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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는 일종의 모세의 설교집이다(1:1, 5)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1)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5)
설교는 선포행위이다.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행위이다.
그리고 설교는 청중들로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상으로 선포한 설교 원고가 바로 성경 신명기이다.
성경책 <신명기>에는 세 차례에 걸쳐 선포된 모세의 설교문이 소개된다.
그중 오늘 본문은 3번째 설교문에 해당한다.
신명기 설교의 주제는 "계명"이다(5) "이 율법을 풀어 설명하여 주었다"(공동번역본)
설교를 율법을 설명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설교의 주제는 말씀이어야 한다.
설교는 개인의 체험을 소개하는 간증이 아니다.
그리고 설교는 개인적인 묵상의 시간인 큐티와도 다르다.
설교의 내용은 책 소개나 개인의 자랑도 아니다.
설교의 처음이요 마지막은 말씀이어야만 한다.
<신명기>를 히브리어로 "엘레 하데 발림"이라고 부른다. "이는.. 말씀이니라"(1:1)
고대 유대인들은 책 제목을 그 책의 첫 문장에서 발췌해서 정했다.
모세는 신명기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설명하고 해석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 이스라엘 민족은 모압땅에 거주 중이다.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요단강만 건너면 약속의 땅이다.
그때 그 장소에는 광야 2세대들만 생존해 있었다. 대부분의 광야 1세대들은 사망했다.
약 40년전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첫 번째 계약을 체결했었다.
이것을 <시내산 언약> 혹은 <호렙산 언약>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시내산 계약의 당사자들은 광야 1세대들이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시내산 계약 당사자였던 광야 1세대들이 모두 죽었다.
게약당사자가 죽으면 그 계약의 효력도 사라졌다.
그래서 모세는 신속하게 지금 모압 땅에서 광야 2세대들과 다시 계약을 체결하려 한다.
이 계약을 일명 <모압계약>이라고 부른다.
그 장소가 모압이었기 때문이다(1:5)
모세는 계약 중개업자였다. 하나님과 백성들사이에서 계약을 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매도자와 매수자 사이에서 매매계약을 도와준다.
설교자가 그렇다.
설교자는 중개업자와 같다.
예배실은 중개사무실이다.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서 말씀 계약을 도와준다.
오늘도 미준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과 계약하려고 모였다.
교회는 말씀을 팔고 사는 곳이다.
오늘도 좋은 물건이 나왔다. 여러분들은 수지 맞았다.
오늘 계약이 성공적으로 체결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모압계약의 당사자들은 광야 MZ세대들이다.
"MZ세대"? 일종의 신조어인데, 1981년에서 2010년에 출생한 세대를 가리킨다.
이 세대들은 기존의 세대들과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
그때도 그랬다.
광야1세대들과 2세대들은 많이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출애굽의 경험에 있었다.
광야세대는 출애굽을 경험했었고, MZ세대들은 출애굽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모세는 모압광야에서 두 번째 계약을 체결하려 한다.
1절을 읽자.
"이것은 모압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계약의 조문들이다 하나님은 이 계약 외에도 호렙에서도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적이 있다"(공동번역본)
그러니깐 성경책 신명기는 모압에 있는 모세중개사무실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MZ세대들이 말씀 계약을 체결한 일종의 계약문서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예를 든다.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했던 어르신들의 연령은 대략 90세 이상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하신 어르신들은 대부분 다 돌아가시고 극히 소수의 어르신들만 생존해 계신다.
한국전쟁의 실상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만 존재하고 있다. .
그래서 정부는 6월이 되면 한국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에게 한국전쟁 당시의 실상과 그 전쟁이 남긴 교훈을 소개하고 설명한다.
마찬가지다.
모세도 자신의 설교를 통해 애굽의 노예생활과 출애굽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 MZ세대들에게 광야 40년의 실상과 그 광야생활이 남긴 교훈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 책이 바로 신명기이다.
본문을 보자. 2-4절을 읽자.
먼저 모세는 MZ세대들에게 출애굽 과정과 광야 40년의 역사를 소개한다.
