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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사람들은 커피의 쓰면서도 달콤한 맛과 향을 사랑했고, 커피의 카페인은 사람을 중독시켰다. 바흐ㆍ베토벤ㆍ발자크ㆍ도스토옙스키 등 수많은 예술가가 커피를 즐기며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나폴레옹은 커피에서 유럽을 제패할 힘과 용기를 얻었다.
초기의 커피는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적으로 활용됐다. 이슬람 신비주의 수도승인 수피들은 잠을 깨우고 정신적 도취감을 일으켜 신과 소통하는 도구로 커피를 마셨다. 이들의 금언에는 “카와(커피)를 조금이라도 마신 자는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할 정도다. 다마스쿠스(시리아의 수도)의 존경받는 이슬람 학자였던 나즘 알딘 알가지(1570~1651년)는 “순례 중에 커피 나무를 만나자 경건하게 열매를 따먹었다.
그러자 머리가 맑아지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커피는 17세기 무렵 유럽으로 전파됐다. 유럽 사람들은 커피의 이국적인 맛에 빠져들었다. 철학자들이 앞장섰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년)은 “터키에선 커피라는 음료를 마신다. 이 음료는 머리와 심장을 맑게 하고 소화를 돕는다”고 소개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1712~1778년)는 “집 근처에서 누군가 커피를 볶고 있으면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사치스러운 것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면 아이스크림과 커피 정도”라고 고백했다.
독일의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년)도 커피광이었다. 그의 친구였던 안톤 쉰들러는 “커피는 베토벤에게 없어선 안 될 양식이었다. 커피 한 잔에 원두 60알을 썼는데, 손님이 왔을 때는 낱알을 일일이 세는 때도 많았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년)는 궁핍한 생활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되자 “내가 지금 한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절규했다.
커피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사회ㆍ경제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계몽군주를 자처했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1712~1786년)는 “짐의 백성들이 마시는 커피 양이 눈에 띄게 늘어 나라 밖으로 큰 돈이 빠져나가니 통탄할 일이로다. 마땅히 커피를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역사학자 쥘 미슐레(1798~1874년)는 “파리는 하나의 거대한 카페가 됐다. 300곳의 카페가 사람들의 수다를 위해 문을 열고 있다. 수도원도 이익이 많은 이 상품에 앞다퉈 가세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를 마르크스(1818~1883년)는 나폴레옹이 패배한 원인을 커피에서 찾기도 했다. 그는 『독일 이데올로기』란 저서에서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에 의해 발생한 설탕과 커피의 결핍은 독일인을 반(反)나폴레옹 봉기로 내몰았다. 설탕과 커피는 19세기에 있어 그 세계사적 의의를 과시했다”고 분석했다.
커피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세기 말이다. 유길준(1856~1914년)은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고 펴낸 『서유견문』에서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 사람들도 커피와 주스를 마신다”고 언급했다.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을 때 손탁(Sontag) 부인이 타주는 커피에 맛을 들였다고 한다. 일제시대엔 서양 문화를 동경하는 모더니스트들이 커피를 즐겼다. 이효석(1907~1942년)은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알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고 커피의 낭만을 적었다.
광복 후에는 미국의 영향으로 커피 문화가 빠르게 확산됐다. 이승만(1875~1965년)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회견 후 커피를 내왔을 때 한국 기자들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진하게 설탕을 타먹었다고 한다. 외국 기자들이 이상하게 여기자 이 대통령은 “당신들은 커피에 설탕을 타서 먹지만 우리는 설탕에 커피를 타서 먹는다”며 농담을 던졌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백선엽(1920년~) 장군은 6ㆍ25 전쟁터에서 “수통의 커피는 밤에 졸음을 쫓아 주는 각성제였고, 때로는 비상식량이었다. 커피에는 당시 ‘귀물(貴物)’인 설탕까지 들어 있어 한 모금만 마셔도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탈진한 몸에 힘이 됐다”고 전했다.
커피는 현대인들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기호식품이다. 커피를 마시는 장소와 끓이는 방법은 달라졌어도 커피와 함께 사랑을 속삭이고, 반가운 사람을 만나고, 나른한 잠을 쫓는 것은 과거와 마찬가지다. 현대 영국의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1872~1970년)은 “인생은 단지 커피 한 잔, 또 한 잔이다. 이외에 다른 것은 찾지 말라”는 명언을 남겼다.
