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은
텅 빈 저너머의 공간으로 가버린 아버지의 산소를 손질하려고 채비를 차렸다.
“ 산에 가시겠어요?"
" 그래, 가자."
노모는 지난해 시동생이 만들어 주었다는 지팡이를 손에 쥐고 따라 나셨다.
화망마을 서낭댕이 앞산*을 쉬엄쉬엄 올라가도 연세에 부치시는지 가슴으로 숨을 몰아쉬는 늙은 어머니의 시근덕 거리는 숨소리가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려 아들의 귀청을 때렸다.
이제 이 걸음을 얼마나 더 하시려는지. 남에게 빌려준 산비탈 아래의 밭에서 농부 한 사람이 쇠스랑으로 밭두덕을 꾸미고 있었다.
" 어머니, 황ㅇㅇ가 인사하네요.”
" 애비야, 안 들리고 안 보이는구나.”
내가 대신 크게 황 씨에게 회답을 했다.
서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산 아래에 海松이 크게 자라 시야를 가렸다. 산소 주변에 씨앗이 떨어져서 새순이 나는 소나무 참나무 상수리나무 진달래 등의 어린 묘목은 손으로 잡아당겨서 뽑아냈다. 듬직한 나무뿌리는 삽으로 힘겹게 파냈다.
나무뿌리는 초기에 잡아야지 조금만 방심하면 뿌리가 굵어지고 땅속으로 곤장박히면 나중에 처단하기가 매우 힘이 든다. 그래서 수시로 산소에 와서 나무뿌리를 잡아내야 했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 내 자리는 여기이지.”
“ 예. 그래요. 아버지의 오른편에 잡아 드릴게요.”
“ 남자가 팔베개를 해 주는 방향으로 묘를 써야 하는데…”
“ 그래요. 그리고 삼십년 전에 죽은 동생(작은 쌍둥이)의 묘도 이장해서 어머니 곁에 쓸게요.”
“ 그래라. 먼 산에 있으면 자손이 없는 그 아이 무덤을 누가 손을 보랴. 그러려면 돈이 좀 들 터인데…”
“ 돈 걱정은 안 해도 되요. 요즘은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면 인건비가 절약되고, 또 동생 무덤가의 상석 망두석 등은 그냥 그 자리에 묻어두고, 새로 해 주는 편이 돈이 덜 들어요.”
어머니는 고사리를 꺾고 나는 삽으로 나무의 잔뿌리를 캐 냈다.
서해안 고속도로부지로 뭉텅 잘려나간 현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한란(보춘화) 몇 뿌리가 눈에 띄었다.
“ 애비야, 캐서 가져 가렴.”
“ 아녀요. 산속에서 그냥 자라나게 놔두어요. 집에도 제법 있지 않아요?”
“ 얼마 전에 남들이 달라기에 주었더니 욕심껏 캐 가서 서운하다. 그러고도 나중에 또 달라기에 거절했다.”
“ 그래도 주어요.”
집에 와서 확인한 즉 화단에서 캐 간 것은 이해를 하되 남이 공들여 키워놓은 한 뭉텅이의 화분은 아예 사라졌다. 내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에 누군가가 슬쩍 짚어 가져간 모양이다. 탓하여 무엇하랴. 풀을 번식해서 남에게 주는 것도 하나의 積德일까?
산에는 생명이 다시 움트는데 이제는 시야가 흐리며 들리지도 않으며 보행조차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를 가슴에 묻어야 할 세월인 것 같다. 노모의 한줌도 안될 몸무게마저 바람이 되어 훌쩍 날라가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예견이 점점 가시가 되어 아들의 가슴을 져민다.
2000. 5. 1. 바람의 아들
* 서낭댕이 앞산 : 충남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화망마을 서낭댕이 남쪽(산 번지는 죽청리)
후기 :
이 일기를 쓴 지도 벌써 23년이 더 지났다.
오늘 여기 ‘삶방’에 올리는 이유는 있다.
최근에 한 일을 글로 써서 남기면 훗날 소중한 자료가 된다. 기억이 나기에....
평소에 글을 써서 보관하자는 뜻이다.
위 글에서 나오는 내 동생(나는 쌍둥이형)의 무덤은 작은아버지 소유의 산(신안재)에 있었으나 2016년에 내가 파묘하여 아버지 산소(죽청리 소재) 아래로 이장했다.
