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며-
내가 가꾸는 꽃
이재부
봄에 피는 꽃은 모두 아름답다. 긴 겨울 동안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푸른
꿈을 꾸며 고통을 참아냈기 때문이리라. 개나리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진
달래, 목련꽃도 서들어 핀다. 나는 꽃을 바라보며 예쁘고, 향기롭다고 감
탄하며 살았다. 그것은 젊음이 꽃보다 아름다운 대학교에서 학생을 바라보며 멋있다
고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과 같은 것이다. 진실로 나와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는 꽃은
우리 집 좁은 정원에서 30년 가까이 불평 없이 나와 삶을 같이하는 모과 꽃과 화분에
서 피는 꽃들이다.
모과 꽃에 관심 두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으리라. 모과 꽃이 크고, 화려
해서 정이 든 것은 아니다. 은은한 분홍빛이 마음에 끌리어 아무 뜻 없이 사다가 심었
고, 살다보니 정이 들어 진한 사랑을 나눈다.
우연의 일치인가. 잘못 된 비유인지는 모르지만 모과 꽃과 아내가 닮아 있다는 생각
이 들었다. 만남의 인연이 그러하다. 묘목시장에서 이것저것 따져보고 사온 것이 아니
고, 학교 실습 육묘장(育苗場)에서 판매한다하기에 사다 심었고, 아내 역시 여기 저기
선보지 않고 운명인 듯 만났다.
내 마음의 움직임에서도 유사점이 있다. 둘 다 아기자기하게 애착을 가져본 일도 없
고, 그렇다고 뽑아버리거나, 헤어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서로 바라보고
관리하며 다듬어 주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들수록, 나무가 자랄수록 애착을 느끼며 의
존도가 높아진다.
꽃의 색깔 면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화려한 꾸밈없이 잎과 함께 피면서도 벌들이 많
이 모여드는 것을 보면 나누어 줄 꿀을 많이 준비하고 있는 것이리라. 주고 또 주고도
웃고 있는 모과 꽃과 자기보다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아내와 서로 닮아있다고 생
각했다. 해마다 껍질을 벗는 청결함, 큼직한 열매, 곱게 단풍드는 정결한 잎새는 내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묵묵히 서로의 삶을 지켜주며 바라보는 꽃! 가장 가까운데서 즐거움을 공유하는 꽃!
아내와 우리 집 모과 꽃을 화중지화(花中之花)라 생각하니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세상에는 예쁘고, 향기롭고, 특색 있게 빼어 난 꽃이 너무 많다. 그러나 그 것은 넌
지시 바라볼 뿐 내 꽃은 아니다. '남의 꽃 내 꽃이 어디 따로 있으리요. 바라보는 자
가 주인이요, 탐하는 자가 임자'라고 호방한 대장부가 꽃을 탐하는 논리를 펼친들 그
것이 진실이겠는가? 바라보는 꽃보다는 내가 가꾼 꽃에 더 진한 애착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리라.
꽃을 가꾸는 것과 가정을 돌보는 것과도 공통점이 있다. 진실로 사랑함은 생사(生
死)를 의지하는 것이다. 화려한 꽃 한 다발 사다 꽂아놓고 즐기다 버리는 것은 하룻밤
풋사랑과 같으리라. 자연 속에 피는 꽃만 바라보다 계절을 잃어버린다면 내 꽃이 만드
는 열매는 언제 열리고 사랑하겠는가? 꽃이나 사람이나 자연에 순응하며 꽃피우고 열
매 맺는 번식으로 종(種)을 이어간다. 꽃으로만 존재했다 사라지는 꽃은 슬픈 운명이
반짝이는 순간의 빛이다.
모과나무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만들어지는 작은 씨방의 자람을 바라보면서 윤회하
는 인생사를 발견한다. 그 속에 내가 있고 아내가 있으며 자식을 통해 영원한 꽃으로
이어지는 내 작은 깨달음이 세월과 함께 성숙하고 있다.
열매를 키우려고 꽃잎을 떨구는 저 모과나무도 버리고 얻는 아픔과 희열은 나와 같
으리라. 떨어진 꽃잎의 시든 미소에서 만삭이 된 딸의 힘들어하는 몸짓과 수척해진 얼
굴이 생각나 마음이 아프다.
내가 가꾸는 꽃 그 꽃이 내 꽃이다. 아내와 힘을 합하고 떨어져 사는 자식들이 방
문할 때 눈빛을 모아 칭송하며 기르는 꽃이 더욱 아름답다. 자식들 다 분가 독립시키
고 허전한 빈자리에도 꽃이 자라고 있다. 4철을 이동하며 가꾸는 화분의 꽃들이다. 생
명을 내 사랑에 의지하고 정직하게 피워내는 꽃 열매, 잎, 풍상을 이긴 듯한 가지.
그들은 나의 오랜 친구요, 자식들이 보내주던 미소를 그대로 닮아 있는 사랑 빛이다.
복숭아나무 분재는 더욱 내 시선을 끈다. 벌써 늘어진 가지에 꽃봉오리가 예쁘다.
화분에서 피는 쥐똥나무 꽃이나, 배나무 꽃도 예쁘고 향기롭지만 열매의 색깔, 크기,
모양 면에서 복숭아를 따르지 못한다. 복숭아는 여름 태양 빛을 모아 붉고 큼직한 아
름다운 미소로 우리가족을 기쁘게 하며, 혀끝까지 자극한다.
내가 기르는 작은 공간의 꽃들을 통해서 정을 나누고, 무한한 자연의 순리를 바라보
게 된다. 꽃을 기르며 신비한 화신(花神)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허욕, 번뇌의 망상이
사라지는 듯 가슴이 맑아진다.
4월은 꽃의 계절이요, 사랑의 계절이다. 온갖 모양의 식물들이 잔치를 벌이는 꽃들
의 축제를 바라보면서 나 꽃바람도 되고 싶고, 벌, 나비 눈빛도 닮고 싶어 화분을 정
리하며 봄빛이 곱게 물든 꽃을 바라본다. 꽃을 가꾸듯 인생을 가꾸며, 진실한 화향(花
香)을 즐기라는 꽃들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벌나비 춤판에서 꽃들과 마음을 섞고 있
다.
<2005.4.11>
첫댓글 온갖 모양의 식물들이 잔치를 벌이는 꽃들
의 축제를 바라보면서 나 꽃바람도 되고 싶고, 벌, 나비 눈빛도 닮고 싶어 화분을 정
리하며 봄빛이 곱게 물든 꽃을 바라본다. 꽃을 가꾸듯 인생을 가꾸며, 진실한 화향(花
香)을 즐기라는 꽃들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벌나비 춤판에서 꽃들과 마음을 섞고 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