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맞춰 환골탈태한 뱅앤올룹슨 튜 맨토니 CEO
들리는 것에만 집중…보이는 것에만 집중
고객의 소리 한 귀로 흘리지 않고…고객 외에는 한눈 팔지 않고
희소성만큼 중요한 럭셔리 브랜드(명품)의 조건은 불변성이다. 명품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변치 않는 전통에 대한 고객들의 사랑과 충성심이 명품을 만들기 때문에 시대가 바뀌어도 많은 사람들이 명품은 그대로라고 생각한다.
90년의 역사를 가진 홈엔터테인먼트 브랜드인 뱅앤올룹슨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뉴욕현대미술관이 이 회사 제품을 18개나 영구 소장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성 있는 브랜드가 예술성까지 인정받았으니 변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혁신적인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전 세계 음향 마니아들의 선망이 됐던 뱅앤올룹슨은 2000년 후반부터 매출과 이익이 꺾이기 시작한다. 2007년 40억9200만크로네(약 6381억원)에 달하던 매출은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아 27억9000만크로네(4351억원)로 급락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게 되면서 소비자들이 MP3나 DVD 레코더를 외면하고 글로벌 불황까지 겹치면서 럭셔리 AV시장이 침체된 탓이었다.
위기에 대처하는 뱅앤올룹슨의 행보는 예상보다 빨랐다. 일단 수익성이 나쁜 사업들은 대거 정리했다. 여기까지는 남들도 하던 그대로다. 뱅앤올룹슨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단순한 사업부문 몇 개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사의 주요 수익기반을 완전히 재정의하게 된다. 기존 사업과 시장, 생산방식을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시장과 고객을 택한 것이다.
먼저 뱅앤올룹슨은 중장년층이 집에서 모셔 놓는 비싼 음향기기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젊은층을 위한 서브브랜드를 만들고 이들이 이동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모바일 스피커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중후한 홈시어터를 만들던 뱅앤올룹슨에서 지금은 도시락 사이즈의 무선도킹 스피커까지 나온다. 자동차 역시 뱅앤올룹슨의 새로운 무대가 됐다. 2005년부터는 하이엔드 차량용 음향시스템 시장 개척에 나서 벤츠, BMW 같은 럭셔리 브랜드 차들에 탑재하기 시작했다. 소비시장의 축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브릭스(BRICs) 같은 개발도상국으로 옮겨갔다. 생산기지의 축도 이동시켰다. 덴마크에서 전량 수작업으로 생산한다는 원칙을 깨고 체코에 새로운 공장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기술과 디자인, 브랜드가치라는 핵심 역량은 그대로 지키고 있다.
그 결과, 뱅앤올룹슨은 10년 전과는 다르게 변했다. 디지털과 젊은 세대를 동시에 잡기 위한 서브브랜드 비앤오플레이(B&O Play)는 뱅앤올룹슨의 환골탈태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매일경제 MBA팀은 비앤오플레이를 론칭하며 뱅앤올룹슨 변화를 주도한 튜 맨토니 CEO를 통해 뱅앤올룹슨의 변화와 혁신 과정을 되짚어봤다. 다음은 맨토니 CEO와의 일문일답.
―뱅앤올룹슨이 최근 내놓은 브랜드나 제품들은 회사의 전략 변화를 짐작케 한다. 베오랩5 같은 홈시어터와 스피커가 주력 상품이지만 베오플레이 A8과 같은 소형 제품들도 내놓고 있다. 소형 가전 쪽으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이동하는 것인가.
▷보다 유연하고 트렌드에 잘 적응하는 능력은 최근 몇 년간 뱅앤올룹슨이 보여 준 역량이다. 2012년 출범한 비앤오플레이는 디지털, 모바일, 스마트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브랜드였다.
비앤오플레이나 베오랩은 기존의 뱅앤올룹슨 제품과 영역이나 타깃 연령층이 다르다. 전통적으로 뱅앤올룹슨은 연령과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홈시어터용으로 많이 찾았지만 이들만이 뱅앤올룹슨의 팬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도 뱅앤올룹슨의 뛰어난 음질과 독특한 디자인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다만 집에서가 아닌 실외에서라는 점이 차이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드셋과 블루투스 스피커를 핵심으로 하는 베오플레이 시리즈를 내놓았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뱅앤올룹슨은 전통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퀄리티와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디지털에서도 잘 적응하는 게 목표다.
