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양강도 여성 전화 인터뷰> "늙은이들은 거의 다 죽은 거 같습니다" 2024년 봄, 북한 내부는 어떤 상황인가/"일할 사람이 없는 집이나 혼자 사는 집, 환자가 있는 집은 다 꼬제비 수준입니다." 전성준·강비원(아시아프레스)
해마다 봄이면 마음 졸인다. 춘궁기를 맞은 북한 주민에게 또 불상사가 생기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 때문이다. 2024년 봄,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지난 4월 말 양강도 현지의 여성과 전화로 인터뷰한 내용을 2회에 걸쳐 보고한다. (1) 누가, 왜 굶주리는가? ◆2023년 보릿고개 때 다수 사망 전화 인터뷰한 사람은 양강도에 사는 육아 중인 여성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중국 제품을 취급하는 장사를 혼자 했었는데, 당국의 통제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어 가게를 접었다. 통화는 중국 휴대폰을 사용했다. 북한 당국의 전파탐지나 도청을 경계해, 몇 분마다 한 번씩 통화를 중단하고 시간을 두고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 코로나 때 북한의 상황이 많이 안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코로나에 걸려서 죽은 사람보다 봉쇄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돈도 다 떨어지고, 개인 돈벌이 아예 안 되니까 작년(2023년) 보릿고개 때 많이 죽었습니다.” ※ 보릿고개 : 지난해 농사한 식량이 다 떨어지고 아직 보리가 채 여물지 않은 5~6월의 춘궁기를 말한다. ――거주하는 지역을 기준으로 대략 몇 퍼센트나 죽었다고 생각하나요? “몇 퍼센트인지는 모르겠고, 지난해 5월에만 보통 한 동네에서 서너 명은 기본으로 죽은 것 같습니다. 그때 죽지 않은 사람들도 이래저래 통제만 하고 먹을 것도 안 주니까, 지금도 살아 있는 게 다들 용해요. 지금 하루 한 끼도 겨우 먹는 사람들이 많고, 못 먹어서 부종이 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재난의 원인은 당국의 통제강화 ――주로 어떤 사람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나요? “작년에는 량곡판매소도 제대로 (운영이) 잘 안되고, 유통도 차단하고 하니까, 있는 거 다 때려먹은 후에 밑천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먹을 게 없어지니까, 그러면서 영양이 약해지고, 설사나 감기 같은 별 거 아닌 병에도 죽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늙은이들은 거의 다 죽은 거 같습니다(많이 죽었다는 뜻). 조금 아픈 사람도 약을 못 쓰니까, 또 밥도 제대로 못 먹으니까, 하…여기도 심했는데, 길주나 김책, 함흥 같은 데서는 뭐 아파트에서 하루에 두세 명씩 죽어 나갔답니다. 위에서도 급하니까 군량미, 전쟁물자를 풀어서 일주일 정도 배급으로 식량도 주고 그랬습니다.” ※ 량곡판매소:국영 식량 전매점. 김정은 정권이 2019년경부터 시장에서의 식량 유통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이 곳을 통해서만 주식인 쌀과 옥수수를 구입할 수 있도록 개편했다. ◆‘고난의 행군’ 때와는 차원이 달라 ―― 지금은 어떤지 조금 더 말해줄 수 있나요? “지금 보통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다 어렵습니다. 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저 서로 일공(일용직 노동)하려고 찾아다니고, 용케 일 잡으면 한두 끼 벌이 하기도 하고…. '고난의 행군'(1990년의 대기근) 때는 생활력 없는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다 힘들어서…. 간부들이나 살지 나머지 사람들은 다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일할 사람이 없는 집이나 혼자 사는 집, 그리고 환자가 있는 집은 다 꼬제비 수준입니다. 먹을 게 없어서 집안의 쟁기를 다 팔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집들이 진짜 많습니다.” ※ 쟁기:TV, 냉장고, 선풍기 등 살림에 필요한 가재도구를 이르는 말. ―― 최근 주변에 실제로 굶어 죽은 사람이 있었나요? 그리고 당국은 아무 대책도 없는 건가요? “어제도 동네에 늙은이 하나 죽었는데, 죽은 다음에 집에 가보니, 소금 한 숟가락도 없더랍니다. 당에서도 생활이 어려운 세대 대책을 세우라고는 하는데, 대책이 뭐, 식량을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며칠 전에 살기 어려운 세대들에게 깡내(옥수수)국수 1kg을 공급했다는데, 그걸 가지고 며칠이나 살 수 있겠습니까?” (2)단한(斷韓)과 공포통치의 실상 올해 초 김정은 정권은 남한을 동족이 아니라 적이라고 규정하고, 한국 및 통일과 관련된 모든 흔적을 없애는 작업에 착수했다. 