살롱서 커피 마시다 “바스티유로” … 프랑스 대혁명 막 올라
커피, 세계사를 바꾸다
강남규 | 제149호 | 20100116
1789년 7월 10일 정치범이 수용된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감옥으로부터 외침이 울려퍼졌다. “정부가 정치범들을 참수하려고 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사드 후작이었다. 그 시절 온갖 변태적 사랑 이야기를 써 나중에 ‘사디즘(피학대 음란성)’이란 단어가 탄생하도록 한 그는 지독한 위염 환자였다. 그는 식사 뒤면 배가 더부룩해 간수에게 커피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는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의 외침은 파리 시민의 입과 입을 거쳐 확산됐다. 정치범 참수설로 뒤숭숭해진 7월 12일 언론인 카미유 데물렝이 파리의 살롱인 포이(Foy)에서 커피를 마시다 갑자기 탁자 위로 뛰어올랐다. 그는 바스티유를 ‘악의 요새’라고 지목하며 공격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살롱 포이를 뛰쳐나와 바스티유를 향해 뛰었다. 프랑스 대혁명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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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음료’에서 ‘부의 원천’으로
인간이 커피를 알게 된 때는 불분명하지만 15세기 초에 커피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중동 예멘으로 전해진 점은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1453년엔 콘스탄티노플(지금 터키의 이스탄불)에 커피가 전래됐다. 22년 뒤인 1475년엔 콘스탄티노플에 세계 최초의 커피숍이 등장했다. 오토만 제국이 이집트를 정복한 1517년 이후에는 커피가 중동 전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커피가 유럽에 전해진 때는 1600년께다. 늘 ‘새로운 것’은 오해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당시 교황 클레멘트 8세(1536~1605년)는 이탈리아 무역상이 이슬람 지역에서 수입한 커피를 ‘사탄의 음료’라고 규정했다. 영국왕 찰스 2세(1630~85년)는 사람들이 모여 수군대는 커피숍을 폐쇄하기도 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커피가 반역의 기운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커피는 국산품 애용 운동도 촉발시켰다. 1670년대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많이 마셔 포도주 농가가 타격을 입었다. 한 의사는 커피를 마시면 환각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며 포도주 사랑 운동을 펼쳤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1712~1786년)는 커피 때문에 맥주가 외면당하자 자신이 나서 맥주 마시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1690년대 커피는 서유럽의 초기 자본 축적 수단으로 떠올랐다. 당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에 커피 플랜테이션 농장을 열었다. 서유럽이 커피를 자체 조달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중동은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커피 무역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동인도회사는 커피 경작과 무역을 하나로 묶어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노예노동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 시절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카리브해 지역 플랜테이션 농장은 아프리카 등에서 끌려온 노예 노동에 의존했다. 1791년 세계 곳곳의 커피 농장에서 일한 노예들은 무려 45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커피는 시민혁명과 결합하기도 했다. 1773년 한 무리의 보스턴 시민이 시내 커피숍에 모여 영국의 지나친 과세에 항의하기로 했다. 며칠 뒤 그들은 인디언으로 변장하고 보스턴 항구에 정박한 배에 침투해 차 상자를 바다로 던졌다.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번진 보스턴 차 사건이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18세기 커피숍에서 부르주아지들이 출신과 종교 등을 뛰어넘어 소통해 시민혁명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미국 부르주아지들이 살롱과 커피숍에서 계몽주의 철학자인 볼테르의 사상과 영국의 제르미 밴덤의 공리주의를 논하며 시민혁명을 위한 사상으로 무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소통의 결과가 바로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이다. 영국왕 찰스 2세의 두려움이 현실화한 셈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 대륙을 거쳐 미국으로 퍼져나갔다. 인간이 기계의 리듬에 맞춰 일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노동 시간이 길어지고 강도가 높아졌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에는 장시간 노동에 지친 탄광 노동자들이 아침에 커피로 피곤한 몸을 깨우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실제로 커피 소비량은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늘었다. 노벨 경제학상(1993년) 수상자인 미국 로버트 포겔 전 하버드대 교수는 “커피가 없었다면 인간이 산업혁명 이후 일상화된 고강도, 장시간 노동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며 “커피는 설탕과 함께 산업혁명의 숨은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근대에 발생한 두 가지 혁명(시민과 산업) 이면에 커피가 있었던 셈이다.