물론 뱅앤올룹슨은 혁신, 디자인, 음향과 같은 핵심 경쟁력에 집중해 여전히 시장 선도자로서의 지위를 지켜 나가고 있다. 베오비전 아반트라는 TV는 수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뱅앤올룹슨의 소리가, 차별화된 음향기술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신제품이다. 우리가 여전히 가장 좋은 TV를 만들 수 있다는 DNA를 보여 줬다.
―비앤오플레이 제품은 젊은 세대들이 소비하기엔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성공을 거뒀다.
▷'베오플레이 A8' 제품은 우리가 비앤오플레이로 처음 출시한 제품인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베오플레이 A2'과 같은 경우는 뱅앤올룹슨의 90년 역사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팔렸다. 그건 우리의 강렬한 혁신과 유니크한 디자인에 젊은 층들이 화답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젊은 세대들도 퀄리티와 청각 경험을 가지면 가격과 타협하지 않는다. 뱅앤올룹슨는 그간 가지고 있던 강점을 디지털과 접목시켜 비앤오플레이를 내놨고 결국 디지털 시대에 잘 적응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냈다.
―홈AV 브랜드인 뱅앤올룹슨이 최근 확장한 영역 중 하나가 자동차 음향 시장인데 그 배경은.
▷이제 사람들은 집에서만 최상의 음향을 즐기려고 하지 않는다. 자동차에서도 그들의 수준 높은 귀를 만족시켜 줘야 한다. 오토모티브 산업은 뱅앤올룹슨의 현재와 미래에 아주 중요하다. 몇 년 안에 우리는 아우디나 BMW 같은 주요 브랜드 모두에 음향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미 경쟁자들은 많지만 우리의 혁신, 퀄리티와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는 항상 고객사들의 요구 수준을 맞춰 주고 있으며 때론 그들이 요구한 것 이상의 것들을 해낸다. 가령 우리 팀 안에서 음향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모여 사운드 튜닝에 수백 시간을 투자해 검증하는 것은 다른 브랜드들은 하지 않는 것들이다.
―몇 년간 주요 소비시장도 바뀌었다. 뱅앤올룹슨은 최근 유럽에서 점포 수를 줄이고 브릭스와 같은 신흥국엔 확장하고 있다. 유럽의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인가. 그리고 향후에도 이런 추세는 계속되리라 보는가.
▷뱅앤올룹슨이 성장한 발판은 유럽이지만 경제의 주도권이 이제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선 보다 유망한 지역으로 신속하게 움직이는 게 필요하다. 내가 2011년 뱅앤올룹슨에 합류했을 때부터 유럽 내에서의 지점 수를 줄이는 게 우리의 중요한 전략이었다. 많은 유럽 지점의 이익률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3년에 걸쳐 이 작업을 해 왔고 여기저기에 많은 지점을 보유하기보다는 유럽 중에서도 런던처럼 수익률이 높은 지역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브릭스 국가에는 더 많은 지점을 내는 게 맞다. 난 브릭스와 같은 개도국에서 무궁한 잠재력을 발견했다.
―뱅앤올룹슨이 시도한 주요한 변화 중 하나가 80년 넘게 고수하던 '메이드 인 덴마크' 원칙을 포기하고 체코 공장에서도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우린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는 다국적 회사라 생산비용을 감안한 유연한 생산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물론 퀄리티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다. 체코 공장은 뱅앤올룹슨 덴마크 본사와 완전히 결합되어 있다. 똑같은 기술수준이 요구되고 동일한 제품이 생산된다. 체코 공장으로 인한 이점은 많다. 더 유연하고 빠르게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나온 TV인 베오비전 아방트를 보면 체코 생산의 이점이 증명됐다고 자부한다.
―뱅앤올룹슨의 최근 전략 '더 간결하게, 빠르게, 강하게(Leaner, Faster and Stronger)'도 변화의 물결과 관련이 있는가.
▷그렇다. 뱅앤올룹슨은 단순히 고가만을 추구하는 럭셔리 브랜드는 아니다. 우리는 조직 내 효율성을 추구하고 가용 가능한 자원을 가장 최적화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빨리 우리 고객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게 우리 목표다. 우리의 '회복력(resilience)'은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우리의 차별점이다. 럭셔리 음향 브랜드들이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퇴장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여전히 시장에서 저력을 보여 주고 있다. 뱅앤올룹슨처럼 90년 가는 기술 브랜드가 흔한 건 아니다.
