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혈통 공동체가 아닌 신앙공동체(출12:37-51)
갈등
1. 출애굽기 내러티브 21번째 시간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버티던 바로 왕의 마음이 움직였어요. 바로 왕이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도록 허락하기까지 엄청난 희생이 따랐어요. 열 가지 재앙이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은 애굽인들이 섬기던 신들을 하나님께서 하나씩 심판하신 사건이었습니다. 나일강 신부터 아홉 번째 태양신, 그리고 열 번째 태양신의 아들 바로의 장자까지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로의 마음을 움직인 KO펀치는 열 번째 마지막 재앙-장자 죽음입니다. 태양을 가리는 아홉 번째 재앙이 그로키로-심한 타격을 받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림-몰아넣었습니다.
37절, 이스라엘이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이르렀습니다. 라암셋은 이스라엘이 400년간 노예 생활을 했던 곳이에요. 이제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민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이스라엘이 실제 자유민이 되려면 홍해를 건너가 애굽 군대가 더 이상 추격하지 않을 때가 되어야 했지만요. 사도 바울은 홍해를 건넌 사건을 세례라고 표현했는데,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고전10:1-2)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더 이상 죄의 종 노릇하지 않을 때입니다. 사탄의 권세가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때에요.(진정한 세례는 성령세례) 세례는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음을 선언하는 예식입니다.
2.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이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60만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60만 가구였다는 말이에요. 실제는 200-300만 명 정도입니다. 가구 수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주목할만한 순간이었어요. 38절,“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다.”고 합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민족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들이 누구였을까요? 왜 이 민족들이 자기들과 상관이 없는 이스라엘과 합류하여 애굽을 떠났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제정해주시면서 43절, 이방 사람은 유월절 음식을 먹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45절, 거류인과 타룩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스라엘과 출애굽에 동행하는 이방인들에게는 유월절 음식을 먹고 함께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읽으며 이스라엘과 출애굽에 동행하는 이방인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 말씀이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며 양식을 준비했습니다. 피난길이 아니고 자유를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이스라엘은 양식이 필요했어요. 16:1에, 애굽을 떠난 지 45일 만에 그들이 준비해온 양식이 떨어졌어요. 39절,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것은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이 떠나도록 1차 허락을 했지만, 그 마음이 언제 변할지 몰랐습니다. 당시 상황의 긴박함이 이스라엘이 준비하였던 음식에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계획하시고 때가 되어 성취되었어요. 40-41절,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 끝나는 그 날에 애굽 땅에서 나왔어요. 성경의 어디에서는 400년, 어디에서는 430년이라고 나옵니다. 가장 정확하게 표기한 것은 갈3:17,“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으로부터 시작해서 모세에게 계명을 주셨던 때까지를 430년으로 보았어요. 30년의 차이는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4. 430년 만에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키고 애굽을 떠나는데, 오늘 본문이 마치기 전 유월절 규례를 다시 언급합니다. 13장에서는 무교절 규례를 다시 언급하며, 불과 구름 기둥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홍해 바다로 이끄신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출애굽 기사에 유월절과 무교절 이야기가 몇 차례 반복되고 있어요. 이 규례를 이스라엘이 영원히 지켜야 함을 반복적으로 되새기게 합니다. 반복은 중요하다는 메시지입니다. 유월절 규례를 다시 말하며 46절,“한 집에서 먹되 뼈도 꺾지 말라.”고 합니다. 왜 여기서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실마리
5. 출애굽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잡족-여러 민족이 동행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과 동행한 이유는 성경에 문자적으로 말하지는 않아요. 출애굽 과정과 여호수아에 등장하는 라합의 이야기를 보면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어요. 그것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충분히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정탐꾼을 맞이한 여리고 사람 라합의 말을 들어봅니다. 수2:9-10,“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행하신 일들을 하나하나 다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라합은 애굽에 임한 열 가지 재앙은 말하지도 않았어요. 홍해 일과 아모리 두 왕에게 행한 일만 이야기했어요. 라합은 11절,“우리가 듣자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라합이 하나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증거했어요. 라합은 직접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본 것도 아니었어요. 풍문으로만 들었습니다.
6. 이스라엘과 출애굽에 동행한 여러 민족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직접 애굽 땅에서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은 라합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어요. 그리고 결단했어요. 그들도 참신이신 하나님을 믿고 살겠다고요. 그 결단으로 이스라엘과 출애굽에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규례를 제정해주시면서도 이방인들이 유월절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금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그랬어요. 그런데 44절과 48절에 이방인들이 유월절 규례를 지키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44절,“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48절,“너희와 함께 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오늘 본문과 다른 본문들을 종합해서 보면, 하나님은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여러 민족들이 동행하도록 기회를 주셨어요. 이때만 아닙니다. 라합의 경우도 그렇고, 더 훗날에 룻의 경우도 그렇고 계속해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민족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7. 출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사이지만, 내면에는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을 더불어 구원하신 역사임을 나타내줍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개념도 혈통적인 면이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매김해 가지만, 혈통보다 신앙이 중요하게 여겨졌어요. 이스라엘은 혈통 공동체가 아니라, 신앙공동체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얼마나 놀라운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에서부터 하나님의 구원사는 이스라엘 지경을 넘어서고 있어요. 이스라엘이 신앙의 순수성을 잃지 않도록 이방인과 결혼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끝내 혈통보다 신앙 우선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복음 제시
8. 유월절 규례가 반복되며,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어요. 시34:20,“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오늘 본문과 시편의 말씀이 우연처럼 보일 수 있어요. 성경에 우연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이 이뤄져 갔어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약속을 430년 만에 이뤄지며 출애굽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은 일도 오늘 본문으로부터 1,000년 내지 1,500년 뒤에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 십자가 형장에서 이뤄졌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기사를 자세하게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십자가 처형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토요일 해가 지기 전에 주님의 처형이 끝나고 무덤에 묻기를 원했어요. 유대 종교인들이 빌라도 총독에게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요청했어요. 군인들이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들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예수님의 다리도 꺾으려고 접근했는데, 주님이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았어요. 36절,“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오늘 본문과 시편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정확하게 희생되셨음을 전합니다. 그의 희생으로 우리 인류가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기대
9.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한 민족에만 관심이 있지 않아요. 하나님의 관심은 모든 민족에 있어요. 오늘 본문이 이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만, 나만 사랑하시지 않아요.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세요.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교회만이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잘 되고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도 나와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다른 가족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요. 성경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기회가 있든지 없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합니다.(딤후4:2)
국내에서 동일 문화권에서 전하는 복음을 전도라고 부르고, 해외의 타문화권에서 전하는 복음을 선교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우리 교회는 본질을 향해 나갑니다. 그래서 전도와 선교를 멈추지 않고 합니다. 교회의 본질을 다하는 우리교회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되도록 이 시간 합심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