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시작하여 목숨을 마칠 때까지
우리가 요즘 일반적으로 봉행하는
일상의 삼귀의례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귀의불 양족존
귀의법 이욕존
귀의승 중중존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
삼보에 귀의하는 불자들의 마음이
가슴에서 우러 난 조금 더 간절하고도
확신에 찬 신앙 고백에 가까운 삼귀의 예문을
어디서 찾아 볼 수 없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바로 초기 불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룩하셔라 세존이시여
거룩하셔라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심과 같이,
덮인 것을 벗겨 드러냄과 같이,
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리킴과 같이,
어둠속에 (방황할 때) 등불을 들고 오셔서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하심과 같이
세존께서는 온갖 방편을 가지고
법을 설하여 밝히셨나이다
저는 이제 지금부터 세존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가르침과 가르침을 따르는 승가에 귀의합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시작하여 목숨을 마칠 때까지
세존께 귀의하는 불자로서 저를 받아 주소서"
<수타니파타 사품>
참으로 간결하면서도
삼보의 의미가 온전히 드러나고
귀의하는 불자의 맑은 마음가짐 또한
고스란히 드러낸
아름다운 예경문이라 하겠습니다
위와 같은 신앙 고백을 통해
자신의 굳은 믿음을 보이고
부처님이 설하신 사성제 팔정도에 대한 이해와 실천
그리고 불자로서 살아가는 최소한의 생활 규범인
다섯가지 계율을 지키는 이라면 그는 누구라도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가 보면
우리 불교는 그렇게 현실로부터 도피적이거나
일상의 삶을 경영해 가면서 생활 속에
실천하기 어려운 종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만난 모 주지스님은
지금 살고 있는 주지 임기가 되면
토굴을 하나 만들어 수행에만 전념하겠다 하시기에
삼귀의와 오계를 받아 지니는 순간 이미
나를 버린 수행자로서의 수행은 시작되었고
그 수행은 토굴이나 산 속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나 아설시 스님등 모든 승가가 그랬듯이
세간 속에서 깨달음의 꽃을 피우고
중생 속에서 불도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조심스레 반론을 내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 다녀 오며
봉은사에서 조계사까지 길을 도와 준 거사는
나이가 사십대 후반의 독실한 불자인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스님 조계사 근처에 사무실이 있을 때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조계사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 전 백팔배를 올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평소 사무실의 근무 복장으로
절을 올리는 것이 조금 불편하여
절하기 편한 복장으로 갈아 입으려 할 때에
탈의실이라도 있으면 잘 사용하 수 있을텐데
하는 마음으로 해우소같은 곳에서
옷을 갈아 입은 적이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하는군요
같이 자리하신 신심깊은 보살님께서도
그래요 저도 여자의 입장에서 절을 하고자 할 때
간단하게 옷을 바꾸어 입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조계사 같은 공간은 주위의 젊은이들이
아무런 제약없이 드나 들면서 불법을 접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기에 그런 편의 시설 하나 정도는
배려해 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이십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머리쓰는 일은 많고 운동은 적다 보니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백팔배가 대세인데
그와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오며 가며 쉽게 부처님 전에 와서
위와 같은 신앙 고백을 우리 말로 하면서
마음 속에 크나큰 환희심과 간절한 서원을 세울 수 있는
문화 공간이자 신앙의 공간 그리고 나아가서
노소남녀가 함께 하고 화합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면
법당의 역할에 더하여 금상첨화가 될것입니다
불교는 어렵다고 하는데
절대 어렵지 않음을 보여 주어야 하고
불교는 어른들이나 믿는다 하는데
삼귀의와 오계를 실천하는데 노소남녀가 없음을
널리 알려 주는 일이 시급합니다
이십여년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아가들에게 제일 많이 들려 준 이야기가
다섯가지 계율 가운데 불살생계요
불투도계며 불망어계입니다
돌이켜 보면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라는 말이며
비록 나의 것이라도 이웃과 나누는 삶을 권하고
고운 입으로 항상 거짓없는 진실을 말하도록 하여
그것을 잘 지켜 나가고자 하는 원을 세우면
그들이 바로 진정한 불자들이고
부처님의 제자들이라 생각합니다
쉽고도 간결하면서
누가 들어도 바로 이해하고
누가 행해도 쉽게 실천할 수 있으며
실천과 동시에 기쁨을 얻을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계발해 내는데
우리 불자들의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앞으로는 불공 의식도 한글화하여
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집전하도록 만든다 합니다
나도 그같은 시도를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그동안 만든 한글로 풀이한 의식의 집전은
여간 노력해서는 그 의미를 바로 전하기에
아직은 조금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한문 의식집의 번역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예경 의식을 만들어 간다는 노력으로
불자들의 감성과 정서에 맞는 언어와 문장을
유려하게 만들어 내는 일이 시급할 것입니다
일예로 박완일 법사님의 나는 누구인가
테잎을 들으면 불교가 참 쉽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실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느 처사에게 물었습니다
법문 들어 보았느냐고? 좋지 않더냐고.
예 스님 듣기는 들었는데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쉽고도 쉽게 이야기 했음에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이들을 위해서는
더 쉽고도 간결한 법문 소재를 발굴하여
진리의 길로 이끄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입니다
원효사 심우실에서
나무아미타불