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 수교 130주년, 광부ㆍ간호사 파독 50주년 기념 특별무대로 진행
[재외동포신문] 2013-08-12
한독(韓獨) 수교 130주년과 광부ㆍ간호사 파독 50주년을 맞아 가진 KBS ‘가요무대’ 독일공연이 지난 3일(현지시간) 루르공업지대 중심부에 위치한 보쿰시의 루르 콩그레스 보쿰(RuhrCongress Bochum)에서 3,000여명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삼천리 금수강산의 산야와 민족의 정신이 담겨진 소나무, 대나무, 그리고 거북온살, 국화살 등 고전창문살 아치가 좌우에 세워진 KBS ‘가요무대’ 독일공연은 고급스러움과 한국인의 정취를 물씬 풍겼다.
식전행사에서 KBS 길환영 사장은 “한독수교 130주년과 근로자 파독 50주년을 맞아 열리는 ‘가요무대’ 독일공연을 통하여 인사하게 됨에 감사하고, 7936명의 파독 광부, 11057명의 간호원들의 지난 삶에 경의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루르콩그레스 보쿰으로 행사 유치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오틸리 숄츠 보쿰시장(Oberbuergermeisterin Dr. Ottilie Scholz)의 인사가 있었다. 숄츠 시장은 “오늘 ‘가요무대’ 행사가 한국과 독일 두 나라 국민 모두에게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을 것을 확신한다”며 그동안 한국인 근로자들이 개인은 물론, 독일 국가경제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한 점을 들어 경의를 전하며 “글뤽아우프!” 라는 인사로 축사를 마쳤다. (‘글뤽아우프’는 파독 광부들이 갱도에 들어가기 전 주고받던 ‘행운을 빈다’는 뜻의 인사말로, 광부 출신 재독동포들은 친목단체인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편집자 주)
드디어 기다리던 ‘가요무대’ 독일공연의 막이 올랐다. 20년 전, 93년 유럽 홀에서 열렸던 추석특집 ‘그리운 노래, 고향의 노래’ 장면이 스크린에 비쳐졌다. 최희준의 ‘하숙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지난 20년 동안 이미 고인이 된 많은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회색이 되어버린 검은 머리의 주인공들이 눈에 띄며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했다.
첫 무대는 고운 자유한복으로 단장한 독일에서 전역에서 참여한 어머니합창단 86명이 독일민요 ‘들장미’를 아름다운 화음으로 합창했다. 이어 여자가수 전원이 여성을 상징하는 ‘찔레꽃’을, 남자가수 전원이 남자를 상징하는 ‘아빠의 청춘’을 불렀으며 찔레꽃 2절이 전체 합창으로 이어갔다.
김동건 사회자는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찾아오는 이가 있고, 찾아가고 싶은 곳이 있음은 참 기쁜 일입니다. 그곳이 바로 독일입니다. 저희들은 1만km를 날아왔습니다. 분명 먼 길임에도 이런 뜨거운 만남이 가능한 것은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라고 역사적인 ‘가요무대’ 독일공연이 시작됨을 알렸다.
제1편의 주제는 <독일로 간 청춘>이었다.
‘노란셔츠의 사나이(김연자)’, ‘갈대의 순정(송대관)’, ‘대머리총각(김상희)’, ‘이별(권성희)’, ‘빨간구두 아가씨(설운도)’ 등 60~70년대 파독 근로자들의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 소개돼 청중들의 환호와 큰 호응을 받았다.
이어 근로자 파독 50주년 다큐 필름이 소개됐다.
한국경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파독 근로자들, 이들의 눈물과 땀, 김동건 사회자는 “세계에서 근면과 성실성이 으뜸인 독일인들의 사회에서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한국인들을 모시고 방송하게 됨을 영광으로 안다”며 인사, 또 한차례 큰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어 무대와 청중석이 혼연일체를 보인 ‘꿈에 본 내 고향(김국환)’, 고향무정(이자연)’, ‘머나먼 고향(현철)’, ‘고향초(주현미)’가, 또 영상으로 ‘독일에서 마지막 온 편지’라는 지난 77년 광부로 파독되어 사랑하는 부인과 딸을 남기고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고 김중원 씨의 당시 친필편지 사연들이 소개돼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한복차림의 장사익 노래는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가수들의 노래와 사연들은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맞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객석 인터뷰로 광부 출신으로 현지 회사 최고경영자였던 김희진씨와 파독 간호사 도남숙씨 내외가 그동안의 삶과 꿈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진 무대에서는 ‘비내리는 고모령(김용임)’,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현숙)’, ‘부모(진미령)’, ‘사모곡(태진아)’이란 곡이 불려져 우리 모두가 인연으로 맺어져 서로가 믿고 기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을 알게 했다.
