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위씨 독립유공자 계후(31세) 공의 자손을 찾습니다.
계후(31세) 공은 곡성현감공파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은 독립유공자 이시다.
공은 1884. 11. 15. 담양군 창평면 장화리 출생이며,
1912년 광주농고(제1회) 졸업 후 1914 ~ 1919년 까지 영광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고,
영광교회에서 조사(장로)로도 시무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조철현과 송진우 선생을 찾아가 기미독립선언서를 받아와 영광지역에서 독립운동을 배후 조정하였다.
그 후 교회와 청년회를 중심으로 힝일운동을 하시다 1937 ~ 1939년까지 1년 4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었고,
1944. 6. 22.에 졸 하셨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으셨고. 그 후 대전국립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셨다.
계후 공의 女 복경(32세)의 외손녀(캐나다 거주) Hannah Lee가 한국 방문 후 외할머니의 생전 말씀과 남겨진 사진을 근거로 계후 공의 흔적을 찾고자 하여 연락이 닿았다.
족보를 들고가서 Hannah Lee를 만나 확인해 주었다.
Hannah Lee의 외할머니 복경(32세)은 계후 공의 女로 1908년생이고,
계후 공의 자녀는 3남 2녀인데 오빠 달수(32세)는 1904년생 이었으며, 달수의 자녀는 홍걸(子), 홍전(女) 등 1남 3녀가 있었다.
사실 확인과정에서 Hannah Lee는 외할머니의 모친이 외할머니 6세 때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족보를 보니
Hannah Lee의 외할머니 복경의 모친은 1914년 복경이 6세 때 돌아가신게 확인되었다.
그리고 Hannah Lee가 소유하고 있는 외할머니의 사진들 속에 1949년 교회 주일학교 학생 수료증에 교사였던 위홍전이라는 직인이 있었는데 위홍전은 복경의 오빠 달수(32세)의 딸(女)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니까 위홍전은 Hannah Lee의 외할머니 복경의 조카였다.
그렇게하여 계후 공의 자손들인 증손자까지 확인시켜 주었더니 너무 좋아하며 탱큐를 연발하였다.
그리고 Hannah Lee의 외할머니는 결혼 후 일본에서 거주하다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캐나다에는 Hannah Lee의 모친(88세)이 생존하시고,
Hannah Lee의 한국 명은 이 문영이라 하였다.
혹시 계후 공의 자손들이나 계후 공의 자손들을 아시는 종친이 이 글을 접하게 되면 연락이 있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증(운하)...
계후(啓厚 1884∼1944) : 31세 號는 海人이며 광주농업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영광중학교 설립하여 영광을 비롯하여 주변 장성, 정읍, 고창지역에서 항일 독립운동 및 계몽운동을 하시다가 투옥 후 終하셨다. 독립유공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
- 증 (增 1933∼ ) : 32세 啓厚의 子로 號는 雲河이다. 월간 호남주간 및 광주매일일보 논설위원 역임 장흥위씨 보의론 연구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