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삼성전자가 러시아 TV 시장을 중국 전자 제품 브랜드들에게 내준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시장에서 수입자 브랜드 1위를 차지한 현대차·기아가 지난 1년간 판매 대수에서 바닥을 친 것에 못지 않은 충격적인 결과다.
현지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는 지난 9년간 러시아 TV 시장에서 부동의 최강자 자리를 굳혀온 삼성전자가 올해 1~9월 TV 판매량에서 중국 브랜드 '하이얼'에게 뒤졌다고 14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IT기업 '에프플러스'(IT-холдинг Fplus)의 자료를 인용, 중국의 하이얼이 지난 9개월간 러시아에서 66만대 이상의 TV를 팔아(시장 점유률 11.5%), 221억 루블의 매출(시장 전체 매출의 15.3%)을 올리면서 1위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작년에만 해도 하이얼은 상위 3위권에도 들지 들지 못했다.
삼성전자 TV 홍보 이미지(위)와 러시아 출시 제품들/홈피 캡처
또 다른 중국 기업인 샤오미(점유율 8.3%)와 하이센스(6.6%)가 각각 2위, 3위를 차지했으며, 삼성전자는 지난해 점유율 25.3%에서 5.1%로 급전직하했다. 러시아가 자국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에 맞서 자국의 전자 산업 진흥에 나서면서 러시아 브랜드의 TV 판매량도 크게 늘어, 전년(17.5%) 대비 4.8%포인트 증가한 22.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코메르산트와 가제타.ru 등 현지 매체들은 일제히 서방의 대러 제재가 유지된다면, 삼성전자는 러시아 시장을 완전히 잃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현지의 칼루가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러시아의 올해 1~9월 TV 판매량은 570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40% 늘어났다. 현지 최대 가전 유통업체인 엠비디오-엘도라도(M.Video-Eldorado)는 TV 매출이 40% 증가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특별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서방의 주요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철수하거나 식료품과 의약품, 생필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제품 공급을 중단했다. 이에따라 현대차·기아와 삼성, LG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도 판매량이 급격히 줄면서 시장 점유율은 고꾸라졌다. 현지 전문가들은 삼성의 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러시아 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러시아 현지 매장/사진출처:TUT-MAGAZ.RU
가동을 중단한 삼성전자 칼루가 공장/홈피 캡처
삼성이 밀려난 러시아 TV 시장은 중국의 하이얼과 하이센스가 1위 자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전망했다.
한편, 유명 외국 브랜드가 떠난 러시아 시장에는 지난 10개월간 터키, 벨라루스, 에스토니아, 한국 등의 신규 브랜드 16개가 런칭했다고 또다른 현지 매체 뉴스.ru가 전했다. 이 매체는 "신규 브랜드의 출현은 2019년 이후 가장 많은 것"이라며, "대부분이 터키 의류 및 신발 제조업체에서 나왔으나, 벨로루시와 에스토니아, 한국에서도 신규 브랜드가 출시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