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1-11; 에페 1,17-23; 루카 24,46-53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제1독서인 사도행전과 루카 복음은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지 40일 뒤 하늘에 오르셨다고 전하는데요, 여기에 대해 세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심은 우리를 떠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더 가까워지신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라고 말씀하신 후 하늘로 오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습니다.” 이것이 루카 복음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6년 5월 8일 삼종기도 훈화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고통이나 혼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경배드리고 나서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을 배척했던 도시,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을 목격했던 도시, 제자들의 달아남과 그들을 위협하는 세력의 폭력을 목격했던 도시로 돌아가는 것을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사도들과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세상의 모든 도시, 심지어 불의와 폭력으로 가장 고통 받는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도시 위에 같은 하늘이 있고, 모든 주민이 희망을 품고 위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심으로 인해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우리 모두 이제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계신 하늘은 언제나 우리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어느 특정한 지역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계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 위에는 항상 하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주로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김없이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도 줄어들고, 길에서 마주치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도 줄어들기에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간도 줄어듭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시듯 다른 사람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 키릴루스 교부는 “‘하늘’이, 천상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라 하셨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의인들의 마음이 바로 ‘하늘’”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 계신 곳이 하늘인데, 우리 영혼 안에 하느님이 계시므로, 인간의 영혼이 하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을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워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은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라고 고백하고 니케아 신경에서도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성부 오른편에서 성부와 함께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칠지라도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셋째,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로 정점에 다다른 예수님의 사명이 모두 이루어지고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심을 벗어나 하늘에 가신 것이 아니라, 인성과 신성을 지니신 채 하늘에 오르심으로써, 우리의 인성 또한 하늘에 들어 올려지리라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본기도에서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 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교회이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미사 마지막 장엄 강복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께서 심판하러 다시 오실 때에는 이 교우들에게도 나타나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여 주소서.” ◎ 아멘.
“╋ 이들은 성자께서 영광 중에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으오니 몸소 약속하신 대로 성자께서 세상 끝 날까지 이들과 함께 계시게 하여 주소서.” ◎ 아멘.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며 당신의 지체인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르신 하늘을 보며,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참된 희망은 고난을 겪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느 베이유는 “우리의 시선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나의 구원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인간만이 하늘을 바라보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인간만이 ‘희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희망은 이 사건 너머, 이 현실 너머에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희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올해 희년의 표어입니다.
많은 분들이 사전투표를 하셨지만, 오는 6월 3일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정치가 가장 뛰어난 형태의 자선”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투표를 통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폭력과 분열로 어려움을 겪은 우리나라가 평화와 화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희망하고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너의 하늘을 보아”라는 시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안드레이 루블료프, 그리스도의 승천, 1408년
출처: Ascension from Vasilyevskiy chin (15th c., GTG) (ColorEdit) - File:Ascension from Vasilyevskiy chin (15th c., GTG).jpg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