―뱅앤올룹슨도 과거 많은 포트폴리오를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을 거의 정리하고 최근엔 '음질'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음향이란 주력 경쟁력에만 집중하는 건 1925년 이후 럭셔리 음향 브랜드로 포지션되어온 우리의 브랜드 철학을 지키는 것이다. 뱅앤올룹슨은 유니크한 기술력을 지닌 세계적 수준의 브랜드이며 항상 더 높은 혁신을 추구한다. 이게 소비자들이 우리의 음질과 화질, 장인정신과 선구자적인 디자인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과거 뱅앤올룹슨 역시 MP3플레이어, 휴대폰, 하드디스크 레코더 같은 수많은 사업군을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그 부문들은 오히려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약화시켰었다. 핵심에만 집중함으로써 철학과 스토리를 살리고 있다.
―디자인 역시 기술력과 함께 뱅앤올룹슨이 내세우는 양대축이다. 항상 독특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을 계속 내놓는 비결은 뭔가.
▷디자인을 얻는 방식은 뱅앤올룹슨 내부의 수많은 변화에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 회사에서 최고 권위의 자리는 CEO가 아닌 디자이너의 몫이며 제품 개발 초기부터 디자이너가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 결정권을 가진다.
특히 우린 내부에서만 디자인 경쟁력을 키우지 않는다. 우리는 외부의 많은 전문가와 디자이너에게 신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독특한 콘셉트를 개발한다. 아이디어랜드(Idea Land)라는 디자인 콘셉트 개발 부서는 외부 디자이너와 뱅앤올룹슨의 기술자들 300여 명이 만나 아이디어를 나누는 회의 장소다.
한 조직에서 계속 있었던 사람이 매일 다른 아이디어를 내는 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조직 바깥 사람들과 협력한다. 뱅앤올룹슨은 매우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항상 새롭게 변신하고 우릴 자극시키고 혁신을 추구하도록 압력을 주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뱅앤올룹슨의 디자인을 잘 보여 주는 제품은 무엇인가.
▷베오비전 아방트 TV다. 기존에 뱅앤올룹슨에서 선보였던 다른 TV들과는 확실히 다른 외관을 자랑하면서 삼성이나 LG와는 디자인 면에서도 확연히 차별점을 보인다.
베오비전 아방트의 7개의 라우드 스피커는 전원이 꺼질 땐 TV 안에 숨어 있다가, 사용자가 전원버튼을 누르면 마법처럼 TV 아래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또한 90도까지 스크린을 회전시키는 전동 스탠드를 아름답게 구현하기 위해 뱅앤올룹슨 디자이너들은 뒷면에도 특별히 신경 썼다. 두 개의 알루미늄 백 플레이트들이 모든 소켓과 연결단자뿐만 아니라 외장 베이스 스피커까지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숨겨 TV를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완벽하게 만들었다.
―뱅앤올룹슨의 팬들은 많지만 이들조차 뱅앤올룹슨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푸념을 한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제품을 출시할 계획은 있는가.
▷뱅앤올룹슨은 럭셔리 제품이기 때문에 평균적 제품보다는 더 비싼 가격대의 제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럭셔리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브랜드 가치이기도 하다. 대중 제품은 아니지만 다른 럭셔리 제품보다는 낮은, 그러면서도 성능은 더 높은 제품을 내놓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사물인터넷이 최근 IT에선 화제가 되고 있다. 뱅앤올룹슨은 사물인터넷 사업에 진출할 계획이 있는가.
▷스마트폰에 음향기구와 홈시어터를 연결시키는 방식으로도 사물인터넷을 구현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제품을 개발해 출시하고 있으며 보다 더 감각적인 경험을 위해 베오사운드 모먼트(BeoSound Moment) 같은 시스템을 내놓고 있다. 이 사운드 시스템은 목재의 터치스크린 컨트롤을 갖췄으며 사용자 기분이나 음악감성 습관을 세심하게 고려해 음악을 틀어준다. 그리고 베오링크 게이트웨이(BeoLink Gateway)를 가동시켜 청취자가 집 안에서 어떤 방으로 옮기든 무선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다.
―중국산 제품이 밀려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한국에선 고가의 뱅앤올룹슨 제품이 잘 팔리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한국 소비자들은 혁신과 디자인에 대해 매우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데 그 두 가지는 뱅앤올룹슨이 내세운 상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퀄리티를 따지는 소비자들은 우리 제품을 사는 것이 현명한 소비를 한다고 생각한다. 뱅앤올룹슨을 구매할 때 브랜드 유산과 럭셔리 기술의 상징을 보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He is…
튜 맨토니(Tue Mantoni)는 맥킨지컨설팅 회사와 영국 모터사이클 브랜드 트라이엄프모터사이클스에서 재직한 후 36세인 2011년 뱅앤올룹슨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했다. CEO 부임 전에도 뱅앤올룹슨 덴마크 이사회의 전 멤버로서, 브랜드 고유의 가치와 근원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