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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성수필의 특성과 전망
- 부산여성수필 50년의 전개를 중심으로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로그인
부산에 사는 여성이 쓴 수필은 부산여성수필이다. 따라서 출신지에 관계없이 부산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작가를 부산여성수필가라고 보는 것이 옳다. 부산에서는 여성으로서 수필 동인회에 제일 먼저 가입하여 수필을 쓴 여성작가는 이영도다. 이영도는 시조시인으로서 58년도에 <춘근집>이라는 수필집을 내고, 수필동인회에 65년도 가입을 했지만, 수필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꾸준히 해온 여성수필가는 아니다. 여성수필가로서 부산에서 제일 먼저 수필을 써온 사람은 누굴까? 김문숙은 1960년대부터 부산의 어떤 다른 여성수필가보다 먼저 수필을 써왔고, 1975년 <수필인> 5월호를 통해 정식으로 등단한다. 이후 꾸준히 부산에서 여성수필가로 활동해왔다.
이렇게 볼 때 부산여성수필사는 50년대 이영도의 수필집 발간에서부터 시작해서 60년대에 김문숙의 문학활동으로 시발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수필동인지의 효시인 『수필』보다 조금 뒤늦게 1965년 이주홍 님이 산파역을 맡아 발족한 『윤좌』는 창간호 권두에 청마 유치환의 <동인선언>을 싣고 여성수필로 유일하게 이영도 시조시인의 수필을 싣고 있다. 이영도는1953년 부산 남성여자중고등학교, 1955년 마산 성지여자고등학교, 1956년 부산여자대학교 강사를 거쳐, 1964년 부산어린이집 관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1966년 제8회 눌원문화상을 수상했다. 1954년 첫시조집 『청저집』, 1958년 수필집 『춘근집』, 1966년 수필집『비둘기 내리는 뜨락』 등을 출간했다. 1970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으로 이주, 1971년 수필집 『머나먼 사념의 길목』 발간, 1976년 3월 6일 뇌일혈로 사망했다. 한 많은 생애와 청마와의 사랑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부산여성수필사의 출발선에 이영도 시조시인이 있지만, 여성수필가를 기준으로 해서 볼 때, 부산여성수필의 출발선에는 1967년 국제신문과 부산일보에 칼럼을 쓴 여성수필가 김문숙이 있다. 현대에 와서 수필 전문지가 출현한 것이 1970년대라는 것을 기준으로 보면, 김문숙의 등장은 부산여성수필문학사의 관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동인지 <수필>과 <윤좌>가 주축을 이루는 60년대는 김소운의 전국적인 지명도와 함께 부산수필이 가장 크게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여성수필가는 주목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인지 <수필>에는 여성 회원이 한 사람도 없었고, 2년 뒤에 나온 <윤좌> 동인지에는 여성작가가 단 한 사람 있었는데, 그것도 여성수필작가가 아닌 시조시인 이영도였다.
1965년 이영도의 <윤좌> 수필 발표, 1967년 김문숙이 국제신문, 부산일보 등에 칼럼을 발표한 것을 기점으로 시작한 부산여성수필가의 숫자는 2017년 현재 한국여성수필문학사 사상 어느 때보다 압도적이다. 특히 여성수필가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계속 양적 평창을 가져왔다. 그 기조는 2000년대를 이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 여성수필문학사에 소개된 동인회나 여성수필가는 비평의 집필원칙인 ‘선택과 배제의 원리’에 따라 전적으로 필자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일단 현대라는 한 시대의 구획에 속한 부산여성수필가들의 문학적 성과를 개인은 물론 동인회를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부산여성수필의 특성을 찾고 전망을 내어 볼 수 있으리라고 본다.
II. 클릭
1. 부산여성수필의 특성
1.1. 1960-1970년대 부산여성수필의 태동
1970년대 활동한 여성수필가는 흔치 않다. 김문숙을 비롯하여 오승희가 주로 활동했다. 김문숙은 제1수필집을 내고, 그후 매년 한 권의 수필집을 발간하였는데 그 중 위안부 문제를 취재한 수상록 등이다. 그녀는 일본에서도 한 권을 발간하여 일본인의 위안부 인식을 바로잡도록 영향을 주었다. 총 여덟 권 중에 여성권익과 남녀평등에 대한 수필. 그리고 인간성이 있는 사회에 대한 갈망, 수필을 통해 한국인, 특히 여성들의 맑은 정신, 어머니의 테두리 안으로 밀어붙이는 남성들의 안이한 여성관에 대한 비평 등을 담고 있어 그녀는 여성주의수필의 기초를 닦아놓았다고 볼 수 있다. 조경희 선생님을 만난 그 인연으로 그녀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부산 여성수필가로서 이대문인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등 문인단체에 가입해서 문학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조경희의 영향을 받아 여성의 사회활동이나 인권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로 확인된다.
김문숙은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이화여대 입학하여 경북대학교 지리학과 수료했다. 부산시여성단체협의회 회장, 부산수필문학인회 회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화문학상 수상하였고, 1984년 제1수필집『내 인생에 소중한 것 』외 1987년『사랑과 인생의 풍경』2001년 <쓰러진 자의 기도>, 2006년 <꽃들에게 지혜를 묻다>, 2010년 <여자가 걷는다>, 외『남편들의 離乳기』『아내로부터의 이혼장 』등 8권이나 내었다. 문학적 성취 면에 있어서 사상과 형상의 변증법적 통일을 이루는 데는 다소 미흡할지는 모르나, 그녀는 말과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진정한 지성인이요, 현실인식에 투철한 여성수필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문숙은 1973년도에 부산수필문학회에 입회한다. 이후 1979년 박송죽, 서옥자, 이근숙, 조희순, 신중옥이 부산수필문학회에 입회하였지만, 이들은 원래 수필가가 아니고, 다른 장르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었다. 1977년에는 오승희가 <한국수필>을 통해 문단에 나온다. 이 시기에 수필창작 활동을 한 여성수필가는 10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3. 1980년대의 부산여성수필의 특성
80년대는 문학의 르네상스를 맞아 일 년에 서너 명씩 여성수필가들이 문단에 등단을 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작가들은 주로 현실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감추려 했다. 현실의 문제를 ‘모성원리’에 묻어두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여성들은 현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자아와 일 그리고 사랑에 관한 자신의 언어를 찾으려 한 것이다. 즉 여성을 사적 영역에만 머물게 하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되는 모성애 이데올로기의 신화를 깨뜨리려는 시도가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수필 작품 속에서 엿보였다는 것이다.