5억 명의 생계가 달려 있어
커피는 원자재 투기의 원조격이기도 하다. 1870~80년대 독일 함부르크와 미국 뉴욕에 커피거래소(Coffee Exchange)가 문을 열었다. 미래 시점에 커피를 인도하기로 하고 서류상으로만 커피를 사고파는 선물거래가 일반화됐다. 먼지투성이인 커피콩을 직접 건네주며 거래하지 않게 됐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이 꼬였다. 함부르크거래소의 1880년 커피 거래량이 실제 생산량의 8배가 넘었다. 산업혁명 이후 처음 발생한 국제적 금융위기 때문에 패닉에 빠진 투기세력이 커피를 마구 사고판 탓이다.
인간이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지 500여 년이 흐른 요즘 뉴욕 등의 상품거래에서는 해마다 커피 20억 부대(1부대=50kg)가 거래된다. 투자은행 등은 커피를 석유 다음으로 중요한 상품으로 여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농사꾼 2500만 명을 포함해 5억 명 정도가 커피에 기대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고종, 아관파천 때 맛들여 … 매일 한 대접 ‘원샷’
한국의 커피, 커피 문화
김창규 기자 | 제149호 | 20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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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1968년 펄 시스터스의 ‘커피 한잔’).
두 노래는 발표 시기가 40년이나 차이 난다. 40년이 흘렀어도 커피 향은 여전히 대중의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젊은이에게도, 싸구려 자취방에서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는 20대에게도 커피는 ‘필수품’이 된 것이다.
한국에서 커피의 역사는 110년 남짓 됐다. 첫 등장은 암울한 조선 말기 시대 상황과 연계돼 있다. 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ㆍ1895년) 이후 조선 정세는 흉흉했다. 고종 황제는 1896년 신변의 불안을 느낀 나머지 황태자와 함께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고종은 그곳에 1년 동안 머물렀다. 잘 알려진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나라가 백척간두였던 시절, 고종은 러시아 측이 제공한 커피를 마시면서 두려움과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고종은 커피의 쓴맛과 검은 색깔 때문에 이를 보약으로 생각했다는 말도 있다. 매일 대접에 담아 한 번에 들이켰다는 것이다. 반면 고종이 커피 향을 음미하고 마셨다는 기록도 있다. 어쨌든 임금이 커피를 즐기면서 한반도에 커피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커피는 고종과 황태자(순종)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바로 김홍륙의 독다(毒茶) 사건(1898년)이 그것이다. 당시 고종의 러시아어 통역 담당이었던 김홍륙은 러시아 세력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둘렀다. 고종이 거액을 착복한 김홍륙을 유배 보내려 하자 그는 앙심을 품고 1898년 고종의 생일 만찬에서 고종과 황태자가 마실 커피에 독약을 탔다.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김홍륙은 원한을 품고 어전에서 음식을 담당하던 김종화를 매수해 고종이 마시는 커피에 독약을 타도록 꼬드겼다. 평소 커피를 즐겨 마셨던 고종은 한 번 마시고 토해 냈지만, 맛을 구분하지 못하던 황태자는 맛을 보다가 복통과 어지럼증으로 쓰러졌다.”
이 사건으로 나중에 ‘조선 최후의 왕’이 된 순종의 몸이 크게 상했다고 한다. 소설가 김탁환은 이를 소재로 『노서아 가비(露西亞加比ㆍ러시아 커피의 음역)』를 지난해 출간하기도 했다.
왕실에서 시작된 커피 문화는 곧 고관대작에게 퍼졌다. 이후 1920~30년대 커피는 신문화의 상징이 됐다. 문인이 다방에 모여 인생과 문학을 논할 때 빠지지 않았다. 신세대 젊은이에게 다방이 만남의 장소로 떠오른 것도 커피 덕이다. 1927년 서울 종로에 문을 연 다방 ‘캬캬듀’는 당시 해외 유학파의 아지트였다. 구두와 양장을 한 신세대 젊은이는 이곳에 모여 사랑과 인생을 얘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커피는 일부 상류층의 사치품이었다. 커피가 대중 속으로 파고들기까지는 그 후 서너 번의 도약기를 거쳐야 했다.광복 이후 주한 미군이 커피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군의 군용 식량에 들어 있던 봉지 커피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면서 서민들의 입맛을 바꿔 놓은 것이다. 당시 미군의 봉지 커피는 암시장에서 최고 인기 상품이었다.
