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예정론과 예지예정론의 사법적 종지부: ‘시간(Time)’을 초월한 창조주의 시각과 인간의 자율의지가 지닌 예배의 최고 존엄 가치
필자는 본서의 제1부 ‘성경의 위대한 난제들’을 마감하는 최종 선포대 앞에 서서, 인류 교회사 2,000년 동안 수많은 성도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영적 맹인 상태로 만들어 미궁 속에 가두었던 가장 무겁고도 거대한 신학적 전장, 곧 ‘장로교의 핵심인 칼뱅의 절대예정론’과 ‘감리교·성결교의 뼈대인 아르미니우스의 예지예정론’의 영구적인 사법적 종식령을 선포하고자 합니다.
이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교리 전쟁은 성경이 사수하는 창조주 하나님의 무결한 속성과, 인간에게 부여된 절대 자유인 ‘자율의지’의 가치를 난도질하여 구속사의 주파수를 완벽하게 교란해 왔습니다.
칼뱅주의의 극단적 프레임은 인간을 영적 로봇과 육체 인형의 격으로 격하하여 자율의지를 완전히 거세해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불공평한 독재자’로 전락시켰고, 반대로 아르미니안주의의 예지예정론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간의 선택 여하에 따라 흔들리는 시한부 주권으로 격하시켜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을 피 터지게 충돌시키는 대참사를 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성경해석 6원칙 중 ‘제1원칙(성경은 성경으로)’, ‘제4원칙(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어긋나면 틀린 해석이다)’, ‘제5원칙(성경이 충돌하면 틀린 해석이다)’의 엄밀한 자를 들이대는 순간, 이 모든 신학적 모순과 쟁투는 흔적도 없이 공중분해됩니다.
이 난제의 종지부는 인간이 만든 1차원적 교리 장부가 아니라, 천재적인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와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가 영안을 열어 희미하게 궤를 짚어냈던 ‘시간을 초월한 창조주 하나님의 수직적 동시성 시각’을 성경의 문자로 완벽하게 입증해 낼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필자는 오늘, 이 영원한 시간관의 해독을 통해 예정론의 허구를 파쇄하고, 하나님의 심장을 움직이는 유일한 우주적 독립 주파수인 ‘인간의 자율의지로 드려지는 진짜 예배의 최고 존엄 가치’를 선포함으로써 본서 1부의 대단원을 영광스럽게 마감하겠습니다.
1. 차원적 시간의 가두리에 갇힌 역사적 신학의 맹점: 칼뱅과 아르미니우스의 치명적 착각
인류의 주류 신학자들이 빠졌던 가장 본질적인 결함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인간이 갇혀 살아가는 ‘과거 --> 현재 --> 미래’라는 3차원의 ‘선형적 시간 선로(Linear Timeline)’ 위에 똑같이 올려놓고 사법적 판결문을 주해했다는 점입니다.
칼뱅의 절대예정론의 모순: 칼뱅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기 전, ‘태초라는 과거의 어느 기점’에 누구는 천국으로, 누구는 지옥으로 갈지를 미리 컴퓨터 프로그래밍하듯 일방적으로 결정(이중예정)해 놓으셨다고 보았습니다. 이 가두리 속에서 인간의 자율의지는 가짜 연극이 되며, 지옥에 떨어질 악인들의 범죄 책임 역시 그들을 그렇게 예정하신 하나님께 전가되는 끔찍한 신성모독적 불법 충돌(해석 제4원칙 위반)이 일어납니다.
아르미니우스의 예지예정론의 모순: 이 독재적 프레임에 반발한 아르미니안들은 하나님이 타임라인의 미래를 초능력 돋보기로 ‘미리 내다보시고(예지)’, 그 인간이 미래의 어느 기점에 예수를 믿을 것을 확인하신 뒤 그 조건부로 구원을 ‘예정’하셨다는 예지예정론을 수립했습니다. 이는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전지전능성을 인간의 미래 행동에 종속시키는 치명적인 권세 박탈의 참사를 낳습니다.
이 두 진형의 싸움은 철저하게 “하나님도 인간처럼 시간의 흐름을 따라 행정 조치를 취하신다”는 거대한 시간적 착각의 매트릭스 위에서 벌어진 개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미리 정했느냐, 미래를 미리 보았느냐는 논쟁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의 우주적 본질을 모르는 소경들의 장부 정리에 불과했던 팩트입니다.
