던 조용한 생활을 하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곧 자신의 성격이 부적합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차제에 팔레스티나(Palestina) 신자들을 지도하는 문제를 두고 성 히에로니무스와 예루살렘의 총대주교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또 훈족들이 이 지역을 위협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성 히에로니무스와 그의 후원자들과 함께 야파(Jaffa)로 피신하였다가 로마로 돌아왔다.
로마에서도 그녀는 자선사업을 계속하였는데, 특히 성녀 바울라(Paula, 1월 26일)의 사위인 성 팜마키우스(Pammachius, 8월 30일)와 함께 병자와 순례자를 위한 자선병원을 포르토(Porto)에 세웠다.
이 병원은 서양 최초의 가톨릭 병원으로 여겨지며, 그 이름이 오늘날의 영국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조차도 그녀의 모든 열정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죽을 당시에도 새로운 사업을 계획할 정도로 헌신적이고 정열적이었다. 399년 성녀 파비올라가 로마에서 사망했을 때, 그녀의 장례식에는 로마의 모든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그녀는 가장 큰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성녀 파비올라를 위해 두 편의 글을 남겼는데 그것이 우리가 그녀를 알게 된 주요 자료들이다.
성 요한 스톤 (John Stone)
신분 : 수도원장 순교자
활동지역 : 영국(UK)
활동연도 : +1538/39년
같은이름 : 얀, 요안네스, 이반요한네스,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한스, 후안
성 요한 스톤(Joannes Stone)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자로서 신학박사였고, 영국 켄터베리(Canterbury) 에서 교수와 수도원장으로서 봉사하다가 켄터베리로 돌아와 헨리 8세 왕의 수장령을 반대한 죄로 1538년(또는 1539년) 12월에 체포되어 웨스트게스트(Wesgate) 에 수감되었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는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 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 에 의해 잉글렌드와 웨일스(Wales) 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그래서 10월 25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