80년대는 그 어느 시기보다 비판적 담론이 시대의 중심에 떠오르고 있었던 시기였다. 80년대 후반부터 소외된 계층의 묻혔던 목소리와 숨겨졌던 욕구가 표출됨과 동시에, 여성들도 큰 무리의 일부로서 권리를 주장하면서 제도나 법은 대단히 짧은 시간 동안 많이 정비된 반면, 여성들 자신의 의식은 쉽게 깨우쳐지지 않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문학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도 페미니즘문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여성수필의 다양한 형식이 모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일군의 여성 수필가들은 개인의 자유를 말하고 사회 수필의 성격을 띠면서 현실 참여를 선언했다. 이러한 흐름은 의식 있는 여성수필가들의 작품에서 다양한 형태로 분출된다. 이러한 여성의식의 양상은 80년 여성작가들의 현실안을 보여준다.
80년대 부산여성수필들은 이상적이고 규범적인 조건에서는 여성 정체성의 자각에 성공하지만 현실적인 조건에서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즉 개인적 가치를 지닌 내적 자아와 사회적 가치를 지닌 외적 자아 사이의 불화나 통합 불가능성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인물들은 탐색을 통해 시야의 변화를 겪으면서 본질적인 변화 또한 가능하다고 믿지만 이전과 동일한 상황에 다시 처해 있음을 발견하면서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가정을 버리지 않고,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자기 일을 가비면서 잘 살 수 있다는 자아와 가정의 환상적 통합을 논의하는 이런 현실 적응형 수필들이 보이는데, 이는 여성의 슈퍼우먼화를 외치는 듯해 기존 남성 중심주의 사회 질서에 순응하자는 듯한 느낌을 주어 여성 정체성 세우기 측면에서 매우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부산여성수필가로서 80년대 활동한 대표적 여성수필가 오승희, 구자분, 정영자, 한영자 등 네 작가를 중심으로 여성 정체성의 발현 측면에서 ‘현실 적응성’을 들고, 이를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눠 예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다룰 것은 ‘여성의 숙명성’인데, 이는 여자이니까 그냥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자는 운명적 여성관을 나타냄으로써 페미니즘 입장을 부정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다룰 내용은 ‘환상적 통합성’인데, 이는 가사노동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여성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여성학적 입장하고 배치된다. 본고에서 드러나는 여성의식의 특성은 슈퍼우먼 신드롬을 몰고 온다는 차원에서 여성 정체성의 발현 정도가 다른 장의 차원보다 더 소극적인 편이다.
딸을 셋을 둔 L여사는 구라파를 횡단하는 유조선 선장인 남편을 오늘도 기다리며 살고 있다. 꽃꽂이 작품이 만족스러워 누구에겐가 보이고 싶을 땐 유명을 달리한 남편이 더욱 그립다는 R여사, 공부하러 외국으로 유학간 딸과 군대에 간 아들을 기다리며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는 R여사,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어 애태우며, 자식을 기다리는 S여인, 홀로 삼 남매를 기르며 자식이 성장하여 성공할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H여인 등 내 주위엔 기다림에 사는 여인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들은 봄이 오면 가을을 기다리게 되고 여름이 오면 겨울을 기다리는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듯이 기다림은 한과 눈물과 한숨을 동반한다. 그러나 기다림은 여인을 병들지 않게 하는 꿈과 희망과 기대감을 내포하고 있기에 기다림에 사는 여인은 결코 불행한 여인이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여자의 일생은 ‘기다림’이라고도 한다. 이 땅에 태어난 여인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기다림에 사는 숙명을 지닌 여인인 것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 (굵게 강조 : 인용자)
- 오승희, 「기다림에 사는 여인」 중에서 -
위 인용 수필 속에는 자신의 여성적 운명을 모성의 원천이며, 생명의 씨앗으로 인식하며, 주어진 삶의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여자의 인생이니, 기다림의 아픔은 곧 희망이며 꿈을 간직한 것이니, 우리는 결코 불행한 여자들이 아니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둘째 단락의 ‘여자의 일생은 기다림이라고 한다’라는 문구나, ‘기다림에 사는 숙명을 지닌 여인인 것을 어찌 탓하랴’ 등의 진술에서 볼 때, 페미니스트 관점의 여성 정체성은 매우 소극적이다. ‘여성의 본성은 기다림에 있고, 남성의 역할은 일에 있다’라는 의식은 그 메시지를 내면화하여 오히려 여성 스스로 보수적 성역할을 유지 강화시킨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이렇게 소극적인 여성성은 여성성의 다양한 국면을 사상하고 ‘모성’만을 부각시키는 담론 속에서만 존재해왔다. 소극적 여성성은 그 태생부터 조선의 유교적 가부장제와 일제하의 근대적 지식이 기이하게 결합하면서 만들어졌다. 여성의 교육은 자녀 양육이나 아내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에 한정되면서 양처현모론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본질적이고 초월적인 모성애와 함께 자신이 습득한 근대적 지식을 활용해 합리적으로 자녀를 양육할 것을 강조해 왔다. 이와 더불어 식민지 경험은 민족적 모성과 제국주의적 모성을 요구하기도 했고, 절대적 궁핍함은 모성의 빈곤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근대 국가 수립에서 비롯되는 여성의 타자화와 식민지 현실로 인한 민족의 타자화가 교차하는 지점에 모성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듯 저명한 여류나 굉장한 명사가 아니면 어떠랴. 가정에 함몰된 채 이름마저 잊고 사는 주부지만 그 역할은 무엇으로도 값 매김할 수 없는 무게를 가졌거늘. 한낱 이름 없는 풀잎으로 살다 져버려도 그 하나하나엔 모두 소중한 생의 존재 의미가 깃들어 있게 마련.