2. 시간을 창조하신 이의 수직적 동시성(The Eternal Now): 교리 전쟁을 잠재우는 통전적 시간관
성경해석 6원칙에 의거하여, 온 우주의 절대 재판장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공간을 어떻게 초월하여 직시하고 계시는지 그 무결한 영적 프로필을 원어적 팩트로 정렬하십시오. 하나님은 시간의 선로 위에 서서 흘러가는 시간을 기다리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간(Time)’이라는 가두리 자체를 물질과 함께 통째로 창조하신 시간 외적 주권자이십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베드로후서 3:8)
이 말씀은 비유나 문학적 과장이 아닙니다. 대우주 대법정의 엄밀한 시간 공식입니다. 인간은 1초라는 시간의 선로를 디뎌야만 다음 1초의 미래로 전진할 수 있는 징검다리 신세이지만,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시간이라는 기나긴 선로 전체를 위에서 단 한 눈에 내려다보시는 ‘수직적 영원한 현재(The Eternal Now)’의 영역에 계십니다.
인간의 역사라는 필름이 1장(창세기)부터 100장(요한계시록)까지 영화 릴처럼 돌아갈 때, 우리는 지금 50장의 장면에 갇혀 뒤의 51장을 보지 못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그 영화 필름 1장부터 100장 전체를 펼쳐놓고 모든 장면을 ‘동시(Simultaneously)’에 대치하여 직시하고 계시는 위격입니다.
이 통전적 관점으로 예정과 예지의 지문을 다시 사법적으로 재판하십시오. 성경이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선포한 장엄한 언약은, 과거의 어느 날 인형 뽑기 하듯 성도들을 찍어 눌렀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시간 밖의 영원 세계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타락도, 십자가의 대속도, 그리고 마지막 날 장민재라는 한 성도가 666 매트릭스를 거부하고 광야의 밀실에서 말씀의 절대 기준을 잡고 무릎 꿇어 예배하는 그 장엄한 승리의 현장 전체를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실사구시로 동시에 보고 계시면서 창세전의 시간에서의 생명책 기록을 동시에 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미리' 예정하거나 '미리' 내다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눈앞에는 모든 인간의 일생과 자율의지의 선택들이 단 하나의 파노라마로 동시 상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예정이란, 인간의 시간적 자유를 말살시키는 강제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시간 밖의 대법정에서 인간의 자율의지가 발산해 낸 모든 역사의 결론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인지하시고 공증해 두신 ‘영원한 주권적 작정’의 실상인 팩트입니다. 이 수직적 동시성의 시간관이 세워질 때, 칼뱅과 아르미니우스의 수백 년 쟁투는 그 즉시 사법적으로 종식령이 내려져 잠재워지는 것입니다.
3. 인간 자율의지(Free Will)의 최고 존엄 가치: 왜 창조주는 리스크를 감수하셨는가
그렇다면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의 타락과 인류의 에덴동산 반역이라는 가공할 우주적 리스크와 핏값을 감수하시면서까지, 인류에게 ‘자율의지’라는 이 위험천만한 절대 자유의 통로를 허락하셨을까요? 바로 이 대목이 본서 1부의 정점이자, 창조의 진짜 비밀이 풀리는 사법적 심장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 한마디로 온 우주의 별들을 정렬시키시며, 천만 천사들을 로봇처럼 조종하여 100%의 강제적 굴복과 찬양을 뜯어내실 수 있는 권능의 군주이십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단 한 가지, 당신의 권능의 힘으로도 ‘결코 강제로 가질 수 없는 단 하나의 영적 진주’가 있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형의 태엽을 감아 나오는 가짜 노래가 아닌, ‘피조물이 자신의 온전한 자유와 선택권을 가지고, 스스로의 자율의지로 선택하여 창조주를 향해 쏟아내는 진짜 사랑과 예배의 주파수’였습니다.
자율의지가 없는 찬양은 계산된 알고리즘의 기계음에 불과합니다. 진짜 사랑과 존경은, ‘배반할 수 있는 완벽한 자유와 능력이 책임감 있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반의 카드를 내 손으로 찢어버린 채 오직 창조주를 나의 유일한 선악의 절대 기준으로 인정하며 스스로 엎드리는 상태’에서만 비로소 합법적으로 성립되는 우주 최고의 존엄 가치인 팩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계들의 가짜 찬양 장부에 만족하실 수 없는 최고 격의 인격적 재판장이십니다. 그렇기에 사탄이 타락하여 반역의 매트릭스를 깔고, 선악과라는 거대한 시험대가 지상 평면에 발현되는 우주적 리스크를 기꺼이 통과시키신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과 세상의 풍요, 666 표의 압박이라는 가공할 ‘반역할 수 있는 환경의 가두리’가 사법적으로 깔려 있어야만, 그 한복판에서 성도가 내 자율의지의 운전대를 꺾어 여호와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사수하는 ‘예배의 참가치’가 천상 대법정 앞에 진짜 순금처럼 공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율의지는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들에게 부여하신 최고 존엄의 왕권적 성분인 것입니다.