일반 주민도 이 같은 정책 변화를 체감하는지, 그리고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4월 말, 양강도 현지의 여성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았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스러운 주민, 군대가 통일 구호를 지우고 있다 ―― 올해 초에 김정은이 한국은 같은 민족도 아니고 통일 상대도 아니라고 선언했는데, 주민들의 반응은 어때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여기는 난리도 아닙니다. 한국이라는 말도 못 꺼내게 하고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거는 적대분자들이 보는 것으로 평가됐어요. 군부대들에 통일 구호를 다 없애라고 지시가 내려서 뺑끼(페인트) 구하러 (시내로) 오는 군인들이 많습니다. 그쪽(남한)에서 쌀도 받고, 판문점에서 회담도 하고(2018년 4월의 남북 정상회담), 한동안 서로 막 잘 살겠다고 기대했는데, 이러니까 사람들도 전쟁하려고 이러는 건지, 아니면 한국이 잘 사니까 우리를 흡수할까 봐 그런지 몰라 혼란스러워합니다. 한국하고 분계선이 열리면 다 내려갈 판이 될까 무서워서 그러겠지요.” ――뺑끼 구하러 온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통일과 관련된 구호들 위에 덧칠해서 지우는 용도로 쓰려고 구하러 다니는 겁니다.” ◆그래도 통일과 경제교류를 원합니다 ―― 주변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한국은 같은 민족이고, 또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이지 않습니까. 사람도 많고. 한국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한라산 줄기’라고 하는데 ‘백두산 줄기’보다 더 잘 삽니다. 통일이 되면 좋고, 안 돼도 경제적 교류라는 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교류라도 정상화됐으면 좋겠습니다.” ※ ‘백두산 줄기’는 과거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이던 시기, 김일성과 함께 항일 투쟁을 하던 사람들의 직계가족으로 북한 정권의 특혜 대상이었다. 최근에는 남한으로 탈북한 사람의 가족들이 ‘한라산 줄기’로 불리며 부러움을 받는데, 탈북자들이 보내는 송금으로 그 가족의 생활 수준이 ‘백두산 줄기’ 이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 국가에서 그렇게 말해도 통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됐으면 좋겠습니다. 밖의 소리를 하나도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정말 진짜 무서운 세상이 됐습니다. 먹는 거밖에 모르고 그런 것에만 신경 쓰면서 사는 게…. 좀 나가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보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긴급체포에 사형까지, 공포감에 오금 저려 ―― 전보다 주민 통제가 심해졌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가요? “아까도 말했지만, 여기 모든 사람들이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주변 사람이랑 친척까지도 멀리해야 하는 세상이 됐어요. 웬만한 일도 시범격으로 교화 2년씩 막 보내고, 찍 하면 총살하고, 최근엔 긴급체포라는 것도 생겨가지고 사건에 관련된 사람을 보면 장소에 상관없이 막 잡아갑니다. 오금이 저려서 다니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작년부터 세 번 총살했는데, 지금도 (사형 집행)대상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 작년 8월부터 12월 사이 혜산시에서만 3차례의 공개처형을 통해 12명이 사형되었다. ―― 주변에서 많이들 무서워하나요? “네, 위에서 딱 하라는 것만 하고, 보라는 것만 보고. 특히 탈북자 가족들은 이제 걸핏하면 감방가게 생겨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말을 잘 못하면 감시에 걸리고,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법을 안 지킬 거면 죽으라고, 죄도 짓기 전에 자수하라, 신고하라 그러고. 그런 체계를 딱 만들어 놨단 말입니다. 그냥 걸리면 죽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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