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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마25:31-46, 벧전4:7-11
지금 세상의 풍조를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종말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첫 번째는 창조질서의 파괴로 성적 타락입니다. 주님께서도 경고하셨고, 성경 곳곳에 수없이 언급된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동성애가 심히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동성애는 동성애 자체뿐 아니라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성 도착증 등 비윤리적이고 타락적인 성행위들을 급격하게 파생시키고, 가정파괴와 함께 세기말적인 타락과 부패와 범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것은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가장 기본적인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데에 있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제일 처음에 주신 일반적인 신적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창1:28)는 창조질서 명령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패역한 행위인 것입니다. 레20:13에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했습니다. 여기 ‘가증한 일’의 히브리원어 ‘토에바’는 우상숭배와 같은 아주 혐오스러운 것으로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싫어하시는 행위를 뜻합니다. 또한 ‘반드시 죽이라’는 히브리원어 ‘모트 유마투’는 히브리 부정사 절대형인 ‘모트’가 삽입되어 있어서, 아주 강렬하게 꼭 죽일 것을 특별강조하고 있습니다.
인류역사 이래로 어떠한 나라나 민족의 멸망의 끝자락에는 이러한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타락이 만연했으며, 이 세상 종말의 때에도 어김없이 엄청나게 만연해질 것이며, 이미 그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위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최종 심판으로 그에 합당한 죽음과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케토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커플의 축복을 공식적으로 승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 동성애자들의 퀴어 축제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고, 많은 나라에서 차별금지법이 통과 되어 동성애,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되어가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창조질서의 파괴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의 만물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에게 맡겨졌는데, 타락한 사람들은 하나님 뜻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무분별한 남획과 탐욕으로 귀한 아름다운 자연과 환경을 오염파괴 시켜서 지구생태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극단적인 기후변화까지 일어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 말씀 하시면서 처처에 전쟁과 난리와 지진과 기근 등이 있을 것에 대해 말씀 하셨습니다. 인간이 황폐화 시킨 그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연과 환경이 도리어 인간을 공격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불같은 천재지변 심판이 하늘과 땅에 퍼부어질 것임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무수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1.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음을 명심하고 대비해야합니다.
C. S 루이스는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한 부류는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이와 대조적으로 마치 하나님께서 방기하신 듯한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삶의 초점과 목적을 맞추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간구하고 소망하면서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유스러운 자 같으나 실상은 더러움의 정욕대로 살도록 내버려둠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다 인생을 헛되게 마무리하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 마테복음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마지막 심판 때가 있음을 알려주며, 그 때에 우리가 오른 편에 세워지는 양이 되어야 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 이라 했고,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언제 그런 일을 했습니까?‘ 물으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라고 대답 하셨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라고 엄히 말씀 하시며,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했다.’ 하시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며,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영생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영벌에 들어 갈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심판의 때 오른 편에 있는 자들은 마지막 때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고 대비한 자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과의 결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에 우리의 신앙과 삶은 보다 더 경건하고, 진지하고, 진실하며, 보람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살 것이 아니라 가끔씩 나의 하는 일을 반추하며 *'내가 하는 일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가?', *'주님을 위한 일인가, 나만을 위해 하는 일인가?', *‘장래의 소망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가?’, *‘이웃에게 어떤 유익을 끼치며 살고 있는가?’를 물으며 주님 앞에서 바르게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인생의 마지막 때가 있음을 명심하고 대비하는 슬기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근신하여 기도에 힘써야합니다.
본문 벧전 4:7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또한 우리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께 아뢸 수 있다는 것은 성도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교제의 채널이요, 영적 무기입니다. 또한 기도는 호흡과도 같은 것입니다. 살아 있는 자는 호흡이 끊이지 않듯이 살아 있는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자는 날마다 깨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의 특성입니다. 살아 있는 자가 호흡을 중단할 수 없는 것처럼 믿음의 성도는 기도를 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삼상12:23에서 ‘기도하지 않는 것도 죄라’고 했고, 살전5:17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면서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보다 나를 믿는 교만이요,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내 힘으로 살수 있다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동입니다.
