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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런 봄꽃들이 향기롭다. 따뜻해진 봄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따스한 햇살과 살랑이는 공기마저 완연한 봄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새 4주차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준비하는 워밍업은 지난 셈이다. 서로의 어색함은 익숙함으로 긴장감은 편안함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학기 초에는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전학을 문의하는 학부모 상담전화가 많다. 소중한 자녀가 학교 급식도 먹지 않고 집에 돌아와 펑펑 울기만 한다면 어느 부모가 전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자녀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은 매한가지다. 하지만 새로 전학을 간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잘 지낸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또 다른 이유와 다른 상황이 펼쳐져 부적응을 반복한다면 분명 자녀는 학교생활과 교우관계에 있어 취약성이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러한 취약성은 만나는 환경에 따라 더 발현되기도 하는데 이를 심리학에서는 취약성 스트레스 모델이라 한다. 취약성은 우리가 타고난 유전적, 생물학적, 심리적 특성을 말한다. 우울이나 불안에 더 취약한 유전적 소인을 타고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거부 경험이나 학대와 같은 부정적 경험은 성장하면서 심리적 취약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즉 타고난 개인의 내적 취약성은 힘들고 어려운 스트레스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타고난 취약성이 있더라도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스트레스에 놓이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강도와 반응이 다른 이유는 취약성이 각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이라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짝꿍인 여자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우리 아이 때문에 자녀가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라고 먼저 예의를 갖춰 물어봐 주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하면서 ‘혹시 우리 아이가 짝꿍을 괴롭히나요?’ 라는 말을 자동적으로 되물었다. 사실은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없는데 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를 한참을 털어놓았다. 다 듣고 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짝꿍 여자아이는 조용히 쉬고 싶은데 우리 아이는 친구들로 둘러싸여 시끌시끌하다는 거였다. 심지어는 다른 반에서도 아이 자리로 찾아오는 친구들 때문에 이런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힘들고 지친다고 했다. 얌전하고 조용한 여자 아이 자매만 키우는 가정이라 목소리가 커지고 항상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수업 시간 이외에는 자리에 있지 말고 복도나 운동장으로 나가도록 일러두었다. 이후 친구들은 운동장으로 우르르 몰려다녔다.
짝꿍 여자아이가 고스란히 나의 어린 시절로 투영되었다. 부모님은 싸움을 한 번도 안 하실 정도로 아주 다정한 부부셨다. 아버지는 조용하시면서 다정하신 성품에 큰 소리를 내지 않으시는 마음이 선한 분이시고 어머니는 자식 넷을 부지런히 키우시면서도 합리적인 면에 많으신 소녀 감성을 가진 분이시다. 온화한 가정문화에서 자랐기에 나는 말수가 적었고 얌전하고 차분하였다. 하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건장한 남편을 만났으니 자녀들도 아버지 성향을 닮아갔다. 남편은 큰 목소리로 오가는 대화가 많은 가정에서 자랐다. 특히 음식을 앞에 두고는 대화가 더 많았다. 심지어 고깃집에서 관심 주제로 남편과 아들이 서로 대화를 하다가 주인으로부터 시끄럽다는 주의를 받고 쫓겨나다시피 해서 식당 밖으로 나와 서로의 눈을 보고 한참을 웃을 정도로 시끌벅적함은 우리 가정의 문화가 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모임이 많은 남편과 함께 수반되는 많은 통화들로 때로는 온 집안이 그리고 이동하는 자동차 안이 전화 목소리로 가득 찬 순간도 있었다. 이 바쁜 상황을 지켜보는 것 자체만으로 힘겨울 때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짝꿍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백배 공감했다.
짝꿍은 상급 학교에 진학하고 사춘기가 오면서부터 학교에 나오질 못했다. 친구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꼭 자기를 향해 조롱하는 것만 같고 비웃는다는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학교정문까지 왔다가 교실에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아 결국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늘로 날아갈 듯이 기쁘고 좋은 일이 있을 때 느낀 감정을 마음속에 저축해 보자. 나중에 힘든 일이 닦쳐오면 마음의 저금통에서 꺼내 쓰도록. 그래서 그 순간이 덜 아프도록. 노후를 위해 몸 근육을 키워놓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도 필요한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