이어 40년 만에 자매 상봉이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충남 서산 출신인 파독 간호사 기영구씨와 언니 김영자의 만남이었다. 영구씨는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건너와 현재의 남편을 만났고, 남편의 고향인 그리스에서 살다가 지난해 다시 독일로 돌아온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우여곡절이랄 수 있는 그녀의 삶이 속속들이 알려지면서 청중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삶을 만나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던 파독이 가져다 준 동병상련(同病相憐)이 가슴으로 전해졌다.
김동건 사회자는 언니 영자씨가 한 비행기를 타고 오며 최고 보안을 유지하려고 했던 일을 이스라엘 ‘모사드’로 비유하며 에피소드로 소개해 청중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좌)동생 영구씨와의 이별 이후를 말하고 있는 영자씨. (우)영자씨는 ‘가요무대’의 주선으로 독일에 와 동생 영구씨와 감격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눈물의 사연이 끝나는가 했더니, 장사익의 ‘봄날은 간다’가 큰 공연장 공간을 한(恨)으로 가득 채우며 울려퍼졌다.
곧 이어 사회자의 마감 멘트와 전체 출연자가 고향의 노래를 합창함으로서 첫날 ‘가요무대’는 막을 내리고 40년 만에 만난 자매들에게 답지한 온정이 알려졌다.
뒤셀도르프에 거주하는 김계수 박사가 영구씨의 항공편 비용을,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고창원 회장과 한독간호협회 윤행자 회장이 그녀의 한국 체재 경비를, 객석 인터뷰에 나섰던 김희진씨가 500유로를 여행 경비로 쾌척한 사실이 알려져 따뜻한 재독동포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약 20분간의 휴식을 가진 뒤, KBS교향악단의 연주와 함께 <독일아리랑 동포와 함께>라는 주제로 제2편의 막이 올랐다.
김동건 사회자는 재독동포들이 애창하는 곡들만을 소개하게 될 것임을 안내했다.
‘타향살이’, ‘한오백년(장사익, 김영임)’, ‘나그네 설움’, ‘내마음 별과같이(현철)’, ‘동백아가씨’, ‘비내리는 영동교(주현미)’, ‘번지없는 주막’, ‘사랑의 트위스트(설운도)’, ‘수은등’, ‘불효자는 웁니다(김연자)’가 박수와 환호 가운데 청중들의 인기를 누렸다.
이어 초대인터뷰로 파독 광부 이종현(제1차 3진)씨와 독일 부인이 첫사랑의 사연을 들려주고 43년 전에 배웠다는 ‘반달’을 노래했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 손을 꼬옥 잡고 노래하는 부부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감동케 했다.
두번째 인터뷰는 파독 간호사 비지오(김)이득씨와 독일인 남편 비지오씨와의 사랑 이야기와 안무를 겸한 노래 ‘만남’을 듣는 순서를 가졌는데, 사회자는 두 가정에 국내 ‘가요무대’에 출연 제의를 하기도 했다. 두 가정의 인터뷰는 이 시대를 사는 재독동포 식구들의 진솔한 삶을 보여주는 시간이 됐다.
해금 바이올린 연주에 최연소 출연자인 이루리(9세)와 어머니합창단, 그리고 청중들이 함께 ‘아리랑’을 반복하고, 옆 사람들과 손을 잡고 애국가를 부르며 그 고대하던 ‘가요무대’는 서서히 막을 내렸다.
김동건 사회자는 “‘가요무대’ 28년 역사 가운데 (1993년 첫 공연에 이어) 두 번 찾아 온 곳도 독일이 처음이요, 두 번에 걸쳐 방송되는 것도 독일이 처음”이라며 감동적인 ‘가요무대’ 독일공연에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해준 재독동포들에게 “한독수교 180년, 근로자 파독 100주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이 자리에서 꼭 만날 것을 약속하자!”는 덕담과 고마운 인사를 전했다.