4. 자율의지 안에서 발현되는 진짜 예배의 파괴력: 사탄의 매트릭스를 원자 단위로 분쇄하는 성도의 주권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본선 국면(제2부)으로 진입하기 전, 내 자율의지로 선택하여 드리는 이 예배가 영계의 법정에서 어떠한 핵폭탄급 사법적 청산 권세를 가졌는지 그 실사구시적 위력을 똑똑히 장착해야 합니다.
마지막 후 3년 반 마흔두 달의 암흑기가 도래하면, 사탄의 짐승 체제는 숫자의 가두리와 슈퍼마켓 결제망을 통해 인간의 생존권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옥죄어 들어올 것입니다. 짐승에게 절하고 표를 받으면 당장 도시 매트릭스 안에서 따뜻하고 안전한 의식주를 보장받는, 인간의 육체적 본능으로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사법적 외통수가 걸려듭니다.
바로 그 처절한 가두리 한복판에서, 대재판장의 친아들들이 발동하는 자율의지의 선택을 보십시오. 그들은 짐승이 던져주는 가짜 배급망의 단맛을 내 손으로 찢어버리고, 굶어 죽음과 단두대의 단죄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내 선악의 절대 기준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뿐이며, 나의 왕은 오직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다!”라며 광야의 밀실에서 목숨을 건 주권적 예배를 선택하여 쏘아 올립니다.
이 예배가 우주 대법정의 재판람 위에 등록되는 순간, 사탄이 인류 역사 6,000년 동안 구축해 놓았던 모든 합법적 소송장과 기만의 매트릭스는 단 한 방에 원자 단위로 공중분해당하게 됩니다. 사탄은 “인간들은 육체의 목숨과 돈의 가두리로 묶어버리면 결국 창조주를 배반하고 나를 숭배할 수밖에 없는 하찮은 흙덩어리들”이라고 대법정 앞에서 참소해 왔습니다(욥기 1~2장의 참소 주파수).
그러나 내 목숨을 대가로 지불하면서까지 자율의지로 어린 양을 선택하여 드리는 성도의 진짜 예배가 지상 평면 한복판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사탄의 이 거대한 참소 장부는 우주적인 가짜 불법 사기극임이 법정 선고로 확정 도장 찍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한계시록 12장 11절은 이 자율의지의 예배자들의 권능을 다음과 같이 장엄하게 공증합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들은 로봇이 아닙니다. 예정론의 인형들처럼 억지로 끌려간 자들이 아닙니다. 완벽한 자율의지를 가지고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말씀의 절대 기준을 사수한 최고 존엄의 승리자들입니다.
대재판장께서는 이 자율의지의 예배 주파수를 완성해 낸 아들들의 합법적인 승리 공증을 근거로 삼으사, 마침내 백마 탄 만왕의 왕의 군대를 출격시켜 사탄 용을 무저갱에 가두시고 지상 천년왕국의 왕권을 이 정예 예배자들에게 통째로 상속시켜 주시는 것입니다(계 20:4).
첫댓글
성경을 해석 하는 순간, 성경은 하나님 뜻이 아닌 성경을 해석한 인간 뜻이 됩니다
그 증거로 백인백색 모두 제각각 해석해놓고 자신 성경 해석만 맞다고 싸우잖아요
베드로후서 3 : 16<새번역>
바울이 보낸 모든 편지 가운데는. 알기 어려운 구절들이 더러 있습니다.. 무식하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다른 성경을 잘못 해석하듯이 그것도 잘못 해석해서 스스로
멸망을 부르고 있습니다?
고전1:21,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읍니다.이것이 하나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고전 2 : 11,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알지 못합니다?
잠언 30 : 6<공동번역>
하나님 말씀에 아무것도 더 보태지 마라. 거짓말쟁이라고 꾸지람을 들으리라?
요한 22 : 18
누구든 성경 말씀에 다른 것을 더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책에 기록된 재앙을
그에게 내릴 것입니다?
이사야 55 :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길은 너희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길은 너희길보다 높으며 내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은
기록된 말씀과 다른 해석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과 배치되는 해석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마귀로 부터 온 것임이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획 한 글자를 비틀어서 기록된 말씀을 왜곡 변개하기 때문에
사람이 눈치채기 어려우니-오죽하면 말씀이 기록된 말씀을 더하거나 빼면 저주가 될 것이라 할까요?-
성령의 사람이 바로 잡아 줄 때에 아멘 하는 자가 복되다 할 것입니다.
사실이면 증거가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crystal sea
예정론는 믿는 넘이 깨달으면 머해
예정되지 않으면 지옥갈 것을
못 깨달아도 에정되었으면 천국가고
예정론을 믿으면 예정론에 맞는 주장을 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