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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5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 한서노회
오늘은 먼저 본문 1절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넜다는 소문이 가나안 땅 전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의 진동은 대단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가나안 땅의 거민들이 덜덜 덜덜 떨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등장에 대해 매우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세상 천지에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넜다고 하는 것이 어찌 예사스러운 일이겠습니까? 이렇게 가나안 거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머물렀던 곳은 길갈입니다. 본문 2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동안 잊어버렸던 일들을 행합니다. 먼저는 광야 생활에서 잊고 지냈던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백성의 표시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광야에서 행하지 못한 이 의식을 출애굽 2세대들에게 받게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10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받은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도 지켰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한 준비가 하나 둘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꿈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이제 곧 그 오랜 세월 동안 꿈꿔오던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의 기억 속에 지난 40여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입니다. 누구나 꿈이 이루어질 순간이 되면 잠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흥분이 되는 법입니다. 아마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집 한 칸을 처음으로 장만해서 입주하셨을 때 그 전 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자꾸만 설레 오는 가슴을 부여안고, 때로는 기쁨의 눈물이 때로는 셋방살이하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왠지 모르는 눈물이 흐르는 경험도 하셨을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그런 심정입니다. 여호수아도 그렇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여호수아는 진지를 빠져 나와 여리고 성 가까이 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러한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3절 말씀을 보세요. 밤잠을 못 이룬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벌어진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보세요. 여리고성에 가까이 다가간 여호수아는 그곳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긴 칼을 빼어 들고 서 있었습니다. 지금 여호수아가 서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다름 아닌 적진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긴 칼을 빼어들고 서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여리고 사람인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칼을 들고 서 있던 사람이 대답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할렐루야! 여호수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너무 너무 기뻤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우리들에게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다못해 분식 집을 갔을 때에 그곳에 성경말씀이 쓰여진 액자나 달력이 걸려 있으면 괜히 더 반갑고 좋은 마음이 생기는 경험 말입니다. 택시를 타든 혹은 여행을 가거나 시장에 장을 보러 가든 그런 곳에서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면 남다른 기쁨이 생기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어떻습니까? 얼마후면 전쟁을 치러야 할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이런 상황은 '기쁨'이라고 하는 단어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감격스러운 상황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의 등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심을 확인시켜 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렇듯 갑작스러운 만남에 여호수아는 분명 예사롭지 않은 그 무엇이 있을 것을 예감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곧 무릎을 꿇고 아룁니다.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이렇게 질문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이 말씀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마치 동문서답하시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니, 이제 곧 여리고 성을 정복해야 할 여호수아가 아닌가? 그러니 그 큰 성을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이나 병술을 가르쳐 주실 것이지 엉뚱하게 신발은 왜 벗으라고 하시는 걸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님들과 청년들의 생각은 어떠세요? 지금 당장 여호수아에게 급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여리고 성을 정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여호수아는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의 흥망성쇠가 달린 중대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난데없이 신발을 벗으라니 이게 무슨 말씀인가 라고 의아해 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참으로 값지고 귀한 믿음의 진리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역사하시는 방법과 순서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새벽에 그것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말씀은 5장 15절로 끝납니다. 그런데 내일 새벽에 나눌 본문인 6장의 말씀을 보면 조금 전에 의아스럽게 생각했던 우리의 질문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 6장 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어떠한 방법으로 함락시킬 수 있는지를 자세히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미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고 있는 여리고 성을 도는 방법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새벽에 저와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수아가 이 방법을 하나님께로부터 배우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먼저 할 일을 찾기 위해 우리는 다시 본문 15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한 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이라고 하는 첫 번째 관문을 넘어갈 수 있는 방법과 길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이렇게 먼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이지 허황 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관심을 가지시고 다시 15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 하나님께서는 이것이 여호수아가 지금 그 어떤 일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 이 말씀을 다른 곳에서도 보신 기억이 있으시지요? 