그러나 그녀가 정녕 안타까워하는 것은 잊혀진 자신의 이름만이 아니리라. 열심히 살아온 어느 날 갑자기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표가 떠올린 자신에의 회귀. 그것은 어쩌면 자아에 대한 자각. 잊은 채 살았던 자아의 발견 같은 것. 하지만 우리는 안다. 지나간 시간이 결코 무의미했던 것은 아님을. 엄마의 이름 밑에 ‘님’자를 딸려 생일 카드 보내는 아이들로 하여 보람을 느끼고, 어쩌다 한번쯤 아내 이름 불러주는 로맨틱한 남편으로 하여 기쁨을 건져 올리는 주부의 일상이 결코 가치 없는 일은 아닐 테니까.(pp. 219-220) (굵게 강조 : 인용자)
- 구자분, 「주부의 이름」 중에서 -
여성수필가 구자분의 의식은 주부라는 이름에 운명적으로 순응하고 있다. 여성수필가는 주부로 살아가면서 정체성에 의문을 갖곤 하지만 곧 주부의 역할에는 무엇으로도 값 매김할 수 없는 무게가 있다며, 아이들로 또는 남편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주부의 일상에 만족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싸우면서 살아가야 되는 본질적 운명에 놓인 존재기 때문에 자기와의 싸움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어떤 것과의 싸움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여성이 가정적인 대소사에 만족해하며 행복을 찾는 것도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이지만, 자아 완성의 길을 찾기 위한 타성적 자기만족을 경계의 대상으로 보는 비판적 안목도 나름대로의 행복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현실에 순종하며 지니고 있는 것을 보물처럼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비치는 것은 전통적인 여성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성역할의 이분법적인 사고로 자신의 자리를 순종에 두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자기 본문을 인식하고 그 자리를 지켜가려는 의지의 확고함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기를 자기 손으로 점검하는 수단이고, 자신의 영혼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가부장제 하의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항상 남자보다 가볍다. 상당수 여성수필가들은 세상이 변한 이 시대에 여성의 존재가 계속 전통적 지위에 머물러 있어야 되는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결국에는 여성이 머물러야 할 곳은 가정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남자들이 밖에서 돌아와 쉴 자리를 정성껏 꾸려오던 일, 그것은 어떤 수치나 계산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여인의 고유한 임무라고 인정하는 작가는 여성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를 말해준다. 오늘날 여성학의 발전으로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제기되고 있고 가사노동에 대한 분담 논의가 뜨겁게 전개되고 있는 시점에서 스스로 이데올로기의 파수꾼임을 자처하는 작가의 반페미니즘적 진술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가가 갖는 결단의 순수성에 수긍이 가는 것은 누구나 다 한국 여인으로서의 전통적 가치와 그 역할을 벗어던질 수 없다는 데 있다. 가치의 상대성에 따라 자신이 선택한 삶에 비판이 따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정의 가치를 소중히 하면서 가정 속에서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소시민적인 순박함으로 한국 여인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다고 보겠다.
가부장제하의 사랑은 결혼 후에 여성이 창조적 자아 찾기에 나설 때 문제를 동반하는데, 맹렬 여성들은 이런 가정과 자아의 갈등을 통합시키고 있다. 이처럼 사랑과 자신의 창조적 작업을 무리 없이 통합시킬 수 있는 이유는 작가가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어하며, 둘 다를 좋아하는 데 있다. 일반 여성에겐 끊임없이 갈등과 좌절과 선택을 강요하는 가정일과 나의 일이라는 이분법이, 그녀에겐 둘 다 내가 좋아서 한다는 식으로 여성 자아 선택으로 해소된다. 그런 만큼 가정에서 주부 역할도 해야 할 일이고, 밖에 나가 사회활동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가정과 일, 결혼과 자아 사이에 어떤 모순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을 다 거머쥘 정도로 능력이 있고, 매혹적이고, 당당한 여성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가정과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다수 여성 독자들에게 하나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식의 환상적 통합을 이루는 이런 수필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만큼 여성작가 자신에게는 충분한 가치와 의의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억압적 현실을 타개하면서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바라는 여성의 눈으로 보면, 이런 작가의 의식은 반페미니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식 태도는 바람직한 여성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여성주의적 입장에서는 문제가 된다. 여성수필가 한연순의 수필 「작은 행복」은 이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직장이 부산인 나는 토요일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김해로 올라간다. 시부모님이 계시는 곳이 김해군 대동면이다. 시댁 작은 앞뜰에는 시어른들의 정성으로 다듬어진 수목들과 이름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꽃들이 제각기 아름다운 모양과 색깔로 멋을 부리고 있다.
시댁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한 주일 밀린 빨래들을 찾아 빨래를 시작한다. 마침 빨랫줄이 이 꽃밭 위로 매달려 있기에 씻은 빨래를 널면 물방울이 떨어져 꽃잎에 맺힌다. 꽃잎에 맺힌 영롱한 물방울을 보고 있노라니 여고 시절의 애송하던 윌리암 워드워즈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내 집 정원에는 꽃이 좀 있어야 하겠습니다. 집은 작아도 뜰은 넓고 무성한 나무 그들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단발머리 소녀 시절의 아름다운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듯한 감미로움에 젖어본다.
나의 일상은 틀에 짜여진 스케줄로 한 주일이 바쁘기만 하다. 학원을 돌 보는 일, 문학 수업, 그리고 틈틈이 그림도 그리려니 언제나 빠듯한 시간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주말을 맞이하곤 한다. 그러기에 시댁에는 공휴일이나 토요일에야 가서 밀렸던 일을 모아 하게 마련인데도 과히 힘겹거나 짜증스러움을 느껴보지 못한다.(굵게 강조 : 인용자)
- 한연순, 「작은 행복」 중에서 -
위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수필가는 일인 다역을 소화해 내면서도 불평이나 불만은 전혀 없다. 주부로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며느리로서 주어진 일을 하면서도 힘들다거나 짜증스러워하지 않는다. 슈퍼우먼의 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런 현실에 기대를 걸며 산다. 여성 수필가의 이런 진술은 제목에서 나타났듯이 ‘작은 행복’으로 미화된다. 연약한 여성으로서는 힘든 일이라고 할 수 있는 빨래를 하면서도 힘든 노동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소녀 시절의 낭만적 아름다움에 젖는 여성수필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개인적 성향으로 내버려두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페미니스트 의식이 생활 속에 함몰되어 있다고 하겠다.
일군의 여성수필가들이 자아실현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자아실현 문제와 상충되는 낭만적 사랑과 관계를 사회 질서 속에서 찾아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아직도 여성의 행동적 방향은 한국적 상황에 대한 고려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여성의 딜레마를 해결해 보려고 시도하는 여성수필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이 가정과 사랑 그리고 자아의 환상적 통합론인 것이다. 사랑과 자아가 모순적으로 화해하고 있던 '여성다움과 자아'의 문제를 훨씬 더 주체적인 눈으로 그리는 수필들이 발견되는데, 이들 수필은 가정과 자아의 환상적 통합을 주창하고 있는 글들이다.
