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진작가의 작품 >
어떤 장미
장호병
“아휴, 장미 곱기도 하여라. 안개꽃이 여왕으로 떠받들고 있네.”
불꽃놀이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각, 밤바람에 오랫동안 노출된 몸을 녹이고자 사람들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상해 동방명주에서 내려다보이는 한 레스토랑 입구에 자리하여 주인보다 먼저 손님들을 맞이한다.
“어쩜 이렇게 싱싱할까. 보통 솜씨가 아니네.”
내 덕분에 주인은 꽃꽂이 실력이 훌륭하다는 칭찬을 자주 듣는다.
가끔은,
“진짜예요?”
‘속고만 살았나?’
무슨 생각을 하건대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궁금하단 말인가.
중년 신사가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푸른 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윤이 나는 내 잎사귀를
손으로 어루만진다. 뒤이어 들어오던 부인인 듯한 여자가 내 몸 가까이 코를 컹컹대면서 다가온다.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그녀도 조심스럽게 나의 잎사귀에 손을 올린다.
“아야야!”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남자는 가벼운 비명을 질렀다. 손톱을 세워 잎사귀를 힘껏 누르던 그의 손에 내가 반사적으로
일침을 놓았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다. 이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 나의 첫 번째
임무가 아니던가. 그가 공격적 자세만 취하지 않았다면 나에게는 그를 해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장미에게 가시는 이래서 필요한 거야.’
당황한 나 자신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달걀도 만든다는 중국인들의 손재주로 탄생하였다. 잎이나 가시, 꽃 중 어느 하나에라도 어설픈 구석이 있었다면
나는 가짜 소리를 듣지 않았을 것이다. 육안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완벽해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짜란 소리를
하루에도 수십 번은 들어야 한다.
그때마다 나는 가짜가 아니라고 도리질하지만 “가짜지요?”라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어느 사이에 나도
가짜일 수 있다고 세뇌될 때가 있다.
내가 왜 가짜야!
나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태어난 꽃이다. 물을 얻어먹은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나는 물 달라
보채거나, 시들지도 않고, 불평도 하지 않는다. 주인이야 관심을 주든 말든 이 세상에 올 때의 처음 마음 그대로이다.
한결같이 낯선 사람들에게도 상냥하게 미소를 건네며, 한 번도 딴마음 먹은 적이 없다. 인사를 받아주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무심히 지나쳐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가짜지요?”
나에겐 귀가 있을 뿐, 입이 없다. 가짜란 말을 들어도 나는 얼굴을 찡그린 적이 없다. 내색하진 않지만 속마음마
편한 것은 아니다. 속이 부글거려도 참을 뿐이다. 나의 천성은 언제나 상냥한 미소, 서운해하지 않는 게 나의 숙명이다.
사나흘이면 시들어버리는 꽃은 진짜이고, 처음 마음 그대로 언제고 버티는 내가 왜 가짜란 말인가.
너무 완벽해서?
향기가 없어서!
‘향기 나지 않는 당신들이 가짜가 아니듯, 나도 가짜가 아니랍니다.’
“나는 진짜 조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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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방
장호병
아파트에서 바라보이는 강변 둔치에 텃밭을 경작하다가 촌땅에 관심을 두었다. 언제고 발을 빼도 아깝지 않을 만큼
적은 돈을 투자하려니 배산임수나 좌청룡우백호는 어림없었다.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부동산중개인의 안내를 받았다. 목적지에 자리한 자두밭을 지척에 두고
길가에 개집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멀찌감치 떨어지려는데 개가 고개를 내밀었다. 강아지조차 나를 보면 덤벼드는데
그 개는 짖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개에게 허벅지를 물린 적이 있다. 나에게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진화과정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단 말인가.
개만 보면 나는 눈을 마주하여 뒷걸음질이나, 게걸음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개 또한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매번 견원지간의 한가운데 내가 있었다. 일행의 발걸음을 좇는 그 개의 눈빛에서 생전 처음으로 우호적 느낌을 읽었다.
고개를 드니 정자가 우뚝 서 있고 왼쪽 뒤에서 노송이 손을 내민다. 뒷산 정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지점이다.
반듯하지는 않지만 정자와 마을길을 약간 비켜 앉은 것이 마음에 든다고 아내가 귀띔을 한다. 마을 뒤쪽에
올라앉았으니 조금 시끄러워도 민폐를 끼칠 것 같지는 않다.
앞에도 야트막한 산들이 둘러싼 마을 뒤쪽, 여기다 싶었다. 더구나 그 개도 수문장 노릇을 하겠다고 싱긋 웃고 들어갔다.
중개인이 가격 조정에 나서면서 결정이 제자리에서 이루어졌다. 부지런한 땅주인이 거름과 지푸라기를 자두나무 밑에
충분히 깔아두었었다.
