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정돈의 달인, 정애자 선생님
정애자 선생님이 오신다고 전화가 왔다. 코카서스 3국 여행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텐데, 이곳까지 오신다고 하니 반가웠다. 선생님은 나보다 몇 살 위다. 오래 전 네팔여행에서 만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도 원래 코카서스 3국 여행을 함께 가기로 했으나 아내가 허리치료 때문에 우리는 가지 못했다.
나로부터 배낭여행을 전수(?) 받은 이제 나보다 더 홀로 배낭여행을 잘 다니는 여행의 고수가 되어 있다. 그녀는 생각한 대로 바로 거침없이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다. 서울 이대입구에서 전철을 타고 소요산역으로 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전곡버스터미널까지 오면 내가 마중을 나가기로 했다. 오전 8시 30분, 아침 일찍 출발을 했는지 벌써 동두천 역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벌써 동두천역이라니 집에서 새벽 같이 출발했나 봐요.” “글쎄 말이요. 허허.”
나는 전곡버스터미널로 가기위해 내 오래된 애마 산타페에 시동을 걸었다. 20만 km를 넘게 달려온 산타페는 아직 쓸 만하다. 티벳여행을 했을 때 렌트를 했던 깡파의 토요타에 비하면 새 차나 다름없다. 구입을 한지 14년째가 되지만 앞으로도 기력이 다 하는 날까지 애용을 할 생각이다.
금굴산 밑 금가락지에서 전곡까지는 약 17km 거리다. 집에서 나오면 비포장도로를 100여 미터 가다가 이장님 댁에서부터는 좁은 농로가 이어진다. 어가정을 지나 동이리 마을에서 좌회전을 하여 마전리 삼거리까지 차도 없는 고요한 도로를 나의 애마는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마전리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왕징면으로 이어지는 꽤 넓은 들판이 나온다. 모내기를 한 벼들이 벌써 파릇파릇 자라나 있다. 이번에 내린 집중 소나기로 완전 해갈이 되어 논밭이 짙푸른 작물로 가득 차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왕징면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면 곧장 임진교를 건넜다.
임진강 수위도 꽤 불어나 있다. 임진강 관리 차량이 사이렌을 불며 군남댐 홍수조절지 문을 연다고 방송을 한다. 강변에 낚시꾼과 물놀이를 하던 사람들이 황급히 대피를 한다. 아마 북한 땅에도 비가 상당히 내린 모양이다. 태극기 휘날리는 임진교를 지나 전곡으로 향했다. 길 가에 노란 꽃들이 피어 있고 도로는 한적하다.
전곡버그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정애자 선생님이 벌써 와 계셨다. 시간 약속을 칼처럼 지키는 그녀는 작은 배낭을 등에 걸머지고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전곡에 갈 때마다 집에서 필요한 물건을 메모지에 적어서 가져 온다. 메모를 하지 않으면 빠뜨리기 쉽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기억력이란 한계가 있는 법이다.
오늘은 전곡 시장에서 설탕 한 포대, 오디효소를 담을 용기 6개, 거품기 1개, 10리터 담금주 2개를 차질 없이 샀다. 그런데 설탕 한 포대(15kg)는 정애자 선생님이 선물을 하겠다고 한다.
“아니, 그렇게 거금을 드려 선물을 하시다니 이달엔 기둥뿌리가 흔들흔들 하시겠네요. 하하.” “오랜만에 찰라의 집에 가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호호.”
다행히 전곡의 국민마트가 설탕 값이 하나로마트 보다 무려 2,700원이나 싸다. 하나로 마트는 백설탕 15kg 한 포대가 18,400원을 하는데, 이곳은 15,600원이다. 아무튼 나는 큰 선물을 받은 샘이다. 금가락지 생활은 반찬을 만들기 위해 돈을 쓸 필요가 거의 없다. 야채와 양념을 거의 자급자족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5,600원 짜리 설탕 한 포대를 사는 것은 큰돈을 쓰는 셈이다. 이 달에는 오디와 보리수 열매, 매실을 따서 효소를 만드느라 설탕이 꽤 많이 소요되고 있다.
인구 2만의 전곡읍은 쇼핑하기에도 좋고 여유가 있는 접경도시다. 자동차를 주차하기도 좋고 신호등이 거의 없어 거리 아무데서는 유턴, P턴, 좌회전, 우회전을 자유자제로 할 수 있다. 자동차들은 급하지 않고 상대방의 차가 회전을 할 때가까지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다. 나는 이런 작은 읍이나 소 도시가 좋다. 지리산에 살 때에는 구례읍이 그랬다.