바로 출애굽기 3장에서 우리는 이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는 막중한 일을 감당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모세가 맡겨질 사명을 위해 나서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도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도대체 "발에서 신을 벗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는 일과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는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 말씀에서 꼭 찾아야 할 하나님의 뜻입니다. 발에서 신을 벗는 것을 두고 성서학자들은 여러 가지의 해석을 시도합니다. 그 모든 것들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는 더 이상 네 혼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너의 신발을 신고서 네 마음대로 돌아다닐 때의 일을 이제는 다 청산하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나름대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준비를 해놓았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결코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자기의 힘과 재능, 꾀만 가지고서, 또한 자신과 동행한 이스라엘의 군사력만을 가지고서는 결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먼저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멋대로의 신발을 이제는 그의 발에서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의 신발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철두철미하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승리의 길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46편의 시인은 이러한 사실을 노래합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의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철저한 믿음,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의지를 하나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도 여호수아와 같은 하나님의 요청을 받았던 사람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는 창세기 12장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저는 이 말씀을 처음 보았을 때에 우리 하나님이 너무 무심한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 말씀은 여리고 함락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아브라함이 살았던 곳이 갖은 우상숭배로 인해 타락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곳이 비록 인척들과 함께 살던 곳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곳을 떠나라고 하신다면 그 말씀에는 얼마든지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주신 말씀이 정말이지 기가 막힙니다. 떠나라고 하셨으면 어디로 가라고 말씀해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마음놓고 길을 떠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보세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이 지금 떠나게 되면 당장 만나게 될 곳은 허허벌판인 광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향해 어디로 가게 될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 역시 동문서답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순종했습니다. 그저 순종했습니다. 따지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그후에 전개되는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우리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순간도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순간마다 아브라함이 가야 할 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어느 곳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보다 더 세미한 인도하심은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에 아브라함이 먼저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그의 남은 생애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어떻게 했습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여호수아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여호수아 역시 순종이었습니다. 본문 15절은 기록합니다.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이렇게 여호수아가 먼저 해야 할 일을 마쳤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함락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청년 여러분! 이 순서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의 모든 일들에는 다 순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가장 쉬운 예로서 결혼식을 생각해 보세요. 결혼식에는 결혼식에 맞는 순서가 짜여져 있습니다. 적어도 신랑과 신부가 입장하는 순서는 제일 앞에 놓여야 합니다. 말은 결혼식인데 신랑과 신부의 입장이라는 순서를 무시하고 결혼식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이 무슨 결혼식입니까? 이외에도 많은 일들이 순서를 지킬 때에는 아름다운 일이 되지만 순서를 어기거나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했다가는 낭패를 겪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신앙생활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놓고서 하나님께 그 방법을 구합니다. 이 정도만 되도 매우 양호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노라 하면서도 하나님께 구하기는커녕 자기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가집니다.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고서 열심히 달려갑니다. 저 여리고 성과도 같은 거대한 장벽을 향해서 말입니다. 이것은 분명 무모한 일입니다. 여리고 성은 그렇게 간단히 무너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앞으로도 여리고 성과 같은 많은 문제들과 많은 장벽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아마도 우리의 일생동안 계속될 지 모릅니다. 그와 같은 일들이 우리의 생애동안 계속되는 일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그 여리고 성들이 결코 만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오늘 여호수아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배워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여리고 성을 함락하려고 뛰어들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렇게 먼저 해야 할 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여호수아처럼 신을 벗어야 합니다. 고집과 이기적인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는 신발과 하나님을 등진 채 살기를 좋아하는 죄악의 신발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교만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무관심한 신발도 벗어야 합니다. 이런 저런 신발들이 우리의 발로부터 벗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여리고 성들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새벽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던 우리의 삶을 내어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심에도 불구하고 나의 욕심과 나의 교만함 때문에 벗어버리지 못한 신발들이 있다면 그것을 벗어놓을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먼저 해야 할 이 일을 감당하는 사람만이 바로 이 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렇게 귀한 삶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 속에 이어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