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매창, 이옥봉 세 여류시인의 그리움의 정수를...
창밖의 겨을바람 소슬하고
비는내리고나뭇잎들은 한잎두잎
다 떨어져 이미 겨울문턱에 섰습니다
청춘의 날은 가고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만 깊어가는 계절,
누군가가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황진이, 매창, 이옥봉 세 여류시인의 그리움의 정수를 한번 느껴보십시오.
정인(情人)을 그리워하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탄식한 조선조 기생들의
정한(情恨)은 그리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조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기생 황진이(黃眞伊, 1516~?)의
그리움은 어떤 ‘그림’이었을까?
상사몽(相思夢) - 꿈속의 그리움
相思相見只憑夢 그립고 보고파도 꿈길밖에 만날 길 없으니
상사상견지빙몽
儂訪歡時歡訪儂 내가 님 찾아 나설 때 님도 날 찾아 나서네
농방환시환방농
願使遙遙他夜夢 원컨대 다른 밤 꿈에 서로 님 찾아 나설 때는
원사요요타야몽
- 時同作路中逢 같은 시각에 출발해 중간에서 만날 수 있기를
일시동작로중봉
시기(詩妓) 가운데 황진이가 한글시로 이름을 날렸다면
매창은 한시로 이름을 날렸다고 할 수 있다.
전북 부안 출신의 기생 이매창(李梅窓, 별명 癸娘, 1573~1610)은
18세에 28세 연상의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 1545~1636)을 만나
평생을 정인으로 지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집이 서울이었던 촌은은 매창을 만난 지 2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고 말았다.
부안에 홀로 남은 매창은 서울로 떠난 촌은을 정인으로 두고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정을 쌓은 후 재회하기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이팔청춘에 만났던 매창은 어느새 삼십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금환(金環) - 금가락지
相思都在不言裏 차마 말은 못했어도 너무도 그리워
상사도재불언리
夜心懷鬢半絲 하룻밤 맘고생에 귀밑머리 다 희었네
일야심회빈반사
欲知是妾相思苦 제 맘고생이 어떤지 알고 싶으시다면
욕지시첩상사고
須試金環減舊圍 헐거워진 이 금가락지 좀 보시구려
수시금환감구위
그리움에 지친 오랜 세월은 몸도 마음도 상하게 한다.
맘고생이 얼마나 심했으면 귀밑머리가 다 희어지고
딱 맞던 반지가 헐거워졌다고 했겠는가.
정인을 그리다 맘고생을 한 나머지 그 피폐해진 육
신을 이보다도 더 애절하게 빗댈 수 있을까.
황진이, 매창 등 기생 이외에도 조선조에는 뛰어난 여류시인이 많았다.
그들 중 둘만 꼽으라면 허난설헌과 이옥봉(李玉峰, 1550~?)을 들 수 있다.
이옥봉, 그녀의 그리움은 또 어떤 모습일까?
몽혼(夢魂) - 꿈속의 사랑
近來安否問如何 요사이 우리님은 어떻게 지내실까
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 사창에 달 밝은데 이몸은 한이 많아
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 만약 꿈속의 길에 흔적이 남는다면
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 임의 문전 돌길이 반은 모래 되었으리.
문전석로반전사
꿈속의 사랑 긴 겨울 밤 사랑하는 임에 대한 꿈을 꾸어봅니다.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속 길을 달려 임에게로 갑니다.
얼마나 꿈길을 달렸으면 임의 문전 돌길이 반은 모래로 변했을까요?
이시는 조 선 명종 때의 여류시인 이옥봉의 연시(戀詩) 입니다.
이옥봉은 충청도에서 왕족인 이봉지의 서녀로 태어났으나,
결국 신분 때문에 정실이 되지못하고 어느 양반집 자제의 첩이 되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두사람이 헤여지게 된후,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을 그리며 수 많은 밤을 지새워
각혈을 하듯이 연시를 썼습니다.
봄이 되기 전, 깊은 겨울밤은 왠지몸이 시리게 춥습니다,
사랑하는 임이 간절하게 그리워지는 계절에
'몽혼'을 읽으며 '꿈길속의 사랑'을 한번꿈꿔 보시기 바랍니다.
황진이, 매창, 이옥봉 세 여류시인의 그리움의 시.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