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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 존경하라 말씀/ 디모데전서 5:1-6:2 요절/ 디모데전서 5:17 | 2025. 2. 16 | |
디모데전서 제 5 강 |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교회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건강한 교회인지 아닌지 결정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계층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존경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존경함으로서 건강한 교회, 하나 되는 교회를 만들 수 있고, 세상을 향하여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5:1,2은 나이든 분과 젊은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고 합니다. 교회 어르신이 잘못할 때 꾸짖기 쉽습니다. 꾸짖으면 어떻게 될까요? 잘못을 바로 고칠 수 있을까요? 어르신은 마음이 상하게 되고 교회 오는 것이 즐겁지 않을 겁니다. 어르신은 꾸짖기보다는 그 분의 잘못을 감당해 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젊은이들을 대할 때는 형제에게 하듯 해야 합니다. 이는 비슷한 연배의 청년들을 형제를 대하듯 친근감을 가지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늙은 여자들을 대할 때는 어머니를 대하듯 하며, 젊은 여자들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해야 합니다. 연배가 많은 여자들, 신앙연륜이 많은 여성도들을 대할 때는 어머니에게 하듯 존경심을 가지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 여자들, 2030세대의 여성도들을 대할 때는 연예감정을 품지 말고 깨끗함과 순수한 마음으로 자매에게 하듯이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임에는 청춘 남녀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고 소감 모임과 요회 모임을 갖고 교제도 나눕니다. 젊을 때는 어느 때보다도 감정에 빠지기 쉽고, 필이 꽃히면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대방에게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모일 때는 항상 연예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디모데도 청년이었기에 예쁘고 늘씬한 자매가 친절을 베풀면 마음을 뺏길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정욕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분명한 영적 방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 저도 인턴 목자로 훈련 받을 때 연예감정에 빠지지 않도록 훈련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조금만 방심하면 사탄은 정욕으로 저를 넘어뜨리려고 시도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정욕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깨우쳐 줍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시119:9) 우리가 성경읽기와 소감쓰기와 말씀암송을 통해 우리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고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16절은 과부를 어떻게 섬길 것인지 가르쳐 줍니다.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고 했습니다. 존대하라는 것은 마음으로 존경할 뿐 아니라 경제적인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참 과부는 어떤 자들입니까? 나이가 육십이 넘은 자로서 섬겨줄 자녀나 손자들이 없는 사람으로 외로운 자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또한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순결한 여인이며, 선한 증거가 있는 믿음의 여인입니다. 선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자녀를 양육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 자녀들을 말씀과 사랑으로 양육하고, 순례하는 복음전도자들을 대접할 뿐 아니라, 성도들을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하며, 때마다 선행을 베푼 사람,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정과 교회와 세상에서 실천한 사람이 참 과부입니다. 그는 세상 나라와 세상에 속한 것들을 소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참 그리스도인이요, 항상 간구와 기도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참 예배자입니다.
교회는 참 과부를 선별하여 그들을 존대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존경할 뿐 아니라 경제적인 지원을 하여 그가 남편 없이도 생활을 꾸려나갈 뿐 아니라 교회를 위한 봉사와 섬김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과부들도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초대교회 시절에는 과부들은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누군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었습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셨는데 인간관계에 대한 계명 중 첫 번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자녀로서 마땅한 도리이며, 이웃사랑의 실천 가운데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과부 어머니나 과부 할머니가 있는 자녀나 손자들은 다른 기관이나 교회에 맡기지 말고, 과부 어머니 혹은 과부 할머니를 마음으로 존경할 뿐 아니라 물질로 섬겨야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은 가족들이 돌보라고 했습니다.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하는 자가 되고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가 됩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가족 부양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십계명의 제 오계명대로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음으로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말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물질적으로 섬기는 것이요 실제 생활을 돌아보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저는 목자로 부름 받아 양떼들을 섬기느라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가 본적도 없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제가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여 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저를 이해하시고 요구하지 않으시고 저의 가정과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방문할 때마다 정성껏 요리하여 음식으로 섬겨 주셨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사랑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이모세 목자님은 부모님에게 전화하거나 찾아뵐 때 꼭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모세 목자님과 같이 저도 장모님에게 또 아내와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사랑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 제 심령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과부들 가운데는 향락을 좋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육체는 살았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자들과 같았습니다. 젊은 과부들은 참 과부의 자격이 안 되기 때문에 교회 명부에 올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 가운데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시집가고자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정죄를 받습니다. 처음 믿음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정욕이 들어와 처음 믿음을 앗아갑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넘어간 젊은 과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정욕에 빠져 재혼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또 어떤 이들은 결혼하지 않고 게으름과 쾌락에 점점 빠졌습니다. 집집으로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 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짓 교사들에게 배운 다른 교훈 다시 말해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는 가르침을 집집마다 전하여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트러블메이커들었습니다.