여권 수호성을 나타내는 여성수필이 여성시인이나 여성소설가들의 수필에서 주로 나타났지 여성수필가들의 작품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위에서 다룬 바와 같이 여성수필가들의 수필은 오히려 여성 정체성에 소극적인 반응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근자의 여성 작가들이 수필을 통해 자신들의 억압적 경험을 객관화하고 이를 통해 정체성 확립을 모색하고 있는 현상은 퍽이나 희망적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 작가들이 80년대적인 현실 속에서도 ‘남성 자아’와 변별되는 ‘여성 자아’의 정체성을 구축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맥락이 일종의 밑그림으로만 존재하고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자기정당화의 욕망이 강한 나머지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가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력으로 뒷받침되지 못한 채 선언적 진술에 머물고 만다. 때문에 이런 여성 수필은 집단의 정체성 확립에는 현격히 수준에 미달한다.
21세기를 맞아 이 사회는 농경사회에서 공업화 사회를 거쳐 제3의 물결의 정보화 시대를 맞고 있다. 하지만 여성에 관한 가치관은 여성 자신의 태도로부터 사회적 통념에 이르기까지 정말 변화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 서양에서 수백 년에 걸친 역사 사회적 변화를 불과 몇 십 년 만에 이루어낸 우리 민족이 여성관에 대해서만큼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로 아직도 구시대적 가치관이 여성 자신의 입을 통해서 당당히 외쳐지고 있는 문화 지체 현상은 흥미롭다 못해 당혹스럽다. 우리 사회의 모습은 남녀가 공존하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남녀 관계는 여전히 불평등하다. 그러나 신사임당과 같은 여성상을 지향하는 구시대적 풍조를 지양하고, 진취적이며 자아실현을 이룩해가는 여성상을 구현하여 자신의 능력을 키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수필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들 수필들은 진취적인 생활을 실현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변해야 하며, 직업여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정립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수필이다.
1982년 수필집 <황금비례>를 낸 정영자는 근대가 여성을 배제하는 데서 빚어지는 충돌을 절실하게 경험한 사례를 보여준다. 굴곡 많은 삶과 문학 속을 배회하던 개인주체를 갈망한 신여성과 현실에서 경험한 모성의 갈등을 여성문학 연구를 통해 드러낸다.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모성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는데 반해 그는 여성적 특성을 인정하는 모성적 원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일련의 글들에 모성 원리와 여권의 인식에 대한 입장을 여실히 드러낸다.
인류의 반, 하늘의 절반인 여성이 움직이지 않고는 어떠한 변화 어떠한 변혁과 진보도 가능하지 않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여성 자신의 평등에 대하여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대학마다 여성학 강의가 개설되어 여성의식의 새로운 성찰과 방향을 제시하며 앞 세대의 여성 역할과 그 좌표를 설정해 나가기도 한다. 최근에 오면서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은 여성의 인간적 평등과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여성 지도층의 각성과 함께 젊은 여성들의 욕구가 강렬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해방’이란 용어를 만들어 가면서 차별과 억압, 눈물과 체념, 인내와 순종 그리고 무보수의 노동에 대한 여성의 역사를 비판하며 진정한 여성 해방 없이는 평등한 인간해방이 없다는 논리 전개를 펼쳐나가고 있다.
그러나 ‘여성해방’이란 용어에 대한 과민성 반응과 그 격렬한 의미 수용과 함께 상당한 저항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해방이란 남성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빼앗자는 것이 아니며 피해와 억압과 차별받는 것을 되돌려주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근본적인 인간평등을 그 근간으로 하는 것이다. (굵게 강조 : 인용자)
정영자, 「여성해방의 의미」 중에서 -
인용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최근에 오면서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은 여성의 인간적 평등과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여성 지도층의 각성과 함께 젊은 여성들의 욕구가 강렬해졌기 때문이라 진단하면서, 차별과 억압, 눈물과 체념, 인내와 순종 그리고 무보수의 노동에 대한 여성의 역사를 비판하는 '여성해방'이란 용어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다듬고 있는 글이다. 인간의 생존에 관한 문제와 가치 규명, 보다 보편적 의미의 획득이 문학이 지향하는 바이고, 수필이 추구하는 이상이라면, 수필적 관심과 창작적 발상은 모든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신뢰에 두어져야 할 것이다.
정영자의 수필정신은 진정한 의미의 남여평등 실현을 추구한다. 여성작가가 말하는 여성해방은 근본적으로 인간 평등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페미니스트 그룹에서 야기하고 있는 남성 대 여성 편짜기식이 여성운동이 아니라, 현실적인 바탕과 문화전통을 고려해서 부분적인 성역할을 인정하자는 주장이다. 여성의 힘이 사회 전반에 필요하고 변화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지혜를 깨닫는 여성이 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제창한 '남성여성의 양성동체론과 심리학에서 말하고 있는 여성 속의 남성, 남성 속의 여성성을 수용하는 진정한 성역할의 조화 속에 여성의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는 작가의 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하겠다.
이 작품의 가치는 페미니즘 수필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필요요건 중에 하나는 '계속 가부장제에 충격을 주며 그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며, 이런 작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남성과 여성의 말과 글과 행동이 선천적으로 각기 달리 정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데 있다. 여성학에서 역할의 융통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성의 수필이 여성적 시각에서 여성의 여성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비록 헌법이 남녀평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남녀가 가정생활에서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에 평등의 법칙에 의해서 우리 사회가 움직여 나가도록 여성 작가가 현실안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여성학을 연구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목적지향의 수필을 쓰는 것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고 하겠다.
일군의 여성수필가들이 자아실현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자아실현 문제와 상충되는 낭만적 사랑과 관계를 사회 질서 속에서 찾아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아직도 여성의 행동적 방향은 한국적 상황에 대한 고려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여성의 딜레마를 해결해 보려고 시도하는 여성수필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이 가정과 사랑 그리고 자아의 환상적 통합론인 것이다. 사랑과 자아가 모순적으로 화해하고 있던 '여성다움과 자아'의 문제를 훨씬 더 주체적인 눈으로 그리는 수필들이 발견되는데, 이들 수필은 가정과 자아의 환상적 통합을 주창하고 있는 글들이다.
또순이 정신은 이렇듯 근면성실함이다. 동양 민족 중에 일본 여성 다음으로 한국여성이 부지런하다고 한다. 여성이라고 하여 나약하고 소극적인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튼튼한 몸과 정신으로 단련되어 자란 여성은 안일하고 나태하게 자란 여성에 비해 이 사회를 쉽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한국의 여성처럼 내실을 기한 여성도 드물 것이다. 봉건주의 사회 속에서 묻혀 표출되지 않는 밀폐된 가정에 젖어있던 그 시대에 살면서도 신사임당 같은 여성과 류관순 같은 훌륭한 여성들이 탄생되지 않았는가.