한 여성 교민은 “먼 길에서 무리한 듯했으나, 최고의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와 많은 가수들의 노래와 사연을 들으며 참석자들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60대 독일인 청중은 “처절한 장사익의 소리에 너무 큰 쇼크를 받았다”며 “목소리만이 아닌 몸 전체에서 토해내듯 부르는 노래에서 한국인들이 지닌 강렬한 힘을 볼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때 그 시절의 노래로 동포들의 심금을 울린 출연 가수들.
노래에 웃고 사연에 울고…목놓아 부른 ‘반세기 恨’
[문화일보] 2013-08-05 (부분 발췌)
이날 공연장의 열기는 대단히 뜨거웠다. 장내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것은 물론 행복한 웃음도 감동의 눈물도 있었다. 독일 전역과 스위스 등 유럽 각지에서 찾아온 2000여 명의 방청객들은 가수들과 하나가 돼 공연장은 흡사 아이돌 그룹의 무대로 착각될 정도였다.
한마디로 ‘가요무대’사상 가장 성공한 공연이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1965년 광부로 독일로 건너온 박용훈(75) 씨는 “48년 동안 타지에 살며 쌓인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그간의 갖은 고생을 잊게 해준 멋진 공연이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공연장을 찾은 교민들은 한목소리로 ‘가요무대’를 뜨겁게 반겼다.
파독 간호사들로 이뤄진 한독간호협회 윤행자(70) 회장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모두 이제 60세가 넘어 고향 생각을 지독하게 한다”며 “‘가요무대’의 대규모 공연이 교민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1970년 간호사로 독일로 건너와 43년 동안 독일에서 살고 있는 김미순씨(81)는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이 깊어지는데, 고국의 정서를 듬뿍 느낄 수 있는 ‘가요무대’가 찾아와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또 1976년 광부로 파견된 오명환씨(73)는 “잘살기 위해 독일을 찾았지만 언어나 체력 등의 문제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과거처럼 한국이 못살았다면 이런 공연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대규모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한 고국이 자랑스럽고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느낀다”고 감격스러워했다.
1963년 12월 1진을 시작으로 1977년까지 광부 7900여 명, 간호사 1만1000여 명이 독일에 파견됐다. 이들은 청춘을 바쳐 석탄을 캐고, 환자를 돌봤다. 그리고 이들이 고국의 가족에게 송금한 돈과 독일 정부의 차관에 힘입어 한국은 산업화에 성공했고, 오늘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이 됐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1965년부터 10년간 고국에 송금한 외화는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69달러에 불과했던 우리나라의 총수출액 대비 1.6∼1.9%에 달했다.
젊은 청춘을 이역만리 독일 땅에서 보내야 했던 광부와 간호사들은 이제 60∼80대 노인이 됐다. 이번 공연은 바로 그들을 위한 것.
‘가요무대’의 양동일 PD는 “청춘을 바쳐 고국의 가족을 부양하고 한국 경제 발전의 밑거름 역할을 했던 파독 근로자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이번 공연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광복절 기획으로 마련된 이 공연은 8월 12일에 제1편 <독일로 간 청춘>이, 19일에 제2편 <독일아리랑-동포와 함께>가 2주 연속 방송됐다.-편집자 주)
▲공연장에서 상영된 광부ㆍ간호사들의 다큐 영상물.
독일에서 온 간곡한 편지…“‘가요무대’가 갑니다”
[스포츠조선] 2013-07-25 (부분 발췌)
‘가요무대’ 양일동 PD는 올해 초 독일로부터 한 장의 편지를 받았던 사실을 전해줬다. KBS 사장 앞으로 부쳐진 이 편지엔 ‘가요무대’가 독일을 찾아와 희망을 달라는 파독 광부 모임과 파독 간호사회의 간곡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양 PD는 “우리로선 그 분들이 ‘가요무대’를 딱 찍어서 와 달라고 말씀해주시니 영광이었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60~70대가 된 현지의 전직 간호사 분들이 합창단 활동을 하는데 한국 노래를 부르면서 향수를 달랜다고 하시더라. 그 분들이 공연에도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동안 ‘가요무대’를 이끌어온 김동건 아나운서는 ‘가요무대’의 얼굴이다. 베테랑 아나운서인 그에게도 이번 공연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첫 마디는 “보람 있습니다”였다. 그리고 “감개도 무량하다”고 했다. 50년 전,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로 떠났던 1963년. 같은 해에 그는 아나운서가 됐고,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가요무대’와 함께 독일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년 전엔 근로자 30주년을 맞아 공연을 했었다. 김 아나운서는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떤 분들은 여덟 시간 동안 자동차 운전을 해서 공연을 보러 왔었죠. 그래서 세 시간 반 정도 녹화를 보고 다시 자동차를 타고 돌아가는 강행군을 하는 동포들이 여럿 있었어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 짓고, 울고, 대단했죠. 우리가 가서 위문을 드린 게 아니라 환영만 대단하게 받고 온 기분이 들었어요.”