60~70년대는 다방 문화가 커피의 중흥을 이끌었다. 이때 등장한 ‘모닝커피(커피에 날계란 노른자를 넣고 참기름을 살짝 첨가해 마시는 커피)’는 지금 50~60대에는 추억이기도 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커피는 맛보다는 폼과 멋으로 먹는 기호품이었다.76년 커피믹스가 등장하면서 커피 시장의 판도도 바뀌었다. 설탕ㆍ프림ㆍ커피를 섞은 커피믹스는 ‘다방 커피’를 밀어냈다. 78년에는 커피 자동판매기가 첫선을 보이면서 누구든지 쉽게 커피를 접할 수 있게 됐다.
90년대 이후에는 원두커피가 인기몰이를 했다. 99년 이화여대 앞에 개점한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1호점은 커피문화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스타벅스ㆍ커피빈 등 외국계 커피전문점 브랜드가 한국 시장을 주도했다. ‘커피의 맛보다 브랜드를 마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최근에는 질을 강조하는 토종 커피 브랜드가 잇따라 등장하며 외국계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1조9000억원(2009년 말 기준)에 달하는 국내 커피 시장에서 커피전문점은 28.9%(5500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끓는 물보다 85~90도가 적당...온도 안 맞으면 쓰거나 떫은맛
커피, 두 배 맛있게 마시려면
| 제149호 | 20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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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먼저 물과 커피를 알맞게 섞는 게 중요하다. 물 180mL에 커피 10g을 넣는 것이 적당하다. 커피 10g은 테이블스푼으로 두 개, 일반 밥숟가락으로 한 개쯤 된다.
2.물은 너무 끓이지 않는 게 좋다. 좋은 커피는 보글보글 끓인 물보다는 섭씨 85~90도쯤에서 불을 꺼야 한다. 100도 이상의 물에서는 커피 속의 카페인이 변질돼 쓴맛이 나온다. 70도 이하에서는 타닌의 떫은맛이 난다.
3.커피는 무엇보다 ‘코’로 즐기는 식품이다. 사람의 미각은 후각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손으로 커피 잔을 감싸고 코로 ‘후르르 씁’ 하고 숨을 들이쉬면서 공기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 고유의 아로마가 전해지면서 더욱 풍부한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
4.입 안에서 굴려가면서 마셔라. 와인 마실 때 입 안에서 몇 차례 굴려가면서 맛을 음미하는 것과 같다. 후루룩 소리를 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혀의 어느 부위에서 어떤 맛이 느껴지는지 찾아보라. 라틴아메리카산에선 신맛, 인도네시아산에선 흙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맛을 표현하라. 자동판매기 커피든,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든 자신이 느낀 맛을 표현하라. ‘아, 쓰다’ ‘향이 풍부하다’ 등 자신이 느낀 맛을 몇 글자로 표현하다 보면 그 맛을 더욱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다. 어느 음식과 잘 어울릴지 상상해보는 것도 좋다.
한 잔에 10만원 … '사향고양이 커피' 세계 최고 명품
커피, 파고들면 더 재미있다
이상재 | 제149호 | 20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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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팔리나.
원유에 이어 세계 물동량 2위다. 연간 거래량이 700만t, 하루 소비량은 25억 잔에 이른다. 말 그대로 ‘전 지구적 기호식품’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에서도 판매량이 늘고 있다. 시장 규모는 약 1조9000원. 이 가운데 80% 이상이 인스턴트커피다. 1999년 스타벅스가 들어온 이래 에스프레소 커피전문점이 크게 늘었지만 한국인은 아직은 쓰면서 달달한 커피를 즐긴다. 한국인의 1인당 연평균 소비량은 300잔.
-품종은.