마법처럼 정리정돈 되는 집안 구석구석
정애자 선생님은 집에 도착하자 말자 배낭을 내려놓고 걸레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거실, 방, 2층 다락방, 싱크대, 냉장고까지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아냈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이 번질번질하게 빛이 났다. 선생님 손을 거치면 물건들이 적나라하게 정리정돈이 된다. 신발장과 찻잔, 테라스의 의자와 탁자, 심지어는 야외 싱크대까지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완벽하게 정리정돈이 된다.
아내와 나도 평소에 하루걸러 집안을 쓸고 닦고 청소를 한다. 시골오지의 집일수록 청소를 자주해야 한다. 그것은 청소를 하면서 지내가 없는지 살펴야 하고, 파리모기 등 벌레들이 죽은 것을 매일 쓸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내고, 스틱에 달린 걸레로 대부분 닦아낸다. 그러다보니 손걸레 질보다는 구석구석을 닦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애자 선생님은 모든 청소를 빗자루로 쓸고 손걸레로 일일이 닦아낸다. 그러므로 소파 밑, 문 뒤 구석진 곳, 창문틀, 서랍 속까지 말끔하게 청소가 된다. 정리정돈을 하면서 디스플레이를 하는 솜씨도 탁월하다. 센스와 솜시가 있는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작은 소품들이 마치 예술품처럼 진열이 된다.
청소를 끝내고 감자 캐기 체험을 하고, 보리수를 따기도 했다. 찰라의 텃밭에서 일을 하는 동안 마음이 힐링이 된다고 하며… 하기야 우리 집에 오면 누구나 일을 거들어야 한다. 잡초를 뽑고. 텃밭 일을 도와주어야 한다. 삼시세끼를 짓는 일, 설거지도 거들어야 한다.
봄이 시작되면서부터 금가락지에는 손님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내와 나는 워낙 사람을 만나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다 보니 지인들이 집을 자주 방문한다. 지난 5월부터 부부사랑모임을 비롯하여 아내 고등학교 친구들, 서울에서 함께 지냈던 동네 이웃 분들, 응규네 여동생들 등 손님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손님이 오시면 어쨌든 먹을거리를 해결해야 한다. 하루를 머물면 거의 점심 저녁을, 그리고 하룻밤을 지내면 삼시 세끼를 해결해야한다. 이제 대부분의 손님들은 스스로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고, 청소를 하게 된다. 아내 혼자 감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손님들은 밑반찬을 한 가지씩 들고 오기도 한다. 봄부터는 우리 집 텃밭에서는 상추, 오이, 고추 등 야채는 풍부하게 조달을 할 수가 있다.
마음 힐링 잘 하고 가신다고
정애자 선생님은 우리 집에서 하루를 머물다 다음날 오후 6시에 서울로 갔다. 나는 다시 선생님을 전곡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주었다. 선생님의 배낭에는 오디 조금, 보리수 조금, 감자 몇 개, 오이 몇 개 등 금가락지에서 생산한 텃밭 채소들로 채워졌다.
“찰라님, 함께 하는 동안 즐거웠어요. 마음 힐링 잘 하고 갑니다. 가볍던 배낭도 무거워지고요. 호호.” “선생님이 오시는 것은 나의 작은 기쁨이오, 어찌나 집안이 번들번들하던지… 여행 잘 하시고 또 오세요. 우리 집 먼지들이 쌍수를 들어 반기고 있으니. 하하.”
그녀는 버스를 타고 소요산 역으로 떠나갔다. 다음 달 중순에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에스페란토Esperanto 대회 참석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프랑스 릴에서 열리는 100차 대회에 참석을 하고, 프로방스와 헝가리를 여행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루하루를 근면검소하게 살아가고, 절약한 돈으로 여행을 떠나는 그녀의 모든 생활은 청소를 하는 만큼이나 명약관화하다.
정애자 선생님 정리의 달인이다. 그녀는 사서생활을 거의 40년 가까이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손을 거치면 아무리 어질어진 살림도 마법처럼 적나라하게 정리가 된다. 청소를 하면서 도(道)를 닦는다고나 할까? 걸레를 든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까지 깨끗하게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든다.
건강한 심신을 가진 그녀는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우리 집에 머무는 이틀 동안 걸레를 손에 놓지 않은 선생님 덕분에 금가락지가 훤해졌다. 그녀가 머물다 간 자리는 언제나 이렇게 광이 번쩍번쩍 나고 집안이 가지런히 정리가 된다. 고맙소! 정애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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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내와 함께 떠난 세계일주 원문보기 글쓴이: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