더욱이 마지막 때가 되면 사단도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집요하게 성도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도하지 못하도록 여러 모양으로 공격하고 훼방합니다. 그러기에 본문에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다’는 뜻은 '정신을 안전하게 보전하다', '자제력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온갖 불경건한 이단들과,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성도들을 유혹하고 삼키려고 하는데(벧전5:8) 성도는 여기에 마음의 동요됨이 없이 안정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마지막이 임박했다고 해서 흥분하거나, 자신의 일상적 삶의 과정을 무너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근신하다'라는 말은 건전한 마음을 가지는 것, 환경에 따라 요동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 조심성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취하여 살아갑니다. 우리를 세상에 취하게 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은 곧 인간이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본주의요, 물질만능주의요, 과학만능주의요, 쾌락주의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런 일들이 세상에 만연하여 있기 때문에 성도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하루 세 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고, 초대교회 당시에도 하루 세 번 정한 기도 시간에 기도하기를 힘쓰다가 기적의 은혜를 체험하고, 천사의 방문을 받기도 하고,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은혜로운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중에도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기도 시간을 정하여 기도할 때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근신하여 기도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주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섬기는 자로 살아야합니다.
본문 벧전4:8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이 구절을 보면 베드로는 마지막 때에 필요한 삶으로 먼저 기도하라고 하면서 바로 이어서 “무엇보다 열심히 사랑하라!”고 하며 기도보다 사랑을 더 강조합니다. 그것은 마지막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임을 잘 말해줍니다. 딤후3:1-5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 구절에서 ‘열심으로’란 말은 경주자가 목표를 향한 절실한 마음으로 뛰는 모습을 뜻합니다. 그처럼 사랑의 목표를 정하고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성부 하나님과 더불어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지만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사랑으로 섬기는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금까지도 백인들이 흑인들을 법에 의하여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연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흑인 교회인 성 시온 교회에서 수난일 성찬식을 거행할 때 특별 행사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정신을 본받아 누구든지 자기가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의 발을 씻는 예식이었습니다.
시온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세족 예식의 광고를 들은 백인 올리버 판사는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고, 대법원장에 내정된 자인데, 그는 그 교회에 다니는 자기 집의 흑인 여종 마르다 포트윈의 발을 씻겠다고 신청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흑인 여종 앞에 무릎을 꿇고 발을 씻기고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예배당 안은 숙연해졌습니다. 올리버 판사는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마르다는 내 집 종으로서, 오랜 세월 내 아들 딸들을 돌보았으며, 내 자식들의 발을 씻어 준 정말 고마운 사람입니다.”
이 소식이 퍼지자 내정되었던 대법원장 자리가 취소된 것은 물론 판사직도 박탈되었습니다. 시온 교회 목사가 올리버씨를 위로하기 위하여 방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판사직도, 사회의 다른 지위도 무덤에 갈 때는 먼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먼지보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감사가 더 중요합니다.”
또한 사랑은 서로 대접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본문 벧전4:9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이 구절을 보면 사랑은 단순히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원망 없이 대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원망 없이 대접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하고, 순수하며,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본문에 나오는 오른편에 있는 사심이 없기에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외면당하는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대접을 했습니다. 그러나 순수하지 못하고 사심을 가지면 대접을 해도 내게 유익이 돌아 올 수 있는 자인가를 따져보고 대접을 하게 되니 유익이 없는 작은 자들을 외면하게 됩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섬기며 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
두 본문을 중심으로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음을 명심하고 대비해야합니다.
☆.근신하여 기도에 힘써야합니다.
☆.주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섬기는 자로 살아야합니다. 아멘.
<2024. 09. 05. 호현낙선>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