하물며 오늘날처럼 남녀평등이 현실화되어가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여성들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가. 한 알의 밀알처럼 살아온 또순이 소녀의 삶과 정신이 우리 한국 여성의 가슴 밭에 뿌려진다면 장차 알알이 영근 수백 배의 결실이 이 땅 방방곡곡에 쏟아져 나오리라. 이 가을이 무르익으면 제2, 제3의 또순이들이 이 사회를 황금 볏단같이 풍요로이 메우리라.(pp. 61-62) (굵게 강조 : 인용자)
- 한영자, 「또순이」 중에서 -
조선 시대라는 봉건적 억압 속에서도 신사임당 같은 여성이 훌륭한 여성이 탄생했듯이 여성들은 제도적 현실적인 여러 가지 여성에게 불리한 환경에 살면서 삶이 힘들어도 참고 인내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작가의식은 페미니즘 관점이 아니다. 억압적 기제에 저항하고 반항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순을 타파할 수 있다는 여성학적 사고는 이 작품의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또순이 정신의 다른 말인 ‘근면 성실함’의 포장을 벗기면, 인내와 순종이라는 전통성 여성성이 드러난다. 아직도 남녀평등 사회라는 미명 하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이 많은데, 여성수필가의 인식은 너무 낙관적이다. 가사일도 내 일처럼 열심히 하고, 밖에 나가 일도 열심히 하는 ‘또순이’가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변화를 수용하는 데 인색해 지면서 가부장제만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여성수필가 한영자는 기존 질서와 가치의 과점‘을 재발견하기보다는 한국적 상황에서 여성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위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또순이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슈퍼우먼의 다른 이름은 ‘또순이’다. 작가는 옛날의 봉건적 밀폐시대에서도 신사임당과 유관순 같은 훌륭한 여성이 나왔으니, 요즘 같이 남녀평등이 실현된 사회에서는 돈을 벌어 가정 경제에 도움을 주고 아울러 자신의 자아실현도 이루는 일거양득의 또순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여성수필가가 수필의 도입부에서 말하고 있듯이, 또순이의 삶과 정신은 인생의 밀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참된 생애의 도전이고, 자신의 역경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몸을 던져 헤쳐 나가는 자세다. 주부로서 가정에 묻혀 아이나 남편 뒷바라지만 하고 나태하고 안일한 삶과는 다른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삶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런 태도 또한 여성학적 입장에서 보면,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모순인 가부장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기여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다시보기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현재 부산에서 발표되는 대부분 여성 수필가들의 작품은 언제나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여성적'인 시각일 수는 있으나 '여성주의적'인 시각은 아니다. 후자는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가부장적이며, 이런 사회는 평등의 법칙이 아니라 강자의 법칙이 지배하는 반인간적인 사회며, 그러므로 이런 체제는 변화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개혁의지에서 출발한 것이 여성학이다. 이 전제로 출발한 여성학은 1960년대 여성해방 운동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남녀 차별은 엄연히 상존하고 있지만 이런 현상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1980년 들어오자마자 부산수필동인회는 1981년 부산대 국문과 김정자 교수를 입회시켜 여성수필의 중흥을 꾀한다. 그 여세를 몰아 1982년도에는 여의사로서 <한국수필>로 등단한 한영자, 1984년에는 김숙현, 심상옥, 장광자, 1985년도에는 이순희, 1989 구자분을 입회시켜 부산여성수필을 꽃피웠다. 80년대 여성수필을 선도한 여성작가는 중앙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한 오승희다. 그녀는 1980년 수필집 <생활의 창변에서> (교음사), 1984년 수필집 <기다림에 사는 여인> (동백출판사), 1988년 수필집 <생성의 소리> (동백출판사) 등 80년대만 세 권의 수필집을 내었다. 삶이 투영된 작품 또한 일상성에서 벗어난 미적 구조와 감수성을 보여주는 소재의 정경화가 다채로운 수필가 박희선이 1988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한다.
동인지 <수필>이 부산수필 문단의 명맥을 지켜오는 가운데 1980년 초 동백문학회 수필분과가 <동백수필문학회>란 새 이름으로 독립되어 나오면서 80년대 부산수필은 질적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 출신인 오승희를 회장으로 7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동백수필문학회는 부산여성수필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0년 동인지 <동백수필>의 연 4회 발간뿐만 아니라 연간사업으로 동백수필문학선집, 동백에세이선집을 문고판으로 발간하는 등 한마디로 ‘수필문학 중흥의 의지’를 여러 문학 사업을 통해 표방하고 있다. 잔잔한 호수처럼, 흔들림 없이 평온하지만, 속 깊은 사람마냥 안으로는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창작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내실한 모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평가를 받게 되기까지는 안기순, 송연희, 하현숙, 윤자명, 강숙련 등 여성동인들의 문학성 있는 작품 활동과 관련이 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수필>이나 <윤좌> 등이 있었지만, 여성수필가들이 별로 없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동백수필문학회에서 수필작품의 발표무대를 자가 조달하려는 노력은 이후 1990년대 초 부산에서 최초로 수필 전문지 <수필시대>를 선보인 허천에 의해 어느 정도 구체적인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1980년대 와서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종합문예지뿐만 아니라 수필 전문지가 생겨나고, 지역 수필문학 동인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경대 교수진으로 구성된 수필 동인회 <수필선>, 부산 시내 각급 학교 교사들로 구성된 <교목> 동인회는 89년도에 창립되어 여성수필 중흥에 기여한다. 이 시기에는 교단에 서있는 교수 교사 등 지성과 비평을 갖춘 문학, 감성과 논리성을 겸비한 문학, 인생적인 경지를 끌어올리는 문학, 자유롭고 다양성을 지닌 문학, 미래적이고 가능성이 많은 문학으로 생각이 바뀌어졌다. 그리하여 여성수필문학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 시발로 1985년 수필 동인 목필회가 창립되고 동인지 <목필>이 나온다. 기성 수필가들로 구성된 ‘목필’은 목련 같은 순백한 수필 정신으로 직립하자는 취지가 깔려있다. 조희선, 이근숙, 한영자, 등의 필진은 출범 당시 목필의 위상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목필회는 1989년 동인지를 4집까지 발간하고, 2000년 제16호를 발간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목필>의 중단은 부산여성수필로 봐서 크나큰 손실이라 하겠다. 당시 부산여성수필문단에는 오승희, 한영자 등의 수필가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82년 <한국수필> 여름호로 장광자가, 87년 <문학정신> 3월호로 구자분, 88년 <시와 의식>으로 박희선 등이 등단하여 부산여성수필을 살찌웠다.