한 달 정도 있으니 자두꽃이 활짝 피었다. 포도송이처럼 탐스런 열매들을 솎아낼 때는 ‘미안, 미안!’을 입에 단 채
두어 주를 보냈다. 주말마다 자두나무 그늘에 텐트를 치고 라면으로 때우는 점심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봉황은 벽오동이 아니면 앉지 않는다고 한다. 그 벽오동이 자주 눈에 띈다 했더니 뒷산이 봉황산이란 기록을 보았다.
참꽃 소식이 나에게 닿기도 전부터 내 속의 에너지가 꿈틀거려 땅을 일군다. 시작은 어설프게 내가, 마무리는
늘 이웃분들의 노고로 돌아간다. 상추도, 배추도 심는 시늉만 했지 이웃으로부터 얻어먹는 소채가 훨씬 많다.
두둑을 만들고 비닐로 멀칭까지 하여 상추며 고추, 감자, 고구마 등을 심어 놓으면 어느 부자도 부럽지가 않다.
흐뭇하여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이도 잠깐, 밭은 고라니의 놀이터가 되어 가고, 오뉴월 비가 밭고랑을 흥건히
적시기 시작하면 사도삼촌(四都三村)의 수고로움도 소용이 없다. 나는 풀 뽑기를 중단하고 ‘더불어 농법’을
선언한다. 이게 나의 연중행사이다.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면 그 옆에는 비슷한 잡풀들이 고개를 내민다. 공들인 것들을 뽑아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더러는 기특하게도 ‘나 녹두야.’ ‘나는 들깨야.’ 관등성명을 외치기도 한다.
잡풀이라 부르는 게 미안하여 이들에게 절반에 가까운 농지를 내주었다. 초여름이면 개망초꽃이 흰 물결의 호수처럼
장관을 이룬다. 옆으로만 뻗어나가던 클로버도 키 자람을 한다. 그럼에도 잔디밭을 넘보던 클로버와 민들레,
쇠뜨기 등이 은근슬쩍 발을 들여놓곤 한다.
올해는 유튜브에서 간단하게 고구마 심는 법을 배웠다. 효과와 능률에 재미까지 있어 보였다. 한나절도 걸리지 않아
100포기를 심었다. 신이 나서 묵혀두었던 곳에도 100포기와 땅콩 모종까지 심었다.
나중 심은 것은 고라니 몫으로 남긴다. 고라니가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타이머를 이용하여 15분마다 음악과 조명으로
접근금지를 선언한다.
이 고라니들 좀 보소. 제 몫은 잡아둔 물고기처럼 관심을 덜 보이고 내가 애지중지 가꾸는 것들에 입맛을 크게 다신다.
두어 주가 지나니 음악 소리에 맞춰 고구마 줄기를 죄다 뜯어 먹어 버린다. 고얀지고! 그물망으로 울타리를 설치하였다.
수고비나 기름값은 고사하고 모종값도 건지지 못한다. 일 년에 한두 번 쓰는 농기구도, 일 년에 한 번 하는 동네
사람들과의 음악회를 위한 부수 장비들도 사다 나르고……. 경제 관념이라곤 내가 생각해도 꽝이다. 다행인 것은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돈 쓸 곳이 별로 없다. 낭비인 줄 알지만 탓할 이도 없고, 풀이야 우거지든 말든 마냥 즐겁다.
임금 자리가 좋은 것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권력 행사에 있지 않다. 자식 입에 맛있는 음식 넘어갈 때 어버이가
행복하듯, 임금 또한 백성들이 근심걱정 없이 자기 뜻을 펼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기쁠 것이다.
나의 작은 영토에 발을 들이미는 풀 한 포기, 작은 풀벌레들에게도 군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나보다 먼저 여기에
둥지 튼 주인이다. 가꾼다는 명목으로 내가 점령군 행세를 해서도 안 되겠다. 내 게으름이 그들에겐 오히려 작은
평화가 될 수도 있으리라.
내가 심지 않았다고 황량하면 어찌 눈이 즐거우리. 계절 따라 싹 틔우고, 꽃 피우고 열매 맺어 나의 왕국을 살찌우는
그들이 고맙고 기특하다.
내 영토에 더 이상 잡초는 없다. 나와 인연 맺은 사람들이 봉(♂)이요 황(♀)이듯, 고라니도 풀벌레도 잡초도
다 봉황(鳳凰)에 버금가는 소중한 생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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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병
대구과학대학교 겸임교수(역), (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역),
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대구교대 평생교육원 강사, 계간 문장 주간
*저서
수필집: 『웃는 연습』 『하프 플라워』 『실키의 어느 하루』 『너인 듯한 나』 『눈부처』
이론서: 『글, 맛있게 쓰기』
평론집: 『로고스@카오스』 『수필 깊이 읽기: 붓 가는 데로의 여행』
영문 에세이집: 『Half Flower』
수상 : 대구문학상, 조연현문학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