바울은 젊은 과부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1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 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젊은 과부들은 시집가는 것이 좋습니다. 재혼하여 아이를 낳고 집을 잘 다스림으로 대적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혼자 있을 때 그리고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고 복음역사에 힘씀으로서 사탄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릴 때 죄의 도구가 되지 않고 생명력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가 짐 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입니다. 교회는 할 일이 많고 도와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과부는 먼저는 가족이 돕고 가족이 없으면 친척이 도와야 합니다. 교회는 참 과부를 선별하여 도와야 하며, 무엇보다 복음역사에 우선순위를 두고 그 일에 헌신된 사람들을 돕는 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17-25절은 장로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장로들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두 부류의 장로들이 있는데, 하나는 다스리는 장로들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역사를 섬기는 장로들입니다.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장로들이 다스리는 것과 말씀역사를 함께 섬겼습니다. 오늘날은 행정을 맡아 섬기는 장로들이 있고, 말씀사역을 풀타임으로 섬기는 전임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에 대해서는 배나 존경할 자로 알고 섬겨야 합니다. 교회 행정과 실무를 잘 섬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직분을 맡았으니까 의무감으로 섬기기 쉽습니다. 의무감만으로는 잘 다스리기 어렵습니다. 열정이 있어야 하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과 믿음으로 잘 다스릴 때 교회가 활기차고 양떼들이 와서 은혜 받고 또 오고 싶어 합니다.
또한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더욱 존경하라고 합니다. 왜 말씀역사를 섬기는 종들을 더욱 존경해야 합니까? 교회 활동 중에 가장 중요한 사역이 말씀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어디에서 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기 위해서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말씀의 종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교회 사역이 힘든 일이지만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은 가장 힘든 일입니다. 우리 목자들이 봄 수양회나 여름수양회 때 말씀강사를 맡게 되면 얼마나 부담이 큽니까? 다른 일이 맡겨지면 아멘 하고 받아들이지만 말씀강사로 세움 받았다고 하면 아멘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어찌하든지 다른 사람이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메시지를 쓰고 전하는 일은 참으로 힘든 노동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역사에 부름 받고 수고하는 말씀의 종을 존경하라고 한 것입니다. 존경하는 것은 마음으로 존경하는 것뿐 아니라 경제적인 지원을 기꺼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말씀사역을 섬기는 전임사역자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경 다시 말해 신명기 25장 4절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셨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소가 곡식을 밟아 추수를 하였는데, 그때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소가 배불리 먹어야 힘차게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꾼도 노동의 댓가를 받을 때 힘을 내서 일할 수 있습니다. 전임사역자도 생활비 걱정이 없어야 말씀역사를 힘 있게 섬길 수 있습니다. 전임사역자를 존경하고 물질지원을 기꺼이 하는 교회는 복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가정과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가득 채워주십니다.
장로들의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아야 합니다. 시기심과 미움으로 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고발 사건에 대해서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차를 거쳐서 범죄 사실이 확증이 되면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해야 합니다. 이런 권징을 할 때는 편견이 없이 해야 하며, 모든 일을 공평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치거나 한편의 말만 듣고 책망한다면 그 권징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고, 또 다른 분란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무에게나 경솔하게 안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장로를 세울 때 여러 모양으로 살펴보고 훈련하고, 많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교회 권징에 대해서 말하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람을 돕고 교회를 건강한 교회로 만드는 것은 속이 다 탈 만큼 힘든 일입니다. 디모데는 문제를 일으킨 장로들로 인해 위장이 많이 상했을 겁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에게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합니다. 당시 의약품이 없었기에 위장병을 치료하는 데 포도주를 사용했습니다. 디모데는 포도주에 취하면 안 되지만 위장과 몸의 건강을 위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로 어떤 병도 나을 수 있다고 하면서 기도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몸에 병이 있으면 병원 가서 진료도 받고 약 처방을 받는 것이 지혜입니다.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빨리 고칠 수 있는데 믿음으로 나을 거라고 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병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으로 나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릅니다. 어떤 죄는 분명하게 드러나 빨리 심판을 받고 어떤 죄는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나중에 드러나 심판을 받습니다. 어떤 죄든 빛 가운데 결국 드러나기 마련이고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습니다. 죄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선행도 다 드러나고 그에 합당한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죄 짓지 말아야 하고, 선한 일을 행하는 데 열정을 드려야 합니다.
6:1,2절은 그리스도인 종들이 상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종들은 믿지 않는 상전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비방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종들은 삶의 현장에서 믿지 않는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상전들의 마음이 열릴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믿는 상전들에 대해서는 형제라고 생각하여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겨야 합니다.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는 상전들을 대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었다며 예의 없이 행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는 상전일수록 예의를 갖추고 더욱 공경하는 태도를 보일 때 서로에게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성도들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는 무엇입니까? 존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들을 존경해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고 구원 받은 성도 한 사람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자들로서 성도들을 존경과 사랑으로 대함으로 활기가 넘치는 교회가 되고, 영적 부흥의 새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