4. 1990년대 부산여성수필의 융성
여전히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동인지라는 수식어를 영광스럽게 달고 꾸준히 동인지를 내러오면서 수필문단을 빛내고 있던 부산수필문학회는 90년대 들어오면서, 역량있는 여성수필가들을 입회시켜서 신구의 조화를 꾀했다. 1990년 박희선, 정일야를, 1991년에는 박우야전을 입회시켰다. 1992년에는 모시올 동인 나갑순을, 1995년에는 윤미순을, 1999년에는 아동문학가 윤옥자, 시조시인 황다연을 입회시킨다. 박송죽은 1990년 첫 수필집 <사랑하므로 아름다워라>를 출간하며, 여성수필가로서도 활동을 본격화한다. 1990년에는 이영애도 <시와 의식>을 통해 문단에 나와 1995년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다>는 수필집을 펴낸다. 1991년 안귀순이 <시와 시론>으로 문단에 나온다. 그녀의 수필은 들뜨지 않는 차분한 시선으로 삶의 세밀한 대목을 잡아내는 힘이 있으며, 배경에 대한 취재 탐구가 독특하고 차분하여 식상함을 피해가는 묘미를 살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2년에는 황소지가 <에세이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다. 1993년 박문자가 <문학과 의식>을 통해 문단에 나와 1994년 첫 수필집 <꿈항아리>를 펴낸다. 박문자는 바다와 추억, 사랑, 그리고 일상적인 삶에 대한 통찰과 순수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6년 김자호가 <수필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다.
1990년대 부산수필문학사의 시점에서 의미 있는 하나의 사건은 부산수필의 대표성을 가지고 1989년 설립된 부산수필문학협회가 낸 <부산수필문학>이란 창간호가 1990년에 나온 것이다. 부산수필문학협회의 태동은 수필계의 통합을 지향한다는 차원에서 수필계 내부에서 환영받았다.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을 주축으로 부산수필의 발전과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던 부산수필문학협회는 그 동안 동인 중심으로 뻗어 나가던 부산수필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해마다 협회 기관지 성격의 <부산수필문학>발간했다. 1989년 초대 황정환 회장 이후로 <부산수필문학상>을 제정, 부산수필 발전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으며, 문학기행 등을 통해 친목을 도모하고, 강옥희 등 여성수필가들을 영입, 초창기 시대의 활력을 구가하고 있다. 어쨌거나 수필수필문학협회는 지역문학의 내실을 기하고 회원간의 창작활동에 자극제가 되어 부산수필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틈바구니 속에서 영호남수필가의 만남으로 영호남수필문학회가 탄생되고, 여성수필가 한영자 회장을 중심으로 회지인 <영호남수필>이 발간된 것 역시 1990년대 여성수필문단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다. 수필은 구호가 아닌 작품을 통한 정서 배양과 수필적 대상의 새로운 표현에 있다. <영호남수필>이 지역 화합이라는 본래의 구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상을 제정한 것은 수필의 질적 향상으로 영호남의 수필을 업그래이드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하겠다. 1991년 <석필>의 탄생 역시 부산여성수필을 다양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 동인들은 시인, 대학교수, 언론인, 번역가, 미술가, 공무원, 법관 등 수필에 관심을 가진 각계 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기에는 비등단 회원들이 많았다. 96년에는 <수필문학> 등단 작가 출신들로 구성된 수필문학부산작가회가 발족된다. 해마다 회지 <수필문학21>을 발간하고 있으며, 월례회를 통해 회원들의 자질을 키우는 등 수필문학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동인회다. 99년에는 수필 전문지 <에세이문학> 출신 작가들이 모여 에세이부산 동인회를 설립하였다. <에세이문학> 전신인 <수필공원> 출신들도 참여하는 에세이문학회 회원들의 수필은 상당히 수준급이다. 여러 문학상, 신춘문예 출신들이 포진한 만큼 확실히 부산수필의 격을 높이는 단체다.
90년 <한국시>에 정일야, <문학과 의식>에 이영애, 92년 <월간 에세이>에 안귀순이 등단하였다. 황소지는 1992년 『에세이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졸업했으며, 현대수필문학상, 한국여성문학상 등 다수가 있다. 수필집으로 『섬에서 살다』 외 6권, 수필선집 『터널을 지나며』등이 있다. 94년 <문화일보> 신춘에 안신영, <수필문학>에 김정순, <수필공원>에 송연희, <문학과 의식>에 정은영, <문예시대>에 허승희, <문화일보>에 강숙련이 등단, 윤미순도 <한국시>를 통해 문단에 나온다. 그녀의 수필세계는 자신이 처한 시대와 시대정신 앞에 고민하고 지성적인 비판을 작품 속에 세련되고 부드럽게 녹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6년 이춘자는 <문예한국>을 통해 등단한다. 그녀의 수필세계는 대상의 새로운 국면을 탐색하여 새롭게 대상을 표출해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8년 부산mbc신인문예상에 김혜강이, 그리고 정경이 그해 <창작수필>을 통해 등단한다. 1999년 <수필과 비평>에 김양희, <수필과 비평>에 남지은이, 부산 수필을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
5. 2000년대 부산여성수필의 르네상스
2000년대는 가히 수필의 시대다. 2000년 내용과 형식의 완벽한 조화를 그 특징으로 본격수필을 지향하는 송명화가 <문학도시>를 통해 문단에 나오면서 부산여성수필은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다. 2000년 박미순이 <수필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다. 그해 안경덕이 <수필과 비평>으로, 정성화는 <에세이문학>으로 문단에 나온다. 2001년 남해 출신인 정린다가 <한맥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그해 홍영순도 <문예시대>를 통해 문단에 나온다. 수필부산동인회만 보더라도 2001년 허현숙, 장미가 입회하고, 부산수필동인회는 2004년 모임 이름을 ‘수필부산문학회’로 고치고, 신인상을 제정키로 하고, 그해 허정림, 홍관옥, 박문자 입회시킨다. 2005년도에는 아동문학가 정재분, 2000년 이경자는 신인상 당선으로 입회된다. 2010에는 문경희, 정은영, 권춘애, 우아지가 입회하고, 강영린, 윤인숙이 신인상을 받아 수필수필문학회에 가입된다. 2000년대 들어 회원의 수가 50여 명이 넘는 수필문학 관련 단체가 나름의 특성과 성격을 유지하고 꾸준히 기관지를 발간하면서 수필의 르네상스 시대에 발맞춰 가고 있다. 부산수필의 산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동인회인 수필부산문학회에서 <수필부산>을, 부산수필문학협회에서 <부산수필문학>을, 부산수필문인협회에서 <부산수필문예>를, 부산여성수필문인협회에서 <여성수필 숲>을, 부산한국수필문학가협회에서 <부산한국수필>이란 회지를 내며, 각자 여성회원들의 창작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인간의 성숙도는 얼마나 차이나 다름을 인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들 단체들은 나름의 색깔을 가지면서 부산여성수필의 질적 향상을 꾀하고 회원간 친목을 도모해오고 있다. 다양성의 확보도 좋지만, 부산여성수필의 발전을 위해 몇 개로 나눠진 협회들은 결국 하나로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성격의 수필문학 단체가 협회나 문학회, 동인이란 이름으로 분산되어 활동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수필계가 통합해야 한다는 명분이 탄력을 받아 2004년 부산문인협회 총회에서 박희선 등이 중심이 되어 수필분과 회원을 주축으로 하는 또 하나의 수필 단체, 부산수필문인협회를 탄생시킨다. 명실상부 부산수필문단 내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확보한 부산수필문인 단체로서 위상을 키워나가며, 기관지 <부산수필문예>를 해마다 내고 있다. 부산수필인 만남의 밤 행사, 부산수필문인협회보를 발간, 부산수필문인협회상 제정, 시민을 위한 수필아카데미 개설, 부산 수필가들의 개인 동정과 문학 활동을 알려주는 등 회원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펼쳐 많은 수필인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박희선 수필가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회원에 의한’, ‘회원을 위한’, ‘회원의’ 모임이란 슬로건 하에 주소록에 등록된 회원 수는 300여 명이 넘는다.