내 어머니는 만나이 95살을 맞이한 지 며칠 뒤인 2015. 2. 25.에 저머너의 세상으로 여행 떠나셨다.
슬프게 헤어졌던 식구들을 수십 년 만에 만나셨으리라.
서너 살 때 떡 먹다가 목에 걸려 죽었다는 큰딸, 서너 살 때 옴병에 걸려 급사했다는 큰아들, 대학교 여름방학 때 시골집에 왔다가 뱀 물려 죽은 작은 쌍둥이(만나이 20살), 집나이 예순여섯 살에 돌아가신 남편(내 아버지)를 저승에서 만났으리라.
다음 주 월요일인 2023. 6. 19.
아내와 함께 내 고향에 내려가서 며칠간 쉬면서 위 산소에 올라가야겠다.
산말랭이 바로 아래에 있는 아버지/어머니 합장 무덤 앞에 서서 서쪽을 바라보면 서해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남녘으로는 충남 서천 춘장대해수욕장, 서녘으로는 외연도로 가는 섬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북녘으로는 대천해수욕장 등이 멀리 내려다보인다.
갯바람이 불어 넘어오겠지.
2023. 6. 15. 목요일. 바람의 아들, 최윤환
첫댓글 나이가 들어사며는 추억
그리움을 먹고 산다 하더군요.
비록 가슴이 아린 추억이지만
인제 그 아픈 사연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그리움 으로
바뀌게 되는거 같습니다.
물흐르듯 잔잔히 써내려간
일기가 한편의 작품을 보는거
같습니다. 잘보았구요.
일등으로 도장찍구 갑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나이를 들어 살며는 추억과 그리움을 먹고 산다'는 댓글에 저는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또한세월이 흐르면 아픈 사연도 변해서 이제는 그리움으로 바뀐다는 말에 저는 동감합니다.
최 선상님의 어머니 이야기에 눈물납니다.
내 어머니, 장례 치르던 그 날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37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는데도.......
어머니 생각 ․ 1
-한 많은 인고忍苦의 세월 일흔일곱 해
----------------- 박 민 순
뎅 뎅, 벽시계
두 번을 치던 깊은 밤
1987년 9월 스무이렛날
뒤척뒤척 악몽에 시달릴 때
요란스레 울리는 전화벨 소리
가슴 철렁하는 불길한 예감
가물가물 들리는
아아, 어머니 운명하셨다는
통한의 소식
아, 이럴 수가?
가족들의 정성 어린 *약석藥石도
형수와 아내의 헌신적 병구완도
무서운 암에는 어쩔 수 없는가
살을 깎는 그 아픔 견디시며
암 투병 1년여
아예 고향을 사양하시더니
마지막 머문 고향 집 사흘
임종을 못 지킨
이 천추의 불효
달려가 꿇어앉아
가슴이 터질 듯이 불러보아도
울다 울다 목이 메어도
풀 길 없는 이 절절한 마음
요령 소리 따라서
꽃상여에 실려 떠나시는 길
“세 분 어머니 중, 가장 어진 어머니! 왜 가시는가요?”
어깨를 들먹이며 황소처럼 울던 사촌 형
서낭댕이골 밭머리
박 시인님의 어머니도 일찍 세상을 뜨셨군요.
상여꾼들이 메는 꽃가마에 실려서 흔들리는 쇠종소리(요령소리)에 박 시인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도 울음을 삼켰군요.
한 분뿐인 엄니....
먼저 가신 아버지 곁으로 가시는
마지막 하관의 오열
때마침 퍼붓던 소낙비 맞으면서
하늘나라 가신 어머니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었던 인고의 시간
부귀富貴도 모르고
영화榮華도 멀었던
일에 묻혀 사신 일흔일곱 해
어머니! 어머니!
아무리 불러 보아도
세상이 골백번 바뀌어도
영영 다시 뵐 수 없는 어머니
이 불효자 가슴 찢으며
밤새워 울어도
땅을 치며 통곡하고
발을 굴러 외쳐도
오시지 않을 사랑했던 어머니
내 어머니
아아, 우리 어머니!
* 약석 : 약과 침이라는 뜻으로, 여러 가지 약을 통틀어 이르는 말.
박 시인님의 경우에도 그랬군요.
하관할 때 비가 쏟아져 내리셨군요.
한번 떠나면 그 뒤로는 영원히 만날 수도 없는 이별....