크게는 아라비카(Arabica)와 로부스타(Robusta)로 나뉜다. 두 품종이 전체 생산량의 99%를 차지한다. 나머지 1%는 리베리카(Liberica)다. 아라비카는 원두커피의 주원료로 쓰인다. 향긋하고 섬세하다. 로부스타는 대개 인스턴트커피의 원료로 쓰인다. 거칠고 쓴맛에 강한 보디감을 지녔다. 로부스타는 온도 변화와 병충해에 강하고 씨만 뿌려놓아도 잘 자라 생산비가 적게 든다. 이에 비해 아라비카는 냉해나 병충해에 약하다. 상대적으로 생산비가 높게 든다. 아라비카는 주로 중남미 지역에서, 로부스타는 베트남 등에서 많이 재배한다. 전 세계 커피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브라질은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모두를 재배하고 있다.
-커피 생산지역을 ‘지구의 허리띠’라고 부르는 이유는.
커피나무는 서리나 냉해가 없는 기후에서 잘 자란다. 적도를 중심으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 사이의 열대지방에서 주로 재배되는 이유다. 이 지역은 지구를 띠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어 ‘커피벨트(Coffee Belt)’ 혹은 ‘커피존(Coffee Zone)’이라고 부른다. 커피는 그중에서도 섭씨 15~25도, 연간 강수량 1500~2000㎜ 정도인 약산성 토양에서 잘 자란다. 또 고산지대에서 단단하고 맛이 풍부한 질 좋은 커피가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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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커피를 가리킨다. 커피는 에티오피아·우간다·콜롬비아·브라질·동티모르·인도네시아 등 빈곤국에서 주로 생산된다. 커피 재배 농민이 1㎏의 원두를 팔고 손에 쥐는 돈은 10센트 안팎이라고 한다. 이들의 일당은 1~2달러가량. 그런데 커피의 소비자 가격은 여기서 200배나 뛴다. 대형 유통업자가 천문학적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불공정을 바로잡자고 나온 것이 공정무역 커피, 즉 착한 커피다. 소비자들이 유통업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생산자들과 연결해 커피 생두를 적정 가격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즘은 커피뿐만 아니라 코코아·차·바나나 등 다양한 작물에서 공정무역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어떤 커피가 좋은 커피인가.
커피는 기호식품이다. 김치 맛이 수백 가지, 배추도 수백 가지인 것처럼 어떤 맛이 최고라고 꼽기는 힘들다. 자신의 취향에 따라 좋은 커피를 선택하면 된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품종, 다양한 추출 방법으로 만든 커피를 즐기는 게 좋다고 권유한다. 깔끔한 맛을 원하면 라틴아메리카산을, 시큼한 맛으로 자극받고 싶다면 아프리카 케냐산, 흙을 씹는 듯한 묵직한 맛을 원하면 인도네시아산이 좋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커피는.
루왁커피다. 이 커피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에 살고 있는 사향고양잇과의 야생동물인 루왁(luwak)에게 얻은 것이다. 루왁이 커피 열매를 먹으면 껍질만 소화가 되고 씨앗은 소화가 안 된 채 배설된다. 이 커피 씨앗이 뭉쳐진 배설물만을 채취해 양질의 원두만을 골라 깨끗이 닦아낸 뒤 햇볕에 말려 만든 것이다. 독특한 향기와 깊고 부드러운 맛으로 유명하다. 문제는 생산량. 1년에 500~700㎏의 원두만 생산된다. 원두 ㎏당 900~1000달러 이상을 호가한다. 큰돈을 내도 진품을 구하기가 힘들 때도 있다. 일반 소매점에서는 잔당 7만~10만원을 받는다. 이 밖에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미국 하와이에서 생산되는 ‘코나’ 등이 비싼 커피로 꼽힌다.
-커피 보관 요령은.
원두 상태든 가루 상태든 커피는 변질되기 마련이다. 습기가 많고 온도가 높은 곳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2주 이내에 사용할 커피는 잘 밀봉해 신선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한다. 용기는 밀봉이 가능한 유리나 도자기 소재가 좋고, 200~300g 정도씩 나눠 보관하는 게 편리하다. 그 이상 보관할 커피는 작은 용기에 담아 밀봉한 뒤 냉동실에 넣어두어야 한다. 일단 개봉한 후에는 접촉된 수분으로 인해 향을 잃게 되므로 다시 냉동실에 보관하지 말아야 한다.