2001년에는 격월간 수필전문지 <수필과 비평> 출신들로 구성된 수필과비평 부산작가회의가 태동한다. 2004년도 첫 동인지를 내어 2009년에 제5호를 발간했으며, 2007년 수필과 비평전국문학축제를 부산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설립 역사가 짧지만 전국적인 지명도가 높은 <수필과비평>지로 등단하였다는 긍지와 탄탄한 문학적 역량과 열정으로 주목받고 있는 단체다. 2001년 그리움의 세계를 지향하는 류창희가 <에세이문학>으로 문단에 나온다. 그해 박영란도 <에세이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홍화자는 2003년 <문예시대>를 통해 등단한다. 2002년에는 모시올 동인인 강옥희가 <광주리 속의 포도송이>라는 첫 수필집을 내고, 2003년 <다시 짐을 챙기며>, 2008년 <동그라미>를 펴내고, 제1회 국제수필문학토론회 대상작가로 선정된다. 2002년 김임선이 <문예시대>를 통해 문단에 나온다. 2003년도에는 가톨릭 계통의 수필가, 시인, 소설가 등 문인들이 모여 길 동인을 창립하고, 동인지 <길>을 내고 있다. 최순덕이 2003년 <문예시대>로 문단에 등단한다. 염귀순도 2003년 <문학예술>을 통해 문단에 나온다. 그녀는 자연과 소통하며 사물의 의미를 포착하는 가운데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애와 자연애를 서정적으로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권대근 문하생들 중심의 여성수필가들 30여 명이 모여 부산여성수필문학회를 창립하고, 동인지 <여인의 날개>를 발간하며, 탄탄한 필력을 자랑하는 동인지로 그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그해 부산 유일의 수필 전문지 <에세이문예>가 태동하여, 젊은 수필가와 수필비평가를 배출하여 부산수필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문학시대 수필가회 동인지 <더러 잊고 사는 일들>도 2004년도에 발간된다. 2004년에는 김광영이 <문학예술>로, 김금아가 <에세이문학>으로, 김나현이 <수필과 비평>으로, 김새록이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한다. 문경희는 <문학도시>로 등단하고, 2005년 <동양일보> 신춘문예 당선된다. 2005년 자기존재에 대한 탐구와 반성적 성찰이 주조를 이루는 서정의 작품세계를 지닌 박순형이 <에세이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다. 2005년도에는 부경수필 아카데미 출신들로 구성된 부경수필문학회가 창립총회를 열고, 매달 수필합평회 개최, 회지 <수필나무> 발간하고 있다. 박양근 문하생들로 구성된 이들은 장르를 넘는 실험성을 중시하며, 수필의 현대화를 기치를 내걸고 부산수필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005년에는 격월간지 <에세이스트> 출신 작가들이 ‘서정과 서사’란 동인회를 만들고 월례회를 통해 신작 발표 및 토론과 비평으로 수필 발전을 꾀하고 있다. 2005년 김초성이 <에세이스트>을 통해 문단에 나온다. 그해 정양혜가 <에세이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다. 그녀의 수필세계는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자연이나 사물 또는 사회현상을 관조하는 입장에서 서정적인 수필세계를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10월에는 부산문예대학 출신들이 <혜윰>이라는 동인회를 결성하고, 또 부산에세이스트 동인회에서 <서정과 서사>를 발간, 회원들의 질적 성장을 돕고 있다.
2006년 <한국수필>로 등단한 수필가들을 중심으로 한 또 하나의 수필 단체가 탄생한다. 이름하여 사)부산한국수필가협회다. 한영자 회장을 중심으로 40여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 이 단체에서는 창간호 <부산한국수필>을 내고, ‘부산한국수필문학상’을 제정하 여, 회원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2006년 김광영은 에세이문예사가 여성수필가들의 창작의욕 고취를 위해 제정한 제1회 민들레수필문학상을 수상한다. 2006년 바다의 여인 박말애가 <문예운동>을 통해 문단에 나온다. 2007년 부산 지역의 여성수필가들의 창작 활동과 우애를 다진다는 목적으로 여성 수필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부산여성수필문인협회가 탄생하였다. 김문숙 회장, 박희선 사무국장을 선임하고, 해마다 기관지 <여성수필 숲>을 발간하고 있으며, 월례회를 통한 친목 도모로 단결과 수필의 질적 향상을 꾀하며 여성 수필의 색깔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6년 김정화가 <수필과 비평>을 통해 문단에 나오고, 김윤선이 2007년 <수필시대>를 통해 등단한다. 2009년도에는 부산에서 출간되는 <에세이문예> 출신 작가들의 모임인 한국본격수필가협회가 <한국에세이>를 발간, 2015년 현재 제7집을 내고 있다. 한국본격수필평가협회 송명화 회장은 2006년 첫 수필집 <에세, 햇살 위를 걷다>를 출간하며, 본격수필의 서막을 열었다. 남태희는 2008년 <수필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다. 김경자는 2009년 『문학도시』에 수필로 등단하였다. 현재 부산여성문학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동의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했으며, 제1회 한국꽃문학상, 제2회 보혜문학작가상, 제21회 부산문학우수상을 수상했다. 수필집 『사람도 익어간다』, 『초록별』등이 있다. 동백수필문학회 회원인 강명성도 2011년 수필집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이다>를 펴낸다. 수필쓰기가 궁극적 자신의 실재를 찾아나가는 길이라고 밝힌 황선유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수필계의 희망으로 떠오른다.