나이 많아지는 지금에는 그 엄니에 대한 이런저런 기억과 추억이 자꾸만 흐려지대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군요.
박 시인님.
휴일오후엔 저도 부모님 산소에 가봐야 겠습니다
멧돼지가 또 일구었는지.......
목요일 아침 출석 합니다
모두에게 행복한날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님의 댓글에서는 산소에 무시무시한 멧돼지가 나와서 묘역 근처를 파헤치는군요
제 어머니를 모신 집단산소에도 멧돼지가 들쑨 흔적이 여실이 있지요.
제가 발로 쿡쿡 눌르며, 삽으로 흙을 퍼 덮어서... 잔디가 살아야 하니까요.
며칠 뒤 저는 시골에 내려가서 마을 앞산에 있는 산소에 들러야겠습니다.
삽, 호미, 낫 등을 들고서... 지금쯤 풀이 무척이나 자랐을 겁니다. 묘역주변에 둥글레 등 화초도 심었지요.
둥글레는 뿌리를 캐서 나물로 반찬하고요.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이 되셨지요
다음주 고향 가셔서 흙냄새도 많이 맡고 오세요
저도 어릴적 생각이 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을 손 꼽으면 '어머니'입니다. 그 어떤 분보다도 나한테는 소중한 분이지요.
아버지는 두번째이고요.
님도 어린시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글로 써서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6월 6일은 저의 친정 어머님 14주기 기일이었습니다.
어머니 생각만 하면 늘 가슴이 아프고 먹먹 해 집니다.
좀 더 잘 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늘 따르기 때문입니다.
전 삼남매 중 큰 딸이자 고명 딸이었었는데 이상하게도 어머니와 그리 살갑게 지내지 못했었는데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제 어머니 께서는 제 곁에 계시지 않으니 말 입니다.
울삶방 님들 모두모두 일주일 중 가장 힘겹게 느껴진 다는 목요일인 오늘 평소보다 한 번 더 웃으시는 즐거운 하루들 되시기 바랍니다. ^^~
댓글 고맙습니다.
돌아가신 뒤에서야 후회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그 당시 왜 한번이라도 더 찿아뵙지 못했을까? 그 당시 왜 고분고분하지 못했을까? 등등의 이유로 후회하지요.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위 사진 화분 속의 식물이 예쁘군요.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글
잘 감상했습니다
목요일 아침은 화창합니다
오늘도 계획하시는일 행복하시고
편안하시며 모든소망 이루시길 바랍니다.
삶의방 출석 다녀갑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오늘은 2023. 6. 15. 아침해가 빨근 떠서 하늘이 높고 푸르군요.
산천의 모든 동식물들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겠군요.
저는 지난 봄철에 꽃가루알레르기가 심해서 병원에 여러 차례 다니며, 치료받았지요.
어쩌다보니까 봄은 지나가고 초여름인 지금... 고향에 내려가지 못해서... 제 아내도 아파서 ... 최근에서야 아내가
'함께 고향에 다녀옵시다'라고 대답하대요. 그래서 다음 주 월요일에 자동차를 이끌고 고향에 내려가려고요.
선산에 들르고.,.... 어머니 무덤 앞에서 절을 올려야겠습니다.
어머님과의
산소로 가시는길,
두분이 같이 가시면서
대화하시는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효자이십니다..
글을 읽으면서
친정부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살아계실적에
잘 해 드렸어야
했는데요..
댓글 고맙습니다.
제 어머니의 일생은 무척이나 고단했지요.
아마도 소설을 쓰면 장편소설의 소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눈물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차 멀리를 하도 심하게 하셔서... 하나뿐인 아들인 저와 함께 서울생활을 하지 못했지요.
자동차를 타면 심하게 구역질을 하고, 서울의 기름냄새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시골집에서 사셨지요. 혼자서 혼자서.. 텃밭 세 자리에서 호미로 밭 매며 세월을 보내셨지요.
제가 어린시절 객지로 전학갔고.... 퇴직한 뒤에서야 내려간 고향. 어머니는 아흔살 극노인이 되셨대요.
치매기 진행 중인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몇해 꿈처럼 살았지요.
고인이 되신 가족분들 회상에 하테스도 벌초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불러 왔네요. 퇴원후 해야겠다고 벼뤘건만 부실한 건강 때문에 미루었던 일을 마치려 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산에 올라서 풀을 깎고, 묘역을 살피는 것도 큰 효도이겠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고향에 들르면 으례껏 산소에 올라가서 절을 올리지요.
