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한 송이의 우정
변양섭
내일의 여행을 위해 난 며칠 저부터 잠을 설레고 이른 아침 기차표를 예
매했다.
얼마 만에 가보는 기차 여행인지 요즈음은 고속버스의 발달로, 기차역이
먼 관계로 나는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오랜만에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나는 마구 소리쳐 자랑하고 싶
어진다. 표를 예매하면서도 판매원에게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면
서...... 이렇게 꿈처럼 부풀어 있던 나의 마음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사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온 나는 친구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려고 전화를 하다가 한 친구가 몹시 감기에 취해 갈 수가 없
단다. 기쁨의 타래들이 한꺼번에 뒤범벅이 되어 엉켜 버리고, 난 모든 것
이 정지된 듯 엉망이 돼 버렸다.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니 분명 빨
리 가서 환불을 받아야함을 잘 알면서, 나는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것뿐
이다. 백화점안 여행사에서 끊어 온 것이니 거기까지 가야 환불이 되는데,
그것도 백화점 문 닫기 전에..... 그런데도 난 몰라 만 연발 할뿐 움직이기
가 싫어진다.
나는 이렇게 답답할 때마다 의지하는 친구가 있다. 내 마음 모두를 속속
히 알고 있는 이런 친구가 있음을 자랑하고 많이 행복해 하고 있다. 그럼
에도 난 얼마나 자기 속셈만 차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 친구의 아픔을 배
려 해주지 못하고 헤아려 주지 못함을 늘 미안 해 하고 있다. “네가 함께
여행을 가 줘”라고 나는 억지를 부려 본다 나는 늘 이 친구와 입버릇처
럼 이야기 해 왔다 “우리 밤 기차 타고 여행 가자”해 놓고 의견도 물어
보지 않은 채 이미 다른 친구와 날을 잡아 놓고 통보를 하다 보니 그 친구
남편의 생일이 하필이면 그 날 중에 끼어 있는 게 아닌가? 일년에 한 번인
생일이 끼어 있을 줄이야 어찌 했건 모든 건 나의 불찰이었다. 갈 수 없
음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함께 가자고 억지를 써 본다 “그건 안 되지,
그거 말고 내가 어떻게 해 주면 좋겠니?”라며 내 마음을 헤아려 주고 언
제나 날 위해 최선을 다 해 도와주는 친구! 이 친구를 나는 좋아한다. 아
니 사랑한다. 언제나 바른 모습으로 한국여인의 본보기처럼 조금도 흐트
러짐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친구를 나는 친구임을 떠나 존경스럽게 생각
하고 있다 언제나 남을 배려 해 주고 많이 이해하려 노력하는 이 친구,
남의 비평보다는 왜 그랬을까? 무슨 사연이 있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칭찬만을 할 줄 아는 이 친구를 동경한다.
어차피 둘이 가나 혼자 가나 일의 해결은 내가 해야 되는 것을...... 뻔뻔
하게도 나는 이 친구와 백화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말았다. 나의
무슨 특권인 것처럼 언제나 어려움에 함께 끌어 드리는 못된 습성 때문인
가? 함께 걸어가기를 원했지만 결국 나는 버스를 타고, 친구는 걸어서 만
나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리며 두리번거렸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언
제나 약속시간에 나 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친구, 혹시 추워서 백화점
안에서 날 기다리나 기웃거리는 내 눈에 저쪽에서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
듯 많은 사람을 헤치고 달려오는 사람 보지 않아도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친구임을 알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온 얼굴이 한여름 주체할 수 없이
머리 속까지 땀으로 가득하다 나는 친구를 보며 가슴이 찡 달아오른다. 우
정이란 이런 것인가? 덩치도 내가 훨씬 크고 내가 더 잘 할 것 같은데 나
는 늘 이 친구를 의지하며 산다. 나의 길라잡이가 된 것처럼......
예쁘게 포장된 안개 꽃 속에 붉은 장미 한 송이, 나에게 쥐어 주며 “나 이
거 사느라고 좀 늦은 거야”하는 친구를 보며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사랑은 주는 것 주는 것이 더 아름답다 했는데, 내가 주는 것 보다 몇 갑
절 이렇게 받고만 있으니.....
가져가야 할 반찬도 준비해야 하는데 시간은 자꾸 가기만 하고 마음은 아
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모르겠다. 안되면 사 먹지 뭐 우린 나란히 주스
한 잔을 시켜 놓고 앉아 여유 부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한다.
누가 알까? 우리들의 이 깊은 사랑 나눔을, 그러고도 내 마음이 풀리지
않았을 까봐 한겨울 밤 바람과 함께 걸었다.
집까지 50분은 족히 걸릴 것을 친구의 집을 지나고도 잘 가”라는 나를
밀치고 “나 걷고 싶어”라며 우리 집 앞 골목어귀까지 데려다 주고는 온
길을 한참이나 되돌아가야 하는데...... 그것도 혼자서, 돌아가는 친구의
뒷모습에서 나는 데이트에서 헤어지기 안타까워 떨어지지 않으려는 애인
같은 애련함을 본다. 가면서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손 흔들기 몇 차례
우린 서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서 있었다.
장미 한 송이의 사랑이 자랑스럽다. 나는 소리 쳐 자랑하고 싶다.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고.....
2002/14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