독일 현지의 방송 스태프들이 깜짝 놀랐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 사람들이 이게 도대체 무슨 프로그램이냐고 했어요. 방송을 평생 했는데 이런 프로그램을 본 적 없다고요. 세 시간 반 동안 녹화를 하는 동안 화장실 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거든요. '어떻게 관객들이 한발짝도 안 움직이고 있냐'고 할 정도로 대단히 호응을 받았어요.”
양 PD는 “‘노란셔츠의 사나이’나 ‘고향만리’, ‘비 내리는 고모령’ 등 근로자들이 청춘을 추억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노래를 꼽았다. 그리고 그 노래를 잘 소화할 수 있는 가수들을 초청했다”며 “독일까지 비행기를 타고 11시간이나 걸리지만, 가수들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동참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독일 공연을 통해 또 다른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기게 된 ‘가요무대’. 김동건 아나운서는 “나 말고 후배들이 ‘가요무대’를 맡더라도 앞으로 ‘가요무대’만큼은 오랫동안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요무대’서 39년 만에 상봉한 자매 “이대론 못보내유”
[조선일보] 2013-08-05
“독일 가 돈 벌어서 어머니 집 사드린대잖어유. 미숫가루 한 말 싸줬지유. 동생이 패티김의 ‘이별’을 좋아했시유. 떠나기 전날 전화기에 대고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하고 노랠 불러주는데 어찌나 울었는지 몰러유.”
3일 특집 KBS ‘가요무대’ 공연에서는 간호사 출신 동생과 한국에 있는 언니의 39년만의 상봉이 이뤄져 객석을 울렸다. 광부ㆍ간호사들의 성공 스토리가 많이 알려지고 있지만 이들 자매의 사연은 안타까움 자체였다.
언니 김영자(68ㆍ근흥면 마금3리)씨와 동생 기영구(59)씨는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 성(姓)이 다른 자매.
(서울 성북구 김병준씨의 둘째딸로 태어난 영자씨는 친부가 작은어머니를 들여 살게 되면서 6.25 때 어머니가 영자씨를 데리고 충남 서산으로 피난 와 태안읍에 정착해 살면서 전라도 정읍 출신 기성주씨와 재혼해 영구씨를 낳았다.-편집자 주)
학창 시절 늘 1등을 놓치지 않던 동생 영구씨는 대학 갈 형편은 되지 않아 공주의 간호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영자씨가 결혼 후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정신없던 1974년 어느 날 서산보건소 간호사로 일하던 동생이 “독일로 돈 벌러 간다”고 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돕겠다는 뜻이었다. 그게 39년간 생이별의 시작이었다.
처음 1~2년간 영구씨는 어머니 용돈, 조카 선물도 보내왔다. 하지만 편지가 점점 뜸해지더니 “빵집 하는 그리스 남자에게 시집가게 됐다”는 소식, 1986년 어머니 별세 직전 푸른 눈의 제부와 두 아이 사진을 보내온 것을 끝으로 소식이 끊겼다.
동생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것은 2010년.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근근이 살아가던 영구씨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 때 극빈층으로 추락했고, 딸을 병으로 잃었다. 영구씨의 딱한 사연을 알게 된 간호사 동료 김옥순 재독한국간호협회 부회장이 수소문 끝에 언니의 연락처를 찾아내 가까스로 연결이 됐다.
언니, 동생 모두 빠듯한 형편이다 보니 1~2주에 한 번씩 전화 통화만 하다가 ‘가요무대’ 제작진의 주선으로 이날 39년만의 대면 상봉이 이뤄졌다. 이날 언니는 200만원을 품고 왔다. 동생 비행기 삯이었다.
“이대론 못보내쥬. 엄니 산소도 데려가고 조카들도 뵈줘야쥬.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