이집트에서 발생했던 사건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이집트땅에서 10가지 재앙으로 이방민족들을 헤치우신 이야기를 소개한다.
모든 출애굽 1세대들이 기적과 이적을 경험하고 목격했다.
하지만 이들은 진정한 교훈을 깨닫지는 못했다라고 평가한다(4)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깨닫는 마음, 보는 눈, 듣는 귀"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보는 것과 깨닫는 일은 별개이다.
많이 보고 많이 들었다고 그 모든 것을 깨닫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이 군에 갔다오면 다 변하는가? 아니다.
변하는 사람도 있고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다. 똑 같은 현상을 보고도 깨닫는 사람이 있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왜? 제각기 그 현상을 다르게 해석한다.
현상은 하나인데 해석은 수백 개가 될 수도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똑같은 교사로부터 설명을 듣는다.
하지만 성적은 제각기 다르다.
어떤 현상을 보았다고 해서 모두가 진리를 본 것이 아니다.
진리는 눈으로 볼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리는 현상속에 있지 않다.
항상 진리는 현상 그 너머에 있다.
연륜으로, 배움으로, 아이큐로,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자들만이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를 말할 수 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오늘 이 시간에 진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으로부터 깨닫는 마음, 보는 눈, 듣는 귀를 받게 되시기를 축복한다.
그다음 말씀을 읽어보자. 5-6절이다.
모세는 40년 광야 생활을 두 가지로 요약 설명한다.
1.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했다고 소개한다(5)
옷과 신발을 예로 든다.
"옷은 헤어지지 않았고 신발은 닳아지지 않았다"
이들이 무슨 옷을 입었길래 어떤 신발을 신었길래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헤어지지 않는 옷>과 <닳아지지 않는 신발>이 있겠는가?
그러니깐 이 표현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가끔 자녀들이 부모에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누구는 지난 주말에 어디에 갔다더라" "친구는 생일날 자기 부모로부터 이런 선물을 받았다더라"
자녀들이 깐죽거린다.
그만하라고 하는데도 계속 말한다.
그러자 부모님이 큰소리로 나무란다.
"너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내가 밥을 안 주더냐 학교를 안 보내주더냐 옷을 안 사다 주더냐?"라고 말한다.
그러자 자녀가 자기 방으로 휙 들어간다.
부모님은 자녀에게 풍족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게 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광야생활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하도록 책임져 주셨다.
그렇다.
지금 우리도 광야생활중이다.
신앙생활은 광야생활과 유사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계를 책임져 주신다. 우리는 절대로 굶어 죽지 않는다.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미래를 불안해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6절을 읽어보자.
무슨 뜻인가?
"너희는 남들이 먹는 양식이나 포도주나 술을 마시지 않고도 살수 있었다"(공동번역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동안 이방인들이 사는 것처럼 살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의도덕으로 그렇게 만드셨다고 부언 설명한다. "못하게 하셨음은"(6)
2. 하나님께서 광야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핍을 허락하셨다고 하신다.
결핍? "있어야 할 것이 자신에게는 없는 현상"
이방인들에게는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없었다.
이방인들은 당연히 떡을 먹고 술을 마시고 포도주를 마시며 살았다.
하지만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떡과 술과 포도주가 없었다.
광야 생활에는 결핍이 생긴다. 광야에서는 모든 것을 갖추고 살지 못한다.
요즘 주말 캠핑이 유행한다고 한다.
캠핑의 재미는 결핍을 경험하는 것이다.
물이 없으면 빗물을 받아 사용하고 가스버너가 없으면 장작으로 밥을 해 먹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핍이 없는 인생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명인들도 결핍을 겪고 있다.
이 세상에 살아 숨쉬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결핍이 있다.
결핍의 종류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예수를 잘 믿는 우리에게도 결핍이 발생한다.
결핍은 예수 잘 믿는 우리를 피해 가지 않는다.
왜? 우리도 광야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결핍을 허락하신 이유는? 6절 후반절을 보라.
