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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아오면서 부딪쳤던 가장 큰 장애물을 끝까지 완수한 사례를 기술하고, 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였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기술하시오 (1200자)
▶ 내 생에 첫 대상
2011년 교내 캡스톤 디자인 경진대회 대상!
저희 팀인 K8는 2011 교내 캡스톤 디자인 경진대회를 위해 모여서 브레인스토밍을 여러 차례 실시했습니다. 많은 아이디어 중 매년 증가하는 음주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만약 음주를 했을 경우는 운전할 수 없도록 하는 시동방지 장치를 만들어 보기로 했고 처음에 저의 팀원들은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작시 회로의 수많은 단락과 ATmega 프로그래밍상의 오류로 시간이 지체되기 시작했습니다. 기한을 맞추기 일주일에 하루이틀 모이던 것을 거의 매일 만나서 새벽까지 하기로 했습니다. 저의 파트는 알콜센서 부분이었는데 결과값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센서 교체와 함께 회로도를 처음부터 새롭게 구성하면 저의 부분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완성하지 못한 부분인 릴레이를 통한 스위치 동작을 구현하기 위해서 각자 맡은 부분이 끝난 팀원과 함께 제작하면서 저희들은 기한 내에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간단한 회로이지만 저희들은 아이디어로 승부하여 교내캡스톤 경진대회에서 대상이라는 큰 상을 받았고 더욱이 5개 대학연합 경진대회에서는 동상이라는 상을 받았습니다.
캡스톤 디자인 수업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수업중에 팀을 만들어서 조그만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벗어나 처음으로 큰 지원금을 가지고 직접 작품을 만들어 본 경험입니다. 이번 경험으로해서 작은 아이디어로 충분히 실생활에 유용한 발명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팀을 구성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 상의를 하면서 제작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지원하는 회사와 분야(직무)에 대한 지원동기를 자유롭게 기술 하세요.(50자 이상 800자 이내 입력)
저는 군생활을 정보사령부 예하부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다루는 정보가 기밀사항이 많아서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저희 부대는 미군부대와 연계를 통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대북정보를 다루는 저희부대는 미군의 정보력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약했고 항상 뒤쳐졌습니다. 그 점에 저는 항상 안타까웠고 억울했습니다. 그 후 전역을 하고 학교 생활을 하면서 저의 군대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져 갔지만 우연히 가본 두산DST의 채용설명회에서 다시금 군대에서의 기억이 났습니다. 현대의 무기는 전자장비가 없는 것이 없습니다. 미사일부터 전차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자장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자장비의 정확성과 신속함이야 말로 무기의 성능을 판가름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정보통신공학과에서 전자소자를 배운 저는 두산DST에서 우리나라의 국방력 향상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3. 본인의 장/단점과 입사 후 장점은 어떻게 활용되고, 단점은 어떻게 보완 할 수 있겠는지를 기술하세요.(50자 이상 800자 이내)
▶ 자상한 리더
박지성의 조용한 리더십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즉 본인 스스로가 앞장서서 최선을 다하고 높은 위치에서 지시와 호통이 아닌 같은 위치에서 편안하게 의견을 교환하며 신뢰로 팀을 이끄는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학교 단기어학연수 프로그램으로 캐나다에 8명이 같이 가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동생들을 하나하나 챙겨주면서 때로는 집에 가고 싶다고 짜증내는 것을 달래면서, 여행을 갈 때도 제가 솔선수범하여 계획도 짜고 길도 찾아가면서 다녔습니다. 동생들에게 친오빠처럼 다정하게 대해주고 장난을 쳐도 받아주고 때로는 잘못하는것에 대해 야단을 치면서 동생들을 이끌었습니다. 앞으로의 리더는 옛날의 카리스마 리더가 아닌 서로 터놓고 말을 할 수 있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수평적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팀 프로젝트가 많은 회사생활에서 저의 수평적 마인드는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속에서 서로 잘 융합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삶의 여유
‘시간은 금이다’라는 강박관념과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하려는 점을 가장 보완하여야 할 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러한 성격이 때로는 한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순간을 방해하고, 정신적으로 압박감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능률이 더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것을 보완하고자 항상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을 맘에 새겨놓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시간을 내어서 광안리 해수욕장을 거니면서 안정을 취하기도 합니다.
ㄷ
첫댓글 어디서 근무했어? 대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