-캔커피는 언제 처음 등장했나.
커피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태어났다. UCC커피의 창업자인 우에시마 다다오가 1966년 캔커피를 발명해 커피 대중화에 나섰다.
-가볼 만한 커피 전문점은.
한국의 1세대 바리스타로 ‘1서3박’이 꼽힌다. 모두 일본 유학파로 지금은 작고한 서정달·박원준씨와 박상홍(재미)씨, 박이추씨가 그들이다. 박이추씨가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이 강원도 강릉의 ‘보헤미안’(033-662-5365)이다. 역시 강릉에 있는 ‘테라로사’(033-648-2760)도 커피 로스팅 공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서울 청담동의 ‘커피미학’(02-3444-0770), 압구정동의 ‘압구정커피집’(02-511-5078)이 강남에서 손꼽히는 커피 전문점이다. 서울 부암동 북악스카이웨이 삼거리에 있는 ‘클럽 에스프레소’(02-764-8719)도 강북에서 유명한 커피점. 서울 서대문의 ‘커피와쟁이’(02-723-6067)는 원두 수입부터 로스팅, 판매, 교육 과정까지 운영한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왈츠와닥터만’ 커피 박물관(031-576-0020)도 가볼 만한 명소로 꼽힌다.
-일반인도 쉽게 커피 만들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나.
요즘은 전문대학이나 대학 평생교육원 등에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가르친다. 나주대학이 2005년 커피바리스타학과를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부산여자대학·양산대학·대구보건대학 등이 커피 관련 학과를 설치했다. 유명 바리스타나 로스터가 커피 전문가 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나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도 커피 강좌가 개설돼 있다. 민간 기업 중에는 스타벅스가 지금까지 1300회 넘게 커피 세미나를 운영했다.
도움말
전광수 전광수커피 대표, 한상철 스타벅스 커피 앰배서더, 『커피견문록』, 『커피 경제학』
생두 약하게 볶으면 향이 좋아지고, 진하게 볶으면 맛이 좋아져
맛있는 커피 만들기
| 제149호 | 20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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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두 고르기
우리가 먹는 부분은 커피나무의 열매 중 과육을 제거한 씨앗이다. 커피 열매는 빨갛게 익으면 체리처럼 보여 영어로는 ‘커피체리(coffee cherry)’라고 부른다. 그 씨앗을 생두(그린 빈·green bean)라고 한다. 생두는 크기가 균일한 것을 골라야 한다. 커피 역시 일반 농작물과 같이 이물질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벌레가 먹거나 썩은 콩은 골라내야 한다.
2. 볶기 (로스팅)
생두는 ‘커피’라고 할 만한 맛과 향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그저 푸르스름한 콩(green been)에 불과하다. 여기에 열을 가해 볶아야 비로소 커피로서 맛과 향을 지닌 ‘원두(roasted bean)’가 된다. 커피의 맛은 어떻게 볶느냐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약하게 볶으면 연한 갈색을 띠면서 강한 신맛을 낸다. 오래 볶으면 볶을수록 색상은 점점 갈색이 짙어져 검은색에 가까워진다.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향기가 좋은 커피와 맛을 표현하는 커피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향도 좋고 맛도 훌륭한 커피는 얼마 되지 않는다. 맛을 표현해야 하는 커피인데 향을 살리기 위해 ‘오버’하면 자칫 고유의 맛까지 버릴 수 있다. 일반적으로 브라질·코스타리카·콜롬비아 커피는 향이 좋은 것으로, 케냐·과테말라·인도네시아·인도 커피는 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이 좋은 커피는 약하게, 맛이 좋은 커피는 진하게 볶는다.
3. 우려내기 (추출)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순간적 압력을 가해 커피를 추출하는 것이 일반 커피점에 많이 보는 에스프레소 방식(가압 여과 추출)이다. 보통 에스프레소에 사용하는 커피는 두세 가지, 많게는 7~8가지 커피 품종을 섞어서 사용한다. 집에서 원두커피를 내릴 수 있는 간단한 기구는 커피메이커·모카포터·프렌치프레스·드립퍼 등이 있다.