산에 오를 때에는 삽 톱 호미 등 농연장을 들고서... 산소 묘역을 다듬지요.
멀리 산 아래로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어머니의 친정이었던 남포면 용머리 갯마을도 멀리서 내려다보지요.
손을 뻗치면 닿을 것 같고.... 대천해수욕장 가는 길목에 있으니까요.
부모님의 공경하고 조상을 모시는 최윤환님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효도 출석부 추천 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하나뿐인 어머니 아버지이니까요.
자신의 모든 것을 자식들한테 더 주려고 애를 쓰셨던 분들이니까요.
그냥 생활일기입니다.
다다닥하면서 빠르게 컴퓨터 자판기를 눌러서 쓰는 일기이지요.
글로 남기면 훗날에는 소중한 기억과 추억 등이 다시 떠오르던군요.
집안 내력을 자세히 적어 주시어,
찡한 슬픔으로 읽어 집니다.
집안 교통 정리 하면서 살다가,
결국 자신의 삶 교통 정리 시간도 닥쳐 오겠지요.
누구나. !
기록하며 , 들추어 보고 추억 하며,
오늘도 생각에 많이 잠기실 듯 합니다.
더운 날씨에 출석 부 작성 애 쓰셨습니다.
시원하게 머리도 식히시고 좋은 시간 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부모님께 참 편안한 아드님이셨군요
편안함이 제일 큰 효도인것 같습니다
출석 하고 갑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평생에 자식 셋을 잃어버렸지요.
큰딸, 큰아들은 겨우 세 살 무렵에 갑자기 죽고... 작은 쌍둥이아들은 뱀 물려서 다음날 죽고....
가장 못난 아들이라는 저 혼자서...
저는 정년퇴직한 뒤에서야 어머니와 둘이서 살기 시작했지요. 아쉽게도 치매진행 중.
어머니를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중환자시를 거쳐서 보령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시킨 뒤...
저는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어머니 곁에 머물렀지요. 하루 면회 4회... 그 면회시간에 엄니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병원 중환자 보호실에서 먹고 자고 ... 얼마나 미움을 받았을까요? 그래도 저를 착하게 보셨는지 병원 식당 아주머니들은 저한테 밥 공짜로 슬쩍 슬쩍 넣어주시대요.
지금은 서해안 산말랭이에 누워 계시지요. 아마도 저세상에서 어머니의 엄니와 아버지 형제자매들을 만나셨고, 또한 당신이 배 아파 낳았으나 일찍 죽은 자식들을 만나셨겠지요.
어머니..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 엄니와 헤어져서 객지로 전학을 갔기에.... 저한테는 많은 글감이지요.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 생각 나는 것은 어쩔수 없나봅니다~
먼 베트남에서 흔적 남깁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먼먼 나라인 베트남에도 국내 카페에 오른 글을 읽고, 또 댓글을 달아주셨군요.
저는 직장생활하면서 전산개발 사업에 3차레 개발팀장을 역임했지요.
컴퓨터 초창기이기에....
저는 한번도 베트남에 가 본 적이 없지요. 제 고교동창생들 몇몇은 월남전에 참전했고, 제 아주 가까운 친척분들도 월남전에 참가했고....
이국인 베트남의 이모저모가 궁금합니다.
님의 글을 기다리겠습니다.
네 고향 생각이 납니다.
고향...
일전 제 아내와 은근히 다툼했지요.
아내는 고향 재산(땅)을 처분하자고 강요하대요.
제 자식들은 아비의 고향에 내려가 살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저는.... 제 조상대대로 살아내려오는 터전이기에 선산도 있고, 시골집도 있고, 집을 둘러싼 텃밭도 있기에....
고향....
비록 몸은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늘 고향에 내려가 있지요.
10여대의 조상 무덤이 줄줄이 이어지고(저는 종가 종손).
마음의 고향이지요.
어머니
어머니...
오늘도
변함없이 어머니가 그리운 날
출석합니다
제 어머니는 서러움이 많은 아이, 계집아이, 새댁, 어머니, 할머니였지요.
지금은 저너머의 세상으로 여행떠나셨으니 그곳에서 어머니의 옛 사람들 만나시겠지요.
지구에 있는 아들인 저를 이따금 생각하시겠지요.