"그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너희의 주인임을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공동번역본)
무슨 의미인가? 결핍을 느낄때마다 하나님을 묵상하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결핍을 경험할때마다 결핍을 묵상한다.
돈이 모자라면 돈을 묵상한다. 하루 종일 돈 생각한다.
집이 부족하면 집만 묵상한다. 집 묵상하다가 하루 해가 다 간다.
하지만 성경은 결핍이 생길때마다 하나님을 묵상하라고 강조한다.
그러면, 결핍을 느낄때마다 하나님을 묵상하면 그 결핍이 채워지는가?
돈이 모자랄때 하나님을 묵상하면 부족한 돈이 보충되나?
집이 없을 때 하나님을 묵상하면 집이 생기는가?
아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결핍이 생길 때 하나님을 묵상하라고 하는가?
결핍이 생길때마다 그 결핍이 보충되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궁할 때 돈이 생기면 돈 문제만 풀린다.
집이 없을 때 집이 생기면 집 문제만 풀린다.
돈이 생겼다고 집이 생겼다고 즉 결핍이 해소된다고 인생의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말한다.
7-9절을 읽자.
떡을 먹지 않아도 술과 포도주를 마시지 않아도 이들은 목전에 약속의 땅을 두고 있다.
결핍이 발생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했다.
결핍을 보충한다고 해서 궁극적인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니다.
언약의 말씀을 지키면 언제든지 승리할 수 있다고 약속하신다.
결핍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어느 토론 프로그램에 일본전문가가 출연했다.
참여자가 그 전문가에게 질문을 했다.
"일본 정부가 계속 교과서 문제, 독도문제를 제기하는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일본정부를 부정하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우리 정부는 일본정부를 인정하고 이들의 주장을 관리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개선된다고 주장.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가 그슬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나 대상이 발견되면 그 문제나 대상을 무조건 제거하려고 든다.
귀지를 파 내야하고 때를 빡빡 밀어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럴 때 전문가들은 누누이 말한다.
귀지를 파 내는 행위, 때를 미는 행위를 삼가라고 말한다.
결핍도 마찬가지다.
결핍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관리의 대상이다.
결핍을 잘 관리하기만 하면, 결핍이 성공하기 위한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된다.
애플의 창립자이며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주역인 스티브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을 받았다.
그가 졸업식장에서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계속 갈증을 느끼세요 바보처럼 살아가세요"
전문가들은 그의 성공의 비결이 이 한마디 말속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미혼모에게서 출생하여 태어나자마자 양부모에게 입양되었고 대학에 입학한 지 몇 달 만에 자퇴했다.
히피로 살다가 티벳불교에 심취하여 인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의 삶이 평범하다거나 행복했다고는 평가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핍을 잘 관리해서 역사에 남을 만한 위인으로 등재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모든 사람이 결핍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결핍이 없는 장소는 없다.
성도에게도 결핍이 있고, 광야생활에는 결핍이 필수 요인이다.
그래서 우리도 늘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결핍을 대하는 자세는 한 가지밖에 없다.
관리해야 한다.
결핍을 제거의 대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결핍은 결코 제거되지 않는다.
얼굴에 난 점을 빼면 얼마있다 점이 또 자란다.
결핍이 그렇다.
없어진 것 같아 안심했지만 얼마있다 또 찾아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핍을 관리할수 있어야 한다.
결핍으로 인해 불안함이나 부족함을 느끼지 마라.
우리는 결핍으로 인해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결핍 때문에 실패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결핍을 관리하라.
결핍이 생길때마다 자신을 불행의 주인공으로 만들지 마라.
"왜 나에게는 이것이 없을까? 왜 나는 어릴적부터 늘 궁핍해야 하지?"라는 질문으로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지 마라.
대신에 하나님을 묵상해라.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결핍을 주셨을까를 먼저 생각해라.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지금의 결핍을 어떻게 다루기를 원하시는가를 묵상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해답을 제시해 주실 것이다.
결핍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환될 것이다.
그 에너지로 도전하고 매달리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라.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소극적으로 풀이 죽어지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자신의 결핍을 관리한다면 승리할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