분쇄된 원두가 뜨거운 물과 접촉한 뒤 추출액을 분리하는 프렌치프레스 방식은 커피 전문점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여과용 필터에 분쇄된 원두를 넣고 뜨거운 물을 넣어 커피를 추출하는 ‘여과 추출’ 방식으로 대표적인 것이 전기 커피메이커다.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뽑아낼 때는 5분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물의 온도는 75도, 원두의 양은 1인분 10g이 적당하다. 간단한 핸드드립 커피 추출 방법으로 ‘종이드립’이 있다. 1인분 커피에는 원두가루 15g과 물 200~250mL가 들어간다. 끓인 물을 핸드드립용 주전자에 옮겨 담은 다음 3분쯤 기다리면 된다.
3명 중 2명 매일 즐겨 … 물 다음으로 많이 마셔
세계의 커피산업, 한국의 커피산업
고란 | 제149호 | 20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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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개인은 커피 산업에서 ‘코요테’로 통용된다. 소규모 농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수확물을 확보한다. 대개 시장 가격 이하로 커피 생두를 사들여 이익을 남긴다. 그래서 대규모 농장주들은 중개인을 통하기보다 수입처를 물색해 직접 커피를 거래한다.
수입업자는 중개인이나 대규모 농장으로부터 생두를 구매한다. 저장 시설을 갖추고 주문이 올 때마다 적시에 생두를 공급한다. 질 좋은 커피를 선별해 내는 게 이들 몫이다. 배전업자는 생두를 받아 로스팅(볶는) 작업을 거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커피 형태로 만든다. 로스팅은 가장 마진을 많이 남기는 과정 중 하나다.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는 농장주와 연계해 커피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로스팅도 자체로 완성해 특유의 커피 품질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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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까지 거치면 커피는 소매업체, 예를 들어 네스카페·맥스웰하우스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최종 전달된다. 커피 가공 산업이 발달하면서 출현한 것이 인스턴트 커피다. 세계가 불황이던 1930년대 브라질 정부는 거대 식품 업체인 네슬레에 커피 재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네슬레는 물만 부으면 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릴 수 있는 인스턴트커피, 네스카페를 1938년 출시했다. 인스턴트커피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커피 시장의 주류가 됐다. 현재 전체 커피 시장의 40%, 약 17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3대 커피(인스턴트) 기업은 네슬레·크래프트제너럴푸드·프록터앤갬플(P&G)이다. 이들 3개 기업이 전 세계 커피 생두 교역량의 60%를 차지한다. 네슬레의 커피 브랜드로는 네스카페와 테이스터스초이스 등이 있다. 이 중 네스카페는 브랜드컨설팅회사인 인터브랜드가 발표하는 지난해 세계 100대 브랜드에서 25위에 올랐다. 모기업 네슬레(58위)보다도 더 유명하다 . 크래프트제너럴푸드는 말버러·버지니아슬림 등 담배로 유명한 필립모리스 소유다. 필립모리스는 1985년 맥스웰하우스 브랜드를 보유한 제너럴푸드를, 89년에는 세계 최대 유가공 업체인 크래프트를 매입해 크래프트제너럴푸드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로 맥스웰하우스·맥심 등이 있다. 생활용품 회사로 유명한 P&G는 63년 폴저스를 인수하며 커피 시장에 진출했다.
국내에서는 유독 인스턴트커피 시장이 발달했다. 전체 커피 시장의 80%가 인스턴트 커피다. 또 해외와는 달리 네슬레가 힘을 못 쓰는 드문 시장이기도 하다(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네슬레 브랜드인 네스카페의 점유율이 70%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동서식품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동서식품은 68년 크래프트가 합병하기 전 회사인 제너럴푸드와 주식회사 동서가 합작해 만든 회사다. 70년 맥스웰하우스, 80년 맥심 브랜드를 국내에 출시했다. 76년에는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현재 커피믹스 시장은 1조원 규모로 불어날 정도로 급성장했다. 특히 동서식품의 ‘맥심 모카골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07년에만 50억 개, 하루 평균 1370만 개 꼴로 팔려나갔다.
70~80년대 인스턴트커피 시장은 그야말로 동서식품 ‘전성시대’였다. 점유율이 98~99%에 달했다. 그러나 네슬레가 89년 두산그룹과 합작해 이듬해 네스카페와 테이스터스초이스를 내놓으면서 판이 흔들렸다. 현재는 동서식품과 한국네슬레가 7대 3 정도의 비율로 점유하고 있다.