효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어쩌다보니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꿈속에서나 뵈었으면 싶은데도 꿈속조차도 나타나지 않으시대요.
부모님의 사모곡은 자식의 나이와 상관없이 이어져 오는군요 출석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제 어머니...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지요.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작은 재산을 이뤘지요. 제가 사는 서울 잠실아파트도 어머니한테 재산상속 받았지요.]
무학의 시골 아주머니/할머니.... 자식들은 공부시킨다고 객지로 보내고.. 당신은 혼자서 시골집을 지켰지요.
아들이 하나뿐인 저는 공부한다는 핑계로, 직장다닌다는 구실로 대전과 서울에서 살았지요.
정년퇴직한 뒤에서야 제가 시골 내려가니 그 엄니 집나이 아흔살. 치매기가 진행 중이었지요.
퇴직한 뒤에서야 어머니와 둘이서 몇해 살았던 것이 꿈만 같지요.
제가 어떤 월간문학지에 글 올릴 때에는 어머니 이야기만 올리지요.
당분간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저한테는 한 분뿐인 어머니이니까요.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어머니'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저한테는 젖 물려서, 암죽을 으깨어서 저를 먹여서 키웠지요.
키 작은 엄니가 쌍둥이를 키우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한국전쟁 이전에 태어난 쌍둥이형제... 제가 형. 동생은대학시절 여름방학 때 시골집에 왔다가 뱀 물려서 다음날 죽었으니...
작가 아들을 두어
어머니의 자취를 이렇게 글로 남기시는군요.
퇴직하시고 어머니돌아가실 때 까지 서해안이 내려다보이는
시골마을에서 모자가
함께 사셨군요.
가끔 인간극장에서나
볼 수 있는 효자 효녀들의 모습인데 최윤환님도 효자셨군요.
댓글 고맙습니다.
베리꽃님.
저는 효자가 아니지요.
엄니와 이따금 싸우기도 했거든요.
치매 걸려서.. 당신 뜻대로 안 되면 엄니는 화를 내시고, 성깔 급한 나도 화를 내고...
엄니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임종 끝 무렵에는 뇌사상태로 한달 반이 넘도록...
그런 엄니라도 바라보려고, 하루 4회 면회하려고 병원 안에서만 머물러서 맴을 돌았지요.
시골집에 다녀오지도 못하는 제 속옷은 어떻게?
그거 환자보호실 화장실 세면대에서 주물럭 주물럭거려서 빨아서 방안에 널고.... 다른 보호자 분한테서 미움을 받고....
한국전쟁 이전에 태어난 쌍둥이를 낳아서 키웠던 엄니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고.
.. 엄니 인생 말년을 제가 엄니한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병원에 장기간 모셨다는 게 그나마 다행.
불효자였던 제가 이렇게 엉터리 글을 써서 독자/카페 회원을 속이는가 봅니다.
위 글 더 다듬어서 월간문학지에 올려야겠습니다.
베리꽃 김정미 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어머니,귀한 어머니 따스한 볕과 시원한 바닷바람에 평온하소서......
댓글 고맙습니다.
어머니
정말로 고마운 분이지요.
산소 ᆢ
우리 정서 에는 참으로 좋은 모습 조상들 섬김이죠!
그 정성들이 후대에 짐이 될것이 분명한지라ᆢ
우린 장손이니 선산에 부모님 산소를 정리를 하려다
사촌들 만류에 다시 합장으로 산소 주변 정리를 했지요
기일도 올해로 집에서 지내는 고마운 올케 짐도 덜어 줄겸 좋을때 정리도 할겸
내년부턴 산소에서 간소히 지내기로 했지요
산소 기일 가족들 모이는 시간 장소 이면서 다툼으로 이어질수도 있는 요인이 되는듯 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장손.... 예전에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을 겁니다.
지금은 많이도 간소화되었기에 장손네 식구들은... 그래도 짐이 되겠지요.
앞으로는 더욱 간소화해서...
저도 그렇게 했지요.
5대조부모, 고조부모, 증조부모 제사를 시향으로 돌렸고,
조부모, 부모의 제사를 지냈는데 올해부터는 조모의 제사를 생략해서 조부의 제삿날에 함께 지내는 것으로 간소화했지요.
제수물도 크게 줄여서.. 약식으로 진열하지요.
앞으로는 더욱 줄여야겠습니다.
산소 묘역도 줄이고, 봉분도 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