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B.(김광모 토요칼럼 2026.9.19)
여천/여수 석화단지 건설
Story Number 2
1. 박정희의 중화학 선언에 의거하여
여천 석화 단지 지정
73년 박정희의 중화학 선언에 있어서 호남지역에의 여천 석유화학도 다 같이 선진국을 향하여 출범하여였다.
호남의 여천만 입구에 제2정유 공장이 건설되어 석화 원료인 나프타 수송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중화학은 처음으로 호남에 진출하는 여천/여수반도에 상륙하게 된 것이다.
중화학은 박정희 대통령의 비전에 따라 중화학 입지지정 일본의 자문팀의 동의를 받은 후 중화학 추진위의 의결을 받는 절차를 마쳤다.
따라서 여천을 석유 화학공업단지 입지로 지정함에는 전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박정희의 중화학은 60년대 중반에 유공에 의한 제1 울산 석화단지에 이어 여천 석화단지를 제2의 석화단지로 명명한 것이다.
2. 여천 석화단지 추진 선발 공장 건설
정부는 여천 석화단지 건설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대규모 선발공장을 건설하기로 의결했다.
이리하여 세계 최대급의 생산규모인 남해화학( 제7비료공장) ( 장홍규 사장)과 메탄올 공장(사장 김봉완)을 선발 공장으로 건설키로 하였다.
여기서 두회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제7비료 공장)
제7 비는 암모니아 연산 60만 톤을 기준으로 복비(NPK) 70만 톤, 요소(UREA) 33만 톤과 황산(H²SO⁴)을 비롯하여 인산과 질산등을 생산하는 세계 일류의 비료와 무기산 생산의 화학공장이었다.
사업주체는 한국의 합작비료의 힌국측의
투자자인 한국 종합화학과 미국의 세계굴지의 NPK 비료 생산의 Agrico 사간에 만든 합작 국영 기업체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77년 8월 4일의 7 비 준공식에 참석하셔서 치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제7 비는 단일 공장으로서는 세계 최대급의 규모와 최신 공정을 자랑하는 비료 및 화공 공장으로 연간 30만 톤의 요소와 70. 만 톤의 복합비료 그리고 100만 톤의 황산을 생산하는 세계에 뻗어나가는 한미 합작공장이다.
(대성 메탄올 )
대성 메탄올 공장은 세계제일의 일산 1,000톤 생산의 세계 최대급의 공장으로 사업주체는 60년대 중반 한국의 수출제일주의에 따른 수출품의 일등품목인 합판을 생산하는 회사는 천우사였다.
천우사는 자회사로 대성실업을 만들어 일본의 최대재벌의 하나인 Mitsubish와 합작 회사를 만들었다.
제7비료와 대성 메탄올은 70년대 중반 여천/여수의 석유화학단지의 건설의 선발대로 글로벌화를 목적으로 외국과의 합작을 한 것이다.
이리하여 상기 두 합작회사는 세계 제1류의 공장들을 건설하여 호남 석화단지의 선발대 역할을 충분히 담당하였다.
두 공장은 선발대 역할뿐만 아니고 한국의 70년대 중반에 시작하여 80년대 중반까지 약 10여 년간 한국의 선도적 모범 화학공장으로 활약하여 왔다.
그러나 세윌이 경과함에 따라 원료 나프타를 생산하는 중소 산유국과는 경쟁력이 떨어져서 단호히 문을 닫았다. (고 김봉완 선배님과 장홍규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 (끝)
제3 Story로 계속
2026.9.19 김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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