커피음료 시장에서는 ‘레쓰비’를 앞세운 롯데칠성음료가 강자다. 90년대 중반까지 맥스웰과 네스카페가 선두 다툼을 벌였지만, 98년부터는 레쓰비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스타벅스·일리 등 커피 전문점 브랜드가 시장을 공략하면서 롯데칠성음료의 시장 점유율은 2007년 41.9%에서 지난해 30.8%로 줄었다. 대신 기타 업체들의 비중이 16%포인트(39.5→55.5%) 늘어났다.
카페 형식의 커피 프랜차이즈점도 증가 추세다. 99년 이화여대 앞에 1호 매장을 낸 이후 스타벅스는 현재 전국 매장 수가 316개에 달한다.
부슬부슬 내리는 잦은 비가 스타벅스 키웠다
커피의 도시 미국 시애틀
고란 제149호 | 20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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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답을 하나로 묶는다면? 커피다. 왜 그런지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시애틀에서는 왜 잠을 못 이룰까. 시애틀은 미국 북서부의 끝, 캐나다와 인접한 곳에 위치한다.
서안해양성 기후 덕에 겨울에도 크게 춥지 않다. 그러나 바다에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인근 산맥에 부딪치면서 자주 비를 뿌린다. 여름을 빼곤 거의 우기가 계속된다. ‘비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다. 비가 부슬부슬 오면 체감온도는 내려가고 기분은 다운된다. 추운 느낌과 우울한 기분을 바꾸려면 커피가 필요하다. 비와 커피, 어울리는 조합이다. 그렇게 기분전환을 위해 마신 커피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것은 아닐까. 혹은 잠 못 이루다 깨어나 커피 한 잔을 찾는 것은 아닐까. 시애틀이 속한 워싱턴주의 커피 소비량은 미국 내에서 캘리포니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애틀은 인구 60만 명의 도시지만 시내와 근교에 MSㆍ보잉ㆍ아마존(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 업체)ㆍ코스트코(회원제 할인점) 등 본사가 위치해 있다.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회사가 많다. 커피를 찾는 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시애틀에서는 손에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또 이들 직장은 연봉 수준도 높은 편이다. 흔히 저소득 계층으로 분류되는 흑인 비중도 낮다. 워싱턴주의 100명당 흑인은 3.2명에 불과하다. 인스턴트커피보다 비싼 에스프레소 커피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셈이다.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 문화가 발달한 것도 문맹률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 센트럴코네티켓주립대학의 조사에서 시애틀은 미국 69개 주요 도시 가운데 문맹률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과 2006년에는 가장 낮은 도시로 꼽혔다. 미 통계국에 따르면 25세 이상 인구의 54%가 대학 졸업자일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다. 1인당 독서량도 시애틀이 가장 많다. 책을 보거나 쉬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를 찾을 수 있는 소비자층이 두텁다는 의미다. 워싱턴주의 100만 명당 스타벅스 매장 수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첫 번째는 55만 명의 인구가 밀집한 워싱턴DC다.
스타벅스 외에도 시애틀 시내 곳곳에는 커피 매장이 가득하다. 블록마다 2~3개씩 다른 커피 체인이 있다. 스타벅스의 ‘고향’다운 풍경이다. 시애틀스베스트커피(2003년 스타벅스에 인수)ㆍ털리스(Tully’s) 등도 시애틀에서 태동했다.
시애틀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유별나다. 스타벅스를 세계적인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로 키워냈지만 지나친 글로벌화로 인한 몰개성화에는 반기를 들고 나섰다. 스타벅스보다는 동네 카페를 찾자는 ‘반스타벅스’ 운동까지 벌인다. 이 같은 움직임에 스타벅스도 대응책을 마련했다. 스타벅스 이름을 감춘 매장, 일명 ‘스텔스(stealth) 스타벅스’를 지난해 시애틀에 시범 오픈했다. 동네 카페 개념으로 스타벅스 로고를 모두 감추고 자동 분쇄기가 아니라 바리스타가 손수 갈아 만든 에스프레소를 제공해 초창기 스타벅스 분위기를 살리겠다는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