부산의 수필동인 원조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는 수필부산문학회는 2013년 창립 50주년 및 특집『수필』80호 출간기념식을 부산일보사에서 열었다. 수필부산문학회는 수많은 단체 가운데 가장 '뿌리 깊은 나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수필의 위상을 쌓기 시작한 수필부산문학회는 척박한 수필문학 풍토를 일궈왔고, 한국 수필문학사를 오늘까지 이어지게 한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는 수필가 50여 명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 남송우는 "수필 동인지 창간이 어쩌면 공식적인 부산수필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했다. '수필' 통권 80호는 수필부산문학회의 역사를 짚어 보는 특집호로 꾸몄다. <수필>보다 2년 늦게 1965년 출발한 <윤좌>는 2015년도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동인회의 하나인 <윤좌>동인회는 2012년에 ‘윤좌’ 제38집을 내었다. 2012년 에세이문예 주간 송명화는 <사랑학개론>, 2016년에는 <순장소녀>를 출간, 세종도서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2000년대의 부산여성수필문학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양적 팽창에 질이 비례하여 따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산수필문학의 효시라는 <수필>과 <윤좌>의 명성을 업고, 1990년대 이후, 일군의 여성수필을 중심으로 작가들의 관심이 다변화되고 예술적 형상이 성과를 얻어 수필의 질이 높아지고 있다. 수필창작 공부를 마치고 문단에 나온 정여송, 심선경, 송명화, 정성화, 문경희, 김정화 등은 탄탄한 문장력과 남다른 인식력을 갖춘 수필가다. 좋은 수필가와 작품을 뽑아내어 싣는 명수필선이나 선수필에 부산 수필가 장미, 황소지 등의 이름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그녀의 수필세계는 시골의 다양한 먹거리에서 삶과 인생을 관조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새록은 2011년 수필집 <달빛, 꽃물에 들다>를 발간하고, 제18회 부산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다. 특히 2012년 부산에서 여성수필평론가를 중심으로 한 한국수필비평가협회가 태동하고 <오늘의 수필비평>을 간행함으로써, 한국수필문단에 비평전문지가 처음으로 탄생하게 된 것은 부산수필을 더욱 발전시키는 기폭제가 되리라 본다.
III. 부산여성수필의 전망
지금까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부산의 동인지의 전개를 중심으로 여성수필의 특성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십 년 단위별로 각기 다른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여성수필의 특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전개될 부산여성수필의 전망을 전개해 보는 것도 부산여성수필의 발전을 위해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부산여성수필은 1960년대 이영도, 김문숙을 시발점으로 해서,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부산여성수필사의 시발점을 누구로부터 잡느냐 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논의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1965년 <윤좌> 동인회가 결성된다. 1970년대는 부산여성수필문학이 본격 수필문학의 시대를 열어가는 시기라 하겠다. 70년대는 김문숙, 박송죽이 부산여성수필을 이끌어 오면서, 80년대 이후로 오승희, 장광자, 구자분, 박희선 등으로 이어졌으며, 이 시기에 와서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전국적으로 종합문예지뿐만 아니라 수필이론을 가르치는 수필문예대학이 생겨남으로써 여성수필가의 질적 수준이 높아진 것도 부산여성수필 발전에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런 여성수필가의 꾸준한 등단은 부산여성수필문단을 더욱 풍성하게 하리라 믿는다.
1980년 말과 1990년대 이후로는 수필의 외연 확대로 지역 수필문학 동인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는 부산수필가협회, 부산수필문학협회, 부산수필문인협회, 부산한국수필가협회 등 협회 이름을 단 단체만도 여러 개나 되지만 여성수필가 모임체인 부산여성수필문인협회가 김문숙, 박희선의 주도로 생겨났다는 것도 여성수필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것이다. 이들은 90년대로 오면서 여성수필의 발전과 부산여성수필의 위상 강화에 주력해왔다. 부산여성수필에서 특기할 점은 초기 수필의 성격이 개인 체험의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경향에서 80년대 수필의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이론적 추구와 그리하여 지성이 번득이는 사회 수필, 섬세한 여성의 감성이 돋보이는 여성수필이 양산되었다. 이와 함께 개인적 수필과 사회적 수필이라는 본격수필의 유형이 형성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도 부산여성수필은 양가적 가치를 조화롭게 추구해나가리라 본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페미니즘 수필이 적게 발표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여성차별의 철폐와 이상적인 남녀평등의 사회건설을 이론적으로 탐구하는 여성학과의 개설과 더불어 앞으로는 사회수필도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이유식은 ‘21세기 사회변동과 그 주제적 전망’이란 논고를 통해서 이미 80년대 이후 쏟아져 나오고 있는 페미니즘 수필이 미래 수필의 주제로 정착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도 정영자를 비롯한 몇몇 여성작가들의 수필에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긍정적인 통찰을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여성주의 수필을 명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 성과라 하겠다.
1990년대 들어와서 문학이 환경, 생태에 관심을 보였는데 반해 많은 수필 속에서 그런 류의 작품은 극히 빈약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00년대 수필의 평가는 아직 이르다. 아직도 전체적으로 확대하면, 우리 부산여성수필문단이 일상성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일부 의식 있는 여성작가들, 송명화, 김정화, 정성화 등을 중심으로 사회현상을 형이상학화하는 수준 높은 문학성 위주의 글이 수필전문지에 자주 발표되고 있는 것이나, 수필문예교실을 통해 독자적으로 참신한 여성수필가들을 많이 배출, 부산여성수필의 위상 제고뿐만 아니라 질적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오랜 세월 동안 부산여성수필을 지켜온 여성수필가들의 문학적 성과는 크다. 여성수필문학의 벼리를 이루는 것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수필의 시대이고, 역사와 전통을 지닌 수필동인회, 부산여성문학인회, 여성수필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동백수필문학회, 모시올동인회 등의 협회나 동인회, <에세이문예>와 같은 부산 지역 수필 전문지를 통해 좋은 작품들이 많이 생성되고 있는 만큼 부산여성수필의 전도는 밝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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